각자의 마음 (3)
대체 얘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걸까.
그게 회랑에 복귀하고, 새로 배정받은 숙소 앞 까지 걸어와 그녀들과 마주하게 된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니, 사실 주말인 만큼 화이트라인 생도인 그녀들이 화이트라인 구역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의아했던 점은 왜 하필 남의 숙소 앞 벤치에서 저렇게 사이좋게 앉아 있냐는 것이고, 다시 왜 이렇게 미묘한 분위기 속에 저런 기묘한 대화를 나누고 있냐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이래저래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어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이렇게 회랑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런 미묘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니 기분이 조금 떨떠름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2020. 05. 02 / Pm 12:36]
참고로- 지금은 루타텔과 헤어지고 난 뒤 다시 4시간이 지난 상황. 나는 그 이후에 다시 티르유와 함께 등천의 구도자 본부에 들러야 했고, 결국 사전에 지급이 예정되어있던 에테리얼 크리스탈을 받아올 수 있었다.
이곳 등천회랑에서 워싱턴DC의 본부로.
그곳에서 다시 스페인 남부의 해안으로.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한 번 더 역순으로.
그렇게 이래저래 시차가 낮과 밤을 오가는 하루였던 만큼 하루가 꽤 길었다는 느낌이었지만, 사실 제대로 따지고 보면 등천의 구도자에 들려 나르화리얀을 만나고, 스페인에서 토벌에 참여하고, 마지막으로 루타텔까지 만나게 된 그 모든 일은 겨우 한나절 동안 이루어진 일에 불과했을 뿐이니- 결과적으로 나는 그냥 하룻밤이나 지새우고 온 셈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 정도로는 딱히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이래저래 좋은 경험도 하고 받아야 할 보상까지 들고왔으니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하루라고 볼 수 있었을 따름.
하지만.
아무래도 일과가 전부 끝났다기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도 했고, 마침 당사자들도 이렇게 눈앞에 있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빠르게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설명부터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설명은 무슨, 다 들었을 거 아니야?”
그렇게 건넨 물음에 아리엘은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핀잔하는 투로 대답을 전해왔고,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잠시 조금 전 목격한 장면을 차근차근 되새겨 볼 수밖에 없었다.
-천하 걱정은 이렇게 밤새 해주면서, 내가 너희 걱정해준 건 그렇게 사양하고··· 정말. 어때? 이제 그때의 내 기분을 좀 알겠어?
참고로 내가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아리엘이 마치 반죽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이하린의 볼을 쭉 잡아당기는 중이었고, 그렇게 아리엘은 눈물을 글썽거리는 이하린을 향해 지난번 일을 언급하며 잔소리를 쏟아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언뜻 봤을 때는 순간 이하린을 괴롭히고 있는 걸로만 느껴졌을 정도.
물론 그것만으로도 맥락이 파악되긴 했다.
또다시 판다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하린의 모습이나, 그런 이하린이 밤새 나를 걱정해줬다는 말이나, 그리고 이하린을 토닥여주며 말했던 아리엘의······ 주변에 걱정을 잘 끼친다는 마지막 말에서나?
허나- 나로서는 그게 조금 얼떨떨했다.
“도대체 내가 언제 걱정을 끼쳤다고?”
“언제? 하린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렇기에 작은 억울함을 담아 그리 대답을 돌려주었더니, 내 말에 아리엘은 자신의 옆에 앉아있을 이하린을 가리키며 항변했다.
하지만.
“······응?”
“하린씨 저기. 벤치 뒤에.”
“······너 언제 거기 갔니?”
이하린은 이미 나를 발견한 시점에서 황급히 몸을 벤치 뒤로 숨긴지 오래였고, 그렇게 그녀가 가리킨 건 빈 허공이었을 뿐. 아무래도 이하린에겐 아직도 지난번 일의 여파가 남아있는 것 같았는데, 거기에 조금 전 보여준 무방비했던 모습들도 있었던 만큼 그녀로서도 본능적으로 숨어버렸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졸지에 허공을 가리키게 된 아리엘은 다소 벙찐표정을 지어 보이며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흘러나오는 얼떨떨한 목소리.
“······하린아?”
그러자 그녀의 부름에 이하린은 벤치 뒤에서 잔뜩 빨개진 뺨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고개를 빼꼼- 내밀었고, 그리고는 살며시······
“······거, 걱정은 해, 했는데··· 그, 그렇게 마, 많이는 안 했어요···! 저, 정말이에요!”
“······.”
아리엘의 말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는데?”
“······아니.”
물론 그 상황에 아리엘은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충격받은 표정으로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이하린은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무척이나 미안하다는 듯 빠르게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리엘 또한 이하린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상당히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상대가 이하린이라는걸 다시 한 번 상기한 모양인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던 입술도 결국 꾹- 다문 채. 이내 체념하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어왔다.
“······어쨌든! 걱정은 했다잖아! 저 얼굴을 봐봐. 애가 완전 반쪽이 됐다구!”
“바, 반쪽까진··· 아닌데에······”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이하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하린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황급히 가렸지만, 아무리 그녀의 얼굴이 작더라도 그만큼 그녀의 손도 작았기에 전부 가려질 리는 만무했을 뿐.
확실히 이하린의 얼굴은 다크서클만 봐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밤을 새웠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조금 수척해 보이는 모습에 아까의 일로 볼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으니 평소와 다르긴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건 저거겠지.
“저건 네가 괴롭혀서 그런 거잖아.”
“······뭐?”
그렇게 흘러나온 내 말에 아리엘이 아연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이하린의 얼굴을 가리키며 태연히 대답했다.
“저기, 네 손가락 자국 남아있네.”
“아, 아니 그거 말고! 그리고 그건 하린이 괴롭히려고 그런거 아니었거든···?!”
“그럼 왜 그렇게 잡아당겼던 건데?”
“······그, 그건 다 이유가 있었···!!”
“어쨌든 네가 잡아당긴 건 맞잖아.”
“······아··· 니!”
그렇게 이어진 내 말에 아리엘은 뭔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뻐금거리기 시작했지만, 내가 말한 건 분명히 사실이었기에 아리엘로서도 뭐라 할 말을 찾기 힘들었던 모양.
그녀는 이내 어찌할 줄 모르는 이하린의 얼굴, 정확히는 그 볼에 남아있는 자국을 확인하고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거기서 한마디 더 덧붙여주었다.
“하린씨 좀 괴롭히지 마라니까.”
그러자.
“너, 너무해··· 내가,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건데··· 내가, 내가 지금······”
아리엘은 상당히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고, 그녀는 할 말이 많다는 듯 다시 입을 오물거렸지만, 이내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
그러자 이하린도 아리엘에게 조금 미안해졌는지 다시 고개를 내밀어 입을 열어왔다.
“아, 아리엘씨이···? 괘, 괜찮으세요오···?”
“······.”
물론- 나도 그녀가 이하린을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근래 이하린의 상태가 상태인 만큼 일부러 무시하고 있을 뿐이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는 이하린의 얼굴만 봐도 그녀가 내 걱정을 많이 했다는 아리엘의 말은 분명 거짓말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
안 그래도 지난번 일로 이하린의 멘탈이 흐느적거리고 있는 상황에 괜히 더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어봤자 도망밖에 더 갈 테니, 당장 그녀에게 전해줄 물건도 있었던 나로서는 굳이 이하린을 위축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아리엘 덕분이지 이하린의 상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도 꽤 안정되어 있었고, 여기서 더 자극만 안 한다면 대화를 나누는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게 죽은 눈빛을 보내오고 있는 아리엘에게 잠시 마음속으로 사과를 건네준 뒤,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어보았다.
“그건 그렇고 하린씨한테 드릴게 하······”
하지만- 바로 그 순간.
[ヾ(°∇°*)]
아리엘에게서 흘러나온 마력의 소용돌이.
우우웅-! 갑작스레 휘몰아친 마력의 밀집은 순식간에 내 앞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현상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미동조차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
“······.”
그리고는 이내.
[(´・`)]
그녀로부터 시작된 마력은 순식간에 갖가지 형상으로 빚어지며 문자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고, 그에 이하린도 마력의 유동을 느끼고 순간 움찔거렸지만 저 형상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ヘ`;) (´Д`) ヽ(´Д`;)ノ]
“······.”
[(゚A゚) (゚Д゚) (((ノ)゚Д゚(ヽ))))]
[(o﹏o。) џ(ºДºџ) ヽ(゚Д゚)ノ]
“······.”
[(゚д゚;) (;゚Д゚) ((((;iДi))))]
[(iДi) (ਉ_ਉ) (இ_இ)]
[(இ (இ (இ Д இ) இ) இ)]
사방에서부터 쏟아진 무언의 항의는 한순간에 내 시야를 잠식하며 격렬한 무언가를 토해내기 시작했고, 침묵속에 기하급수적으로 증식되어가는 마력의 형상에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야 말았으니······
[\( இ ∇ இ )/ (ノ இ ェ இ)ノ]
[(*இ ▽ இ)ノ^—==ΞΞΞ இ இ இ]
“······알았어. 미안. 장난이야. 미안해.”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얌전히 사과를 건넬 수밖에 없었을 따름이었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리엘의 마력운용이 점점 세밀하게 발전해간다는 느낌이었다. 나한테 자꾸 써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따로 연습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 펼쳐졌던 광경은 정말 장관이 따로 없었다.
점점 희한한 쪽의 특기가 생겨나는 느낌.
어쨌든- 그렇게 토라졌던 아리엘의 기분은 결국 내 사과와 함께 벤치 뒤에 숨어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하린까지 다시 앞으로 끌고 나온 뒤에야 간신히 풀어졌는데, 아무래도 이하린의 태도에 요 며칠간 우리 사이에 끼어 이래저래 눈치를 봐야 했던 것에 대한 앙금도 어느 정도 풀려나온 것 같았다.
“······.”
“······.”
아무리 봐도 이하린은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은듯한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아리엘의 손길에 이도 저도 못한 채 가만히 몸만을 꿈틀댔다.
그렇게 이하린을 꽉 붙들고 있는 모습.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잔뜩 토라진 얼굴을 한 아리엘은 자신의 무릎 위에 이하린을 앉혀놓고선 반쯤 껴안은 채 보란 듯이 그 볼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고, 그렇게 이하린은 얌전히 그녀에게 사로잡힌 채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게 안부를 물어왔을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자, 잘 다녀오서허효?
“예. 잘··· 다녀왔습니다.”
침묵이 길어지자마자 아리엘이 그녀의 볼을 쭉- 잡아당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그래도 다, 다히힌 한으혔효···?”
그렇게- 그냥 가볍게 한번 물어본다는 듯한 말투로, 그러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안부를 건네오는 그녀. 마치 이번에는 진짜로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듯 울상을 짓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 웃음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웃을 수는 없는 노릇.
등천도시에서의 일 이후로 그녀는 나만 보면 도망가기 일쑤였기에 지난 며칠 동안은 이하린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물론, 그동안 나는 자연스레 그녀가 멀쩡해질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이왕 이렇게 돼버린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나름의 기회일지도 몰랐다.
아리엘 덕분에 억지로라도 대화를 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한번 말을 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적어도 지금보단 덜 부끄러워 할 터. 그렇기에 나는 담담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예. 전혀 안 다쳤습니다. 멀쩡해요.”
“······그럼··· 다행이에요. 정말로요.”
그러자- 이제껏 나를 피한 건 정말 민망해서 그랬던 게 맞았다는 듯 그녀는 지금의 상황도 잊고선, 순간적으로 내 대답에 무척이나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
“······.”
자연스레 다시 또 침묵이 내려앉았을 뿐.
애초에.
아무리 아리엘 때문에 강제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어도, 이하린은 이하린이었으니 그녀의 멘탈은 이미 진작에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저번처럼 한번 장난이라도 치면 바로 얼굴이 펑- 터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을 정도로 이하린의 얼굴은 이미 진작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뒤였다.
아마 그녀의 얼굴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면 무척이나 뜨뜻하지 않을까 싶었을 정도.
하지만 그 순간- 이하린을 붙들고 있던 아리엘이 그녀의 귓가로 입을 갖다 대더니 뭐라 속닥거렸고, 그와 동시에 다시 또 이하린의 볼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이하린은 울상을 지어 보이며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그으······ 아, 혹시 식사는··· ㅤ핳.”
아리엘은 뭐가 불만스러웠는지 다시 한 번 그녀의 볼을 잡아당겼고, 마치 괴롭혔다는 누명을 쓸 바엔 정말로 괴롭혀주겠다는 듯 사정없이 이하린의 볼을 반죽하기 시작했다.
“그거 말고. 아까 그거 말해야지.”
“하, 하지만······ 그, 그건 너, 너뭇!”
“이럴 때라도 제대로 말해야지 하린아?”
“······하, 하히망.”
“또 혼자 걱정하다 밤새려구? 어서.”
그렇게 쭉- 잡아당겨진 그녀의 볼에선 바람이 새어나갔고, 그러자 이하린은 잠시 눈을 글썽거리더니 이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빽- 소리쳤다.
“그··· 근데 그, 그건 왜 그러신건데요!”
“······그건?”
그렇게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에 아리엘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이하린도 이제 포기한 듯, 펑-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뉴, 뉴스에서 다 봤단 말이에요···! 지난밤에 있었던 일. 천하씨가 한 거 전부요···!!”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늘에서 뛰어내린 거요!!”
“하늘? 아.”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었더니 그거였군.
“누가······ 누가 맨몸으로 그렇게 뛰어내려요! 옆에서 누가 마법이라도 걸어주신 모양인데······ 수호자급이 마력포화라도 쐈으면 거기서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신 건데요···?”
“······.”
“비행능력도 없으신 분이 왜 그렇게 무모한 일을 하고 오신 거냐구요···! 그것도 크리스탈 받으러 가셨다는 분이···! 왜! 애먼 곳에서··· 갑자기 뉴스에 이름이나 나오시구······”
“많이 걱정하셨나요?”
내 물음에 그녀가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글썽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내 눈에는 저게 이 상황이 수치스러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볼이 아파서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걱정돼서 그러는 건지 영 구별이 되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안 그래도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평소에 천하씨를 얼마나 많, 많··· 많이······ 거, 걱··· 걱정······”
한순간에 기어들어가기 시작한 목소리.
“······걱정했······ 데······ 진짜······”
그렇게 욱해서 말을 쏟아내던 이하린은 다시 평소의 이하린으로 되돌아왔고,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열심히 말을 토해내더니 순식간에 평소의 텐션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엔 참으로 이하린답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순간 마음 같아서는 지난번처럼 말장난이라도 걸어보고 싶을 정도였는데, 뒷감당할 자신은 없었으므로 나는 그 생각을 빠르게 억눌렀다.
그나저나- 내 실력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왜 저렇게 밤을 새면서까지 걱정을 했나 싶었더니 그런 것까지 뉴스에 나갔을 줄이야.
하긴, 생각해보면 아무리 초인이고, 각성자라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닌 순수한 무투계 초인이 그렇게 맨몸으로 상공에서 뛰어내렸다는 건 남들이 보기엔 그냥 정신 나간 짓거리처럼 보였을 터. 티르유 덕분에 등장도 상당히 화려했으니 나로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다.
애초에 나도 가호가 있으니 시도했지, 원래라면 얌전히 착륙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녀의 말처럼 어지간한 마법이나 이능은 수호자급의 마력포화 한 번에 소멸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제대로 된 기동수단이 없이 그런 역류한 마수 군집 사이로 뛰어내리는 건 일반적으론 무척이나 위험한 시도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그게 신경 쓰였던 모양.
하지만.
“다 방법이 있어서 그랬던 거였습니다.”
“무슨 방법이요··· 천하씨는 분명······”
그건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
“사실 저번에 가호를 하나 얻었습니다.”
“······?”
내게는 가호가 있었고, 그건 이제껏 먼저 나서서 이야기해줄 일이 없었을 뿐이지 딱히 일부러 숨기고 있던 내용은 아니었다.
“바람을 다루는 가호. 갖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
휘이이잉-!! 내 말과 동시에 강렬한 바람이 우리를 휘감싸고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내 손짓에 따라 방향을 휙휙 뒤바꾸는 바람의 움직임에 질문을 건넸던 이하린도, 곁에서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아리엘도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우우웅-!!
한순간에 흩날리는 그녀들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몰아치는 바람의 결.
“······.”
“······.”
그렇게 나는 잠시 바람의 흐름을 더 움직여보았고, 이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그녀들의 표정에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살며시 바람을 가라앉혔다.
“생긴 건 사실 조금 지났는데··· 이제껏 나서서 말씀드릴만한 기회가 없었습니다.”
“······.”
“어쨌든··· 이게 있어서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그렇게 무리는 아니더군요.”
그러자 내가 가호를 보여준 게 조금 충격적이었는지 그녀들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제자리에서 두 눈을 깜빡거렸을 뿐.
그리고는 이내.
“······아니, 도대체 언제요? 대체? 언제?”
“아니······ 말할 기회고 뭐고, 그런 건 그냥 평소에 좀 말해주면 안 되는 거야? 응?”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오던 이하린은 어느새 굉장히 얼떨떨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게 그리 되물었고, 입을 다물고 있던 아리엘 또한 상당히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
그렇기에 나는 잠시 대답을 고민해보았다.
사실대로 3월에 얻었다 말해주기에는 왜 이제껏 말을 안 해줬냐 토라질 이하린의 반응이나, 서운해할 아리엘의 반응이 너무나 쉽게 예상되었다. 그래서 차라리 최근에 얻었다 해야 되나 고민이되었는데······ 생각해보니 굳이 거짓말을 할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습득시기는 3월이었습니다.”
그리고.
“3월?! 3월이요? 아니, 그럼 대체···?”
“3월이면 카룬드? 그때를 말하는 거야?”
그렇게 흘러나온 대답에 되돌아온 그녀들의 반응은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아니, 그것보단 뒤. 현장체험 때 얻었어.”
“밀라노에서 침식역류 일어났을 때?”
“어. 카룬드 토벌 땐 얻은 게 없었거든.”
“그럼 얻으신 지 벌써 한달, 한달 반······”
“······.”
담담하게 사실대로 전부 말해주었더니 그녀들은 다시 또 벙찐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들의 표정 속에 떠오른 감정만큼은 내 예상과 달랐을 따름.
“······한 가지만 물어볼게. 천하 너 그거 우리한테 일부러 숨긴 건 아니지? 그치?”
“굳이 숨길 이유가 없지.”
“그러면 여태까지 말씀 안 해주신 건······ 그냥 말해줄 이유가 없어서였다는 거죠?”
“예. 딱히 보여드릴 기회도 없었으니까요. 위타극때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고, 따로 누군가한테 말한 건 어제 그 공습과 관련해서 티르유씨한테 처음으로 알려드렸습니다.”
“······.”
내 예상으로는 내게 서운함이나 섭섭함을 내비칠줄 알았는데,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참······ 천하씨답다고 해야 할지 이걸.”
그저 네가 그러면 그렇지- 같은 느낌만이 얼굴 위로 떠올라 있었고, 그렇게 그녀들은 잠시 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감으며 고개를 내저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