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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104화 (104/205)

도달점 (3)

역시나 익숙한 얼굴이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표정일 때는 그래도 전혀 다른 분위기라는 느낌이었지만, 저렇게 미소를 지어 보일 때면 자꾸만 그 얼굴 위로 아리엘의 얼굴이 같이 겹쳐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루타텔은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 말을 꺼내왔고, 그에 티르유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레 루타텔의 말을 받아주었을 뿐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부담스러운 모양인가? 그럼 잠시 다른 이야기부터 해야겠군.”

“아. 기량측정에 관한 거라면······”

“아니.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이곳까지 와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부터 해야겠지. 너희의 참전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

“이렇게 전장까지 와줘서 고맙다. 둘 다.”

루타텔은 뜬금없이 우리에게 감사를 전해왔고, 그녀가 짐작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지 티르유는 그의 말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물론 예상치 못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잠시 말없이 루타텔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두 눈을 깜빡거리고 있던 티르유의 입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말을 들을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아니었다면 상황 정리가 더 늦어졌을 테니 충분히 들을만한 일이지. 수호자급 마수를 정리해준 것만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공략자로서 당연한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전장을 마무리한 건 당신이시고, 그런 분께 감사인사를 듣는 건 조금······ 그렇군요.”

티르유는 몹시 떨떠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 속에서 그녀가 민망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루타텔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내 공과는 별개의 이야기야. 너희가 토벌한 수호자급 마수만 해도 총 10개체. 그 정도면 사실상 전장에 있던 수호자급은 모두 너희 손으로 정리했다 봐야 할 정도 아닌가?”

“그건···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본부에 있어야 할 너희가 이곳에 온 건 너희가 내린 선택일 테고, 너희가 보여준 활약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루타텔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너는 소문 이상이더군.”

“······.”

“전장에서 마력으로 감지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연맹군에게 자료를 전달받고 나니 확실히 더 실감이 났어. 대단했다. 정말.”

“아······ 감사합니다.”

이 순간- 나는 방금 티르유가 왜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조금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하늘에다 태양을 만들어내던 사람한테 저런 말을 들어봤자 당연히 느낌이 영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미묘한 표정으로 대답을 돌려주었더니 그는 다시금 아리엘이 떠오르는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정도면 기량측정을 하진 않아도 되겠어. 애초에 그것도 겸해 찾아온 거라 했지?”

“예. 그렇습니다.”

“좋군. 정말 좋은 자세야.”

루타텔은 그리 말하며 내 어깨를 탁탁- 두드려왔고, 나로서는 그렇게 겉모습은 이제야 막 20대 후반쯤 될 것 같은 얼굴을 한 그가, 마치 한참 어린 자식뻘을 보듯이, 아니 실제로 자식뻘은 맞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하고 있으니 뭐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어색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그 얼굴이 자꾸만 아리엘을 떠올리게 하니 더더욱 그런 기분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리엘한테 아이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기에 기분이 조금 묘했고, 그렇기에 내가 계속해서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자니 루타텔은 이내 무언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말을 건네왔다.

그런데 그 순간.

“너는 분명 승천자가 될 수 있을 거다.”

루타텔의 입에서 담담하게 흘러나온 말. 그 말은 정말이지 다소 뜬금없는 소리였다.

“······.”

“······.”

그렇기에 갑작스레 흘러나온 승천자의 말에 티르유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 또한 말없이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 또한 목표를 위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승천자가 되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승천자의 입에서 이런 견해를 듣게 되니 조금 기분이 묘해졌던 탓.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었나 보군.”

그렇게- 저 말에 대답하기도 애매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루타텔은 내게 이번에는 다시 뜬금없는 질문을 건네왔다.

“유천하. 넌 두려움이 뭐라고 생각하지?”

“뭐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그럼 질문을 바꿔보마. 오늘 내가 행한 일을 봤을 때. 가장 처음 든 생각이 뭐였지?

“······.”

그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는 다른 것보다 현상 자체에 대한 감상을 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걸 관찰하며 생각했던 내용보다는 처음 그 광경을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 맨 처음의 순수한 감상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현실적이라··· 그래. 맞는 말이지. 현실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을 테니까.”

그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부드러웠던 표정을 순식간에 진중하게 가라앉혔고, 그와 동시에 고요해진 눈빛으로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해왔다.

“미지는 곧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우우웅-!

그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허공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마력은 한순간에 불을 피워 올렸고, 바람이 되었으며, 물이 되었다, 이내 벼락이 되어 지직- 거렸다.

“오래전부터 미지는 곧 공포였고, 그렇기에 기원이 생겨났지. 무언가를 두려워하면서 배척하고 경외하고, 다시 의식하기에 마법이 생겨났으니······ 오늘 내가 보여준 광경은 오랜 시간동안 태양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느꼈던 두려움의 총아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작은 태양의 형상으로까지 화한 마력은 그렇게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내비치며 루타텔의 손바닥 위에서 휘몰아쳤을 따름이었다.

후우우우우우-!!

막대한 열기를 그 속에 품은 채로.

말도 안되는 열망을 그 속에 담아둔 채로.

“그러니 이런 걸 목격하게 된 사람이 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 사람의 몸으로 세계를 이겨낼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루타텔은 내 시선을 마주하였다.

“역시 너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구나.”

“······.”

그리고는 고요한 눈빛으로, 그러면서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미지의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

“······.”

“혹은 거대한 벽을 마주했을 때.”

“······.”

“바로 그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져 모든 걸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지. 하지만 그건 그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지를 가진 생명으로선 당연히 취하게 되는 행동일 뿐이고,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라 봐야 할 것이야. 그렇기에-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의 용기가 칭송받는 것일 테니까.”

“······.”

“하지만 아까의 대답. 이제껏 그런 반응을 보여준 사람은 정말 드물었어. 나는 거기서 네가 앞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진심으로 그리 말한 것이란 걸.”

그리고 그 순간.

루타텔의 손위에서 휘몰아치던 열기는 마치 모든 게 허상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그렇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네게 무엇을 기대했건 기량 자체보다는 네 가능성을 가늠해볼 생각이었다. 실력이야 보여준 행적만으로 충분했고, 마음가짐 또한 티르유 이 아이의 말처럼 지난 시간이 증명해주었으니까.”

“지금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거는······”

“그래. 이걸로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게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다. 내가 보기에 너는 언젠가는 반드시 네가 말한 것을 증명해낼 사람처럼 보였고,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를 보고 이렇게 강한 확신을 느끼는 것도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

“그러니 물어보마. 유천하. 너는.”

그리고 그렇게.

그는 진중하게 가라앉은 표정 속에, 다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자신의 손을 내밀어 왔다. 정확히는 손등. 그리고 그곳에서 나선을 이루며 얽혀들어 가있는 7개의 륜을.

“네가 한 말을 증명해낼 자신이 있겠지?”

마치- 이러한 업을 쌓을 수 있겠냐는 듯이.

“······.”

“······.”

그렇기에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들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두 달 전에 건네졌던 질문이. 이제는 다시 승천의 업을 향한 채로 되돌아왔다는 것이 내게는 조금 미묘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도 잠시 고민했고,

이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라와 보거라.”

승천의 업까지- 그 대답과 함께 루타텔은 손등을 들어 올렸고, 나 또한 그곳으로 마주 손을 움직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인사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서로의 업이 마주했다.

툭- 맞닿은 손등.

그리고.

“네가 승천의 업에 도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는 함께 심연에 맞설 수 있도록. 등천의 구도자는 너와 함께 나아갈 테니까.”

우우웅-!! 그 순간 교차한 손등 사이로 마력의 공명음이 울려 퍼지며 아름다운 빛무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단순한 공명이 아닌, 조금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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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흩날리는 오색찬란한 빛의 입자.

서로의 업이 교차하며 자아내는 산란.

업륜의 개수가 개수라서 그런 걸까? 이 정도 규모의 반응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기에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렇게 피어나는 빛무리 속에서 무언가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껏 쌓아온 업을 칭송하는 것처럼.

앞으로 쌓아갈 업을 축복하는 것처럼.

내게는 이 빛이 세계가 우리에게 그런 말을 전해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내 생각을 긍정하듯 업륜에서 피어난 색채는 아름답게 넘실거렸을 뿐이었다. 서로의 손등이 떨어지고, 마력의 공명이 끝난 뒤에도 그렇게. 빛은 우리를 휘감고 반짝거렸다.

***

그렇게 짧은 문답이 지나가고난 뒤- 그때부터 지금까지 루타텔은 티르유와 함께 간략하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는 중이었다.

간단하게는 근래 침식의 비율이 늘어난 지역이 어디냐는 말부터, 최근 문제가 된 이슈가 있냐는 것. 그리고 뜬금없게도 등천회랑의 승천제와 관련된 이야기까지도 말이다.

“······그럼. 그건 예정대로 진행되는 건가.”

“예. 그건 이미 논의가 끝났으니까요.”

“왜인지는 이해가 가지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과하지 않은가 싶긴 하군.”

“그건 그렇지만··· 그분의 의견이니까요.”

물론 나를 의식한 모양인지 생략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나는 그 대화 사이에서 승천제와 관련된 미묘한 느낌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

“······.”

어느덧 나눌만한 대화는 다 나눈 모양인지 그들 사이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루타텔과 티르유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럼 이제······ 슬슬 가봐야겠군.”

루타텔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와 함께 흘러나온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기에 우리는 당혹스러운 기분 속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앞으로도 수고해주도록.”

하지만 루타텔은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어깨를 다시 툭툭- 두드려준 뒤 그대로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볼일이 끝났다는 것처럼 떠나가는 그 모습에 나는 조금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기 전에 한 번쯤은 아리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끝까지 딸의 이름을 언급조차 않는다는 게 나로서는 조금 미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황한 건 티르유 또한 마찬가지.

그녀는 잠시 두 눈을 깜빡거리며 말없이 루타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그리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을 따름이었다.

“······본부로 가신다는 건 아니겠지요?”

“내가 그곳에 갈 이유가 아직 남았던가?”

그리고- 그 말에 루타텔 또한 담담히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본부로 복귀하라 했던 것도 기량측정 때문이었으니 이제는 돌아갈 필요가 없겠지. 포상이야 누가 주든 상관없는 거니까.”

“휴식권고는 분명 전해 들으셨을 텐데요.”

“침식영역에는 안 들어갈 테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승천제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그냥 도심지에 솟아난 탑만 순회할 생각이니까.”

“······.”

“그 정도면 무리 축에도 못 끼니 아크샤님도 이것까지 말리진 않으실 테지. 그러니 너도 괜히 말릴 생각은 하지 말거라. 휴식을 취하면서 공략을 해도, 그 정도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야.”

그렇게 평온한 목소리로 되돌아온 루타텔의 대답에 티르유는 다소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예. 그럼 보고는 제가 올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마.”

그처럼 마지못해 흘러나온 티르유의 대답에 루타텔은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리고는 이젠 정말 가려는 모양인지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

딸칵- 문고리를 부여잡은 그는 잠시 손을 멈춰 세웠다. 아니, 그는 무언가 고민이 되는 듯 손을 움찔거렸고, 그러다 이내- 다시 몸을 돌리더니 시선을 마주해왔을 따름이었다.

무척이나 심란해보이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렇게 루타텔은 마치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가 무척이나 망설여지는 모양인지 입만 달싹거렸을 뿐이고, 그렇기에- 결국 보다 못한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았으니 말이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내 말에 루타텔도 마음을 다잡은 듯 한숨을 내쉬었고, 그 순간 그는 다소 씁쓸해 보이는 미소와 함께 말을 꺼내왔다.

“······그래. 너무 뒤늦은 느낌이라, 내게 이럴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는.

“지난 타천자 습격 때. 아리엘······ 그 아이를 구해줘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다.”

다짜고짜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해왔다.

그것도 자신의 고개까지 숙여가면서.

“······.”

그렇기에 나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껏해야 아리엘에 대한 안부나 물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말처럼 사건이 일어나고 시간이 다소 지난 이 시점에서, 그렇게 이미 지나간 일로, 저 정도의 사람이, 이런 감사를 표해온다는 게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시야에 들어온 루타텔의 표정이 무척이나 심란하고 씁쓸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담담히 그에게 대답을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아닙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감사 받을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리엘은 제······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친구?”

“예. 어쩌다 보니 저도 평소에 그 아이한텐 이래저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내 말에 루타텔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안심이 되는듯한 표정과 함께, 그러면서도 여전히 기분이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그 얼굴에 띄어 보인 채 말이다.

“······.”

“······.”

하지만 이내- 그는 다시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거렸을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

“앞으로도 잘 지냈으면 싶지만··· 그건 내가 신경을 쓸 부분은 아니겠지. 그래도 그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구나.”

“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영 거북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저 안심될만한 대답이나 돌려주는 게 맞을 테니 이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또한.

저렇게 심란해 보이는 얼굴로 말을 건네오는 그를 보고 있자니, 원작에 묘사되었던 그들의 관계가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분.

물론 소설 속 묘사로만 봤을 때는 그냥 표현이 서툰 사람들이구나 싶었을 뿐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삼자인 내 앞에서도 저렇게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하니······ 실제로 아리엘 앞에 서게되면 과연 입이나 제대로 열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는 수준이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원작에서도 관련된 이야기가 몇 번이나 나왔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잠시 회랑에 있을 아리엘의 얼굴을 떠올려보고 있자니, 루타텔은 이내 그런 나를 향해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밀어왔다.

당연히 이번에는 손등이 아니었다.

“그럼 잘 부탁하마.”

“······예.”

그렇기에 나는 내게 악수를 건네온 루타텔의 손을 마주 잡아주었고, 다시 그 손끝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염려에 루타텔을 향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승천제에서의 활약도 기대하고 있으마. 유천하 너도. 그리고······ 아리엘 그 아이도.”

루타텔은 그 말을 끝으로 망설임 없이 뒤돌아 바깥으로 걸어나갔고,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도망치듯이 빠져나간 그의 옆모습에서, 그리고 인정 하나 버리지 못하면서 의무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탁-

나는 왠지 모르게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을 되새겨 보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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