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점 (2)
휴게실 한쪽에 비치된 스크린.
그리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스페인 남부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침식역류현상은 사건 발생 부로 약 7시간 만에 완전종결 되었으며, 위급했던 현장은 승천자 루타텔 및 다수의 등천자들이 합류함으······]
현재 우리는 휴게실 구석에 앉아, 그 소리를 흘려들으며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또한 현장에 참여했던 각성자의 말에 따르면 현장의 판도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건 바로 하늘 위에 태양이 떠오르고 나서부······]
그러다 문득- 톡톡 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들어보니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는 티르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오늘 내가 보여준 모습들을 정리해서 보고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고, 그렇기에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아까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을 따름이었다.
-카륵··· 키이이이이이잉!!!!
하늘 위로 떠올랐던 또 하나의 태양.
노을을 가르고 나타난 백색의 업화.
나는 만상의 눈을 통해 그 소름 끼치는 마력의 폭풍과 말도 안 되는 규모로 밀집되는 의식의 흐름을 고스란히 목격할 수 있었다. 세계에 스며들어있던 의식과 염원의 잔재. 그 모든 게 루타텔의 마력과 공명하여 한순간에 하늘 위로 모여들었고, 마치 자연이 의지를 갖고 스스로 몸을 비틀어내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의 태양이 되어 빛을 불태웠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걸까.
그렇기에- 그것이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었던 의문이었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목도하게 된 그 거대한 이적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타올라라]
루타텔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주언.
그 말을 기점으로 지상에 떨어진 태양.
다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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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덮었던 빛.
갑작스레 터져 나온 마력의 번뜩임은 소리마저 살해하며 온 시야를 백색으로 뒤덮었지만- 나는 눈 한번 깜빡거리지 않은 채 그곳을 바라보았고, 그렇게 백열의 세계 속에서 수천 마리의 마수가 한꺼번에 불타오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그 이적은 최하급 마수부터 시작해 수호자급 마수까지 등급과 무관하게 모두 공평히 불태워 버렸으니 모든 빛이 사그라지고 나자 그곳에는 오로지 거대한 구멍만이 남아있었을 뿐.
물론 마수들의 수가 수였던 만큼 그 이적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마수가 살아남았지만, 그렇게 한순간에 벌어진 학살은 이지 없는 마수들의 움직임조차 멈춰 세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적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카륵···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갑작스레 수비에서 공세로 전환된 루타텔의 불꽃은 말도 안 되는 규모의 화력을 선보이며 순식간에 전장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고, 한 번에 최소 수백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마리까지. 루타텔의 불꽃은 순식간에 전장을 뒤덮으며 그림자를 불태워나갔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광경이 그 당시 현장의 모습이며, 현장을 뒤덮은 저 불꽃은 모두 승천자 루타텔로부터 비롯된 이능이······]
결국 수만 마리의 마수들이 결국 모두 재로 되돌아갈 때까지, 계속해서 말이다.
물론 그건 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진 일이었고, 다른 각성자들과 군부대의 포화도 분명 큰 역할을 했었지만- 그렇다 한들 루타텔이 대부분의 마수를 불태웠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검을 휘두르면서도 그 모든 광경을 만상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
루타텔이 선보인 이적은 분명 대단했다.
처음 떠오른 태양부터 시작해서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그의 신위는 분명 어마어마한 마력의 격류를 토해냈고, 그때 루타텔이 다뤘던 마력의 총량은 그야말로 명백히 일반적인 각성자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그곳에서 소모된 마력의 양은 어지간한 수호자급 마수정도론 명함조차 못 내밀 정도.
그렇기에- 그건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분명 루타텔 자체가 보유한 마력량 자체도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했지만, 그렇다 한들 그 정도 수준의 이적을 계속해서 펼쳐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 마법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마력의 유동만 추정해보아도 그건 사람의 육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력량을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계에 퍼져있는 기운을 움직인다라······’
나는 그걸 가능케 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루타텔의 마력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였고, 다시 루타텔이 피워낸 염원이 어떻게 세상의 마력을 끌어모았는지- 나는 그 모든 걸 무척이나 감명 깊게 바라보았고, 그리고 그건 내가 알고 있던 무학의 경지와도 어느 정도 밀접해 있었기에 내 머릿속에선 그 비현실적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을 뿐이었다.
동시에- 무언가의 호승심까지도 말이다.
그렇기에 무언가 어렴풋이 느껴질락 말랑한 감각 속에 정신을 쏟아붓고 있자니, 앞에 앉아있던 티르유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해?”
그녀의 말에 나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티르유는 보고할 내용의 정리가 얼추 끝난 모양인지 어느새 태블릿을 내려놓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아까 본 광경을 되새겨보고 있었습니다.”
“아까? 아. 루타텔님이 보여준 모습?”
“예. 승천자가 왜 승천자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으니까요. 그 정도 규모의 이능은 처음 봐서 그런지 굉장히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러자 내 대답을 들은 티르유는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시선을 내게 보내왔고, 그 차가운 인상 위로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기하네. 아니 역시라고 해야 할까.”
“······역시?”
“원래 그 정도 규모의 이능을 처음으로 보게 되면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은 질려 하기 마련이거든. 근데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네.”
“그렇습니까.”
“그래. 보통 너처럼 재능과 의욕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 격차를 더 크게 느끼는 편이거든. 승천자와 처음 협업을 뛰고 나서 슬럼프에 빠지는 사람도 없지는 않고 말이야.”
“······.”
격차가 크다면 좁힐 생각부터 해야 되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고,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공감은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그런 내 심경이 표정 위로 드러났는지 티르유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그녀는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내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리고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건네왔다.
“유천하. 만약 네가 승천자와 싸워야 한다면 어떨 거 같아?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
“······제대로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글쎄. 진심으로 맞설 수 있냐, 혹은 유의미한 결과. 그러니까 승산이 있냐는거겠지?”
“지금으로선 승산이 희박합니다.”
“싸워보긴 한다는 거네. 그럼 나중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루타텔도 분명 나르화리얀과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역시 직접 신위를 목격한 이상 짐작이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듯한 느낌.
루타텔이 마법을 사용하던 과정과 그 결과를 생각해보자면 솔직히 말해서 이기기 위해선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꽤 많았다. 거리가 벌어져 있거나 루타텔에게 마법이 발현될 정도의 시간만 주어져도 기본적인 힘의 규모에서부터 큰 차이가 드러날 테니 말이다. 서로 능력의 궤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부분.
그렇기에 짐작해본다면 아마······
‘근접전이라 해도 3할, 4할? 미묘해.’
물론 실전에 들어가면 변수가 많긴 했지만 보편적인 상황이라면 이 정도가 아닐까?
그나마 승산을 노려볼만한 점이 있다면 그건 내게 만상의 눈이 존재한다는 점이었고, 그렇기에 루타텔의 마력이 세계와 동화되며 현상을 일으키기 전에 그사이를 응집시키는 의식의 밀집점- 그 염원의 쐐기를 베어낼 수 있다면 아마 어떻게든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규모야 많이 다르긴 하겠지만······ 어쨌든 그간 아리엘의 언령을 베어내면서 현상으로 구체화되기 이전의 마력을 베어내는 경험 정도는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해봤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힘의 규모가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할지라도 승산 정도는 재어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루타텔의 마법 발현시간은 거의 즉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었고, 그 시점을 노려 제대로 된 타점을 잡아내려면 분명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 마법의 발현을 베어낼 수 있다면 승산이 있을 테고, 그렇지 못하고 한 번이라도 실수한다면 그 순간 결과가 정해진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고,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당연히 결과가 달라지겠지요.”
“당연히···?”
“물론 지금이야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승부가 날 것 같지만, 그렇다고 지금 수준에만 안주하고 있을 생각 따윈 전혀 없으니까요.”
“······.”
그러자 내 대답이 어떻게 들렸는지, 내 말을 들은 티르유는 잠시 다소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입을 열어왔다.
“······너 진심이구나?”
“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당연히 할 이유도 없었고, 마음도 없었다.
물론 어지간한 경우라면 적당히 겸양을 떨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승천자의 신위를 눈앞에서 지켜본 이상 지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리는 중이었기에 말이라 할지언정 겸손한 척 가식을 떨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오랜만에 올라오는 호승심에 꽤나 큰 흥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분명- 무공으로, 그리고 검으로 펼쳐낼 수 있는 세상은 무척이나 다채롭고 신묘했다. 하지만 마법도, 다른 이능도, 모두 무공과는 그 능력의 궤가 달랐기에 이 세계에 와서 마주하게 된 수많은 광경은 전부 내게 꽤나 큰 자극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부턴 검으로는 펼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사람의 육신만으로 행할 수 없는 일들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새삼스레 즐거운 기분이었다.
특성도, 가호도 모두 신비로웠고 다시 세계의 신비를 다루는 기적 또한 신기했으니. 나는 루타텔이 펼쳐 보였던 백열의 태양을 검으로 베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건 마치 자연의 재해가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진 듯한 광경이었기에······ 내 머릿속에는 내 손으로 그것을 베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 태양을 베어내고, 자연의 현상마저 베어낼 수 있게 된다면. 그 순간의 나는 과연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을까- 나는 그것이 몹시 기대되고,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
본디 예로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몸으로는 자연을 이길 수 없다 말해왔다. 그것이 사람의 한계였고, 일개 생명체가 거역하기에 자연의 섭리는 너무나 거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한계를 벗어던지기 위해 사람들은 무의 업을 쌓아나갔고, 그렇게 쌓인 업은 결국에는 한계를 넘어 하늘에 맞닿았으니. 그렇게 도달한 업의 결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어느 어린 날의 겨울. 그 순간의 기억.
그리고.
-그 모든 건 마음의 표상일 뿐이니.
갈라지던 하늘과 베어졌던 겨울.
그날의 아버지는 분명 한 자루의 검으로 하늘을 베어내셨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의 몸으로 하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언정 사람의 검이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베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언젠가는 검으로 하늘을 베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날의 광경처럼 한 번의 검격만으로 세계를 베어낼 수 있게 되는 걸까?
이 의문은 어린 날부터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물음이었고, 당연히 이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원에 존재하던 10명 남짓의 초절정 고수 중에서도 심검에 도달한 자는 내가 알기론 오로지 나의 아버지. 당대의 천마뿐이었고,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초절정의 경지는커녕 이제야 겨우 그 벽 위에 올라선 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 막연한 기대감이 너무나도 즐겁게만 느껴졌다.
내가 나아가야 할 목표가 너무나 뚜렷했기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세계가 내 앞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세계가 비록 형태는 다를지언정 새롭게 눈앞에서 펼쳐졌으니. 나는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압도적인 격차에 정말이지 설레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 모든 게 내게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것참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휴게실의 문밖- 그곳에서부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나는 기감을 통해 문밖에 서 있던 한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던 걸까? 물론 상대의 기척이 무척이나 미미한 존재감만을 흩뿌리고 있었던 탓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명에 불과했을 뿐. 이렇게까지 다가 올 때까지 기척을 눈치 못 챘다는 사실이 조금 신경에 거슬렸다.
그렇기에 나는 한순간에 가라앉는 정신 속에 고개를 돌려보았고, 마찬가지로 내 앞에 앉아있던 티르유 또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역시나 그곳에는······
“정말이지 당돌한 대답이야.”
승천자- 루타텔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
백금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푸르게 반짝거리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내가 아는 누군가와 무척이나 비슷한 얼굴이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자.
“이제 정리가 다 끝나신 건가요?”
“그래. 종결 보고까지 마무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승천자 루타텔은 티르유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휴게실 내부로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내게 말을 건네왔다.
“방금 한 말. 자신이 있으니 말한 거겠지?”
다짜고짜 건네진 질문- 하지만 저 말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해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어디서부터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를 말하는 거라면 물론입니다.”
“마음에 드는군. 좋은 자세야.”
그 말과 함께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확실히 피는 못 속이는 모양. 무언가 피로해 보이는 얼굴 위로 지어진 루타텔의 미소 속에서 나는 아리엘의 모습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다. 만약 아리엘이 남자였다면, 그리고 성인으로 자라난다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내가 잠시 뜬금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루타텔은 천천히 우리가 앉아있던 곳으로 다가와 비어있던 의자에 걸터앉았고, 그리고는 다시금 내게 말을 건네왔다.
“확실히 왜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야.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과찬이십니다.”
“글쎄. 너처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물며 오늘 같은 광경을 보고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물론 이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고.”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군요.”
“그래. 적어도 너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이진 않았지, 하지만 이 아이처럼 호승심을 드러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건······ 맞습니다.”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한 티르유는 미묘한 시선과 함께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어왔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이거 네가 특이한 경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천자분들과 함께 공략을 뛰고 나면 큰 충격을 받는 편이니까. 대부분이 말이야.”
“······.”
말은 무척이나 평온히 건네지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내게는 그녀의 말이 마치 해명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내 착각일까?
“그러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듯 설명까지 덧붙여가며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루타텔님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너한테 이렇게 관심을 갖는거야. 지금의 대답이 아니더라도 너는 처음부터 항상 한결같이 그런 태도를 보여줬었으니까.”
“······제가 그랬습니까?”
“그래. 물론 우리가 너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 이제 와서 기량측정을 해보겠다 하는거니 말이야.”
하지만- 티르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루타텔을 쳐다보았고, 루타텔은 그녀의 말을 들어보려는지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행동하고 있는지 정도는 행적에서 모두 드러나는 법이고, 너는 이제껏 행동으로 그걸 증명해왔어. 하린이하고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
“예. 기억납니다.”
내게는 참으로 새삼스러운 기억이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이하린이 떠올랐다.
“그 날 너는 기절하는 순간까지 마수에게 검을 휘둘렀어. 그런 몸 상태로도 말이야.”
“······.”
“너는 그때도, 마인과 마주했을 때도, 위타극과 조우했을 때도, 그리고 오늘의 선택과 지금 이 순간의 대답까지도. 너는 항상 싸우는 걸 선택했지. 그리고 나는 분명 너의 재능도, 업적도 뛰어나지만 마음가짐이 그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부분이라 생각해.”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말이야- 티르유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그리 말해왔고,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루타텔도 그녀가 한 말에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이제껏 보여줬던 행동과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고, 물론 나 또한 공략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중요시하는지, 그리고 어떤 성향을 갖춘 이들인지는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내게는 무척이나 당연한 일로 저렇게 말해봤자 나로서는 그저 부담스럽기만 할 뿐.
그렇기에 잠시 다소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자니, 이내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루타텔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