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점 (1)
카드득-!! 손아귀로 대기가 압축된다.
티르유의 손이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막대한 악력은 그렇게 마력을 응축시켰고, 아무런 기교도 없이. 오로지 정련된 아우라만을 그 속에 머금은 주먹은 일순간 그림자를 향해 빛살처럼 뻗어 나갔을 뿐이었다.
후웅-!! 저 자신을 향해 내리쳐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서, 거인의 발바닥을 향해서. 그렇게 강렬한 기세를 휘감고서.
그리고.
--------------------------------------------------!!!!!
콰아아앙-!! 묵직하게 뻗어 나간 라이트 어퍼는 그대로 수 미터에 달하던 마수의 발을 터트려버렸고, 그와 동시에 그곳으로부터 터져 나온 막대한 충격파가 전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티르유는 빠르게 왼발과 허리를 회전시켰다.
츠즈즈극-!
그렇게 그녀가 발을 내디딘 즉시. 끊어치듯 그림자를 후려쳐버린 육탄의 갈고리. 한순간에 뻗어 나가 잿빛에 맞닿은 레프트 훅.
그렇게 다시.
퍼어어엉-!!! 순식간에 짓이겨진 마수의 다리는 그 거대한 육체를 지탱하지 못하고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마수는 분노 서린 외침을 토해내며 구역질 나는 악의를 그녀에게 쏟아내었다.
마수로부터 토해진 고통 어린 포효소리!
--------------------------------------------------!!!!!
그리고 그 비명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마수의 형체는 순식간에 수십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찰흙이 쏟아지듯 꿀렁거린 형상은 이내 티르유를 향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흉포한 살의를 그 속에 품고서, 반드시 그녀를 찢어발기겠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칠흑의 궤적이 그어졌다.
서걱-!! 살벌한 절삭음이 전장에 울려퍼짐과 동시에 뻗어 나오던 거인의 팔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난 형태로 흩날렸고, 그렇게 찰나를 격하고 뻗어 나온 칠흑의 궤적은 그림자를 베어 갈랐다. 마수가 미처 그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한순간에 베어낸 것이었다.
대기 중에 흩날리는 잿빛의 빗줄기.
그리고 반쯤 기울어진 거인의 형상.
그리고.
“틈. 위치는 머리.”
“예. 파악했습니다.”
그곳에서 교차하는 시선.
콰아아앙-!! 짓이겨진 다리가 미처 재생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휘둘러진 티르유의 발은 마치 망치로 내리치듯 거인의 발을 내리찍었고,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진 마수의 고통 어린 울부짖음을 흘려들으며 유천하는 허공을 박차고 마수의 머리를 향해 달려나갔다.
바람을 밟고 허공으로 도약하는 신형.
그렇게 훙-!! 유천하는 휘둘러지는 그림자의 채찍을 피해냈고, 서걱-!! 마수의 팔을 베어내면서 그대로 그림자를 타고 내달렸으며, 후웅-! 휘몰아치는 바람의 결을 즈려밟고선 다시 마수의 머리를 향해 궤적을 그어냈다.
허공에서 펼쳐지는 고도의 회피기동.
우웅-!! 그리고 발현되는 가속의 운용.
그렇게 마수가 무언가 제대로 된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유천하의 신형은 잿빛의 대지를 내달렸고, 칠흑의 검신을 늘어트린 예리한 살의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발판 삼아 다시 한 번 더 빠르게 육체를 가속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
허공에서 무기질적인 눈동자가 교차했다.
티르유의 첫 일격으로부터 아직 20초도 채 안 지난 시점에서, 양다리를 잃은 모습으로, 그렇게 마수는 자신의 근원석을 향해 쏘아지는 칠흑의 별빛을 마주하게 되었다.
퀴이이잉-!!
찰나를 베어 넘기며 쏘아진 묵빛의 선율.
형상을 변환시키기도 전에 맞닿은 검극.
그리고··· 콰직!
콰아아아아앙-!!!! 허공에서 쏘아진 극한의 쾌격은 그대로 여명급 마수의 근원석을 베어 넘기며 그림자를 찢어발겼고, 마수가 제 죽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그렇게 그어진 칠흑의 궤적은 거대한 마수의 형상을 순식간에 일개 마력으로 만들어버렸을 뿐이었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그림자의 파동!
콰가가가가가가-!!!
하지만 코앞에서 터져 나온 막대한 마력의 격류 속에서도 유천하는 아무렇지 않게 대기를 박차고 몸을 움직였고, 그렇게 그는 빠르게 밟고 지상을 향해 내려설 수 있었다.
탁- 그렇게 유천하의 발이 지면에 맞닿음과 동시에 마수의 잔해로부터 흘러나온 기운이 그의 몸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기에 유천하는 잠시 그 기운을 만끽하며 육체를 점검해보았다. 장기전에선 체력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도 필수적인 행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티르유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순간. 그는 관조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이내 흩날리는 잿빛의 마력 아래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나온 목소리.
“이걸로 8마리. 이제 3마리 남았습니다.”
그에 티르유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3마리? 2마리가 아니라?”
“예. 소형종이라 처음에 놓치셨나 봅니다. 속성이 마력은폐인 모양인데 방금 루타텔씨의 화염에 휩쓸려 마력이 드러났습니다.”
“······이 상황에 그런 걸 잘도 봤구나.”
정확히는 전장에 돌입한 순간부터 이미 유천하는 수호자급 개체의 위치와 수를 전부 파악해낸 뒤였고, 그 모든 건 허공에서 강하하던 시점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티르유가 그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티르유는 평온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유천하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질린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잠시 작게나마 두 눈을 깜빡거렸다.
참고로- 현재 그들이 토벌을 시작되고 나서 처치한 수호자급 마수의 수는 총 8개체.
처음 토벌한 황혼급 마수를 시작으로 전장에 돌입하고 30분 동안 다시 황혼급을 한 마리 더, 여명급 7마리를 더 박살 내버렸으니- 이건 분명 최선두 공략자였던 티르유로서도 감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템포였다.
그나마 두 번째 황혼급 마수의 마력방벽을 뚫는데 합을 맞추느라 시간을 소모한 게 컸던 것이지, 대부분의 여명급은 방금처럼 몇 합을 주고받으면서 순식간에 박살을 내버리는 중이었으니- 이건 티르유가 평소에 꾸준히 합을 맞춰보는 공략대 멤버들을 데리고 온다 하더라도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속도로 이루어지는 토벌이었다.
그렇기에 티르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유천하에게 질문을 건네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니지?”
“······? 예.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래? 실력은 그렇다 쳐도, 그렇게 검강을 뿜어댔는데 아직 마력이 남아있긴 해?”
“충분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뿜어댄 게 아니라, 공격순간에만 검강을 발현해서 아직 반절은 더 남아있습니다.”
“너······ 진짜 전투에 능숙하네.”
도대체 오늘 몇 번이나 놀라는 걸까- 그녀의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그녀가 알기로 유천하가 이 정도 규모의 난투전을 경험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일 터였다.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한 타천자를 상대하는 것도, 그리고 겨우 한 개의 탑에서 역류한 마수를 상대하는 것도, 모두 이런 대규모 집단전하고는 궤가 다른 일이었을 뿐.
물론 이제껏 그가 해온 일도 당연히 세계가 칭송할 만큼 뛰어난 활약이었으나, 그렇다 한들 경험은 별개의 영역 아니겠는가?
애초에 이렇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전장에 던져진 신인이 흥분 속에 페이스를 잃어버리는 건 생각보단 꽤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니, 사실 어지간한 베테랑이 아니고서야 이런 환경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과 마력의 격류는 분명 사람의 신경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요소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대체 이 아이는 뭐란 말인가?
자신을 따라 망설임 없이 저 상공에서 다이브를 시도한 것도 그렇고, 별다른 합을 맞추지도 않았는데 마력방벽이 깨진 틈을 타 한순간에 황혼급을 베어낸 것도 그렇고, 다시 이어진 공략 속에서 자신이 방벽을 부술 때마다 그 즉시 유효타를 성공시키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유천하는 그러는 와중에도 스스로의 페이스까지 완벽히 조절하고 있었으니 그녀로서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태도만 보자면 마치 걸음마를 떼고 난 뒤부터 계속 전장에서만 살아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 싶은 수준.
물론 실제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게 지난 20분간 유천하와 협업을 이루며 수호자급 마수를 패대기치던 그녀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고, 사실 그녀의 생각도 어느 정도 진실에 근접해 있긴 했었다.
“혹시 접경지에서 살 때 웨이브를 경험해본 적 있었어? 생각보다 너무 침착한데.”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분명 유천하로서도 이 정도 규모의 난전은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긴 했다.
무림에서의 전투는 어지간해선 일대일.
그게 아니어도 몇몇 소수의 대립으로만 이루어지는 편이었고, 수십 이상의 단위는 정말 문파 단위의 항쟁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으니. 이렇게 상대해야 할 적이 수만씩이나 되는 전장은 전쟁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해선 절대 겪을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은 있다고 봐야겠지.’
수만 명이 뒤엉킨 싸움을 해 본 적은 없었어도, 그 혼자 수십 명과, 그리고 다시 수백 명과 싸워했던 적은 있었으니- 유천하에겐 지금 이 순간보단 그때의 경험들이 더 위험하고 심장이 저릿해지는 순간들이었을 뿐.
애초에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수백 명의 적 사이에서 검을 휘둘러야 했고, 그렇게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소교주로서 해야 했던 과업들. 그리고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해야 했던 일들. 그 모든 경험이 있었기에 전장에서 효율적으로 힘을 분배하는 건 그에게도 꽤나 중요하면서도 익숙한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말해 줄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유천하는 대수롭지 않게 화제를 돌려보았을 따름이었다. 어차피 대부분은 토벌했을지언정 아직도 수호자급 마수 자체는 더 남아있었고, 그 밑의 마수들은 전장 곳곳에 수없이 널려있었으니까.
“그것보다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 말은 분명 옳은 말이었기에 티르유 또한 유천하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들은 빠르게 다른 수호자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키이잉-
“······!”
“······!”
그들은 전장에 내려앉은 마력의 격류를 감지한 즉시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막대한 마력 속에선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고, 그 거대한 이적이 살의를 내비치는 대상은 분명 마수의 해일이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그 현상 자체가 품고 있는 마력의 규모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에 하나의 생명체로서 본능적인 거북함을 느꼈던 탓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갑작스레 엄습한 마력의 격류를 체감하며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카륵··· 키이이이이이잉!!!!
그들의 머리 위- 전장의 하늘 위에는 그렇게 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처음 루타텔이 전장에 당도했던 순간. 그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콰과가가가가-!!
일반적인 웨이브의 규모보다 더 대규모로 몰려든 마수들의 준동은 상주 중이던 연맹군만으로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수준이었고, 전장의 상황은 그야말로 포탄을 들이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포화를 난사하며 간신히 유지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크륵··· 크라아아아!!
-키햐아악!! 키햐아아아악!!!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포화 속에서도 전선의 경계는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그럼 수, 수호자급 마수부터 처치해주시면 감······!”
“아니, 전선부터 고착시키겠습니다.”
전선에 도착한 루타텔이 처음으로 한 일은 바로 전장을 최대한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전선의 경계가 밀려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수들이 해안가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우우우우웅-!!
화르륵- 그렇게 루타텔로부터 시작된 업화의 해일은 한순간에 백열의 폭풍을 일으키며 전장을 휘감쌌고, 해안가를 넘어 마수들이 넘어오고 있는 바다 너머까지 뒤덮은 붉꽃은 막대한 마력을 토해내며 휘몰아쳤다.
그건 분명 비효율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마력 낭비였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루타텔에게 중요한 건 빠르게 마수를 토벌하는 게 아닌, 최대한 사람이 죽지 않고 상황을 종료시키는 것이었으니. 그런 만큼 그는 다소 느리고 비효율적일지언정 최대한 인명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장을 고착화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긴 했지만 공략자라면 당연히 내려야 할 선택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루타텔은 광활한 전장을 커버하기 위해 위력보다는 범위를 신경 쓰며 마법을 발현시켰고, 그렇게 단번에 마수를 토벌하기보단 사람들의 안전에 유의해가며 조금씩 규모를 갈아먹는 식으로 전투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목숨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수호자급 마수들이 마음대로 날뛰지 못하게 최대한 녀석들을 붙들어 두는 것 또한 그가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루타텔은 전장의 흐름을 한 번에 뒤엎을 수 있는 타이밍을 노리며 천천히 상황을 조율해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건 갑작스레 하늘에서 두 개의 유성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쉬이익- 콰아아아아아아앙-!!!!
갑작스레 전장을 강타한 붉은 유성!
콰과가가가-!!! 그렇게 전장의 한구석. 해안가의 끄트머리에서부터 시작된 힘의 파동은 무지막지한 굉음을 낳으며 순식간에 전장을 휩쓸어버렸고, 그건 수 킬로미터 미터 너머에 자리하고 있던 루타텔에게도 즉각적으로 전해졌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돌이었다.
“······큭!! 뭐, 뭐야 저건?! 저게 뭔 씨···!!”
“리마! 리마! 응답하라! 여기는 시에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 가능한가?!”
그렇기에 루타텔의 옆을 호위하며 지키고 있던 연맹군 또한 갑작스러운 굉음에 경악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빠르게 무전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뭐? 황혼급을 일격에···? 말이 되··· 뭐?”
[정확히는 이격······ 자세한 상황은······]
“신원. 신원을 파악하라.”
[확인··· 신원은 등천······ 루타텔님께······]
“······!! 입감. 그대로 전달하겠다.”
그리고- 이내 상황을 전달받은 연맹군은 얼떨떨한, 그러면서도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루타텔을 향해 입을 열어왔을 뿐이었다.
“승천자님께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지금. 전장에 누가 온 것입니까?”
“예!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지금 상공에서 낙하한 건 두 명의 공략자로, 둘 모두 등천의 구도자에서 참전한 분들이라 합니다.”
“등천에서?”
“예 그렇습니다! 랭킹 204위의 티르유 아르파냐님과 317위의 유천하님이 전장에 참여했다 하며, 본래 예정돼있던 일정을 이곳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말을 루타텔님께 전달해달라 요청하였다 합니다!”
“······.”
연맹군은 난데없이 참전했다는 두 명의 등천자- 그것도 상위권 랭커가 전장에 합류했다는 소식이 기뻤는지 꽤나 상기된 표정으로 그 소식을 전해왔고, 그렇게 티르유의 말을 전달받게 된 루타텔은 잠시 생각을 되짚어본 끝에, 이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당돌한 녀석이로군.’
분명 예정되어있던 일정이라면 기량측정을 말하는 것일 테지만, 그것을 담당하기로 했던 자신은 막무가내로 이곳에 와버렸다.
그러니 본부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그들이 이곳에 오게 된 것도, 그리고 예정된 기량측정을 대련이 아닌 실전에서 증명하겠다 선택한 것도 분명 모두 당사자의 선택일 터. 티르유나 본부의 사람들은 아직 미성년자에 불과한 아이에게 이런 걸 강요할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이 대규모 난전에 뛰어든 건 분명 유천하 스스로가 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방금 마력의 유동성. 황혼급이 토벌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짐작이 맞습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두 분은 전장에 합류하자마자 황혼급을 토벌하였고, 지금은 다시 다른 수호자급을 상대하고 있다 합니다.”
루타텔은 그 말을 들으며 전장의 구석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유동을 파악해 보았다.
물론 이렇게 난전이 되어버린 상황에선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어려운 일을 손쉽게 해낼 수 있었기에 그는 승천자라 불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루타텔은 이내 티르유와 유천하로 짐작되는 이들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막대한 아우라를 품고 철벽과도 같이 움직이는 한 사람과, 다시 이 먼 거리에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예리한 기세를 곧추세운 채 빠르게 기동 중인 한 사람.
역시 등천의 업을 달성한 것도, 그리고 상위권 랭킹에 도달한 것도 허투루 해낸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그들은 빠른 속도로 수호자급 마수를 유린해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파악하는 그 잠깐 사이에 여명급 마수의 마력이 터져 나왔고, 그렇게 전장에서 수호자급 마수가 하나 더 소멸하였다.
그야말로 감탄스러울 정도의 쾌속.
‘잘 선택했군.’
그리고 루타텔은 그들의 움직임에서 그들이 목표로 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고, 수호자급 마수부터 정리하는 그들의 판단은 루타텔에게도 무척이나 기꺼운 일이었다.
지금 루타텔의 마력은 전장을 고착화하는 데 소모되고 있었고, 다시 그 마력의 절반 이상이 수호자급 마수들을 밀어내는 데 사용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수호자급 마수가 정리되면 정리될수록 루타텔이 발휘할 수 있는 마력은 더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마력이 늘어날수록 루타텔은 방호속에 고착화시켰던 전장을 빠르게 밀어낼 수 있었으니······
“보고드립니다! 8개체 토벌 확인! 이제 전장에 남은 수호자급은 3개체뿐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예! 그 정도면······ 잘 못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호자급 마수가 3개체만 남은 시점에서, 루타텔은 마법의 발현을 다시 저지에서 토벌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수호자급 마수뿐만이 아니라 마수들의 수도 어느정도 줄어든 상황이었고, 그건 경계선에서 싸우고 있는 각성자들도, 포탄을 쏟아붓는 연맹군도 모두 분발한 결과 였으니.
그렇기에.
루타텔은 이제껏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금.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예?”
루타텔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으으으게에에에에에에무우으으······”
그리고는 순식간에 감속하는 세계 속에서 명정한 정신으로 세계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전장을 휘감고 휘몰아치던 업화의 해일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그러자 불길에 휩쓸려 밀려나가던 마수들이 일제히 흉포한 외침을 토해내기 시작했지만 그 외침은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을 뿐.
‘······.’
마법이란 고대로부터 쌓여진 신비의 업.
그리고 염원으로서 기원을 불러오는 의식.
고오오오오오-
루타텔이 지나온 세월 아래- 그의 특성과 마법은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다시 그의 주력은 정령과의 합일에 도달하였으니. 루타텔에게 세계는 곧 자신이었고, 다시 자신은 곧 세계의 흐름과도 같다 볼 수 있었다.
정령이란 본디 기원의 군집을 통해 만들어지는 세계의 편린. 그리고 다시 정령사란 세계를 받아들여 신비를 자아내는 자. 그렇기에 수많은 사선을 거친 끝에 세계를 이해하게 된 루타텔은 염원으로서 위대한 세계의 흐름 속에 녹아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웅-!!
세계가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자연의 본질이 그의 의지와 동화된다.
비록 자질의 차이가 있기에 더 효율적으로 발현할 수 있는 현상은 한정되어 있었으나, 그 말은 즉. 특정 속성에 한해서라면 그는 분명 재해와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건 분명 한 명의 생명이 자아낸다기엔 실로 말이 안 되는 현상이었지만 불가능의 벽을 넘어섰기에 그는 승천자였다.
사람이 어찌 하늘에 오를 수 있겠는가.
허나 그것을 해냈기에 승천의 업이었다.
그렇기에.
------------------------------------------------!!!
그가 염원하는 순간, 세계는 타올랐다.
세계의 의지는 하나의 염원 속에 기원을 이뤄냈으니. 다시- 그가 가진 마력은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세계를 비틀어냈다. 막대한 마력의 격류를 그대로 백염의 폭풍으로 승화시키면서, 형질이 없어야 할 마력의 현상을 실체화된 재앙으로서 구체화 시키면서.
그렇게.
[타올라라.]
그 순간- 하늘에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