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자 유천하 (4)
바닥을 박차고 지상을 향해 뛰어든다.
후두두두-!! 그 순간 수송기 내부로 밀려 들어오며 휘몰아치던 바람이 자유롭게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 뒤에서부터 들려오던 무언가의 소리는 전신을 두들기는 바람 소리에 묻혀 허공속으로 스러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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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소리가 한없이 뭉개진 순간.
바로 그 순간- 한순간에 느껴지는 중력의 무게를 실감하며 그녀. 티르유는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후구구구구구-!!
바람이 그녀의 빰을 두들긴다.
차가운 공기가 육체를 휘감싼다.
그처럼 흉포하게 달려들어 오는 대기의 벽을 육신으로 뚫어버리고 있자니 그 순간 바람이 찢기는 소리가 그녀의 귀를 두들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공기의 저항과 시린 바람을 체감하며 그녀는 빠르게 낙하할 지점을 확인해보기 위해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에 눈에 들어오는 풍경.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세계.
이제 막 낙하를 시작했던 만큼 지상의 풍경은 그야말로 멈춰 있는 사진과도 같았고, 방금 뛰어내린 수송기의 그림자 또한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으니 지금 그녀의 눈에는 지상도, 하늘도, 모두 마치 소인국의 그것처럼 작은 풍경으로 다가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
하지만 그녀는 그런 풍경을 목도하면서도 냉철한 정신으로 목표만을 바라보았다.
잿빛으로 물들어있는 바다와 휘몰아치는 화염의 해일. 그곳에선 마력의 파동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었고, 다시 그 끄트머리에 위치한 해안가에선 갑각류의 형상을 갖춘 거대한 마수가 그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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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상공까지 들려오는 마수의 외침.
뭉개지는 바람 소리 사이로도 명확히 포착된 마수의 울부짖음에 그녀는 곧바로 그곳을 향해 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보편적인 낙하였다면 분명 저항을 늘리기 위해 몸을 아치형으로 만들고, 속도를 줄였어야 했겠지만 티르유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기에 최대한 몸을 좁히며 빠르게 종단속도에 이르렀다.
팔은 등 뒤로 돌리고, 다리를 뻗는다.
지상을 향해 쏘아지는 한줄기 유성.
후웅-!! 그렇게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일자로 추락하기 시작한 그녀는 허공에 붉은 궤적을 새긴 채 뻗어져 나갔고, 시속 300Km에 가깝게 가속된 그녀의 육체는 순간- 우주에 던져진 듯한 감각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대답은 듣고 뛰어내리셔야지요.”
아무도 없어야 할 까마득한 허공의 한가운데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헤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렇기에 그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흠칫한 티르유는 이내 빠르게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건······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
다시- 익숙한 얼굴이었을 뿐.
그렇게 유천하는 한순간에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강하용 장비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떨어지는 중이었기에, 그에 티르유는 한순간에 뇌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실수로 떨어진 건가? 설마?
실로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지만 그게 그녀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고, 그녀가 이런 걱정을 한 이유. 그것은 그녀가 알기론 유천하에겐 이 상황에서 무사히 착지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황급히 입을 열어보았다.
“너···!! 지··· 금······!”
“괜찮습니다. 가호가 있으니까요.”
“······?!”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일까- 티르유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벙찐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자세가 잠시 흐트러졌다. 그렇게 티르유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였지만 이내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은 그녀는 황급히 그에게 되물어보았다.
“가··· 호? 무슨··· 종류의? 도··· 대체!”
그 말은 순식간에 바람 속에 파묻혀 허공 속으로 스러졌지만 티르유는 왠지 모르게 유천하만큼은 지금 자신이 한 말을 온전히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저의 옆으로 다가온 순간.
“풍결의 가호. 바람을 다룰 수 있습니다.”
휘이이잉- 전신을 때리며 휘몰아치던 바람이 삽시간에 사그라들었고, 그 당사자. 유천하는 마치 중력에서 빗겨나간 것 마냥 평온한 모습으로 추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사방으로 머리를 흩날리고 있는 그녀 자신과는 다르게, 아주 고요하게 말이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 그녀는 잠시 멍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내 정신을 차리게 된 그녀는 허탈한 심경을 담아 입을 열어보았다. 바람이 안정돼서 그런지 그 말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대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미치겠군. 처음 듣는 이야긴데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어? 대체 언제 얻은 거야?”
“아무도 없습니다. 딱히 숨긴 건 아니었는데 말해줄 만한 일이 없었거든요. 시기는 밀라노에서 황혼급을 토벌했을 때입니다.”
“······하.”
그렇게 유천하의 입에서 담담히 흘러나온 말에 티르유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그 말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호를 얻었다는 시기는- 3월 중순.
그렇다면 유천하는 순례자의 자격을 얻고 생도의 신분이 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았던 시점에 이미 특성과 업륜, 가호까지 모두 얻어낸 상태였다는 말이었고, 지금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티르유 자신은 4월에 유천하를 한번 만났음에도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렇기에.
티르유는 허탈한, 그러면서도 차오르는 고양감속에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참. 대단한 후배네. 정말.”
처음에는 그저 유망주라 생각해 후원을 해주려 했더니 아무렇지 않게 순례자의 자격과 업륜을 들고 왔고, 그래서 조금 더 뛰어난 아이구나 싶었더니 갑자기 타천자를 잡았다 하질 않나, 심지어 이제는 등천자가 된 상태로 뜬금없이 가호까지 보여주기 시작한다.
정말 어떻게 이런 애가 있을 수 있는 걸까?
사실 이 말은 그녀가 생도였던 시절. 다른 공략자들로부터 무척이나 많이 들어봤던 말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의 티르유로서는 이 말이 어울리는 건 자신이 아니라 유천하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차오르는 고양감속에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아이- 유천하는 이제 겨우 두 달, 석 달이 되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유천하의 포텐셜은 갈수록 점점 높아져 갔고, 그 사실은 유천하가 보유한 순례자라는 칭호가, 업륜이, 가호가. 그리고 다시. 그가 도달한 등천의 업이 증명하고 있었으니 공략자로서 이 사실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분명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건, 그리고 그녀가 필요로 하는 건 마석이나 캐러 다니는 헌터가 아니었다. 그저. 올바른 마음을 갖고, 다시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니고서 침식을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자. 스스로의 의무를 짊어지고 나아갈 용기를 갖고있는 자. 바로 그런 자였을 뿐.
그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공략자였고, 유천하는 분명 그에 부합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티르유는 마치 전혀 기대치 않았던 선물을 받은 기분을 느꼈고, 눈앞의 소년이 앞으로 해낼 수많을 일들 고대하며 즐겁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선홍빛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점점 또렷해지는 마수들의 하울링을 흘려들으면서, 유천하의 활약에 기대감을 품으면서.
티르유는 그렇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벌써부터 뒤처질 수야 없지.’
그렇다고 해서 바보처럼 감탄만 토해내다 뒤처지고 싶은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좋아. 그럼 아까 얘기한 대로 하자.”
“수호자급 마수부터 하나씩 말입니까?”
“그래. 우선 저 녀석부터. 선공은 맡겨.”
그녀 또한 한 명의 공략자로서 의무를 짊어지고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했으니, 전도유망한 후배가 나타났다 해서 마냥 안도한 채 물러서고 싶진 않았을 뿐이었다.
“방벽부터 부술 거야. 유효타 가능해?”
“예. 그럼 저는 잠시 감속하겠습니다.”
“그래. 타이밍은 7초, 아니 6초 뒤.”
후우웅-!! 그 순간 바람이 유천하의 몸을 휘감더니 그의 속도가 순식간에 감속되기 시작했고, 다시, 그런 유천하를 뒤로한 채 티르유는 오히려 특성을 끌어올리며 더 강렬한 기세 속에 지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오오오오오-
티르유의 특성- <철혈불굴>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며 그녀의 육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마법도, 무공도 아닌 순수한 이능의 힘.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발현되는 그녀의 특성은 그녀의 내부에 잠재된 마력과 공명하여 태산과도 같은 거력을 그 몸에 일으켰고, 그렇게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온 정련된 아우라는 강렬한 기세로 타올라 한순간에 전장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
이제 고작 수십 미터의 거리를 남겨둔 채 터져 나온 황혼급 마수의 외침은 분명 그녀를 향해 있었고, 그렇기에 그녀와 마수는 허공을 사이에 두고 시선을 마주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수천 미터를 떨어져 내린 결과가 막대한 충격이 되어 그녀에게 되돌아올 터였지만, 저 밑에서부터 황혼급 마수가 그녀를 향해 마력의 포화를 쏘아내려 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를 두렵게 하지는 못하였으니 이 순간 그녀는 한줄기 철퇴가 되어 망설임 없이 마수를 향해 뻗어져 나갔을 뿐이었다.
철혈불굴의 효과는 꺾이지 않는 육신.
그녀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충격과 포화도 그녀를 해할 수 없었고, 그녀는 그 어떤 공격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떨어진 붉은 유성은 막대한 거력을 품고, 그렇게 순식간에 지상을 강타했다.
***
쉬이익- 시속 300Km의 속도로, 수천 미터를 가르고 떨어져 내린 작은 육신. 하지만 그 주먹에는 막대한 아우라가 담겨 있었고, 그렇게 붉은 유성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마수의 몸통을 그대로 강타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동심원을 그리며 터져나오는 힘의 파동!
----------------------------------------------!!!!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렇게 마수의 외침과 함께 무지막지한 굉음이 터져 나왔고, 그 막대한 소리는 이내 마력의 파도가 되어 그대로 해안가를 휩쓸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마수들 또한 그 격류에 휘말린채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콰과과가가가가가-!!!!
춤을 추듯 출렁거리는 모래의 해일.
그렇게 흔들거리는 전장의 대지.
-우··· 우아아아아악!!
-뭐, 뭐야 씨발!! 갑자기?!
그건 분명 원래대로라면 수호자급 마수에겐 씨알도 안 먹힐 위협이었을 테지만, 티르유는 마수를 박살 내기를 강렬히 염원했고, 그녀의 바람은 굳은 의지가 되어 그녀의 육신에 새겨졌으니. 그녀가 휘두른 일격 속에는 단순히 겉모습만으로 짐작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위력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단순한 물리력이 아닌 이능과 혼합된 막대한 충격은 마수의 마력방벽마저 꿰뚫은 채 그렇게 그림자를 강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콰아아앙-!! 한 번 더 터져 나온 굉음과 함께 마수의 등. 그곳을 감싸고 있던 등껍질의 형상을 한 그림자의 마력이 산산이 깨져나갔고, 수십 미터에 이르는 마수의 몸통 한가운데는 마치 운석에 강타당한 것 마냥 움푹 들어가버린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뿐.
----------------------------------------------!!!!
그렇게 마수는 일그러진 비명을 토해내며 막대한 마력 파동을 터트렸고, 그 파동에 티르유의 육체는 그대로 뒤로 밀려 나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후우웅-!! 하늘에서 그 무지막지한 일격에 헛웃음을 토해내던 유천하의 신형이 바람을 박참과 동시에, 순식간에 초속에 세계에 접어들며 마수를 향해 쏘아져 나왔다.
그 순간 그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
“······.”
그렇게 찰나의 시간 동안 유천하는 밀려나가던 티르유와 시선을 교환하였고,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근원석의 위치는 하복부 우상측. 16m.’
이미 강하를 시도한 시점에서 만상의 눈은 마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을 따름. 그런 만큼 그에겐 근원석의 위치를 찾는 것도, 다시 마수가 자아내는 마력의 틈새를 찾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늘을 박참과 동시에 유천하는 마수가 지닌 마력의 총량. 마력 방벽의 농도. 마력의 흐름. 육체의 변이율. 마수의 호흡. 그 모든 것을 파악해냈고, 관찰이 끝남과 동시에 유천하는 망설임 없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일격. 무조건 한 번으로 끝낸다.’
원래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행위- 설령 여명급이라 해도 시험 때처럼 마수에게 제약이 걸려있는 게 아니라면 일격에 토벌하는 건 불가능했고, 하물며 황혼급 정도의 마수라면 일격이 아니라 차분히 마수의 방벽을 깎아내며 토벌을 시도하는 게 정론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있었던 저 일방적이고도 무식하기까지 한 물리력의 폭거는 한순간에 마수의 중심에 구멍을 뚫어버렸으니- 필요한 과정은 이미 모두 끝났다 봐도 무방한 순간.
물론 제대로 공략한 게 아니라 한순간의 파괴력으로 뚫어낸 것이기에 소실된 마력은 크지 않았고, 황혼급 마수의 재생력은 분명 순식간에 마력방벽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 공략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했으니, 기회를 노리려면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바로 그 순간.
----------------------------------------------······
유천하의 세계는 오온에 접어들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게 급속히 감속한다.
동시에 세계의 형상이 무아에 수렴된다.
그렇게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니 다시 의식이 생겨났고, 의식 속에 현상을 인지하니 다시 세계가 확립된다. 그렇다면 다시- 저 스스로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변할 테니 지금 유천하가 바라는 것은 스스로가 자아낼 수 있는 최선의 일격이었을 뿐.
그렇기에. 다시- 유식에 도달하였다.
쿠구구구구-!!!
심상에서 풀려나오는 일곱 갈래의 매듭!
막대한 거력이 그 몸속에서 꿈틀거리며 용솟음쳤고, 그와 동시에 우웅-!! 손등에 새겨져 있던 업륜이 마력을 토해냈으며, 마지막으로 사방에서 휘몰아치던 바람은 그대로 대기의 결을 비워내며 틈새를 만들어낸다.
일순간에 검극으로 모여든 막대한 거력.
그리고 다시 살벌하게 벼려지는 일념.
후웅-!! 그와 동시에 아직도 허공을 활강하고 있던 유천하의 신형이 한 번 더 바람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고, 순식간에 마수의 몸을 타고 내달리며 그 앞으로 다가섰다.
그가 멈춰선 곳은- 마수의 머리 바로 위.
지상에 도달하고 아직 1초도 채 지나가지 않은 찰나의 순간. 티르유가 마수를 강타하고 대략 2초가 지나간 순간. 정확히는 그가 아직 한 번도 지면을 밟은 적이 없던 순간.
바로 그 순간.
“······.”
그 멈춰버린 세계에서 유천하는 망설임 없이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물론 아직은 다소 거리가 남아있긴 했지만 황혼급 마수의 재생력은 더 빨랐으니, 저 흐름이 다시 생성되기 전에 근원석을 베어내기 위해선 지금 이 거리가 그의 최선이었을 뿐.
그렇게.
칠흑의 별빛은 허공을 베어 갈랐다.
-------------------------------------------------!!
휘몰아치는 마력의 격류를 몸에 휘감고.
일그러진 외침을 토해내는 마수를 향해.
칠흑의 별빛을 검신에 곧추세운 채로.
퀴이이잉-!!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휘잉-! 검 끝에 매달린 백색의 수실이 세계와 공명함과 동시에 그 일격속에 축복이 내려앉았고, 그렇게 7성의 공력과 일 획의 업륜이 모조리 깃든 흑색의 검신은 찬란한 빛을 머금고 공간을 넘어 그렇게 뻗어 나갔다.
----------------------------------------------!!!!
잿빛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흑색의 궤적.
한낮에 뻗어 나온 칠흑의 참격.
그리고 그렇게.
콰직- 베어져 나가는 그림자의 단면!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터져 나온 강렬한 굉음은 멈춰버린 시간을 일깨우며 울려 퍼졌고, 그 즉시 퍼져나간 그림자의 파동은 강렬한 마력을 그 속에 품고서 전장을 뒤흡쓸기 시작했다.
콰과가가가가가가-!!!
마력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마수들을 한순간에 바깥으로 날려 보냈고, 그와 동시에 잿빛으로 물들어가던 대기는 푸른빛을 머금은 채 녹아내렸다.
[만상세계에 업적이 기록됩니다.]
그 순간- 유천하의 귓가에 만상세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허공을 향해 퍼져나가던 마수의 마력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고, 그렇게 유천하의 신형이 지면에 내려섬과 동시에 폭발 속에 소란스러웠던 전장도 일순간 침묵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장의 소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마수의 울음소리.
그리고 그 가운데 내려앉은 정적의 순간.
“······.”
“······.”
그렇게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만큼은 아무런 소리 없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마냥 멈춰선 상태였고,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난데없는 광경에 그곳을 향해 포탄을 쏘아내고 있던 연맹군은 멍하니 조금 전 폭발이 일어났던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분명 유효타를 먹이라 하긴 했는데.”
탁- 그 적막의 중심으로 걸어들어온 티르유의 입에선 다소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완전히 얼이 빠진듯한 표정으로 유천하의 시선을 마주하였다.
마치 이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잘했어. 잘했는데······ 일격이라니?”
“최선의 일격이었습니다. 방벽이 깨져있기에 가능했으니 티르유씨 덕분입니다. 여명급이라면 모를까 황혼급을 상대로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
그렇게 담담하게 되돌아온 대답에 티르유는 평소의 차가웠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천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아주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야.”
그 모습에 티르유는 그렇게 대답함과 동시에 작게나마 고개를 내저었다. 안 그래도 마력 파동에 밀려 나갔던 마수들이 다시 몸을 일으키며 달려 나오기 시작했고, 전장에서 날뛰고 있는 수호자급 마수는 아직도 많았으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긴 했을 따름.
그렇기에 티르유는 차갑게 정신을 가라앉히고, 유천하를 향해 마주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툭- 교차하는 손등.
그것은 침식을 향해 나아가는 공략자들의 인사였고, 다시 서로의 등을 맡기겠다는 약속이었으니. 가볍게 맞닿은 손등에선 서로의 업륜이 공명하며 마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정리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주변에는 마수들이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고, 다시 사방에선 잿빛의 그림자들이 마력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니 이 순간 그들이 해야할 일 또한 무척이나 간단했을 뿐.
그렇게.
“가자. 다시.”
“예. 빠르게 끝냅시다.”
그들의 토벌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