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자 유천하 (3)
나르화리얀은 뭐 그런걸 물어보냐는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랭킹은 317위여도 실질적인 기량은 하이랭커급이라며? 그럼 당연히 승천자 정도는 데리고 와야지 제대로 확인할 거 아니야.”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야 랭커급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텐데요.”
“가능은 하지. 근데 위험하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이어진 설명에 빠르게 그 이유를 납득 할 수 있었다.
“생각해봐. 공략하다 다치는 것도 아니고 대련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이 어딨겠어? 그럴 기력이 있으면 당장 공략이나 하러 가는 게 맞겠지. 그렇다고 제대로 측정할 게 아니면 의미가 없기도 했고.”
“······.”
“그리고. 애초에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네 기량을 알고 싶어하는 이유도 앞으로 현장에서 너랑 만나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야. 결국 실전에 가까운 상태에서의 기량을 보고 싶은 건데 손대중하는 걸 봐서 뭐하겠어?”
이건 정말이지 지극히 공략자다운 이유.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도 생도들과 실제 현장에서 뛰는 공략자들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침식의 속도가 속도인 만큼 공략자들의 인력난도 그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역시나 공략자들에게 최우선인 가치는 침식 저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렇기에 나로서도 이 상황이 영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 실력을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선 최소 하이랭커급 아니면 승천자가 나서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아한 부분은 존재했다.
“그럼 승천자라면 괜찮은 거 아닙니까?”
“응? 아··· 나?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상태가 안 좋아서 안 돼. 당분간은 능력 사용금지거든. 회복 속도가 달라진단 말이야.”
“······부상 말입니까?”
“응. 마력이 조금 곪아버린 상태라.”
그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나르화리얀의 상태를 만상의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물론 아까전에는 그런 점을 못 느꼈기에 이번에는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바꿔보았을 뿐.
이번에 보고자 한 것은 형상이 아닌 심층.
분명 자연의 현상이 응집돼있는 듯한 그의 기이한 본질은 여전히 내 시야를 번잡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저 말을 듣고 다시 관찰해보니 나는 그 마력의 응집 가운데 스며들어있는 미미한 이질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잔잔함 속에 녹아들어 간 불쾌한 이질감.
호수 속에 가라앉아 있는 찐득한 잿빛.
고오오오오-
침식? 아니, 온전한 그림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기운이 그의 내부에 스며들어있었고, 나르화리얀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마력의 대부분은 모두 그 이질적인 색채를 억누르기 위해 일렁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는 나르화리얀의 기묘한 마력에 가려져서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지금 그는 대련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 같아보였고, 그렇기에 실제로 나르화리얀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 나는 그 즉시 깔끔하게 미련을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나게 된 승천자라는 점에서 꽤 흥미가 생기는 상대였지만 그가 말한 것처럼 불필요한 전력소모가 생기는 건 지양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러자 그런 생각이 표정에서 드러났는지 나르화리얀은 나를 바라보며 담담히 몇 마디 말을 더 덧붙여 주었다.
“사실 내 생각에는 티르유 이 아이 특성이라면 측정해봐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거든? 얘도 한 가닥 하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조금 더 확실하게 하고 싶은가 봐.”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과찬이네요.”
“그래? 네 특성 정도면 괜찮지 않아?”
“아니요. 확신하진 못하니까 무리에요. 안 그래도 회복하느라 복귀가 늦어진 판국에, 괜히 오기 부리다 다시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곤란하니 저로서도 사양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담담하게 대답을 돌려준 티르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지금 나르화리얀님이 설명해주신 대로긴 한데······ 이래서야 내가 후견인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네. 정말 조만간 같이 공략에 나설 때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
그녀는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 속에서도 조금 민망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그렇게 말해왔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목소리 속에 민망함과 더불어 약간의 대견함과 염려까지 뒤섞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런 티르유의 태도가 조금 부담스러웠던 나는 자연스레 말을 돌려보았을 뿐이었다.
마침 또 다른 의문점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해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더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그럼 루타텔 그분은 갑자기 어디를 가게 되신 건가요?”
“······응?”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갑작스레 일정이 틀어진 모양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아. 그걸 얘기 안 해줬었구나.”
그러자 티르유는 내 질문을 듣고선 잠시 눈을 깜박거리더니, 이내 자신의 손목- 그곳에 있는 워치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네가 오기 전에. 그러니까 약 20분 전쯤에 스페인 남부에서 웨이브가 발생했었어.”
“······웨이브?”
“아, 표현을 잘못했네. 정확히는 대규모 침식역류현상이라 생각하면 돼. 그냥 편하게 말하려고 붙인 말인데, 침식역류랑 조금 다르기는 해도 근본적인 이유는 그거니까.”
나는 그녀가 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침식영역에서 역류했던 마수들이 일제히 몰려오는 현상을 말하는 건가요 그건?”
“응. 맞아. 바로 그거야. 그렇게 웨이브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루타텔님은 바로 스페인으로 떠나셨고, 현장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우리도 너한테 양해를 구한 거야.”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워치에서부터 쏘아진 홀로그램은 이내 디스플레이 화면을 허공에 띄운 채 펼쳐졌고, 그 화면 속에선 다시 몇 가지 뉴스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온 대규모의 마수 무리가 스페인 남부- 타리파 항구를 덮쳤으며, 현재 급하게 파견······]
침착하게, 허나 빠르게 토해지는 목소리.
배경너머에서 들려오는 강렬한 폭음.
[콰아아아아앙-!!]
[콰가가가가가가-!!]
그리고, 그렇게 순식간에 귓가를 때려오는 굉음과 소음도 소음이였지만, 그것보다도 더 내 신경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으니······
[-----------------------------------------------!!!]
수천, 아니 수만에 가까워 보이는 마수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마수의 해일이었다.
마치 바다가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물가에 스며든 기름처럼 해안을 뒤덮은 잿빛의 마수 무리는 그대로 파도와 함께 물결치며 육지로 쏟아지고 있었고, 대체 얼마나 쌓여있는건지 믿기지도 않을 정도로 밀려오는 그 무지막지한 풍경 속에선 간간이 거대한 형체의 마수들마저 시야에 포착되고 있었다.
식별되는 수호자급만 최소 8개체 이상.
물론 대부분은 여명급에 불과했지만 카메라 너머로 전해지는 풍경 속에서, 잠깐의 시간 동안 엿본 것만으로도 그렇게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으니 실제로는 더 많은 수호자급이 저곳에 뒤섞여 있을 거란 짐작이 들었다.
그렇게-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된 대규모 역류현상에 나는 잠시 질리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티르유의 입에선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걸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가 공략을 해야 하는 거지만······ 그러지 못한 결과가 바로 이거야.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침식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 판국에도 대부분은 헌터 짓이나 하고 있으니······”
쯧- 티르유는 말을 아끼면서도 무언가 불만스러웠는지 잠시 혀를 찼고, 다시 담담히 설명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그나마 도심지나 접경지에서 터져 나오는 건 바로 공략하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침식영역 안쪽에서 역류한 채, 지금처럼 쌓여서 몰려오는 건 미리 예방하기 힘든 일이야. 아니, 가능은 한데 현실적으로 힘들 뿐이지.”
“······.”
“그래서 접경지대 특정구간에선 이런 웨이브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편이긴 해.”
티르유는 그리 말하면서 미간을 찌푸렸고, 동시에 그녀는 기분이 불쾌해진 모양인지 무척이나 서늘한 기세를 풍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저 현상의 원인을 배웠던 만큼 충분히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건 분명 평소에 어떻게 하냐에 따라 예방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티르유같은 최선두 공략자라면 당연히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애초에- 저런 대규모 역류현상의 원인은 별게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잿빛탑의 생성은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편이었고, 그런 만큼 잿빛탑은 도심지나 접경지 한가운데서 솟아나기도 했지만 그와 반대로 사람 한 명 없는 심해나 침식영역의 안쪽에 생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방치된 잿빛탑이 침식역류를 일으키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뿐.
그렇기에 침식영역 내부에는 항상 마수들이 쌓여갈 수밖에 없었고, 그 인과는 다시. 자유롭게 풀려난 마수들이 지금과 같은 행동을 벌이는 것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저런 대규모 역류 현상을 막기 위해선 그저 침식영역 내부에 꾸준히 공략자들을 투입해서 마수들이 쌓이기 전에 토벌하고, 또 토벌해서 미리 수를 줄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나마 역류하자마자 침식영역 바깥으로 뛰쳐나와 파괴활동을 벌인다면 연맹에서도 즉각 대응에 나서겠지만, 그게 아니라 침식영역 내부에서 가만히 돌아다닐 뿐이라면 당연히 공략자들로서도 침식영역 내부보다는 당장 도시에 생성되어있는 탑을 공략하는데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공략자는 항상 부족했고, 침식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저 현상은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실제 현실상에선 각성자들의 행실이 그것을 불가능으로 만들었다 봐도 무방했으니······ 어찌 보면 그녀와 같은 사람이 저리 불만을 드러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볼 수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마. 자기들이 능력이 안 된다는데 어쩌겠어. 죽을 게 뻔한 곳에 발을 들이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압니다. 그건 알고 있는데······”
“그래. 만상세계의 가호가 있는 한 그것도 핑계에 불과하긴 하겠지. 침식은 인류가 함께 대항해야 하는 문제고, 업을 쌓는 건 재능보단 마음가짐이 중요한 부분이니까.”
하지만- 그 말과 함께 나르화리얀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지한 기색으로 가라앉았다.
“생명이란 본디 자신의 삶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어. 그건 무척이나 당연한 거야. 사람마다 주어진 사명은 다른 법이니 모든 이에게 이타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모두가 그러진 못해도, 그중 누군가가 다시 다른 이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테니까.”
“······.”
“그것 또한 인과라 볼 수 있지 않겠어?”
무언가 세월이 느껴지는 말- 그렇게 나르화리얀은 차분한 목소리로 티르유에게 말을 건네었고, 그 말에 티르유 또한 이내 알겠다는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티르유의 기세가 가라앉음과 동시에 나르화리얀의 분위기도 다시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
그는 다시 미소 속에 말을 이어나갔다.
“뭐. 나도 무리하다가 얻어맞고 온 처지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저곳은 별 탈 없이 정리될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
“예. 알겠습니다.”
“그래. 마침 말하려니까 저기 나오네.”
그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허공에 떠올라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수들의 모습을 보여주던 뉴스의 화면은 한순간에 상공에서 해안가를 내려다보는 구도로 바뀌었는데, 그러자 그곳에서부터 강렬한 주홍빛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화면너머로도 선명하게 엿보이는 화염.
순식간에 공간을 뒤덮는 마력의 해일.
항구에서부터 시작된 백열의 폭풍은 그대로 해안가까지 뒤덮은 채 타올랐는데, 그 힘의 규모를 짐작해보자면 최소 Km 단위로 세어야 할 수준. 그렇게 업화의 해일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잿빛의 그림자를 밀어내며 타올랐고, 그 광활한 전장 속에선 주홍빛 불꽃이 끊임없이 광열을 뿜어내며 휘몰아쳤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이능의 발현이었다.
“······저게 루타텔씨의 활약인가요?”
“응. 상황을 보니 루타텔님도 이제 막 도착하신 모양인가 봐. 확실히 문제없이 해결하실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물량이 물량이다 보니 도시에 피해가 없을 것 같지는 않네.”
다른 걸 떠나 규모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력의 유동이 느껴지는 광경이었기에 나는 큰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르화리얀은 지금 전력 외인 상태라 정확히 감을 잡기 모호하기도 했고, 초상능력자라는 부분이 정확히 전력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는데- 저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승천자급 마법사의 무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기 시작했던 탓이었다.
차라리 이제까지처럼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앞에서 승천자까지 마주한 상황에서, 비록 화면 너머라 할지언정 승천자의 활약을 직접 보게 되니 조금씩 몸이 달아오른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규모도 규모고, 후에 뒷정리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밤은 되어야 돌아오겠군요.”
“그렇긴 하겠지? 잔존 마수 토벌도 중요하니까. 그래서 공략시간이 얼마나 걸리냐에 따라선 미안하지만 오늘은 돌아가고 다음에 다시 시간을 잡아야 할 수도 있을 거야. 아니면 최대한 좋은 호텔을 잡아줄 테니까 여기서 계속 기다려도 되고······ 음. 정말 미안.”
그렇게 티르유는 꼬여버린 일 처리에 대신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다시금 내게 사과를 건네왔지만, 그런건 내게 중요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저- 이 순간 머릿속으로 꽤나 흥미로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다른게 아니었다.
“그런데 기량측정이란 거 꼭 루타텔씨와 대련하는 걸로만 측정해야 하는 겁니까?”
“······응?”
“조금 전에 공략자라면 불필요한 대련보단 공략을 우선시해야 한다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그럼 제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환경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 없는 거 아닌가요?”
“······.”
“마침······ 알맞은 상황이 생긴 것 같은데.”
그렇게 넌지시 건네본 제안- 내 말에 티르유는 잠시 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시간도 남고, 손도 남고, 필요도 있고. 굳이 기다리기만 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
티르유는 내 입에서 흘러나온 갑작스러운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듯싶었는데, 그러다 이내. 그녀는 내 말의 맥락을 이해했는지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그 옆에 앉아있던 나르화리얀 또한 몹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어떠신가요?”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사적인 의도를 듬뿍 담아, 공적인 제안을 건네보았고- 그런 내 제안에 되돌아온 건 다시.
“······그거 굉장히 마음에 드는 소리네.”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보이는 미소였다.
***
후투두두-!! 귓가를 때리고 울려 퍼지는 강렬한 바람 소리는 쉴 새 없이 뭉개진 하울링을 토해냈고, 내게는 풍결의 가호가 있었던 만큼 나는 그렇게 휘감고 갈라져 나가는 바람의 결을 더욱 선명히 느껴볼 수 있었다.
흐릿해진 대기 속에 엿보이는 구름.
그리고- 까마득하게 작아진 지상의 풍경.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5분 뒤 착륙 포인트에 도달할 거야.”
“게이트가 망가지니 이런 게 불편하군요.”
“어쩔 수 없어. 지금 저기는 그런 걸 신경 쓸만한 상황이 아닐 테니까.”
우리는 지금 수송기에 탑승한 채로 공중을 가로지르며 웨이브가 일어난 곳- 타리파의 해안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고, 그 까닭은 도시에 설치되어있던 게이트가 마수로 인해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대한 인접한 도시의 게이트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빠른 이동을 위해 헬리콥터를 지원받은 상태.
물론- 어지간한 공략자였다면 이렇게 갑작스레 지원받기는 힘들었을 테지만 우리는 예외였다. 둘의 소속이 등천의 구도자였다는 것도, 그리고 그녀와 나. 둘 모두 500위권 안쪽인 상위권 랭커였다는 사실도 모두 이런 지원을 받아낼 수 있었던 요소였으니까.
“그래도 루타텔씨가 잘 막아내고 있어서 아직은 크게 문제없는 모양이야.”
“마수들은······ 숫자는 거의 그대로군요.”
“실시간으로 수백 마리씩 불태우고 계신 모양인데 워낙 수가 많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러니 우리는 특성상 수호자급 마수부터 요격하는 게 좋겠어. 그래도 괜찮지?”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 수송기는 전장의 바로 위를 지나 착륙할만한 공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그렇기에 현재 우리의 눈에는 전장의 상황이 속속들이 엿보이는 중이었다.
까마득한 지상 아래서 바글거리는 잿빛.
벌레처럼 작게 몰려든 검은 파도는 푸른 바다를 뒤덮은 채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렇게 잿빛과 도시가 만나는 해안가에선 다시 수백 명의 사람이 마수와 맞서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조금 질리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상과 동조된 내 시야는 전장에 휘몰아치는 혼탁한 마력을 그대로 목도할 수 있었고, 루타텔로 추측되는 이가 토해내는 방대한 마력도 상대적으로는 가볍게 느껴질 만큼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그림자의 파동이 전장에서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던 탓이었다.
그리고 또한.
······콰······ 앙!! 콰앙······!!
위치가 위치였던 만큼 이런 웨이브를 대비해 군대 또한 상주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공략자들의 화력이 비는 곳에선 다시 쉴 새 없이 폭탄이 터져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고,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별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자원의 낭비.
딱 그런 생각이 들었고,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한 물리력으로는 재생력을 억제할 수 없었기에 고위급 마수는 폭탄에 찢겨나감과 동시에 즉시 몸을 재생시켰고, 수호자급 마수는 마력방벽을 통해 그대로 폭발 자체를 씹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선 끊임없이 폭발이 터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석이 보유한 마력이 재생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화력을 쏟아붓고 있었기에 그대로 포화에 터져나가는 마수들도 많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눈에는 곳곳에서 터져나가는 폭탄의 개수와 그로 인해 토벌되는 마수의 수가 확연히 들어오고 있었기에 그 교환비에 얼떨떨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니까 육성 기관이 존재하지.’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된 공략자를 양성하는데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필요로 하는 재능 등의 조건을 생각하자면 이러나저러나 자원의 소모는 비슷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콰······ 콰아아······ 아아아앙!!!
지금 우리의 발밑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마력의 폭풍이 증명해주고 있듯이, 승천자 한 명이 보여주고 있는 활약이 수백 발의 포탄보다도 더 압도적인 결과를 낳고 있었으니 현실적인 자원의 소모나, 장기적인 효율성을 생각해보자면 실질적으론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라는게 빠르게 납득이 되었을 따름.
물론 승천자는 별격의 존재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전장에서 활약 중인 공략자들의 숫자와 다시, 포탄을 쏘아대는 장갑차의 숫자를 비교해보아도 역시 결과는 비슷했다.
“······.”
그렇게 내가 잠시 토벌 현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바로 그때 티르유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난 먼저 내려가 봐야 겠어.”
“······지금 말입니까?”
갑작스레 흘러나온 말- 그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런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망원경을 든 채 싸늘하게 굳어있는 그녀의 얼굴이었다.
“저기. 끝 부분에 전선이 밀리고 있어. 황혼급이라 연맹군으론 상대할 수 없어. 착륙까지 기다렸다간 수십 명은 죽을 거야.”
티르유는 그 말과 함께 우리가 지나고 있는 바로 밑- 전장의 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 또한 이내 그녀가 말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안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화망.
그리고 그곳을 돌파하려는 거대한 마수.
수십 대의 장갑차에서 쏟아지는 포격에도 겉면의 형상만 일그러트린 채 달려나가는 마수는 그대로 침식 파동을 터트리며 전선을 흐트러트리고 있었고,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단 5분만 있어도 저 자리에 있는 수십 명이 죽어 나가기엔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더는 기다릴 생각이 없다는 듯 만약을 대비해 처음부터 열려있던 입구로 다가섰고, 그렇게 잠시 헬기의 천장을 붙잡은 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아. 그런거면 저······”
“넌 천천히 따라와. 오면 그때 합류할게.”
탁-!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깥으로 몸을 내던졌다. 마치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처럼. 아무런 장비 없이 헬기를 박차고 뛰쳐나간 그녀는 그렇게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저 사람 지금 낙하산은 들고간 거야···?”
그렇기에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점이 되어버린 그녀의 행적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뛰어내린 게 어처구니없었던 탓이기도 했고, 같이 탑승하고 있던 연맹군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먼저 가봅니다. 수고하세요.”
탁- 나 또한 망설임 없이 허공을 향해 발을 박차고 뛰쳐나갔을 뿐. 이유를 말하자면 별건 없었다. 그저 사실 예전부터 이런 것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나 또한 굳이 착륙을 기다릴 이유는 없었으니까.
오직 그런 이유.
-아, 아니···! 낙하산은 좀 들고 가십쇼!!
-아무리 각성자라도 저게 뭔 미친···!!
그렇게 나 또한 헬기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몸을 휘감고 휘몰아치는 바람의 결을 느끼며, 다시 의념으로 스스로를 내리 누르며.
후우우우웅-!!
까마득해 보이는 3Km 밑의 지상을 향해.
다시- 마력을 토해내고 있는 마수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