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자 유천하 (2)
그렇기에 나는 워치 너머에서 들려온 아리엘의 대답에 잠시 생각을 되짚어보았다.
“어쨌든. 그럼 하린씨는 몰랐다는 거지?”
[응! 자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던데?]
“······.”
참고로- 내가 그녀에게 물어본 내용은 별 게 아니었다. 그저 등천의 구도자에서 부른 적이 있냐는 것과 포상에 대해 들은 소식이 있었냐는 내용.
그런데······ 혹시나 싶었더니 역시 이건 이하린도 모르는 이야기였던 걸까?
하지만 그때 티르유가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면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티르유는 분명 우리 둘 모두에게 포상이 나온다 했는데, 아무리 위타극 건으로 내게 줄 포상이 달라졌더라도 굳이 나 혼자만 부를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하린에겐 연락조차 하지 않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고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한 번 이하린에게 짐작 가는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기분.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봤자 그건 무의미한 일이었고, 지난 만남 때 이걸 물어본다는 걸 이런저런 일 때문에 깜빡해버린 건 나였으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물론 뭐······.
[그래서 뭔데? 어제 갑자기 나한테 물어봐 달래서 물어보기는 했는데 너도 그렇고, 하린이도 그렇고 워치는 뒀다 뭐하······ 아. 설마. 혹시 너희······ 둘이 싸운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요 며칠 동안 왜 스터디도 안 나오나 싶었더니, 하린이 애가 아주 천하 너 이름만 나오면 죽을라 하던데? 반응이 귀여워서 놀리긴 했지만 뭔가 이상했단 말이야.]
“그건······ 그냥 하린씨라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서 이해해.”
[······응?]
참고로- 이하린의 속마음을 물어봤던 그날 이후로 벌써 며칠이 지난 상황이었기에 그동안 이 일에 대해 물어볼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시간은 있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정확히는 이하린에게 말이다.
그녀는 그날의 외출 이후로 나만 보면 황급히 도망가기 일쑤였고, 아리엘과 같이 진행하던 스터디 또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가며 빠졌으며, 내게 매일같이 보내던 연락 또한 지금은 잠시 멈춰버린 상태였다.
그때 자신이 말했던 내용이 부끄러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 뒤에 오갔던 농담에 큰 타격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하린의 정신은 아직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던 모양.
어쨌든 그렇기에 나는 그 뒤로도 이하린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었고, 억지로 붙잡고 캐묻기에는 조금 양심에 거슬리는 부분도 없잖아 있었기에 나는 가만히 그런 그녀의 상태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물론······ 내가 말을 걸수록 더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잠시 그날 이하린과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이내 워치 너머에서 다시 아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의아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너네.]
“뭐가 수상해.”
[혹시 나 몰래 뭐한 거야? 나 섭섭해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진짜? 진짜 별일 없었어?]
솔직히 말하자면- 별일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나름대로 큰일이 있긴 했었다.
허나 그걸 사실대로 밝히기는 힘든 노릇.
그날 우리 사이에서 오갔던 대화 속에는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내용이 담겨있었고, 그 내용은 이하린과 나. 그리고 ‘원작’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객관적으로는 정말이지 뜬금없는 맥락의 대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아리엘에게 그 날 있었던 일을 말해준다 한들 그녀로서는 이하린의 사정도, 우리의 심경도 이해하긴 힘들 터였다.
그리고 또한······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날의 일을 아리엘에게 말해줬다간 어떤 반응이 되돌아올지 너무 쉽게 예상이 가는 바였기에 더 꺼려지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고 해야 할까? 그 날 오갔던 대화도 대화였고, 회랑으로 돌아오면서 이하린에게 쳤던 장난을 생각해보자면 아리엘은 그것만으로도 한 달은 내내 우리를 놀려먹을 만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평온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어. 별일 없었어.”
[······그래? 믿는다 그럼?]
“그래. 믿어 좀.”
[으음··· 수상해. 수상해.]
물론 아리엘은 그런 내 태도가 미심쩍었는지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내 내 대답에 담긴 단호함을 느낀 탓인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려주었다.
[그래. 믿어야지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말해두는데 둘이 싸우면 안 된다? 알았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그럴 일은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그래? 그럼 안 싸운다는 거지? 그럼 다행이네. 아구 착하다. 우리 천하 참 착···]
뚝- 순간 본능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
아무래도 그녀가 한 말이 굉장히 껄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는데, 필요한 내용도 이미 전달받은 상황에. 시간도 슬슬 다가오고 있었기에 내 머릿속에선 이걸 다시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묘한 고민이 들었을 따름.
나는 잠시 손목의 워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다시 순식간에 워치가 웅웅- 울려대기 시작했기에 나는 빠르게 전화를 받아보았다.
그러자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뭐야! 왜 끊는 건데. 너무해! 너무해!]
“······실수야. 잘못 눌렀어.”
[너 거짓말 할 때 목소리 떨리는 거 알아?]
“아닌거 다 아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하린이었다면 안 끊었겠지? 그렇겠지?]
“하린씨였다면 그런 소리를 안 했겠지.”
[너 요새 내 취급이 조금 너무한 것 같아.]
“······착각이야.”
[대답이 조금 느렸어 너.]
“그것도 착각이야.”
워치 너머로 그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게 느껴졌기에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전화를 끊을 타이밍을 잡아 보았는데 이대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가는 아리엘의 화법에 끊임없이 휘말릴 것 같기도 했고, 이제는 정말로 슬슬 사전에 약속한 시각이 되어갔기 때문이었다.
“근데 나 이제 슬슬 들어가 봐야돼.”
[······이렇게 이용만 하고 버리는 거야?]
“아니. 그냥 시간이 다 돼서 그런 거야.”
[필요할 때만 찾는 나쁜 사람······ 너무해!]
“넌 제발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리엘의 장난기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해보니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나와 이하린을 대하는 아리엘의 태도는 점점 친근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분명히 처음의 아리엘은 그래도 평소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정말 이미지고 뭐고 우리 앞에서는 매일 이러고 있었으니, 원작의 그녀가 어떤 성격으로 묘사되었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기분이 묘했을 따름이었다.
[그치만 재밌는 걸?]
“······.”
물론 카룬드 건도 있긴 했고, 이래저래 자주 보는 사이니까 점점 가까워지는 것도 이해 못할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하린의 속마음을 물어봤더니, 자연스레 아리엘이 대체 왜 우리에게만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도 같이 궁금해졌다고 해야 할까?
물론- 적어도 당분간은 그 이유를 캐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나는 그저 그러려니 싶었다. 아무래도 쪼그라든 이하린이 원상복귀되 기전에는 신경 쓸 일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았던 탓.
그렇기에 나는 빠르게 잡념을 털어내며 그녀에게 말을 건네주었다.
“어쨌든. 이제는 진짜 그만 가볼게.”
[정말 가야 되나 보네······ 알았어 그럼.]
“어. 전달해줘서 고마워. 수고해.”
[응! 천하 너도 수고해. 잘 갔다 와!]
뚝- 그렇게 아리엘과의 전화를 끊은 나는 잠시 워치를 내려다보며 고민을 해보았다.
그리고는 이왕 워치를 만진 김에 메시지를 하나 보내보았는데, 물론 메시지를 받는 대상은 아리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이왕 생각난 김에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착했습니다. 하린씨건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물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전송- 나는 이하린에게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보았고, 원래 같았으면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놓으면 얼마 안 가 순식간에 답장이 돌아왔겠지만 역시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이내 워치에서 신경을 끄고선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고, 그렇게 나는 위잉- 정문을 지나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리고는 미리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던 만큼 안내를 받기 위해 데스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역시 본부라 그런지 이곳의 직원들은 내 얼굴을 알고 있었던 걸까?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던 직원들이 나를 힐끗거리더니 자기들끼리 뭐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등천회랑, 생도, 등천자······ 등등 나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중에는 간간이 승천자의 이름도 섞여 있었기에 나로서는 그저 의아하단 느낌이었을 뿐.
하지만 그 순간.
“생각보다 빨리 왔네.”
데스크를 향해 걸어가던 내 등 뒤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기이한 존재감이 느껴졌고,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두 명의 인영.
“쟤가 유천하야?”
“예······ 저 친구긴 해요.”
그것도 굉장히 익숙한 사람 한 명과 굉장히 낯선, 그러면서도 기이한 존재감을 뽐내오는 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
쪼르륵- 내려앉은 적막 사이로 차를 따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렇게 접견실로 끌려들어 오다시피한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잔을 들어 올렸다.
“차, 음료, 물. 뭐 마실래?”
“여기 계실 줄 몰랐습니다.”
“그러게. 그래서 뭐 마실 거야.”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그녀- 티르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그 옆에 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뭐 드실 건가요.”
“나? 혹시 콜라도 있어?”
“없습니다.”
“그럼 나도 됐어.”
흰색. 아니, 흰색에 가까운 푸른빛의 머리카락을 늘어트리고 있는 남자는 뭔가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히죽거리고 있었고, 그런 그의 태도에 티르유는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여기까지 왜 따라온 건가요.”
“루타텔 녀석이 도망쳤는데 그럼 어떡해. 미안한데 나라도 있어야지 않겠어?”
“도망친 것도 아니고, 당신도 그런 이유 아닌 거 다 아니까 그냥 좋은 말할 때 가세요.”
티르유는 그 말과 함께 싸늘한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시선을 무시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에이. 그래도 수뇌분데 염치가 있지.”
“그니까 염치가 있으셔야 하지 않나요?”
나르화리얀님- 그런 이름으로 불린 남자는 티르유의 말을 무시한 채 가만히 앉아 나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의 얼굴 위로는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 시선을 마주하며 그의 정체를 추측해보았다.
“너도 말이 좀 없는 편이구나?”
“······.”
나를 향해 흥미 서린 말을 건네오는 남자. 나르화리얀은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이질적인 마력의 파장을 뽐내오고 있었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가 분명 상당한 강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파문처럼 퍼져나오는 기이한 마력의 파장.
세계에서 한 발짝 벗어난 듯한 존재감.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 내부에 가라앉아있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력량.
가만히 있으면 그저 특이한 분위기의 사람이구나 싶을 정도였지만, 시야를 만상의 눈으로 전환하는 즉시 내 눈에는 정말이지 막대한 마력의 파문이 이질적인 형상으로써 관측되기 시작했다.
저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구름과 비- 다소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남자의 형상은 마치 그런 모습처럼 엿보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육신과 그 내부의 모습이 비쳤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르화리얀이라 불린 이 사람은 육신이 아니라 마치 자연의 현상이 어마어마한 마력 속에 사람의 형상으로 뭉쳐진 것 같은 모습을 띠고 있었다.
저게 사람이긴 한 걸까 의아했을 수준.
그런데 희한한 점은- 분명 그 내부에서 잔잔하게 휘몰아치고 있는 마력의 기세만 보면 이제까지 만난 그 누구보다 강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왠지 모르게 그게 딱히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불과 한 달 전에 라피냐를 처음 만난 순간 곧바로 오온에 접어들었던 걸 생각해본다면 실로 의아할 정도의 차이.
물론 내 경지가 높아지고 마음에 여유가 깃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저 정도의 기량을 갖춘 이라면 그 경지를 짐작해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 나로서는 그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혹시 너 나 알아?”
“모릅니다. 한데··· 승천자 아니십니까?”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내 앞에 있는 남자가 승천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 역시 그 정도면 말 안 해도 느껴지나 보네? 대부분은 말 안 해주면 모르던데.”
“눈이 조금 특별해서 그런가 봅니다.”
“아. 특성이 관찰계열이랬지? 대단하네.”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렇게 난데없이 만나게 된, 그것도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보는 승천자의 모습에 나는 원작의 기억을 되짚어보았지만 딱히 기억나는 부분은 없었다.
나르화리얀이라······ 뭔가 특이한 이름인 만큼 아예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등장한 건 아니었는지 관련된 정보가 떠오르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등천의 구도자에 소속된 승천자? 그 정도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고, 그게 전부였을 뿐.
“그럼 어때? 보면 뭐 느껴지는 거 있어?”
“마력이 많다. 그 정도는 느껴집니다.”
“그게 전부야?”
근접전은 문외한에 가까워 보인다.
육체를 움직이는 모양새나 근육의 발달.
모르는 이와 간격을 유지하는 태도.
아마도 초상능력 일변도의 초인 아닐까 싶었고, 마력의 양으로만 보자면 내 10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물론 전체적인 느낌을 가늠해보면 근접한 거리에서 일대일로 싸우게 될 경우 승산이 없을 것 같진 않았으나, 아무래도 거리가 벌어져 있거나 전위만 하나 붙더라도 저 마력으로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위협적인 상대였다.
기감과 만상의 눈으로 관측되는 느낌만 보아 해선 근접전의 승률은 대략 4할?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가정이라면 현재로썬 승산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그렇게 나는 빠르게 승천자의 전력을 가늠해보았지만 역시 직접 특성과 이능의 운용을 보지 않으면 정확한 간격은 파악하기 힘들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무래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초절정고수의 기량과 비교하기에는 너무나 궤가 다른 부류의 초인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본 게 있어야 느끼든 말든 하겠지요.”
“그건 그렇긴 하지.”
그렇기에 나는 대강 대답을 돌려준 뒤, 약간의 의아함을 담아 티르유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응? 아. 그래. 설명해줘야지.”
갑작스러운 내 말에 티르유는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지어 보였던 표정은 분명, 매우 떨떠름해 보이는 표정이었을 뿐.
하지만 티르유 또한 인상이 차가운 편이었고 감정의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나는 조금 전 나르화리얀의 입에서 나왔던 말을 통해 그녀가 왜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인 건지 어느 정도 이해해볼 수 있긴 했다. 조금 전 티르유와 나르화리얀이 나눴던 대화를 생각해보자면 배경을 짐작해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루타텔 녀석이 도망쳤는데 그럼 어떡해. 미안한데 나라도 있어야지 않겠어?
루타텔- 아리엘의 아버지인 승천자 루타텔의 이름은 내게도 분명 익숙한 이름이었고, 그런 루타텔이 도망쳤다는 말과 그 대신 자신이 왔다는 나르화리얀의 말을 통해 떠올려볼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 말과 지금 그들의 반응만으로도 여러 가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아마 뉘앙스를 봐선 내게 포상을 지급하는 건과 관련하여 승천자와 만나는 게 예정되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역할은 아마 루타텔의 역할이었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우선은 사과부터 할게. 원래 예정된 일정상으로는 크리스탈을 수여해주면서 동시에 루타텔님을 통해 기량측정도 할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정이 틀어졌어. 미안해.”
역시나 내 짐작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 나는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기에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질문을 건네보았다.
“기량측정 말입니까?”
“아······ 공지 못 받았구나? 응. 기량측정.”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티르유는 내가 이런 질문을 건넬 것을 예상했던 건지 무척이나 담담하게, 막힘없이 대답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음. 그럼 처음부터 설명해줄게.”
“예. 부탁드립니다.”
“원래 우리는 너를 전도유망한 신인 정도로 생각하고 후원을 해준 거였어. 그런데 한 달 만에 타천자를 잡고, 두 달 만에 등천자가 돼서 상위권 랭커가 되어버린 걸 보니까 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의견이 제시된 거야.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한 일만 보면 유망주급은 확실히 벗어난 상태잖아?”
“······그런가요?”
“응. 그래서 포상을 지급해주는 김에 조금 더 자세히 파악을 해보자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회의로 의견을 조율해본 결과 만장일치로 승낙. 앞으로 다른 사람들하고도 간간이 협업하게 될 수도 있으니 승천자 한 분이 수고해주시기로 결정된 거야.”
동료의 기량을 파악하는 것도 공략에 있어선 중요한 요소니까- 그녀의 말을 들으니 왜 굳이 본부로 나를 부른 것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하긴 저런 이유라면 승천자보고 오라 가라 하기보단 나를 부르는 게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물론 나야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입학추천서도 그렇고, 에테리얼 크리스탈도 그렇고, 거의 사용은 하지 않았지만 계좌에 들어오는 지원금도 그렇고. 이제껏 받은 게 있다 보니 그 부분에선 딱히 불만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승천자와 대련을 해볼 수만 있다면야 나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바.
하지만 그런데도 의아한 부분은 존재했다.
“그런데 왜 그 부분은 미리 공지가 안된 건가요? 그리고 저만 부른 이유가 그런 거라면 하린씨의 포상 건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그 부분은 대신 사과할게. 아무래도 전달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야. 요새 사무직원들이 조금 바쁜 상태거든. 그리고 하린이한테도 포상이 나오긴 할 건데······ 자세한 건 네 일부터 끝나면 말해줄게.”
그리고- 티르유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사과한 부분에 관한 얘기인데······”
“······또 무엇인가요?”
“루타텔님이 돌아올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그런데 기량측정은 꼭 해야 할 거 같아서······ 아마 밤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 언제 일이 마무리될지 모르니까. 우리가 불러놓고 이래서 정말 미안해.”
“······.”
딱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티르유의 표정이 진심으로 미안해 보이기도 했기에 별로 불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을 뿐.
“기량측정 자체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꼭 그분께 받아야 할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으음··· 그건.”
“그야 지금은 네 실력을 제대로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내 질문에 대답한 건 티르유가 아닌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르화리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