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자 유천하 (1)
워싱턴 DC에 위치한 거대한 건물. 불필요한 장식 하나 없이 백색의 단면으로 구성된 그곳- 등천의 구도자 본부.
현재 그곳에선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허나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회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 드넓은 회의장 사이사이에 자리한 입체화상은 오히려 실내의 공백과 대비되어 회의장의 외견을 초라하게 만들어주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안건······ 등천회랑의 승천제 행사에 관련하여······ 님이 제안하신······”
[······그 부분은 그렇게······ 예.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해서 루타텔과 나르화리얀을······ 예. 그렇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들은 그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회의를 이어나갔을 뿐.
애초에 그들에게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등천의 구도자에 소속되어 활동할 정도의 이들이라면 보편적으로 다른 공략자들보다도 의무감이 더 특출나다 할 수 있는 편이었고, 그렇기에 그들 중 대부분은 시간이 주어져도 휴식보단 마수를 한 마리라도 더 토벌하는 것을 선택하는 쪽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그들로선 오히려 회의에 참여하는 게 더 드문 일이라 해도 무방했을 정도.
아니, 그렇기에 그들에겐 회의도 소속도 최종적으로는 더 효율적인 공략을 위한 발판에 불과했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규율에 얽매일 이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중요한 최우선의 가치는 바로- 침식의 토벌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다음 안건입니다! 그린란드의 잠식도가 기어코 90%를 넘겼다고 합니다. 더불어 래브라도 연안에서 8개월 만에 신규 멸화급 탑의 발생도 관측되었으며, 연맹에선 조속히 멸화급을 토벌해줄 것을 요청해왔습니다.”
[음··· 갈수록 발생이 더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2년이 주기였는데 이제는 고작 8개월이라······]
[그래도 8개월 정도면 아직 버틸 만 하군.]
“점점 주기가 짧아져서 문제라 그렇지.”
“걱정한다고 침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지금 필요한 얘기나 하는 게 어떨까요?”
회의장의 분위기 또한 불필요한 격식 따윈 하나 없이 상당히 유순하게 흘러가는 중이었고, 그들은 서로의 등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런 풍경이 누군가에겐 다소 초라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비록 화상을 통해 참석했을지언정 그곳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의 면면을 직접 살펴본다면 그 누구도 지금의 회의를 초라하다 말할 수는 없을 터였고,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러면··· 검제. 당신이 가주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거긴 이미 글렀어. 사람도 없이 텅 빈 땅 같은 건 그냥 내버려두고 남미랑 아프리카부터 수복하는 게 맞지 않겠나?]
[사람은 없지만 방치했다가 괜히 공중형이라도 역류하게 된다면 더 피곤해질 것 같지 않나요? 뉴욕도 안정권은 아니에요. 1시간만 풀려나도 수만 명은 죽기 충분하니까요.]
자연스레 흘러가는 대화.
[쯧. 지금 따라가도 안 죽을만한 애들이 있긴 한가? 다들 시간이 없다고 죽을라 하던데. 아크샤 당신도 계속 거기에 붙잡혀있고, 나르화리얀 저 녀석은 지금 못 써먹을 텐데.]
[음··· 그건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요.]
“쯧. 사람한테 못 써먹는다니.”
[혼자도 상관없다면 한번 가보도록 하지.]
[그건 곤란합니다. 혹시 모를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이름들.
“아! 위치가 위치인 만큼 기원학회에선 프리앙님이 시간을 내본다고 합니다.”
[그렇다는군요. 괜찮겠지요?]
[······그럼 충분하겠군.]
검제, 아크샤, 나르화리얀.
그건 바로 전 세계를 뒤져봐도 11명에 불과하다는 지고한 초인- 승천자들을 칭하는 말이었으니, 지금 이 대화가 의미하는 것은 현재 이 회의에 총 3명의 승천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도대체 누가 이들을 보고 초라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한.
“공략 일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간만 맞출 수 있다면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저희도 이쪽의 수복전만 끝나면 주변 정리 정도는 도와드리러 가겠습니다.]
[필요 없으니 수복전이나 열심히 뛰게.]
“말 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승천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며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 또한 무척이나 화려한 편이었고, 이곳에는 세간에서 하이랭커라 불리는 이들도, 차세대 승천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도, 설령 그에 속하진 못했더라도 상당한 인지도를 갖추고 있는 랭커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비록 숫자는 적을지언정 이 회의는 등천의 구도자가 가진 위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해도 무방했을 따름.
하지만 물론- 말했듯이 그들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았을 뿐이었다.
[그것보다 나르화리얀.]
“음···? 왜. 말해.”
[네 녀석은 회의에서 나온 말을 어떻게 들었길래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거지? 그럴까 봐 휴식을 권고했던 건데······ 어이가 없군.]
“허.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탐색이나 해볼랬더니 미친 새끼들이 약이라도 처먹은 것처럼 달려드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화상 너머에서 들려온 핀잔에 나르화리얀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리 대답했고, 그런 그의 말을 긍정하듯 또 다른 화상에서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예. 저도 이해합니다. 침식 영역의 중심부는 위험하지요. 물론 그걸 막기 위해서 저희가 공략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걸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아크샤 말이 맞······”
[하지만. 저도 권고를 듣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안타깝긴 합니다. 당신의 노력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도 당신과 루타텔은 너무 오버페이스에요.]
“······.”
[그러니 이렇게 상처를 입은 김에 이 기회에라도 조금 더 휴식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에 나르화리얀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또한 세속적인 규율에선 다소 벗어난 이였지만 그렇다 한들 저 아크샤의 말은 그로서도 그냥 무시하기는 힘들었을 뿐.
애초에 누가 저 말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아크샤가 쌓아온 세월은 누구라도 존중할 수밖에 없는 업적의 연속이었고, 그렇기에 나르화리얀으로서는 아크샤가 보내오는 걱정에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작게 불만을 드러내는 걸로 만족해볼 수밖에 없었다.
“······거. 난 괜찮다니까 그러네.”
[괜찮기는 무슨. 그렇게 말렸거늘 기어코 심연을 탐색한다고 날뛰다 얻어맞고 골골거리는 놈이. 그럴거면 입이라도 다물 거라.]
“시끄러워 칼잽이. 너는 그······”
“자자! 그만하시고, 그럼 일단 멸화급은 검제 님께서 고생해 주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연이어 들려온 핀잔에 나르화리얀이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그 순간 갑작스레 끼어든 사회자의 말에 그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르화리얀이 사회자를 노려보았다.
“일단 자세한 일정은 추후 연락을 드리는 걸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면······”
허나 사회자는 이런 일이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듯 회의의 내용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전에 자연스레 흐름을 끊어버렸고, 그렇게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는 빠르게 회의를 다시 진행시켰을 뿐.
그리고 물론.
그 행동에 나르화리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고, 어벙해진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공략자들은 조금씩 쿡쿡거리며 웃음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두 분도 참 자꾸 저러시네.
-연세는 나르화리얀님이 더 많지 않아?
-비슷비슷할걸.
-겉모습만 보면 전혀 아닌데 말이야.
그렇게 잠시동안 회의장 내부의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해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회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 근래 무척이나 뜨거웠던 안건이군요. 다음 안건은 화제의 신입. 순례자, 아니 등천자 유천하에 관한 사항입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세 글자의 이름.
“······.”
“······.”
유천하- 그 이름은 어수선했던 장내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가라앉혀버렸고, 그와 동시에 잡담을 나누고 있던 이들도, 이제껏 묵묵히 회의를 경청하고 있던 이들도 이내 하나둘씩 그 이름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유천하. 또 이 녀석이군.”
“요즘 가장 핫한 아이잖아요.”
“무련쪽 애들한텐 진짜 장난 아니던데?”
“그야 그쪽은 오래전부터 위타극 녀석 때문에 골머리를 썩여왔었으니까.”
생도 유천하, 순례자 유천하.
그리고 다시 등천자 유천하.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등천회랑의 입학추천서를 써주는 일로 회의에 올라왔던 이름은 어느 순간 타천자를 토벌했다는 걸로 언급되기 시작하더니, 다시 침식역류를 막아냈다는 이야기로, 그리고 이제 와선 위타극을 토벌해 등천의 업을 달성했다는 이야기로 그들에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관심을 안 가질 수 있겠는가?
안 그래도 근 몇 달간 한 사람의 이름이 이렇게 꾸준히 회의에 올라온 것은 유천하의 이름이 유일했으니, 당연히 그들로서도 이 어마어마한 신인에게 큰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등천자? 저거 무슨 말이에요?”
“뭐? 지금 쟤네 뭔 얘기 하는 거냐.”
물론- 유천하의 이름이 세계에 울려 퍼졌다 한들 만상세계의 목소리도 거부한 채 오로지 공략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사람도 없진 않았고,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또한 드문 편이었으니 이곳에 자리한 모두가 유천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유천하? 얼마 전에 들어온 애 아닌가?”
“신입 맞습니다. 방금 말했잖아요.”
“······근데 지금 등천자라 했잖아.”
승천자 나르화리얀 또한 마찬가지였을 뿐.
“아··· 역시 못 들으셨나 보군요. 이 아이. 얼마 전에 등천했습니다. 한 2주쯤 됐나요?”
“등천했다고? 얘 문서에는 17살이라 적혀있는데? 아니 그리고 사회에 나온 지 이제 2달 좀 넘어간다고 적혀있는데 뭐야 이건.”
“전부 사실입니다. 그냥 그 2달 동안 썰어버린 타천자만 해도 벌써 3명이라 그렇지요. 카룬드나 적원회주? 그런 녀석들은 그렇다 쳐도 그 위타극까지 직접 죽였다고 합니다.”
“······아 그래?”
그렇게 나르화리얀이 자아낸 의문에 그 옆에 있던 공략자는 빠르게 설명을 덧붙여주었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 나르화리얀의 반응은 무척 간단했다.
“완전 미친놈이네.”
그렇게 담백하게 토해진 한마디. 하지만 그 태도와는 별개로 나르화리얀은 지금 새롭게 듣게 된 이야기에 몹시 흥미로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유천하가 쌓은 업적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승천자의 입장에서까지 대단하다 여겨질 일은 아니었다. 보통의 초인과 그들의 사이에는 무척이나 거대한 벽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도 분명 커다란 간격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업적을 쌓은 당사자가, 그리고 그 업적을 쌓은 시기가 이렇다면 당연히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노릇.
“야 백리. 넌 17살 때 뭐했냐?”
[뭐하긴. 검이나 휘두르고 있었겠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경지는?”
[17살 때의 실력으로 위타극을 잡을 자신이 있냐는 말이면 없다고 답하마. 그런 건 최소 10년은 더 지나야 가능했을 테니까.]
“유천하 걔도 검 쓴다며.”
“예. 검을 사용하는 무인입니다.”
[자고로 검이야말로 만병지왕이지.]
“······그래?”
그렇게 검제의 마지막 말을 가뿐히 무시한 나르화리얀은 그 대화 속에 담겨있는 내용에 자신의 지난 삶. 반백 년의 시간을 빠르게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저런 나이에, 저 짧은 기간 동안, 저토록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여준 이가 있었던가?
나르화리얀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와 비슷한 사례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나마 최대한 비슷한 사례를 억지로 들이밀어 보자면 성인도 안된 나이에 승천자가 되었던 이들이 있었다는 정도?
하지만 그들은 이질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무척이나 어린 나이부터 활동을 지속한 끝에 그렇게 된 것이었고, 실질적인 활동 기간을 고려해보자면 고작 두 달 만에. 그것도 생도생활을 하며 몇 번의 사건을 겪은 것 만으로 이렇게 등천자가 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나르화리얀은 그렇기에 몹시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상세계가 칭송하는 업의 기준은 분명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두 관점 모두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이라 한들 실제로 업을 쌓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행적이 있어야 했고,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전제였다.
애초에 단순히 실력만으로 등천을, 그리고 승천을 인정해주었다면 그 자신은 처음부터 승천자가 되었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아이- 유천하라는 녀석은 이미 세간에서 말하는 하이랭커급에 부합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단 몇 번의 업적을 통해 등천의 업에 도달하였다. 그렇다면 만상세계 또한 유천하가 행한 업적이 등천에 도달하기에 합당한 인과를 갖추고 있었다 인정했다는 것이었고, 그 말은 다시- 유천하에겐 그런 인과가 주어질 만큼 합당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말과 다름없었을 뿐.
그렇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얘. 차세대 승천자네.”
그렇게 담담하게 흘러나온 한마디.
그건 이제껏 수많은 이들이 언급했던 이야기였지만 자고로 말이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법. 그런 만큼- 당연히 승천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차세대 승천자란 말속에는 무척이나 무거운 의미가 담겨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
“······.”
“······.”
나르화리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회의장에 자리했던 이들은 모두 저마다 생각에 잠겨 들었고, 그렇게 회의장 내부에 자리한 적막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오직 승천의 업에 도달한 이들이었을 뿐이었다.
[맞습니다. 단순히 희망적인 예견이 아닌, 객관적으로 가장 승천이 유력한 루키지요.]
“이 정도면 이미 루키라 부를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랭킹만 봐도 얘가 루키면 이 여기 있는 애들 중에서도 반은 루키잖아.”
[순위 따위가 뭐에 그리 중요할까.]
“랭킹은 중요해. 내가 너보다 높잖아.”
[제발 어린애처럼 굴지 좀 마라. 넌.]
[그것보다 안건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군요. 유천하와 관련된 사항들은 이미 지난 대회의 때 결정 난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다시 잡담으로 변질될뻔한 대화의 흐름에 아크샤는 자연스레 화제를 돌려버렸고, 그에 사회자는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그의 말을 받아내 그 흐름을 붙들었다.
“예! 수여는 황혼급 에테리얼 크리스탈로 증정하기로 결정되었고, 마침 수여 일자도 잠시 후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럼 또 다른 의논사항이 생긴 건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아마 위타극 토벌 건에 관련된 모양인데 천중무련측에서 보내온 요청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음? 우리 쪽 애들이 말인가?]
“예.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지······”
“아 잠깐만. 수여 일자가 오늘이라고?”
그 순간- 다시 흐름을 끊어버리는 목소리.
아까부터 계속 회의가 진척되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그 말을 건네온 사람이 사람이었기에 사회자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뭐래도 상대는 승천의 업을 쌓은 이었으니 말이다.
“예. 그렇습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그거 수여해주는 거 루타텔이 맡기로 한 거 아니었어? 기량측정도 겸해서.”
[그랬지. 루타텔 그자가 맡기로······ 잠깐. 그러고 보니 루타텔도 복귀한 거 아니었나?]
[예. 제가 알기론 어제 돌아온 걸로 들었습니다만··· 왜 회의에는 참석 안 하신 걸까요.]
“제가 알기론 루타텔님은 수여식 준비 때문에 참석 안 하신 걸로 들었습니다. 유천하도 이제 곧 여기에 방문할 예정이니까요.”
“······아 그래?”
그렇게 연이어 들려온 사람들의 말에 나르화리얀은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다시. 그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저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지금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말이야.”
천천히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
그리고- 그곳에 담긴 내용.
“걔 아까 뉴스 뜬 거 보고 뛰쳐나가던데?”
그렇게 나르화리얀에 입에서 대수롭지 않게 흘러나온 그 말은 회의장을 침묵 속에 빠트리기 충분했을 따름이었다.
***
우웅- 역시 기존의 거리가 거리였던 만큼 공간을 넘어가는 와중에도 단면의 일렁거림이 평소보다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론을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지만, 역시 그렇다 한들 내가 실제로 마법을 배운 것도 아니었으니 물리 차원과 이면 차원의 간극에 대해 실제로 이해해보는 건 조금 난해한 일이었을 뿐.
어쨌든 그렇게 나는 게이트를 넘어 도시에 발을 들였고, 오랜만에 방문하게 된 워싱턴 DC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나 걸었을까?
거리를 지나 도착하게 된 등천의 구도자 본부 또한 이전과 같이 그 거대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어떻게 저리 새하얀 외벽을 유지하고 있는지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2020. 05. 01 / Am 11:46]
참고로- 그렇게 목표했던 곳에 도착한 나는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 걸 확인하고는 그 앞에 멈춰 서서 제 자리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래? 그렇게 말했다고?”
[응. 근데 도대체 이걸 왜 내가 말해주고 있는 거야? 응? 둘이서 무슨 일 있었어? 하린이한테 천하 너가 물어봤다 하니까. 음······ 아주 되게 되게 하린이처럼 변하던데?]
“······뭔 소리야 그게.”
[이해했으면서 그러기는.]
어젯밤에 아리엘에게 부탁했던 내용이 이제야 되돌아왔기 때문이었고, 다시. 그렇게 걸려온 연락을 통해 전달받은 내용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