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의 실타래 (2)
정신이 홀린 듯한 기분 속에서 나는 멍하니 그녀의 손- 정확히는 그 손에 들려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순간.
그렇게 얼어붙어 있던 정적의 시간은 기어코 검을 들고 있던 이하린의 손이 조금씩 떨려올 때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그런 이하린의 상태를 눈치채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선 감사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 그··· 호, 혹시 마음에 안 드세요?”
“······아.”
그러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던 이하린의 얼굴이었을 뿐.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내 모습에 혹시나 싶었던거지 조금 의기소침해 보이는 모습으로 그렇게 물어왔고, 그렇기에-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망설임 없이 대답을 돌려주었을 따름이었다.
“아니요. 정말, 정말 마음에 듭니다.”
“······!!”
나는 그녀의 손에서 검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묵직함에 만족감을 느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무 좋은 검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 진짜 마음에 드시는 거죠?”
“오히려 이런 걸 받고 마음에 안 들기가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이건 정말······ 좋은 검입니다. 예. 그 말밖에 안 나오는군요.”
휴- 그제서야 이하린은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고,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어준 뒤 손에 들린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려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퀴이이잉-!
한순간에 울려 퍼지는 검명.
역시나- 방금 이하린에게 한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선명히 전해지는 예기는 이 검이 어떤 물건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고, 허공을 향해 가볍게 그어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탄성과 무게는 다시 이 검에 들어간 노고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이건······ 정말 완벽하게 단조 된 검이었다.
심지어 가만히 있어도 검신을 휘감고 돌아가는 마력과,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기세는 이게 평범한 철검이 아닌 무언가 특별한 마법처리까지 되어있는 예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금 이하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런 검을 어떻게 구한 걸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귀물을 이렇게 쉽게 내게 선물해줄 수 있는 걸까? 그것도 심지어 내 검이 박살난지 대체 얼마나 지났다고?
아무리 이 세계에 마법과 여러 이능이 있다고 해도, 그리고 시대에 따른 기술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다시 더 많은 자원과 재료가 존재한다 해도 이건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을 터. 분명 기존에 내가 쓰던 검 또한 중원에선 상당한 수준의 명검이었음에도, 단언컨대 이하린이 들고 온 이 검에는 미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이건 너무나도 완벽한 검이었기에 나는 의아함을 담아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걸 제게 주셔도 괜찮겠습니까?”
“네! 천하씨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으세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세요!”
그 말과 함께 해맑게 웃어 보이는 그녀.
내가 말이 없었던 게 선물에 실망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만족스러웠는지 이하린은 정말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절대 평범한 검으로는 안 보입니다. 물건의 가치가 낮을거란 생각이 안드는데 정말 받아도 괜찮습니까?”
“네네! 받아주세요! 천하씨한테 드리는 거면··· 전혀 안 아까우니까요! 그리고······ 비밀인데 저 사실 생각보다 부자라서 괜찮아요.”
“······.”
아니, 나도 그녀가 재정적인 문제에선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저작권리의 가호를 활용하면 현대사회에서 재화를 벌어들이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있더라도 구하기 힘든 게 있는 법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 생각에 이건 아무리 봐도 그런 부류의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의구심이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하린은 계속 방실거리며 내게 괜찮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마음 같아서는 더 일찍 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질 않아서······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드리는 거예요···!”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그녀의 긍정에 나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그리고는 다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던 만큼 나는 그녀에게 한 번 더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나는 방긋거리는 미소와 함께 되돌아온 말 속에 담긴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는 다시 손에 들린 흑색의 검신을 바라본 뒤. 그녀에게 질문을 하나 건네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연락을 받자마자라면······ 그러면 혹시 어제 받으셨던 메시지가 바로?”
“······넵! 사실 이거였어요. 저는 그냥 몰래 드리면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 그랬던 건데······ 뭔가 잘 안 된 것 같기도 하구······.”
이하린은 그 대답과 함께 조금 민망하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여 보였고, 나는 그런 이하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어제 느꼈던 의문이 다소 풀리는 느낌이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이런 거였던가?
이제서야 납득이 가는 기분.
하지만- 그 부분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한 말에서 다시금 의아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질문을 건네보았다.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으셨다는 말을 하신 걸로 봐선 어디서 구한게 아니라 하린씨가 따로 의뢰를 하셨다는 말인데, 제게 선물해주시려고 직접 의뢰했단 말씀이신가요?”
“······.”
그러자 이하린은 더 부끄러워졌는지 아예 고개를 푹- 숙여 보였고, 붉어진 귓가와 정수리를 내비치며 조용히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별, 별건 아니에요. 그, 그냥······ 예전부터 천하씨 검 상태가 많이 걱정됐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마침 뛰어난 장인분을 한 분 알고 있어서······ 그래서 시간이 빌 때 의뢰를 부탁드려 본 거예요. 그냥 그게 다예요······.”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그렇다면 역시 제 검이 망가지고 나서가 아니라 그 전에 의뢰를 넣으셨다는 말이시군요.”
“······!”
“이런 검을 일주일 만에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테니 제 검이 망가지기 이전에, 그것도 한참 전에 의뢰를 넣으셨다는 거 아닌가요?”
“아. 그, 그건······.”
내 말에 이하린은 뭔가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고, 그리고는 조금 민망하다는 듯 두 손을 꼼지락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질문을 건네보았다.
“······그럼 도대체 언제 의뢰를?”
대답하기 민망하다는 듯 몸을 뒤틀기 시작한 이하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에, 나도 어지간해선 이렇게 캐묻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너무나 귀한 선물이었기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계획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었고, 그런 만큼 나는 이 선물에 담긴 속사정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계속 이하린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녀로서도 그런 내 시선을 계속 외면하기는 힘들었던 모양.
“그으게 그러니까아······.”
이하린은 그렇게 조금 쑥스러운 듯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수그리며 속삭이듯이 대답을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2월이요오.”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솔직히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월 말입니까?”
“······네에··· 처음 의뢰는 그때······ 넵.”
그때면··· 사실상 처음 만났을 때 아닌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이전을 언급한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얼떨떨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2월의 우리는 사실상 순례자의 길을 같이 도전한 것 말고는 접점이 없었고, 심지어 이하린은 그 이후로는 입학 전까지 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그때 의뢰를 했다는 건가?
아니, 시기는 말이 되는데 대체 왜?
사실상 초면에 가까운 사이였는데도······?
나는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녀를 바라보았고, 이하린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 시선을 느꼈던 모양인지, 붉어진 귓가를 드러낸 채 그대로 여린 목소리로 조금씩 속삭이듯 자신의 사정을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셨잖아요. 계속 그 검을 들고 다니시다간 언젠가 큰일이 날 것 같아서 걱정됐단 말이에요.”
“······.”
“그래서 검을 선물해드려야지 선물해드려야지 생각해보다가 마침 입학식 전에 시간이 비어서 의뢰를 넣었고, 다시 의념을 가르쳐주신 것도, 카룬드 때 구해주신 것도 너무 감사해서 더 좋은 거로 선물해드리려고 계속해서 찾아가서 이것저것 더더 신경을 기울이다 보니까 완성은 점점 늦어지구······.”
그렇게 말을 이어나가는 이하린의 목소리는 잠시 새초롬해지는가 싶다가도, 수심에 잠겨 들었고, 이내 다시 부드럽게 변해갔다.
“······그런데 그렇게 욕심부리다가 마감이 늦어진 마당에, 그 날 눈앞에서 천하씨 검이 깨지는 걸 지켜보면서 제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아세요? 제때 선물해드렸어야 했는데 괜히 욕심을 부렸다가 큰일이 날 뻔했잖아요. 그때는 정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그래도 결국 이기셔서 다행이지마안······.”
정말 걱정됐단 말이에요- 이하린은 붉어진 얼굴을 끝까지 내게서 숨겨 보인 채 그렇게 작게 속닥거리며 말을 끝마쳤다.
그리고.
“······.”
그런 이하린의 대답을 들은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서는 조금씩 복잡한 심경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
그럼 설마 이하린이 그간 중간중간에 등천도시에 다녀온다 했었던 건 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인가? 아니, 물론 검의 상태야 무림에서 넘어올 때부터 심각한 수준이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서로 만난 지 얼마 안 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초면에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이하린이 그런 걱정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내 기분을 미묘하게 만들어주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심란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고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대체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썼냐고 물어봐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내게 왜 이렇게 호의를 보내주는 거냐고 물어봐야 하는 걸까?
분명 이하린의 태도는 순례자의 길에서 나온 뒤부터 점점 변해갔다. 그저 적절한 친절함 속에 행동했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확연한 호의로 나를 대해왔고, 그 호의는 점점 걱정과 염려 속에 녹아들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게 점점 더 깊게 건네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그녀가 보내는 호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져 갈지언정 서로를 대하는 거리에는 분명히 선이 존재하고 있었고, 나는 호의의 이유보다는 호의로 인해 얻게 될 결과가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맹렬히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호의도 호의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렇게 단순한 호의로만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분명 내 생각보다 더 많은 배려를 그 속에 품고 있었고, 그녀가 건네준 검 속에서 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제까지보다 더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던 탓이었다.
도대체 그녀는 그때의 나에게서 무엇을 느꼈던 걸까. 그리고 내게서 무엇을 보았길래 그렇게 한치의 의심없이 호의를 보내오기 시작했던 걸까. 단순히 어쩌다 알게 된 사이라서는, 그리고 재능이 뛰어나서라기에는 여기에는 분명 조금 더 특별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비워내기만 했던 순간에는 개의치 않았던 부분들이 지금의 내게는 무척이나 의아하게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이제 와서야 그 사실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그렇기에- 나는 결국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
평소와는 다르게 어딘가 멍해 보이는 그.
“······.”
“······.”
지금 이하린은 그런 유천하의 표정을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동시에 기쁜 안도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애초에 이 검을 선물하려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신경과 노력을 기울였던가?
직접 설정했던 인물은 아니었기에 장인의 행적을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했고, 제대로 된 마법 공정까지 추가하고 싶어서 재료를 구하느라 고생했으며, 중간중간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인해보기 위해선 꾸준히 등천도시에도 들러야 했다.
물론 서프라이즈도 실패했고,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건네줘 버린 선물이었지만 그래도 유천하가 검을 받고 기뻐해 줬으면 했던 마음만큼은 그토록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기뻐해 줘서 다행이지 만약 정말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었다면······
이하린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찔끔 거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조금 전 유천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서 있었을 때만 해도 이하린의 심장은 무척이나 콩닥거렸었다. 어제 검이 완성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고 난 뒤부터 유천하에게 검을 선물해줄 생각에, 그리고 유천하가 얼마나 기뻐할까 기대하는 마음속에 그녀의 심장은 온종일 두근거렸고, 그 들뜬 마음은 결국 방금 전 유천하가 지어 보인 부드러운 미소를 보고 난 뒤에야 진정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미소는 얼마 안 가 금방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건 정말이지 평소의 유천하에게선 쉽게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기에 그녀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천하씨는 웃는 것도 잘 어울리시는구나- 그녀는 민망함을 느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속에 해맑게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하린씨는 대체 왜 그렇게까지 저한테 신경을 써주시는 건가요?”
“······네?”
유천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갑작스러운 말에 이하린은 순간적으로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는 물음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려 유천하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런 그의 표정속에서 무척이나 복잡해보이는 심경을 느낄 수 있었을 뿐.
“솔직히 말해서······ 항상 걱정해주시는 것도, 저를 친근하게 생각해주시는 것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2월의 저희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이런 걸 선물해줄 정도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아, 아니 그거언···.”
“오히려 그때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제가 하린씨께 빚을 지면 빚을 졌지 하린씨가 제게 신경 쓸만한 이유는 없지 않았습니까?”
“······아.”
그러니- 그 말과 함께 유천하 또한 이하린의 눈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충격을 받아 바보처럼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그녀의 눈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때의 하린씨가 제게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신건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유천하의 눈은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이하린 또한 떨리는 눈빛으로 유천하를 바라보았으니 서로의 눈동자 속엔 그렇게 서로의 모습이 비쳐 각자의 색채를 담아내었다.
그리고 다시.
갑작스러운 유천하의 물음에 이하린은 몹시 당황스러운 기분이었지만, 머리가 멈춰버리는 기분 속에서도 그녀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을 되새겨 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저 질문은 그녀에게도 분명 중요한 부분이었으니까.
“만약 제게 들려주기 힘든 이야기라면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말씀해주실 수 있다면······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를요···?”
“예. 제게 왜 그렇게까지 해주셨는지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하린 자신은 분명 명확한 이유를 갖고 그렇게 행동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을 돌려주기 위해선 고백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고,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녀의 감정이었으니, 지금 유천하가 건넨 질문은 그녀에겐 너무나 어렵고 괴로운 질문이란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라고 말···”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저는 이 검을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부담스러운 선물이니까요.”
“······.”
허나- 그녀는 이 물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이내 천천히 심호흡하며 자신의 왼손을 검에 가져다 대었고, 그렇게 차가운 검병의 감촉이 손끝에 맞닿음과 동시에 그녀의 정신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천천히 식어간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명정해진 정신 속에서 이하린은 다시금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
“······.”
사실- 이건 그녀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검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력과 자원이 점점 커지는걸 보면서 스스로도 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는 이걸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다른건 전혀 중요치 않았고, 다시 눈앞의 남자는 그녀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오직 그런 이유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하린이라 한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유천하가 걱정되어 검을 선물을 해주고 싶었고, 그렇게 검을 준비하면서 유천하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될수록 그녀에게 유천하는 여러 의미에서 더욱더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친분을 쌓는 것을 두려워했으면서도 그에게만큼은 항상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태도가 분명 유천하에겐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을 거라 생각해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이하린은 지금 유천하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 사실을 조금 더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하린과 유천하가 서로를 알게 된 지도 이제야 겨우 두 달 반이 넘어갔을 뿐.
물론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그들 사이에는 정말 많은 일이 지나갔었지만, 어찌 보면 유천하에겐 그간의 일들이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녀가 유천하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그녀 혼자만의 일방적인 마음이었을 테니까.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녀에게 유천하는 그의 생각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하린은 그 사실 또한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유천하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 예비된 속죄의 상징이었고, 다시 그녀에게 주어진 구원의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모두 앞으로 찾아올 암담한 미래를 밝혀줄 희망의 빛처럼 느껴졌으니······ 어찌 소중하지 않고,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에게 유천하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여러 이유가 뒤섞인 끝에, 그리고 다시 순수한 마음마저 뒤섞인 끝에. 그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었고, 이하린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많이 궁금하세요?”
“······예. 듣고 싶습니다.”
그녀는 유천하를 바라보며 어딘가 서글픈, 그리고 멋쩍은 미소를 내비쳤을 따름이었다.
“네······ 말씀해드릴게요. 그럼.”
그리고는 그동안 유천하를 바라보며 느꼈던 생각을. 그가 순례자의 탑에서 수호자급 마수를 처치하는 걸 보며 들었던 생각. 그날 밤 자신을 걱정해주며 막아섰던 그를 보며 느꼈던 마음. 피에 젖어 쓰러지는 와중에 나타났던 그의 뒷모습과 비 오는 날에 깨져나간 검을 들고 위타극과 맞서던 그를 보면서 느꼈던 생각을.
그렇게.
그 모든 시간 속을 거치며 생각했던 바를 모두 그러모아, 천천히 입을 열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