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4)
침식역류, 멸화급 마수, 승천자 아크샤.
마지막 문제로 제시된 내용은 아마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기반으로 출제된 모양이었는데, 그렇기에 나는 그 내용에 꽤나 큰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첫 번째- 승천자 아크샤.
1세대 승천자이자 등천의 구도자의 수장.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침식과 맞서 싸웠다는 그의 이름은 분명 원작에서도 계속해서 언급되었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말했듯이 소설 속에서 직접 그 행적이 묘사되었던 건 고작 3번에 불과했을 정도.
그렇기에 원작을 읽으면서도, 그리고 이 세계에 넘어오게 된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아크샤는 언제나 신비로운 인물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그의 행적에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멸화급 마수 모비딕.
솔직히 말해서 멸화급 마수라는 점이 흥미를 끄는 거지 모비딕이라는 명칭 자체는 모르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원작에 나타난 멸화급 마수들에게도 명칭이 붙긴 했었지만 결국엔 주연들의 손에 퇴치당한 마수에 불과했으니 내가 그런 이름들까지 기억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고, 이미 옛적에 토벌당했다는 마수의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할 이유 또한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수에게 명칭이 붙었다는 건 분명 세상에 그만한 족적을 남겼다는 것.
특히 아크샤의 손에 토벌되었다는 지문을 자세히 보면 탑에서 풀려나온 즉시 토벌당한 모양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칭이 붙었다는 말은 그 짧은 교전 시간 동안에 상당한 파괴를 자행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우선 화면 구석에 있던 아이콘을 클릭해 상세한 조건을 확인해보았다.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12만 7813명. 역류지로부터 12km 바깥에 바다가 있고, 실체화 시 측정된 표측마력량의 수치는······ 38,321 AC. 그렇다면 심층마력 값은 최소 7만에서 10만까지 가겠군. 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력.
현장에 있는 공략자들의 역량으론 공략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조건에 걸맞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마력 값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수치인 걸까?
애초에 여명급의 한계치가 1만이었고, 황혼급의 한계치도 겨우 3만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개체별로 차이가 있다는 걸 고려해보자면 단순히 마력량만 계산해봐서는 지난번 상대했던 황혼급마수 7마리를 데려다 놔야 마력량이나마 엇비슷해질 터. 하지만 그런 황혼급 마수의 마력방벽조차 나 말고는 아무도 뚫지 못했던 걸 생각해본다면 멸화급 마수의 마력이 어느 정도의 난이도를 자랑하는지는 대략적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었다.
당장 내가 상대한다 쳐도 최소 6성의 매듭을 풀어내야 방벽을 뚫을 수 있을 테고, 대형종인 마수의 특성상 근원석에 위치에 따라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수는 분명 몇 가지로 제한될 터.
그런 만큼 문제의 내용 자체도, 그리고 이런 문제를 낸 회랑 측의 의도도 내게는 그저 흥미롭게 느껴졌을 따름이었다.
승천자가 당도하기까지는 1시간.
실체화까지 걸리는 시간이 30분.
하지만 역량상 공략은 불가능하다는 가정.
그렇다면 최소 30분 동안 멸화급 마수가 자유롭게 풀려난다는 말이었는데, 지닌 마력량을 생각해보면 그 잠깐 동안 정말 수만 명의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여명급 마수만 자유롭게 풀어놔도 30분이면 수백 명은 넘게 죽일 테고, 황혼급 마수가 30분 동안 계속해서 마력 파동을 쏟아낼 걸 가정하면 최소 수천 명은 넘게 죽을 테니, 그보다 몇배는 더 많은 마력을 가진 멸화급 마수가 일으킬 파괴의 규모는 정말 도시규모 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일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의문스러웠다.
내가 직접 현장에 존재하고 있다 생각해도 나 혼자서는 마수를 공략할 수 없었다. 아니, 토벌하진 못하더라도 단순히 혼자서 생존하며 상대하는 것 정도라면 1시간이 아니라 몇 시간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결국 공략을 할 수 없다면 나 혼자 살아남는다 한들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목숨 중 반은 이미 마력에 쓸려나간 뒤일 테니 그건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요구하는 조건 내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다.
효율적으로 생각하자면 마수의 실체화가 이루어지는 구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했지만,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만 명의 사람들중 과연 얼마나 대피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최소한의 대피소와 행동요령이 갖춰져 있는 21세기에서도 누군가가 시간을 벌어주지 않는 이상 힘든 일이었고, 제시된 시간대를 고려하자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뿐.
그렇다면 공략자들이 동의한다는 조건하에 마수의 시선을 끌 만한 공략자들을 미끼로 던져주고, 주변에 자리한 시민들의 목숨도 포기한 채 경계 외각부터 차례대로 대피시키는 게 가장 알맞은 대답일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전제조건부터가 공략이 불가능하다는 가정이었으니 말이다.
“······.”
하지만. 정답이 뭔지는 알겠어도 나는 그걸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정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시된 조건을 생각하자면 이건 어떤 결론을 내려도 객관적인 선택이 될 수 없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적어도 내가 이제껏 보아온 공략자들이라면 이럴 때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안 봐도 뻔한 노릇.
그렇기에 나는 이 문제가 흥미로웠고, 동시에 의문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의문을 느낄 이유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저 자리에 내가 있다고 가정할 때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적으라는 거였으니, 내가 답안으로 적어야 할 건 객관적인 선택이 아닌, 실제로 내가 내렸을 선택을 적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그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답안을 적어 내려갔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간단명료하게.
내가 그런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는 무척이나 뻔했으니까.
***
“으햐야아······”
옆에서 기지개를 쭉 펼치던 이하린의 입에서 상당히 뭉그러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는지 이하린은 자신이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는 사실마저 눈치채지 못한 듯 그대로 막 쪄낸 떡처럼 테이블 위에 늘어졌고, 그런 이하린의 눈 밑에는 살짝 어두운 기색이 내려와 있는게 시야에 엿보이는 중이었다.
역시 새벽까지 내 특성을 실험한 것 때문인지 조금 피곤했던 모양. 그나마 지난번처럼 판다 같은 몰골은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많이 피곤하신가봅니다.”
“네? 아, 아니요. 안 피곤해요···!”
그 순간 늘어져 있던 이하린이 크게 움찔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고, 그런 그녀를 향해 아리엘이 장난스런 한마디를 내던졌다.
“정말? 되게 귀여운 소리를 내던데···?”
“······!”
아리엘의 말에 이하린은 순간 토끼처럼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뒤늦게 무방비했던 자신의 모습을 인지한 모양.
그렇기에 이내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연스레 자신의 얼굴을 가려버린 이하린이었지만, 푹 숙인 그녀의 머키라락 사이로 드러난 귓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런 이하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엘은 빨대를 입에 물고선 작게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트렸을 뿐이었다.
“하하··· 어쩔 수 없지. 어젯밤에 셋 다 너무 늦게까지 그러고 있었으니까. 근데 정작 제일 피곤해야 할 사람은 왜 그리 멀쩡해?”
“안 멀쩡해. 나도 조금 피곤한 상태야.”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나는 담담히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눈이 조금 뻑뻑한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헌데- 그녀에겐 내 말이 다르게 들린 모양.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도 우리를 힐긋거리고 있던 이하린은 내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즉시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조금 붉어진 얼굴로 내게 사과를 건네오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괜히 저희 때문에······.”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도 하린씨 덕분에 착각하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성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린씨 덕분에? 내 이름은 어디 갔어?”
“그래. 네 덕분에 조금 피곤해.”
“······천하가 나만 괴롭혀!”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옆에 있던 이하린을 와락 끌어안으며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그런 그녀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며 컵을 들어 올려 커피를 들이켰다.
아- 참고로 우리는 지금 기원관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분명 원래대로라면 시험이 끝나자마자 수련을 하러 가든, 아니면 같이 스터디를 하러 가든 했겠지만 채점 결과가 금방 나온다는 말을 들은 아리엘이 다 같이 기다리자고 우리를 꼬드긴 탓.
하물며 이하린 또한 내심 그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물끄러미 내게 시선을 보내왔기에 나도 잠시 함께 어울려줄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 결과 우리는 이렇게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며 시험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세 명 다 어젯밤 헤어지고 나서도 잠을 안 자고 밤을 새운 모양이었는지 조금 피곤한 기색을 얼굴에 띄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일까?
-도대체 저 조합 뭔데. 무슨 조합임.
-아리엘 님이랑 유천하 원래 친했어?
-카룬드 토벌 멤버네.
-근데 왤케 다들 피곤해 보이냐.
-그러게. 되게 피곤해 보이네.
-아니, 그것보다 조금 전에 잠시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인가···?
덕분에 아까부터 우리를 향해 속닥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부터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고, 그건 시험이 막 끝난 상황인 만큼 우리와 마찬가지로 카페에 방문한 생도들이 상당히 많았던 탓이었다.
물론 이하린도 아리엘도 주변의 소음 따윈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담담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손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이면 그냥 스터디룸이나 다른 곳을 가지 왜 여기로 온 거야.”
“응? 신경 안 쓰이는데?”
“그럼 아까부터 왜 그렇게 계속 마력으로 소리를 뭉개고 있는 건데.”
“······으음. 쉿!”
우웅-! 아리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력.
그녀가 나를 향해 언령을 사용한 건 오랜만이었는데 확실히 여명급 마수를 우연으로 처리한 건 아니었는지 그녀의 언령속엔 이전보다 더 뚜렷한 힘이 실려 있었다. 도대체 하루에 수련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콰직-! 그간 성장한 정도로만 따지면 내게 비할 바는 아니었기에 나는 의념을 일으켜 가볍게 언령을 파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리엘 또한 그걸 감지한걸까?
“······너무해!”
“뭐가 너무한데.”
“어떻게 언령을 그리 쉽게 깨는거냐구!!”
내가 가뿐히 언령을 파훼한 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리엘은 담담한 표정으로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담담함의 이유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었기에, 그 입에서 흘러나온 말과 주변에 떠다니는 마력마저 그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へ:) (T⌓T) (┳Д┳) (இ௦இ)]
하지만 굳이 대꾸해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언령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말 또한 가볍게 무시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려버렸을 뿐이었다.
“그것보다 시험은 잘 보셨습니까?”
“······네? 아, 네, 넵!”
“하린씨도 이번에는 실기점수를 꽤 높이셨던데 화이트라인을 노리시는 건가요?”
“네···! 그··· 천하씨도 이번 시험은 화이트라인으로 가는 게 목표라 하셨었죠?”
“예. 그렇습니다.”
내 대답에 이하린은 무언가 만족스러운 듯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를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던 아리엘은 이내 살짝, 아주 살짝 우리에게만 보일 정도로 입술을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작디작은 목소리.
“······4점이나 나와라.”
어째 진짜로 조금 토라진 모양인지 아리엘은 상당히 끔찍한 소리까지 내뱉고 있었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말 하면서 마력 끌어올리지 마.”
“이런 건 언령으로 말해도 소용없거든?”
“네가 그러면 아닐 것 같아서 거슬려.”
“나는 그렇게 대단하지가 않은걸···? 언령이라해도 요새는 천하 너한텐 바로 파훼 당할 수준이고······ 하린이한테 써도 금방금방 풀리기도 하구······ 등천자는 커녕 생도한테도 안 먹히는데 사실 나는 언령에 재능이 없는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아, 아니에요···! 아리엘씨는 대단해요···!”
“아니야 하린아······ 내가 뭘······.”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서글픔이 서려있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아니 뭐 그냥. 생각해보니까 이제는 실기도 4등으로 밀려났고······ 언령은 먹히지도 않고······ 내 말은 맨날 무시나 당하구······ 이렇게 맨날 나는 자꾸 괄시나 당하구······ 멸시당하구··· 천시당하구··· 등한시······”
“알았어. 미안.”
하지만 아리엘의 연기실력이 늘어난 건지, 아니면 얘가 진심으로 이러는 건지 영 구별이 되지 않았기에 나는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뭐라 웅얼거리는 아리엘의 모습에 이내, 빠르게 사과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무시안할테니까 그만해.”
“······정말? 진짜?”
내가 사과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 그 녹색빛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해맑은 빛으로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래 그럼! 나는 착하니까 다 용서해줄게!”
“······너 연기가 많이 늘었어.”
그런 아리엘의 모습에 나는 말문이 막혀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제야 뒤늦게 아리엘이 장난을 쳤다는걸 깨달은 이하린은 안도한 듯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아리엘은 우리가 그러든말든 새초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근데 나한텐 왜 잘봤냐고 안 물어봐?”
“······시험은 잘 봤어?”
“으음··· 그럭저럭? 생각보다 문제가 빡빡해서 타이핑할 시간이 조금 부족하긴 했는데 그래도 일단 최대한 자세히 적긴 했어.”
아리엘은 그 말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살짝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점수는 예상한 대로 나올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너무 빠듯했던 것 같아. 그렇지 않았어 얘들아?”
“아. 맞아요. 난이도는 그렇다 쳐도 기입시간을 생각하면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요······.”
역시나 저건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나는 내심 만족스러운 기분을 체감했다.
사실 적어야 하는 답변을 생각하면 분명 시간이 빠듯한 건 맞았지만, 혹시 내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 싶은 마음도 없잖아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모두에게 똑같았나보다.
“천하는 시간 안 부족했어?”
“시간이 촉박하다는 건 느꼈는데, 모르는 건 그냥 빠르게 넘겨서 부족하진 않았지.”
“그으래···? 몇 점 정도 예상하는데?”
“그건 마지막 문제가 어떻게 채점되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응? 마지막 문제?”
내 말에 아리엘은 눈을 한번 깜빡거리고는 이내 무슨 문제인지 떠올렸는지 아- 미약하게 탄성을 내질렀다.
“멸화급? 하긴 문제가 이상하긴 했지.”
“······그거 답은 어떻게 적으셨어요 두 분?”
“응? 나는··· 그러니까아······ 비밀이야!”
아리엘은 그렇게 대답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고, 이하린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자 그런 아리엘의 대답에 이하린은 잠시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것도 매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마치 내 답안이라도 알려달라는 듯이.
“저는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간단하게요?”
“예. 제가 쓰고 싶은 답은 간단했거든요.”
나도 자세히 말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지만, 그런 내 말에 질문을 건넸던 이하린도, 그리고 옆에 있던 아리엘도 내가 어떻게 적었을지 예상이 간다는 것 마냥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만족스럽다는 듯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머금은 이하린은 방긋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매우 활기찬 목소리로 말이다.
“왠지 그러실 것 같았어요···! 사실 저도 마지막 문제의 답안은 그냥······”
우웅-!! 그 순간 울려 퍼지는 진동음.
“······어?”
이하린의 워치에서 울려 퍼진 진동음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사실 진동음이 들린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시험결과 공지였지만, 메시지가 온건 이하린의 워치뿐이었다.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워치에서 울려온 진동음에 이하린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이내 빠르게 손목을 들어 올려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누구한테 연락 온 거야?”
“아··· 그 잠시만요!”
그런 이하린의 태도에 아리엘이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건네었지만, 이하린은 무언가 짐작 가는 곳이 있는 모양인지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워치를 터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이하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을 뿐.
“혹시 등천의 구도자에서 보낸 겁니까?”
“······네? 아. 등천의 구도자는 아니에요! 이건 어······ 그냥 조금 사적인 거에요···!”
하지만 이하린은 그 대답과 함께 메시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런 그녀의 태도에 나는 조금 의아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하린에게 사적인 연락을 보낼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하린은 성격상 그렇게 사교성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오히려 필요한 순간에도 필요 이상으로 소심해지는 편이라 5월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주연들에게 제대로 말 한번 못 걸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당연히 회랑 내에서 그녀와 대화라도 나누는 사람은 나와 아리엘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태도에 조금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가끔씩 후원과 관련된 일로 티르유와 연락한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셋을 제외하고는 그녀와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건 원작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던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원작에는 내가 없었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이하린은 1학기 말이 될 때까지도 그 누구하고도 연락처를 교환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와.”
“······?”
나는 마치 반가운 연락을 받은 것 마냥 즐거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 미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이하린은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한 미소를 그 얼굴에 띄운 채로, 그렇게 그녀는 입을 열어왔다.
“천하씨···! 혹······”
하지만 그 순간.
우웅-!
우웅-!!
우우웅-!!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진동음과 알림 소리에 카페는 순식간에 소음 속에 휩싸였고, 이하린 또한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려던 말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카페 안에 내려앉은 적막.
“······.”
“······.”
수십 명의 워치가 일제히 울려대는 상황은 무척이나 이질적인 모습이었기에 조금 얼떨떨한 느낌마저 일어났지만, 우리는 이내 이게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던 이유는 오직 그것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뭐라 말을 하려했던 이하린도, 그리고 이하린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엘도, 다시 주변에서 웅성거리며 잡담을 나누던 이들도. 모두 일제히 저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리며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 결과 나왔어요!”
“아! 진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을 뿐.
“아! 저···! 저 됐어요! 화이트라인!”
“정말? 축하해! 아구 잘했다 아구 잘했어. 우리 하린이 참 잘했어요!”
“가, 감사합니당···! 그, 혹시 천하씨는···?”
“······저 말입니까?”
하지만 결과는 조금 뜻밖이었다.
아니 어느 정도 예상과 비슷하긴 했지만 사전에 생각했던 목표치에선 상당히 멀리 떨어진 수준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기쁜 표정 속에 건네져 오는 이하린의 물음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공지된 결과가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7위 – 유천하 1000 / 710]
[순위변동 199위 -> 7위 (192▲)]
그러니까.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