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3)
나는 그녀가 보여준 기록- 실기시험의 결과를 바라보며 꽤 큰 흥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진시우라면 모를까 저 둘까지 단독으로 수호자급 마수를 토벌하다니?
솔직히 말해서 조금 뜻밖의 기록이었고, 남궁설아와 아리엘이 단독으로 여명급 마수를 토벌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조금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궁설아는 특성 자체도 이런 시험에선 뛰어난 효율을 지니고 있었고 나와의 일을 겪으면서 성장하였기에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지만······ 도대체 아리엘은 뭘 했다고 이 시기에 벌써 혼자서 수호자급을 토벌에 성공한걸까.
이하린이나 남궁설아라면 모를까 내가 그녀에게 무력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준 적은 없었기에, 원작과는 다른 그녀의 변화에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아리엘이 무엇에 그리 자극을 받았던 건지 조금 신기하기도 했고, 어떻게 수련을 했길레 이런 결과가 나온건지 나로서는 다소 궁금했을 따름.
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에겐 내 기록이 더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너 대체 뭐야?”
평소의 여유 부리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아리엘은 마치 자신이 본 걸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건 그 옆의 이하린도 마찬가지.
“······출현 딜레이가 대략 5초였으니까, 그럼······ 최소한으로 토벌을 1초만에 하셨다 가정해서 등급당 6초······ 그럼 수호자급 마수는 다시······ 아··· 와··· 와······”
넋을 잃은 표정으로 혼자 뭐라 중얼거리던 이하린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며 내게 충격받은 시선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태도에 나는 솔직히 말해서 조금 어이가 없었을 뿐이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지 모르겠는데? 실기는 만점 받아올 거라 했었잖아. 조금 빠르게 끝내긴 했지만 조건 자체는 충분했어.”
“······뭐?”
“한 마리씩 등장에, 등장 타이밍까지 알고 있으면 마력을 감지해서 위치를 특정하는 것도 가능하잖아. 하물며 나는 특성도 그쪽 계열이기도 하고, 그런 허수아비 같은 조건이면 얼마든지 빠르게 끝내는 것도 가능하지.”
“······네?”
하지만 그런 내 말에도 그녀들의 표정은 그대로였고, 아니 오히려 더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아니.”
그리고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바보야!!”
“마, 맞아요!! 그, 무, 물론 저도 당연히 천하씨가 만점을 받아올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48초는 도대체 어떻게?”
이내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뭔가 억울하다는 듯 심정을 토로했을 따름이었다.
“그래! 타천자도 잡았고, 황혼급 마수도 토벌한 마당에 여명급이 뭔 대수인가 싶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대체? 아니? 응? 사실상 수호자급 마수도 거의 5초 만에 토벌했다는 건데······ 차라리 너가 초상계 각성자였으면 이해라도 하지. 칼 한 자루로 이게 진짜 말이 되는 거야?”
“마력방벽도 깎아야 하고, 근원석 위치도 파악해야 하고, 다시 마수를 공략해 심층의 근원석을 파괴해야 하고······ 도대체 5초 만에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아니, 토벌 자체는 가능하다 해도 근원석은 도대체 어떻게 파악하신 거에요? 그 짧은 시간 만에?”
“그거야 특성이 있지 않습니까.”
“······네?”
내 대답에 이하린이 순간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서서히 눈동자가 커지더니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멍하니 입을 벌려왔고, 이내 눈을 깜박거리며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설마······ 천하씨 특성. 그거 근원석의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는 거였어요? 단순히 마력의 흐름만 보는 게 아니라······?”
내게 있어선 다소 뜬금없는 질문.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예.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마력의 흐름은 볼 수 있다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
“······뭐?!”
하지만 그녀들에겐 아니었던 모양인지 내 대답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녀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지더니, 그녀들은 이내 아연한 기색과 함께 입을 벌렸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맙소사. 정말. 진짜로?”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녀들의 반응에 내가 무언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있으면 당연히 마수의 핵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
“······하지 않아!! 그림자 마수도 분명 마력으로 이루어진 게 맞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림자의 침식이라는 현상으로 덮여 씌워진 규정 불가의 개체란 말이야!”
“물론······ 탐지계열의 이능으로 탐색을 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력방벽을 깎아내서 내부의 그림자를 들춰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하린은 정말 매우 놀란 눈으로. 그러면서도 점점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한 눈빛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천하씨가 한 말씀은······ 즉 침식현상의 장막까지 꿰뚫어 볼 수 있으시다고 말씀하신 거에요. 바로··· 그림자의 너머를요!!”
“아무리 관찰계열 특성이라도··· 도대체. 얼마나 사기적인 특성인 거야 그러면?”
“······.”
아무래도 조금 실수했다는 느낌. 솔직히 말해서 만상의 눈에 대해서 제대로 밝힌 적은 없었기에 이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설마 그런 설정이 있었던 건가?
매번 눈으로 바라봐도 훤히 보이다 보니 근원석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 정도의 일이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물론 특성의 성능이 조금 더 밝혀진다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어째 그녀들의 반응을 보니 조금 피곤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들의 말을 들으니 자연스레 떠오른 의문.
‘······그냥 눈으로도 보이던데?’
나는 특성을 개화하기 이전에도 내 ‘눈’. 그러니까 만상의 눈이 아닌 일반적인 육안으로도 마수의 핵을 파악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육안의 경우 마력의 흐름을 파악해 위치를 관측해내는 것이었고, 만상의 눈은 현상 자체를 직시해 즉시 파악해 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만상의 눈에 비하자면 육안의 효율성은 훨씬 느렸지만······
결과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 걸까?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이제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지만, 지금 그녀들이 설명한 대로라면 이건 나로서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들, 특히 원작을 집필했던 이하린이 저렇게 놀랐다는 것은 이게 평범한 경우가 아니라는 말이었으니까.
게다가 분명 침식이라는 현상도, 그림자라는 현상도 모두 일반적인 물질세계의 현상은 아니었다. 만상세계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그런 비슷한 현상을 목격한 적도, 들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소설 속에서나 묘사되던 이야기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내 눈만큼은 아니었다.
이 눈에는 어떠한 이능이나 신비로운 현상이 깃들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건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소유하고 있던 천부적인 재능이자 자질이었고, 온전한 나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은 다소 뜬금없었을지언정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의문을 품고 있었다.
“······.”
“······.”
“······.”
그렇게 나는 나대로, 이하린이나 아리엘도 그녀들 나름대로 무언가 생각에 빠져버렸고, 스터디룸 내에는 잠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만상세계와 특성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자니, 이내 생각이 정리된 듯 아리엘이 입을 열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가 분명히 조금 상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천하 네 특성이면 마력방벽 너머까지 관측해서 바로 근원석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거지?”
“가능하긴 하지.”
내 말에 순식간에 멈춰선 그녀의 눈동자.
그녀는 얼어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당장 공략하러 안 가고 뭐해?”
“······뭐?”
다소 뜬금없는 말. 하지만 그 말을 한 아리엘의 얼굴은 조금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다소 흥분한 기색을 띠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너···! 천하 너 그거 정말 엄청난 거란 말이야!! 세상에 특성의 종류는 정말 수없이 많지만 그림자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특성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어!! 만약 네 눈으로 즉각적으로 근원석의 위치를 파악하고, 한 번에 그걸 요격할 수만 있다면······!”
“······공략의 난이도가 현저히 낮아져요.”
이하린의 목소리도 아리엘과 마찬가지로 상기되어 있었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속에서 다소 격양된 환희를 느낄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조금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을 뿐.
근원석의 위치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나 중요한 능력이었던가?
이하린 또한 그런 내 의문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 속에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설명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천하씨는 검객이신 만큼 형태와 크기가 다양한 마수를 상대하는 것보단 대인전쪽의 역량이 더 뛰어나실 거에요. 물론 어느 쪽이든 저보단 한참 더 대단하신 분이시지만요.”
“······.”
“하지만 반대로 세상에는 마수를 토벌하는데 특화된 특성도 존재하고, 지원에 특화된 특성도. 그리고 일격에 특화된 특성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요. 당연히 원거리에서 일방적인 폭격을 가할 수 있는 특성도 있고요.”
“그 말은 즉······”
“······네. 어떤 공략자와 합을 맞추냐에 따라 천하씨의 특성은 말도 안 되는 효율성을 보일 수 있다는 거에요. 공략에 있어서요!”
“그래!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진중하게 가라앉은 이하린과 열띤 기색을 내비치고 있는 아리엘. 나는 그녀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 특성의 가치를 조금 더 명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진 너무 당연시하고 있었던 부분이었고, 다른 누군가와 협업을 이룬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별로 없었기에 그런 식의 활용은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던 탓.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까지 주로 마인 이나 너무 약한 마수들만을 상대했기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 혼자만의 토벌이 아닌, 다른 이와 협업을 이뤄서 마수를 사냥할 때에는 분명히 이 능력의 가치가 무척이나 높아질 거란 걸 쉽게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만약에- 물론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만약 내가 격공이나 어검. 혹은 그 너머인 심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면···?
이제까지는 그런 쪽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미처 고려치 못한 부분이었지만 거기에 몇 가지 조건만 더 갖춰질 수 있다면 나는 만상의 눈으로 마수의 핵을 파악하고, 그 즉시 직접 근원석을 파괴함으로써 아무런 교전도 없이 순식간에 마수를 토벌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여명급이나 황혼급이 아닌, 멸화급.
그리고 나아가 어쩌면 이 세계에 예비된 재앙인 심연을 상대로도 말이다.
***
피곤하다- 강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만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문제수는 총 100문제이며, 시험 시간은 총 3시간입니다. 풀이가 끝난 생도분들께선 먼저 퇴장하셔도 무방합니다.]
이건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피로였는데 그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원래대로라면 적당히 스터디를 하다가 방에 돌아와 수련을 하고 잠들었을 테지만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은 결국 새벽까지 만상의 눈을 실험하는 일로 이어졌고, 그렇게 이하린과 아리엘의 실험에 적당히 어울려주느라 이래저래 눈이 뻑뻑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만상의 눈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냥 수면을 포기하고 다시 밤새 명상을 했던 탓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아. 물론 내 체력이 고작 하룻밤을 새운다고 피곤함을 느낄 만큼 어설픈 건 아니었다.
그저 이번에 얻었던 깨달음이 깨달음이었던 만큼 명상을 하면서도 나는 심리적인 화두에 대해 계속해서 고찰해볼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연속적으로 만상의 눈을 오래 사용했던 적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에 따른 피로감이 무척이나 컸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 번 느꼈지만 만상의 눈은 다루기가 굉장히 복잡한 특성이었다.
나는 분명히 이 눈을 통해서 스스로 보고자 하는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다시 내가 원하지 않을 때면 평범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오로지 내 의지를 통해서만 이루어졌고, 그런 만큼 만상의 눈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을 뿐.
하지만 그걸 원하는 대로 조절하려면 신경 쓸 구석이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애초에 범용성과 편의성이 무척이나 높은 만큼 만상의 눈을 필요할때마다 원하는 수준으로 조절하는 건 분명 생각보다 많은 신경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치 수십만 개의 색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안경을 뒤집어쓴 채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색상에 멈춰 세운다는 느낌이라 하면 그나마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어느 정도 육안을 위주로 생활하고 있었지만- 만상의 눈은 내 무의식에 따라 한순간에 활성화되어 물질을 투과했다가, 마력을 투시했고, 다시 대기의 흐름을 응시할 때도 없잖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의식과 무의식의 일체 또한 어느 정도 천마신공이 지향하는 바이기에 그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을 뿐.
어쨌든 중요한 건 만상의 눈은 그리 편하기만 한 특성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요구에 어울려주느라 저녁부터 새벽까지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동안 끊임없이 만상의 눈을 제어한 건 나도 처음 해보는 시도였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두 눈이 굉장히 뻑뻑하게 느껴졌을 정도.
물론···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지만 말이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1학년 상반기 이론 이해 필기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강단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즉시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을 비워버리고 시험지, 그러니까 태블릿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책상에 갖춰져 있던 태블릿 디바이스 위로 일제히 시험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 시간은 3시간, 180분. 문제가 100개. 그렇다면 한 문제에 대략 1분 48초.’
등천의 구도자 건도 그렇고, 유식에 대한 것도 그렇고, 다시 만상의 눈에 대한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았지만 우선 지금 중요한 건 시험이지 않겠는가?
3개 모두 당장 고민해본다고 확실한 정답이 나오는 문제도 아니었고, 하물며 필기시험에서 여유 부릴 정도로 내 이론역량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우선 시험의 난이도를 파악해보기 위해 빠르게 문제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지식이 한정된 만큼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선택.
그리고.
[문제 1]
[현존하는 탑의 종류에 관해 서술하시오.]
[문제 2]
[각성자 특례법 4조의 위반사항과 수용범위. 실제 위반 판례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곁들여 두 가지 이상 서술하시오.]
[문제 3]
[세계침식 발생 날짜와 그로 인해 발생한 지구촌의 변화. 그리고 세계연맹이 창설되기까지의 국제정세 변화과정을 침식의 진행정도와 연관지어 상세히 서술하시오.]
.
.
.
[문제 38]
[임의의 마수 A에 대하여 마력 값의 측정 추산치를 약 381 AC, 291 AC, 354 AC로 가정할 때. 해당 마수의 속성에 따른 등급과 마력방벽의 유무. 재생한계치를 개체별 특성에 맞춰 각각 구하시오.]
[문제 39]
[탑 진입 시 이면 세계 차원 분화현상이 발생했고, 공략의 실패로 강제탈출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정할 때. 대상 등급은 황혼급. 근원석의 심층마력 값은 20,918 AC. 입장 인원은 4명. 마력 값의 총합은 20,147 AC. 쐐기점의 개수는 2개. 차원방벽의 1차 마력량은 13,213 AC. 진입 경과시각은 1시간 12분. 위 조건을 기반으로 실질차원으로의 분화 트리거값을 구해 차원단면의 농도값을 역산해 서술하시오.]
“······미쳤나.”
그게 이 순간- 문제들을 훑어본 결과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
시험시간은 대략 20분 정도 남은 상황.
그나마 타자로 답안을 입력해서 다행이지 수기로 작성해야 했다면 저놈의 서술하시오에 답변을 적어 내려가느라 3시간이 모두 순식간에 지나갔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객관식 시험도 아니고 주관식 서술형이 대부분인 시험에서 3시간 동안 100문제를 풀라 하는 게 말이 되는 걸까?
한 문제당 2분도 안 되는 풀이시간은 단순히 암기나 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했고, 한순간에 답을 떠올려 막힘없이 적어 내려가야지만 전부 풀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였다. 심지어 배치고사 때만 해도 내가 몰랐을 뿐이지 문제 자체는 빠르게 답변할 수 있는 것도 꽤 포진되어 있었으니 이번 시험의 밸런스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짐작해볼 수 있는바.
물론 회랑 측에서 시험의 난이도와 풀이시간을 고려하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테니, 아무래도 이건 필기시험도 실전이라 생각하고 풀라는 게 아닐까 싶었을 따름이었다.
실전이라 가정하면 당연히 계산하고 있을 시간도 없을 테니 이게 맞긴 하겠지만······.
[No. 3804017 유천하 / 1학년]
[풀이문제 – 78개 / 미풀이 – 22개]
역시 지금의 내 실력으로 시간을 맞추기에는 다소 무리였을 뿐이었고, 모든건 태블릿 상단에 떠있는 숫자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
물론 풀 수 있는 문제의 답안을 적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암기와 암산은 자신 있는 분야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아예 모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된 문제는 빠르게 넘기다 보니 결국 남은 문제는 단 한 개뿐.
그나마 실기는 만점인지라 화이트라인에 가려면 500점만 넘기면 될 것 같았기에, 지금으로도 점수는 충분했지만 기분이 떨떠름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번 시험은 화이트라인의 점수대를 넘기는 걸로 만족하고, 다음 시험이나 노려봐야겠지. 그렇기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찝찝함을 빠르게 털어내었고, 이내 마지막 문제를 풀기 위해 태블릿을 조작하였다.
그리고.
[문제 100]
[1951년 호주에서 발생한 멸화급 탑의 침식역류- 멸화급 마수 모비딕은 역류가 발생한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승천자 아크샤의 손에 즉각 토벌되었다. 하지만 만약 위 사건에서 승천자가 부재하고 있었다 가정할 때. 그리고 그 자리에 본인이 있다고 가정할 때.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서술하시오.]
[상세조건]
[현장에 있는 공략자들만으로는 멸화급 마수의 토벌이 불가능하다. 침식역류 시 수호자급 마수의 실체화 때까진 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승천자의 지원이 오기까지 1시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12만 7813명. 역류지로부터······]
나는 마지막 문제로 제시된 내용에 꽤나 큰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