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의 업 (2)
아리엘은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며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몸에 감겨있는 붕대를 확인하고는 걱정 어린 얼굴로 안부를 물어왔고, 우리는 그런 그녀의 목소리 속에 담겨있는 염려를 느낄 수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을 따름이었다.
“······으음. 그니까 이제 괜찮다는 거지?”
“어. 거의 다 회복했다고 봐도 돼.”
하지만 그런 내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리엘은 영 신뢰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미묘한 표정과 함께 붕대에 휘감겨있는 이하린의 몰골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불신과 염려로 가득 찬 아리엘의 표정.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붕대는 이제 곧 풀 거야.”
“마, 맞아요···!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
그녀의 표정은 결국 이하린이 양손으로 주먹을 꾹 쥐어 보이며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간신히 평소처럼 돌아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는 이내 우리를 바라보며 가볍게 툴툴거렸을 뿐이었다.
“그래도······ 처음 생각보다는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네. 얘기만 들었을 땐 정말 당황스러웠단 말이야.”
“그야 이틀 동안 계속 치료를 받긴 했으니까. 그것보다 갑자기 네가 여긴 왜 온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문득 그런 의문이 들어 질문을 건네었고, 그런 내 말에 이하린도 궁금하다는 듯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참고로 우리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현재 우리가 입원해있는 곳은 여전히 합비시에 위치한 각성자용 특수치료시설. 그런 만큼 회랑에 있어야 할 아리엘이 이곳에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리엘은 그런 내 질문이 불만스러웠던 걸까?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입을 열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여긴 왜 왔냐니······”
“······?”
“······당연히 걱정돼서 찾아왔지 바보야!!”
그것도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이다.
“요 며칠간 왜 안 보이나 했더니 한밤중에 갑자기 뉴스에서 너희 이름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갑자기 애들은 천하 너가 등천자가 됐다고 그러질 않나, 놀라서 찾아보니까 무슨 테러사건에 휘말렸다 하질 않나, 다 같이 입원했다고 하질 않나. 그것도 천하 너에, 하린이에, 설아에······”
“······.”
“아니 그리고 계속 궁금했던 건데 하린이는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강의실에 있던 애가 갑자기 테러에 휘말렸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정말······!”
“······아, 저, 그, 그건···!”
“심지어 그냥 테러도 아니고 위타극? 너희랑 설아랑 그런 일이 있고 얼마나 지났다고 갑자기 위타극이 나타난 건데? 심지어 그 위타극이 천하 손에 토벌당했다 그러고, 그렇게 설아까지 셋 다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고 하니까 진짜······ 내가 도대체 어떻게 안 오고 배기겠어? 응?”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순식간에 쏟아져나온 아리엘의 대답에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을 뿐이었다.
“······.”
“······.”
직접 겪은 입장에서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저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아리엘에게선 볼 수 없었던 억양과 표정에 조금 당황했던 탓도 없잖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눈만 깜빡거리고 있자니 아리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고, 그리고는 이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설아는 어디 갔어?”
“······아. 그, 그 설아씨는 아마 치료를 받으러 가셨을 거에요···! 지금이야 회복되긴 했지만 워낙 처음 부상이 심했어서 급속회복 리스크 방지 차원에서 따로 관리를 받는 중이시거든요!”
“그렇게 많이 다쳤었어?”
“······어··· 조, 조금 많이요?”
“······아휴 정말.”
이하린의 대답에 아리엘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러면서도 붕대에 둘둘 말려있는 이하린의 팔을 조심스레 손으로 매만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치료를 받아서 괜찮다지만 너희도 많이 다쳤던 것 같은데 그럼 설아는 도대체 얼마나 심하게 다쳤던 거야······ 하린이 너도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네, 네! 이, 이젠 정말 괜찮아요!”
“이 작은애가 다칠 곳이 어디 있다고 맨날 그렇게 다치고 그래······ 저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이번에는 도대체 수업을 듣고 있던 애가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테러에 휘말리게 된 거야?”
“······아.”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지만 사실 저 부분은 나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
회랑에 있어야 할 이하린이 테러가 일어난 순간에 그런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도, 그곳으로 찾아가 보니 정말로 현장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도, 모두 나로서는 분명 당황스러웠던 일. 물론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따로 물어보진 않았지만 어떻게 그 타이밍에 나타난 것인지는 조금 의아했던 참이었다.
솔직히 짐작 가는 부분이 영 없던 건 아니었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이밍이 너무 빠르지 않았던가?
설마 온종일 가호로 우리를 관찰하고 있던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설마 그랬을 리가.
“······.”
“······.”
그렇기에 나도 약간의 의아함을 담아, 그리고 아리엘 또한 궁금하다는 듯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그런 우리의 시선에 이하린은 조금 당황한 듯 입술을 오물거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아··· 그··· 그, 그게···”
“그게?”
“아. 그! 마, 마침 볼일이 생각나서 찾아왔는데 갑자기 테러가 일어난 거 있죠? 그래서 저도 얼떨결에 휘말린 거라······ 그냥 정말 우연이라 이게······ 어······.”
“갑자기? 볼일?”
“······어, 그··· 처, 천하씨! 천하씨한테 중요한 할 말이 있었거든요! 사전에 설아씨네로 수련하러 가신다고 들었어서 저도 여기로 찾아온 거였어요···!”
“저한테··· 말입니까?”
“······네, 넵!”
“······.”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날 뻔했지만 이하린의 표정을 바라본 나는 그 말을 꾹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어··· 그······”
하지만 제 발 저린 이하린은 혼자 알아서 뭐라 웅얼거리기 시작했고, 아무리 봐도 지금 그녀의 행동은 자신이 당황했다는 걸 열심히 표출하고 있는 거로밖에 안 느껴졌을 따름이었다. 그것도 온몸으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오히려 너무 대놓고 수상한 기색을 풍기고 있어서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해야 할까? 오죽하면 먼저 말을 꺼낸 아리엘마저 이하린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같아서는 손에 검이라도 쥐여주고 싶었을 정도.
아무래도 이대로 내버려두면 이하린의 얼굴이 펑- 하고 터질 것 같았기에 화제라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어? 아. 어. 응.”
그러자 아리엘도 화들짝 놀라 하는 이하린의 모습이 뭔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잠자코 내 말을 바로 받아주었다.
“너 수업은 어쩌고 여기 온 거야?”
“······응? 그야 당연히 빠지고 왔지. 너희한테 이런 일이 생겼다는데 수업이 뭐가 중요해. 뭐······ 물론 나는 화이트라인이라 며칠 빠지는 것 정도는 전혀 문제없기도 했구.”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그녀는 화제도 돌릴 겸 나를 조금 놀릴 생각이었는지 그 말과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어 보였고, 그런 아리엘의 눈빛 속엔 조금 짓궂은 기색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우리 등천자 유천하씨한텐 이제 그런 건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 그치?”
“······.”
“그리고 이번 주라 그나마 다행이었지. 다음 주였으면 나도 바로 찾아오기는 조금 부담스러웠을걸? 그래도 생명의 은인들이 다쳤다는데 오긴 왔을 테지만··· 뭐.”
“······다음 주?”
“······?”
처음에 흘러나온 장난 섞인 말은 자연스레 무시해주었지만, 나는 그녀가 뒤에 덧붙인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주에 뭐가 있었던가?
그리고 의아한 건 눈치를 보고 있던 이하린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 또한 아리엘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아리엘로선 오히려 그런 우리의 반응이 다소 어이가 없었던 모양.
“······뭐야. 너희 다음 주에 뭐가 있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
“아니 얘들아··· 4월 말이면 뭐겠어.”
아-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그제서야 회랑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 중간고사.”
“아. 벌써 중간고사네요?”
“······.”
우리의 반응은 이걸로 끝이었을 뿐.
물론 생도의 입장에선 나름대로 중요한 일정이긴 하겠다만 나는 딱히 성적이 중요한 입장은 아니었던지라 그냥 그러려니 싶었을 뿐이었고, 그리고 그건 이하린 또한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렇게 우리가 시큰둥한 반응을 내비치자 아리엘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작게 고개를 내젓기 시작했다.
“아니······ 천하야 그렇다 쳐도 하린이 너까지 그러면 어떡해?”
“원래 시험은 공부 안 하고 보는 거에요!”
“아니, 나는 왜 그렇다 치는건데.”
그녀의 말에 나는 작게 불만을 표시했지만 아리엘은 자연스레 내 말을 무시하곤,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어쨌든··· 중간고사 기간이었으면 나도 바로 오기는 힘들었을 거야. 어차피 오고 싶다고 바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는데 절차 같은 거라도 있었어?”
“절차라기보다는 정보가 안 떠서 그렇지. 원래 마음 같아서는 소식 접한 날 밤에 바로 찾아오고 싶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알아야 오든가 하지······ 너희한테 연락해봐도 답장도 안 오고 내가 정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죄, 죄송합니다. 기절해있느라 미처 확인을 못했나 봐요.”
“아니··· 그,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구··· 그래서 연맹에 문의해서 답변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오늘 오게 된 거야.”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연락?”
나는 그 즉시 내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의식을 회복하고 이틀 동안 한 번도 워치를 떠올리지 않았고, 이제껏 워치의 존재를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 손목은 휑하니 비어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렇게 잠시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그 모습을 본 이하린과 아리엘이 내 상황을 눈치챘는지 동시에 말을 걸어왔다.
“······어? 설마 워치 잃어버리셨어요?”
“뭐야. 평소처럼 그냥 안 보는 건 줄 알았는데 싸우면서 잃어버린 거였어?”
그녀들의 말에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하지만 위타극과 격전을 치르던 때의 내 신경은 오로지 녀석을 베어내는 데만 집중된 상태였기에 워치가 어떻게 됐는지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았을 따름.
“······잘 모르겠는데.”
그렇기에 내가 다소 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런 내 얼굴을 바라본 아리엘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천하 너. 언제 깨어났던 건데?”
“이틀 전 밤에 바로.”
“그럼 너 설마 이틀 동안 워치를 아예 한 번도 안 떠올렸다는 거야? 진짜?”
“······그렇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대단해 (°o°:)]
그 말과 함께 아리엘은 마치 문명에서 동떨어진 원시인을 보는듯한 시선을 보내왔는데, 사실 지금의 내게는 문명에서 동떨어진 삶이 더 익숙한 건 맞았기에 순간 기분이 조금 묘해졌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잠시 떨떠름한 기분 속에 휩싸여있었더니 이내 아리엘이 혹시나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럼 너 그것도 모르겠네?”
“그거?”
“······?”
갑자기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마치 뭔가 있다는 듯이 말을 꺼내오는 아리엘의 모습에 나는 무슨 말이냐 되물었고, 그런 내 반응에 아리엘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째 하린이도 모르는 느낌이고······”
그리고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그녀의 입가엔 분명 흥미가 서려 있었다.
그렇게 아리엘은 잠시 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워치를 툭툭- 조작하기 시작했고, 이내 우리를 향해 그 화면을 쭉 내밀었다.
“그거 알아?”
그리고- 그 화면에 떠 있는 글자.
그곳에는 바로······
[각성자 업적 총합 랭킹]
[317위 – 등천자 유천하 New!]
“천하 너 랭커 됐다?”
업적랭킹이 떠 있었을 뿐이었다.
***
병실 안에 잠시 적막이 맴돌았다.
“······.”
“······.”
솔직히 말해서 나는 랭킹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던 것 뿐이었고, 아리엘은 그런 내 표정을 바라보며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하린은······
“······3, 317위!!”
뒤늦게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며 놀란 심경을 온몸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랭커! 랭커···!! 317위? 317위! 317위!!”
“그치? 대단하지 그치?”
팔을 붕붕 휘두르며 감탄을 토해내는 이하린과 그런 이하린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맞장구를 쳐주는 아리엘의 모습.
솔직히 나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영 실감이 안 났기에 그런 이하린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만 깜빡거렸고, 그러자 이하린은 상기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이거, 이거 정말 대단한 거에요 천하씨!”
“······그렇습니까?”
“네! 아, 물론··· 위타극까지 토벌하셨으니 순위가 낮게 느껴지실 수도 있긴 한데 사실상 실제 활동내역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에요 이건!”
“아.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냥 제 사정이 그렇다 보니 순위라 해도 딱히 느낌이 안 오는듯합니다. 별로 아는 게 없어서요.”
왜 안 놀라?- 마치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이며 눈을 반짝거리는 이하린의 모습에 나는 담담히 심경을 말해주었고, 그러자 이하린은 몇 번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그러시겠구나.”
“······응? 뭔데?”
그러자 이번에는 아리엘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참고로 내 과거- 그러니까 과거로 설정된 배경은 분명 신원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연맹에 등록되긴 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걸 직접적으로 말해줬던 건 이하린과 티르유뿐.
그렇기에 아리엘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딱히 숨길만 한 내용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간단히 사정을 설명을 해주었다.
“별건 아니야. 나는 입학 전까지 계속 접경지에서만 생활했었거든. 제대로 사회에 나온 건 이제야 막 2달이 넘어가는 중이고.”
“······응? 접경지? 2달?”
“네! 그··· 저번에 말씀 못 드렸던 게 이거였어요! 천하씨가 처음 사회에 나오셨을때 하필 침식역류가 터진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거기서 저도 침식방어전에서 천하씨랑 처음 만나게 된거였거든요.”
“······아.”
언제 둘이서 내 얘기라도 했던 걸까? 순간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잠시 벙찐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던 아리엘은 이내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며 내게 말을 건네왔다.
“그··· 혹시 그러면 워치를 잘 안 보는 거나 공부를 못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
“비슷해. 그리고······ 분명히 말하자면 못하는 게 아니라 배운 적이 없었던 거야.”
“······아. 미안해 천하야. 난 그것도 모르고 계속 놀리기만 했었는데······ 너 정말 문명과 동떨어진 친구였구나?”
말은 저렇게 하긴 했는데, 그녀의 눈빛이 마치 새로운 떡밥을 발견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그건 내 착각일까?
“너 말이랑 표정이랑 달라 지금.”
“앗···! 미안 이미 습관이 돼서 그만.”
웁- 그 말과는 반대로 과장된 몸짓으로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사과를 건네오는 아리엘의 눈빛은 매우 반짝거리고 있었다.
[(*’▽’)ノ 안녕 원시인!]
······아무래도 착각은 아닌 모양.
나는 그 즉시 허공에 떠다니는 마력을 의념으로 빠르게 흩어버림과 동시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리엘은 그런 내 시선에도 정말 자연스럽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마냥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내 담담히 내 시선을 피하며 뜬금없이 설명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럼 우리 원··· 아니 천하를 위해 차근차근 설명해줄게! 업적 랭킹에 이렇게 등재된 건 정말 대단한 거야! 우와!”
“······.”
“맞아요! 그것도 처음 갱신되자마자 500위권 안쪽이라는 게 특히요!”
나는 말없이 계속 아리엘을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끝까지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댔고, 그에 나도 그냥 고개를 내젓고는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리엘이 이러는게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이젠 그냥 그러려니 싶은 마음.
물론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엘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말이다.
“천하 너는 랭킹의 기준이 뭔지 알겠어?”
“······업적 랭킹이니까 업적이겠지.”
“그래! 업적이야. 만상세계에 기록되는 모든 인과가 랭킹의 기준이라구!”
“그래서?”
“그런 만큼 랭킹의 기준은 단순히 전투력이 높다고 매겨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그랬으면 지금 너 정도 실력이면 이미 입학식 때부터 순위권은 그냥 차지하고 있었을걸? 하지만 기준은 그게 아니라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너무 당연한 소리였고, 그렇기에 나는 대체 왜 갑자기 그녀가 이걸 설명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걸 판단하는 건 당연히 만상세계. 마수를 토벌하면서, 마인을 토벌하면서, 이런저런 업적을 쌓으며 인과를 쌓아나갈수록 만상세계는 그에 맞게 업륜도, 가호도 부여해주는 거야.”
바로 네 손등에 있는 그것처럼- 그렇게 말하며 아리엘은 내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업적들을 보통 수년에 걸쳐 끊임없이 공략활동에 뛰어들어서 쌓아가는 편이거든?”
“······.”
“그러니까 말이지······”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있는 병실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잠깐, 순간 남궁설아가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건가 싶었지만, 기감에 잡힌 기척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기에 나는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317위라는 말은 즉···! 너는 몇 번의 타천자 토벌만으로도 이미 대부분의 등천자들이 수년간 쌓아왔을 업적을 뛰어넘었다는 말이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좀 이해할 수 있겠어? 이건 정말 대단한 거라구.”
“맞아요. 바로 그거에요.”
“맞아요 바로···! 응?”
갑작스레 입구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하린과 아리엘은 그녀의 접근을 모르고 있었던 듯 순간 흠칫하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이미 조금 전부터 만상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중이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
“등천자 유천하. 그 칭호가 의미하는 것도, 그 랭킹이 의미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에요.”
잿빛의 단발을 흐트러트린 채 서 있는 익숙한 인상의 여인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