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82화 (82/205)

무의 의미 (4)

남궁설아는 세상이 점멸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세계는 계속해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신체의 기능 하나하나가 풀려나가는 기분에 휩싸였다가도, 다시 한순간에 조여드는 느낌을 느꼈고, 이내 다시 눈을 뜨니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두드리는 것을 체감했다.

콰아아앙-!!

그 순간 들려온 굉음- 그 소음이 그녀의 정신을 꽉 붙들어 주었기에 남궁설아는 다시 멍하니 그 격전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흐드러지는 검의 항연.

칠흑의 선이 자아내는 궤적이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위타극과 싸우고 있는 유천하의 검이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기에 남궁설아는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멍하니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펼쳐지는 무예의 향연. 검극이 피륙과 맞닿으며 울려 퍼지는 검명은 하나의 음률이 되었고 그 박자에 맞춰 춤추는 검객이 있었으니, 눈앞의 광경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검무였다.

어떻게 저리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걸까.

이 순간 그녀에게는 유천하의 검이 자아내는 선율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느껴졌고, 또 아름다웠으며, 눈부셨다. 그렇기에 남궁설아는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멍하니 그곳만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육체를 꾹꾹 누르며 바쁘게 움직이는 이하린의 모습도, 저릿해진 감각 속에 느껴지는 몽롱한 통증도, 하늘에서 흩날리기 시작한 눈송이도 모두.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그저 유천하의 검무를 바라보았다.

유천하는 더 강해진 걸까?

그건 남궁설아의 식견으론 알기 힘든 일이었지만, 혼미해져 가는 그녀의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서로의 몸을 베어내며 공수를 주고받던 싸움의 흐름은 어느 순간부터 이내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상대의 움직임을 예지하는 것 마냥. 현재의 너머를 내다보고 앞서나가는 것 마냥. 유천하가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허공 위에 칠흑의 궤적이 새겨진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어진 궤적은 그대로 위타극의 육신을 베어냈고, 다시 도를 튕겨냈으며, 마치 그게 필연인 것처럼, 마치 구름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짜인 그 흐름은 다시 끝에서 부드러운 흐름을 자아냈다. 그 흐름이 유천하의 검 끝에서 몰아쳤을 때. 유천하의 검은 그림자를 베어 갈랐다.

그야말로 신들린듯한 움직임.

그 자체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는 기예.

천의무봉- 오직 그 말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싸움이었기에 남궁설아는 계속해서 그곳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저 싸움을 한순간이라도 놓치기 싫다는 듯이. 그렇게 바라보았다.

***

그렇게 남궁설아가 자신의 상태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멍하니 격전만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그리고 그런 남궁설아의 출혈을 막기 위해 이하린이 아껴둔 아티팩트를 꺼내 마력을 불어넣고 있던 순간.

바로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났겠네.”

“······!!”

갑작스레 느껴진 기척에 이하린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흑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한 사람.

“아. 미안. 인식저해 푸는 걸 깜빡했네. 괜찮아 괜찮아 난 연맹에서 나온 사람이니까.”

“······연맹?”

정신이 없었던 이하린은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의 말에 순간 과부하가 걸리는 기분을 느꼈고, 이내 맥락을 이해한 이하린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하린의 시야로 들어오기 시작한 광경.

“······저거 안 도와줘도 되겠죠?”

“저 싸움에 끼어들고 멀쩡할 자신이 있으면 끼어들어 보던가. 참고로 난 자신 없다.”

“예. 깔끔하게 주제 파악 하겠습니다.”

아- 그렇게 주변을 둘러본 그녀의 입에선 소리 없는 탄성이 새어 나왔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끼어들 필요도 없는 거지.”

“······진짜 괴물들이네.”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그렇지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실력을··· 저런 걸 천재라 하는 건가? 진짜 너무 불공평한데.”

“승천자 후보니 뭐니 할 때는 솔직히 유난 떤다 생각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군.”

“저 정도면 단순히 재능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잖아.”

그녀의 주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천하와 위타극이 싸우고 있는 전장을 감싸듯 원형을 이루고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

쓰러져있는 집행자들에게 무언가 마력을 쏟아부으면서, 전투 중인 유천하와 위타극의 주위에 무언가의 이능을 펼치면서, 그리고 다시 그 전장의 한가운데로 언제든지 뛰어들 수 있게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유천하의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이하린은 그제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그게 이 순간 이하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

물론 그녀는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곳에 와있는 집행자들의 수가 이렇게 많았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당장 조금 전만 해도 그녀는 집행자들과 함께 위타극에 대항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그저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주변에 모여들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 당황스러웠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집행자들도 순식간에 당해버린 위타극의 공격을 단 몇 분간이지만 사실상 그녀 혼자서 감당했던 만큼, 현재 그녀의 몸 상태는 이미 한계에 가까워진 상태.

하물며 이하린은 그런 상태로도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으며 남궁설아를 치료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상태가 자신보다 더 위급했기에 이하린은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그렇게 남궁설아에게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

그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 이하린은 순간 멍해졌던 정신을 되돌리곤, 황급히 치료마법이 새겨진 반지를 남궁설아의 상처에 갖다 댔다.

그들- 이면순례자는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접근을 눈치채지도 못했다는 게 순간 당황스러웠던 것이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이하린에게 중요한 건 유천하와 남궁설아였고, 유천하는 위타극을 상대로 신들린듯한 검무를 펼쳐내고 있었으니 이 순간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건 피를 쏟아내다 못해 창백해진 남궁설아를 살리는 것이었다.

우웅- 그런 생각 속에 이하린이 마법도구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자니, 바로 그 순간.

“허물 벗은 뱀. 뿌리를 타고 피어나라.”

우우웅-! 간단하게 읊조려진 주언.

따스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솟아난 마력.

그녀들을 향해 흘러들어온 녹색의 휘광은 무척이나 따스한 색채로 남궁설아를, 그리고 이하린을 휘감았고, 그 순간 이하린은 피가 흘러내리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

우웅- 물론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기에 그저 출혈이 멎는 데 그쳤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당장의 위급함은 넘겼다 봐도 될 수준이었고, 그렇기에 이하린은 황급히 고개를 들어 마법을 사용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동그랗게 커진 이하린의 눈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집행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거야. 위상학파라 치료는 전문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죽지는 않을 테니까.”

일단 죽지는 않는다- 라는 말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집행자가 그녀들을 치료해준 건 맞았기에 이하린은 다소 얼떨떨한 모습으로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 가, 감사합니다.”

물론- 그에 집행자는 미소로 화답했을 뿐.

“아니야. 오히려 저런 괴물을 상대로 버텨줘서 우리가 고맙다 해야 할 수준인데 뭘. 너랑 이 아이. 둘 다 생도지? 저 멍청이들이 안 죽은 건 너희가 열심히 해준 덕분일 테니까.”

그녀는 그 말과 함께 기절해있던 집행자들을 바라보았고, 그에 따라 이하린 또한 시선을 돌려 그들의 상태를 바라보았다.

“······왜 이······ 늦···”

“닥치고 기절이나 해 병신아.”

팔이 잘리거나 목숨이 간단간당해 보이는 사람은 있었지만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고, 이하린은 그 사실에 작게나마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쓰러지는 것 까진 어떻게 할 순 없었지만, 위타극이 그들을 마무리하려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낸 건 바로 이하린- 자신이었으니까.

“신호가 진작에 끊겨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살아있을 줄은 몰랐어. 너희가 저런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 버틴 건지 신기할 정도야. 저건 정말······”

그녀는 그 말과 함께 전장을 바라보았다.

흑색과 적색의 별빛이 산란하는 곳.

유천하와 위타극이 자아내는 공세의 흐름은 분명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들의 검이 한번 한번 부딪힐 때마다 토해지는 힘의 격류는 이미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중이었다.

콰과가가가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격전.

그렇기에 집행자는 저 싸움의 중심에 서 있는 자들의 위용을 바라보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체감했다. 유천하와 위타극이 도달해있는 세계는 일개 등천자가 논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고, 이 순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혀를 내두르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느끼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격전지를 빙 둘러싸고 있는 집행자들은 모두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조금씩 질린 기색을 표하고 있었고, 아연한 기색으로 입을 벌린 채 서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런 집행자들의 얼굴을 목도하게 된 이하린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집행자들의 얼굴에 경악과 충격이 서려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유천하의 존재는 명백한 이레귤러였으니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들은 이 상황을 짐작하지 못했을 텐테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즉- 저들에게도 위타극을 상대할 수단이 존재했다는 말.

그렇기에 이하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집행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고, 이내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폭음이 울려 퍼지던 도시에는 어느새 고요함이 내려앉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던 빗방울이 어느새 눈송이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는 것을.

4월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순간.

도심 속에 흩날리는 때아닌 눈송이.

그 흰색의 잔해들은 그들이 서 있는 자리로만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그 혹한의 추위는 전장의 맨 가까이 다가가 있는 한 여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잿빛 머리카락의 단발머리.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한 사람.

그리고.

이하린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건··· 제가 올 필요도 없었겠네요.”

“반대로 안 왔으면 이걸 못 보셨겠지요.”

“위급하다고 그렇게 연락을 때리더니 농담할 겨를은 있으신가 보네요.”

“······그럼 이 상황에 저희가 뭘 하겠습니까? 다른 녀석들이야 다 사살했고, 남은 건 저 괴물 녀석밖에 없는 상황에 말입니다.”

분명 저 모습으로는 처음 보는 상황. 하지만 그녀의 설정을 적어 내려갔던 이하린이었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4월이 시작되고 얼마 안 가 회랑에서 마주했던 사람. 티르유와 함께 찾아왔던 그녀.

등천자 타샨 피아르.

아니, 하이랭커 트리난 라피냐.

그리고 다시- 이면순례자의 부단장.

“그래도 애들 상태 좀 보십시오. 만약 부단장님도 안 오시고, 저 괴물 같은 녀석도 없었다면 저희는 다 죽었을 것 같습니다.”

“엄살 피우긴. 반은 살지 않았을까요?”

“그럼 반은 죽어도 됩니까?”

“설마요.”

다른 집행자들은 격전의 여파만으로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오로지 그녀만이 그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평온하게 그들의 격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성과는 있네요.”

“성과 말입니까?”

“저희 예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잖아요. 나중에는 최소 하이랭커까지 갈 포텐셜이라. 정말 바보 같은 소리였네요. 저 아이는 이미 하이랭커급이에요. 아니, 어쩌면 최연소 승천자를 보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요. 직접 보고 있는 저도 믿기지 않는대요 뭘. 도대체 누가 이걸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성인도 안된 아이가 하이랭커라··· 누가 말했어도 헛소리하지 말라고 대답했을 거에요. 심지어 대인전만큼은 저도 못 이길 것 같은데요?”

“······그 정도입니까?”

그렇게 라피냐와 남자는 무수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유천하를 바라보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도 그들을 향해선 계속해서 기파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콰가가각-!!

유천하와 위타극의 일격. 서로의 공세가 격돌할 때마다 퍼져나오는 기의 파랑은 이미 격전지 주변을 초토화 시키고 있었고, 지면은 박살이 난 채, 주변에 있던 건물들은 무너트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래서야 보도관제는 걸지도 못하겠네요. SNS로 이미 퍼질 대로 퍼졌을 테고, 수습할 수준은 진작 지나쳤어요.”

“그건 원래부터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이만한 규모의 테러도, 도시에 나타났다는 마수도, 십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위타극도. 그리고··· 그런 위타극을 상대하고 있는 저 녀석도 숨기기에는 너무 큰 사안이니까요.”

“그렇긴 하겠네요.”

그런 대답과 함께 라피냐는 이내 격전지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마치 이제 볼 필요 없다는 듯이.

“더 안보실 겁니까?”

“거의 끝나가는 것 같으니까요.”

“그럼 뒤처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라피냐는 다시 한 번 눈을 돌려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모든걸 베어버리겠다는 듯 쏘아지는 칠흑의 궤적을.

그리고는 이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뭘 어떻게 해요. 축하해줘야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라피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분명 가볍게 퍼져나갔지만, 그 말 속에 담긴 내용은 가벼운 게 아니었기에 옆에 있던 남자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리곤 전장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결착의 시간은 다가왔다.

***

유천하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제껏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세계- 너무나도 커다랗게만 느껴졌던 장벽 위로 드디어 그는 발을 내딛게 되었고, 그렇게 한계의 경계선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유천하는 절정의 초극.

바로 그곳에 도달한 상태.

만약 여기서 한 발자국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는 사람의 벽을 깨고 지고한 경지에 발을 들일 수 있을 터. 하지만 그 한 발자국을 내딛기 위한 간극은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더 먼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평생을 고뇌하고 전진해도 그 벽 앞에서 멈춰 서게 될 수도 있었고, 당장 이 순간에라도 새로운 깨달음 속에 초절정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될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유천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여유를 버리고, 평온을 버리고, 다시 의무와 조급함을 버려 마음을 비워냈을 때 비로소 유천하는 벽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벽 너머에 안착하기 위해서 그는 비워낸 마음을 새롭게 채워야 했고, 그건 결코 급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유천하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새롭게 발을 들이 세계에 온전히 적응 하는 것. 바로 그것이었고, 경계벽 위에 올라선 상태로 그 너머를 내다보는 것 만으로도 유천하는 분명 자신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변화가 이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게 만들어줄 정도로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위타극 또한 절정의 초극.

유천하의 깨달음은 그와 자신 사이에 놓여있던 한 발자국의 차이를 없앴을 뿐이었고, 그제서야 그들은 동등한 선상에 서 있게 된 것에 불과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같은 곳에 서게 된 유천하는 위타극과 제대로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육신을 깎아가며 피해를 교환하는 게 아닌, 제대로 된 공수를 주고받게 되었던 것. 유천하는 위타극의 호흡과 흐름을 들여다보았고, 다시 그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그것이 이제껏 유천하가 쌓아온 무의 업이었고 검의 호흡이었으니 ‘만상의 눈’은 오온과 유식과 어우러져 완벽한 흐름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애초에 유천하의 신념은 오직 하나.

-무인의 삶은 투쟁이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렇기에 유천하는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극적인 변화는 아닐지언정 유천하는 싸우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였을 뿐. 그건 그가 만상의 눈을 얻기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상대의 호흡과 흐름을 간파할 수 있었던 그의 눈은 싸우는 순간순간에도 상대의 무에서 다시 자신의 무를 배워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일 검, 일 검이 교차하는 파란의 가운데서도 그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새롭게 발을 들인 유식의 세계.

아직 온전치 못한 깨달음이었지만 만상의 눈을 통해 현상을 직시하고, 오온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유천하의 감각은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유식을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그는 비워냄으로써 유식에 도달하였다.

그렇다면 다시- 비워낸 만큼 채워야 했다.

그것이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

하지만 ‘무엇’을 채울지는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어떻게’ 채워나갈 건지는 지금의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지금 그의 손에 들린 건 백색의 검이었으니 이 순간 유천하의 검에 깃든 건 다시 부드러움이었을 뿐이었다. 유검에서 강검, 강검에서 중검, 중검에서 패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검식의 흐름은 다시 부드럽게 흩날리며 하나의 춤사위를 자아냈고, 그곳에서 다시 무는 춤추었다.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건 일천검결.

그 검이 추구하는 의미는 일검을 통해 하늘에 닿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고, 그렇기에 일천검결一天劍結이었으니- 유천하의 검은 이 순간 하늘을 가로질렀다.

초식을 쪼개 무無로 접어든다.

초식의 경계를 허물고 무결無結속에 다시 극의極意를 담아낸다.

그렇기에 무초였고, 다시 유초였으니. 그 순간 유천하는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의 경계를 다시 유초승무초有招勝無招로 바꿔냈다. 본래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지만 유식을 깨달은 유천하의 검은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가능했던 일.

그것이 유식에 도달한 검이었고, 그렇게 부드럽게 흘러나온 흐름 속에 그들은 다시 한 번 망설임 없이 검을 교차했다.

시간의 틈새. 찰나의 찰나.

그 아득한 세계 속에서 뻗어진 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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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마저 멈춰버린 세계 속에서 한순간에 교차했던 그들은 이내 멈춰 섰다. 그리고 서로가 서 있던 곳은 정 반대에 자리 잡고 있었을 뿐.

“······.”

“······.”

그리고 그 순간.

푸슈-!! 검을 늘어트린 유천하의 어깨에서부터 피가 터져 나왔다. 한순간에 베여나간 어깨는 그 기능을 상실해 축 늘어졌고, 쏟아내리 듯 흘러나온 피가 유천하의 옷을 적시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유식에 도달한 뒤 처음으로 입게 된 부상.

하지만 유천하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 순간 그의 뒤편에서부터 위타극의 입이 열리며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만검에 도달하였더냐.”

“한걸음이지만.”

만검에 도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천하는 저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온전히 도달하지 못했기에 그는 다시 초식을 펼쳐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일천검결의 경계는 다시 되돌아 왔을 뿐이니까.

물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가.”

그렇기에 다시 그 순간.

콰르르륵-!! 위타극의 가슴이 크게 베여나간 채 시커먼 그림자를 토해냈고, 그곳에서 새어 나온 잿빛의 마력은 끈적거리는 형상으로 계속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이제껏 쌓아온 모든 생명력을 토해내듯이, 세월 속에 쌓인 망념을 쏟아내듯이.

그의 가슴속에서 새어 나온 그림자는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고, 그 깊은 곳에 새겨져 있던 잿빛의 보옥. 근원석은 반으로 쪼개진 모습으로 그 망념을 토해냈을 뿐이었다.

“마지막 초식의 이름은 무엇이지.”

“일천검결. 파천.”

“······실로 광오하군.”

하지만 그것보다 어울리는 이름도 없구나- 위타극은 다가오는 마지막 속에서 그 말을 속으로 되 삼켰다. 상대는 스스로의 무를 증명해냈고, 자신은 그러지 못했으니 더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것이 위타극의 무림이었고, 그렇기에 그는 오래전의 기억을 회상했을 따름이었다.

너무나 먼 옛날이 되어버린 그의 시작점.

그리고 그를 이곳까지 이끌어온 망념.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를 사로잡았던 주화입마마저 이 순간 베여나갔으니, 비로소 지금에 와서야 위타극은 남궁연월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와선 부질없는 일이었을 뿐.

“······너무 오래 살아있었군.”

그것이 위타극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말이었고, 그 목소리는 힘없이 허공을 배회했을 뿐이었다.

카르륵······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만상세계에 업적이 기록됩니다.]

세월 속에 사로잡혀있던 망념은 그림자가 되어 터져나갔고, 사방으로 퍼져나간 그림자의 파동은 이내 모든 마력을 세계에 녹여내며 그렇게 흩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순례자 유천하의 업적이 각인됩니다.]

[축적된 업이 이륜을 이루었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조금씩 무뎌져 가는 정신 속에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 유천하의 귓가로 그 목소리는 들려왔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마력 속에, 그의 손등 위로 스며들어오는 압도적인 기운 속에서-

그렇게 다시.

[새로운 등천자의 탄생을 축복합니다.]

[등천자 유천하의 이름이 세계에 울려 퍼집니다.]

그 목소리는 세계에 울려 퍼졌다.

막간 - 흔들림 속에서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순간의 나는 무척이나 어린 모습이었고, 그런 내게는 손에 든 검이 너무나도 길고 커다랗게만 느껴졌을 뿐이었다.

애초에 저렇게 작은 몸으로 어떻게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내 검은 끊임없이 흔들렸고, 또 휘청거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그 앞에서 아버지는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만 보고 계셨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꿈속에서 나는 빠르게 자라났고, 점점 성장해나가는 와중에 검의 궤적은 점점 올곧게 그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이 지나자 검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더 이상 내게 그 검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검의 궤적이 바르게 그어질수록 내 얼굴에선 표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 또한 ‘나’였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내가 지나온 길은 비워냄의 연속이었다.

현대에서 살아왔던 내게 무림은 너무나도 낯선 세계였고, 그곳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나는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온정도, 인의도, 평온도, 그리고 마음도.

나는 많은 것을 비워내고, 또 비워낸 끝에 ‘소교주 유천하’가 되어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흑색의 무복을 입은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 검에는 말라붙은 피가 엿보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귓가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부 비워냈더냐.”

하지만 아버지의 물음에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러자 아버지는 잠시 나를 지켜보더니 이내 한 번 더 말을 걸어왔다.

“천하야. 어디를 보고 있느냐.”

그리고- 다시 그 순간.

“······아.”

내 손에는 검이 들려있었고, 이 순간 아버지 앞에 서 있던 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나’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손에 그러쥔 채, 다시 ‘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검을 휘두르면서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조금 어안이 벙벙해지는 기분.

그렇게 어딘가 몽롱한 기분 속에 휩싸여 있자니 또다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내게 건네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무엇을 버렸더냐.”

뜬금없이 건네진 말이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버렸습니다.”

“그럼 무엇을 얻었더냐.”

“다시 저를 얻었습니다.”

“공空을 깨달았더냐.”

“보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이어나갔고, 그 대답에 아버지는 나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만상의 모든 것은 공허하다. 만상은 실유實有가 아니고, 다시 실상實相은 공空에 불과할 뿐. 허나 세상은 다변하니 너는 식識을 깨달아 이제서야 너를 알게 된 셈이로구나.”

갑작스레 흘러나오는 말. 지금 아버지가 설명하는 건 분명 유식唯識의 세계였고, 아버지께선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오셨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로.

아버지는 그렇게 다가오셨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다시 내게 물음을 건네셨다.

“이제까지의 삶은 만족스러웠더냐.”

“예. 만족스러웠습니다.”

“너를 버려내야 했는데도 말이냐?”

“그렇게 버려낸 것 또한 저였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았느냐?”

이건 분명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저 물음 속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물음에 대한 대답이 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리란 사실 또한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단호히 되돌아간 대답. 그 말에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고, 그런 아버지의 얼굴위론 인자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래. 비워냈으면 다시 채워야 하는 게 순리지. 그러니 너는 너의 길을 찾아내거라. 그것이 다음으로 향하는 올바른 정답이 될 테니······ 너는······ 있······”

그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허공 속에 흩어져가기 시작했고, 뭉개져 가는 세계 속에서 반대로 나는 점점 정신이 부상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교에서 벗어나 다시 세계로,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심상의 바닷속으로, 그렇게 어둠을 가르고 떠오르고 있던 내 정신은 그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기둥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 매여져 있는 열 갈래의 매듭.

무언가를 묶어놓기 위해 휘감겨진 매듭은 그렇게 흑색의 기둥을 부여잡고 있었고, 이제 그곳에 색이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건 오직 세 갈래의 매듭에 불과했을 따름이었다.

***

우웅-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진동음.

내 정신은 무언가 허전하면서도 상쾌한 기분 속에 서서히 깨어났고, 그렇게 나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탈력감 속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적막한 병실.

이미 자정이 지났는지 주변은 고요 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절했었나.’

위타극을 토벌하고 만상세계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 그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손등으로 몰려들었던 마력과 통증은 무뎌진 정신을 암전시키기에 충분했던 모양.

7성에 이르기 전까지 있었던 격전을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위타극에 비해 한 수가 부족했던 나는 녀석을 베어내기 위해 서로 맞찌르는 선택을 계속해서 강행했고, 그렇다 보니 서로의 몸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을 뿐. 물론 상대는 타천의 마인이었던 만큼 그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지만 그 순간의 내겐 그게 최선이었다.

당연히 7성에 이르고 나서부터는 다시 전황이 뒤바뀌긴 했다. 허나 그렇다고 흘린 피가 되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걸 증명하듯 지금도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또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존재하는듯했다.

‘역시······ 또 내력인가.’

나는 전신의 내력이 바닥에 가깝게 고갈되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천마신공이 처음 6성에 도달했을 때와 비슷한 경우였는데, 아무래도 7성에 막 도달했던지라 내력의 소모도가 급심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추후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7성을 운용하는 데 적응이 된다면 비효율적으로 소모되는 내력은 줄어들겠지만 전투 중에 바로 적응하긴 힘들었을 뿐.

그렇게 부족해진 피와 바닥난 내력은 내 정신을 암전시키기에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

그 사실을 체감하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보았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한번 치료를 거친듯한 상태였다. 그런 만큼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천천히 몸을 풀어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활성화되는 업륜.

우웅-!! 기절해있는 동안 회복된 모양인지 업륜은 힘차게 마력을 토해냈는데, 그 순간 내 손등 위로 떠오른 업륜의 형상은 더 이상 일륜이 아니었다.

평행으로 새겨진 이륜의 형상.

어둠 속에서도 엿보이는 마력의 산란.

“······좋네.”

나는 그 즉시 업륜의 마력을 내력으로 전환해 전신으로 흘려보냈다. 우웅- 그러자 녹아든 마력은 순식간에 내력을 회복시켰고, 텅 비어있던 내력은 순식간에 3할 가까이 회복되었다.

역시 내력이 차오르니 기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육신의 상태를 관조해본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고, 만상과 동조된 눈은 그대로 벽을 투과해 한순간에 건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옆방에서 온몸이 붕대에 둘둘 말린 채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이하린의 모습과 다시 반대편의 방에서 검을 붙잡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설아의 모습.

다행히 둘 다 무사히 치료를 받은 모양.

그 밖에 당직을 서고 있는듯한 간호사 외에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옆의 병동에 인기척이 몰려있는 걸로 봐선 다른 이들은 테러로 발생한 피해자들을 치료하느라 자리를 비운 게 아닐까 짐작해볼 따름이었다.

“······.”

그렇게 잠시 상황을 파악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복을 위해선 안정을 취하는 게 좋아 보였지만, 지금 부상이 그렇게 심각한 수준도 아니었고 기분도 조금 심란한 참이었기에 산책이라도 해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겪었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히 떠오르는지라 조금 심경이 복잡했던 탓.

그렇게 욱신거리는 발을 떼며 방문을 나선 순간. 끼익- 반대편에서도 동시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그곳에서부터 한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물론 그곳에서 나올만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고 말이다.

“······.”

“······아.”

갑작스러운 조우에 당황한 걸까?

남궁설아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

물론 나 또한 조금 전까지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어두운 복도에서 우리는 잠시 침묵을 공유했다.

“······저.”

그리고- 이내 어둠 속에서 남궁설아의 입이 열리며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달빛이 만연한 밤하늘 아래.

우리는 병원의 옥상에 서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로 온몸에 붕대를 칭칭 두른 상태였기에 몰골이 조금 우스웠지만 우리는 딱히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그 상태로 가볍게 안부를 나누었을 따름.

“설아씨는 부상이 심하셨던 것 같던데 벌써 움직이셔도 되는 겁니까?”

“예. 오히려 부상이 심했던지라 구원의 숨결에서 나온 분께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은 괜찮으신 건가요?’

“예. 그냥 피를 많이 흘렸을 뿐이지 따로 큰 부상을 입은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다행이에요. 정말로.”

애초에 나는 위타극과 맞찌르는 선택을 했을 때도 큰 부상을 입는건 피하는 걸 목적으로 공수를 교환했었다. 그렇다 보니 마지막 마무리를 할 때 어깨를 베였던 걸 제외하곤 크게 신경 쓸만한 부상은 없었을 뿐.

그것도 잠시 살펴보니 이미 치료가 끝난 상황이었던지라 이제는 알아서 회복되는 걸 기다려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

“······.”

어쨌든 그렇게 안부를 교환하고 나자 다시 우리 사이엔 적막이 내려앉았고, 그런 침묵 사이로 선선한 밤공기가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있던 남궁설아는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웠고, 그러더니 한 손으로 검을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그녀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조금 전 복도에서 마주쳤던 순간 그녀의 눈빛 속엔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고, 먼저 같이 옥상으로 오자 한 것도 그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말을 하려니 무언가 어려운 모양인지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

“······.”

그렇게 다시 한 번 침묵이 흘러가자 남궁설아는 이내 고개를 내젓더니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예. 그간 있었던 일도, 그 덕분에 제가 해낼 수 있었던 일도, 다시 이번의 일도. 모두 정말 몇 번을 인사드려도 모자라다 느껴질 정도입니다.”

역시 위타극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중간에 정신을 잃은 것 같더니 아무래도 남궁설아는 위타극을 베어내는 것까지 어떻게 지켜본 모양- 그렇게 짐작하고 있자니 내 생각을 긍정하듯 남궁설아는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제일 먼저 드려야 할 건 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르릉- 그녀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검을 뽑아냈다. 적막 속에 울려 퍼지는 검의 소리는 무척이나 맑았으나, 나는 그녀의 손이 무척이나 떨리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애초에 그건 당연한 이야기.

아무리 치유마법을 통해 회복을 시켰다 하더라도 이렇게 단번에 완치되기엔 남궁설아의 부상은 꽤 심한 편이었지 않았는가? 세 명 중에서 가장 위급했던 건 그녀였으니 그 여파가 남아있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일 뿐.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지금 그녀는 걷는 것도 힘든 상태일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궁설아는 통증 속에 떨리는 팔로도 그렇게 검을 들어 올렸고, 이내 역수로 검을 쥔 채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리고 그건 무척이나 익숙한 자세였다.

쥐어진 손과 다시 그 위에 펼쳐진 손.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자, 제47대 가주가 될 이로써 가문의 은공께 인사드립니다.”

그렇게 남궁설아는 내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고개를 숙여 보였고, 그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무수한 감정이 전해지고 있었다.

“저희의 원한을 갚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

갑작스레 건네진 감사인사.

그 순간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남궁설아가 주먹을 쥘 때부터 설마 싶긴 했다만 이 시대에서 다시 이런식의 인사를 받게 될 줄 상상도 못 했기에 순간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오랜만에 받게 된 인사에 마음속에서 묘한 향수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나는 이내 담담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냥 타천자를 토벌했을 뿐입니다.”

“예. 하지만 당신께서 위타극을 녀석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주신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고, 그건 이제껏 가문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

“당신이 어떠한 연유로 행하셨든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신 것도, 위타극 그자를 토벌하신 것도 모두 저로서는 너무나 큰 빚을 졌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남궁설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남궁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

“당신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검을 들고 달려올 것이고, 당신이 원하신다면 저희는 당신을 위해 검을 들어 올리겠습니다.”

“······.”

“이 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분명 피로가 깃들어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올곧았고, 또한 무척이나 맑은 기색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마음은 더욱 무거웠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원도, 무의도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것이었으니 어찌 이 세상이 무림이 아닐 수 있을까? 무림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내가 있는 곳은 무림이었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무림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건네진 말에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따름이었다.

“그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그 대답과 함께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미묘한 기분속에 휩싸였다.

분명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녀는 조바심과 절박함 속에 끊임없이 자신을 내몰고 있었다. 그렇게 흔들림 속에 힘을 갈구했던 그녀의 눈 속엔 많은 번민이 새겨져 있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어린 날의 내 모습마저 떠올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목소리에선 더는 조바심도 절박함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내 머릿속에는 조금 전 꾸었던 꿈의 기억이 다시 한 번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그 말을 건네었다.

“······검을 보여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

정말이지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설아는 아무런 의문 없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바로 옥상의 가운데로 검을 들고 걸어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천하씨가 오시기 전. 이번 싸움에서 저는 위타극의 도를 베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저 스스로 얻어낸 검이 아닌, 당신 덕분에 펼쳐낼 수 있었던 검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예. 그래서 사실 다른 누구보다 당신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그 말과 함께 떠오른 미소속에 그녀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온몸에 붕대를 두른 채로도, 중상에서 막 회복된 몸 상태로도 그녀는 그렇게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고, 그 순간 달빛을 받으려 푸른빛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한 그녀의 검.

그렇게 달밤의 검무가 시작되었다.

***

사실 남궁설아가 검을 들어 올린 이유는 저게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히 저런 이유만은 아니었을 뿐.

하지만 어떠한 마음속에 이리 된 건지는 그녀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 그 덕분에 해냈던 일에 대한 만족감, 그리고 다시 위타극을 토벌한 것에 대한 감사함. 그곳에 다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얹혀졌고, 아버지의 뒷모습과 겹쳐졌던 그 순간의 장면이 떠올랐기에 그녀는 검을 들어 올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그녀는 이내 생각을 털어내고 검을 휘둘렀다. 지금 중요한 건- 그저 유천하가 자신의 검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

바로 그것뿐이었으니까.

퀴이잉-

그렇게 달빛 아래 흐드러지는 검무.

그곳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그녀의 머리카락은 흩날렸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군청색의 궤적은 무척이나 올곧았을 뿐이었고, 소녀의 검은 그렇게 선을 그려냈다.

흔들리지 않고, 곧은 마음과 함께.

분명 남궁설아의 검이 지나온 세월은 흔들림의 길이었다. 어린 날의 기억은 그녀를 붙잡는 족쇄가 되어 그녀를 얽매었고, 그녀는 과거에 사로잡힌 채 조급함과 두려움, 그리고 다시 외면과 절박함 속에 끊임없이 흔들려왔으니 말이다.

그로 인해 그녀의 마음은 황폐해졌고, 그렇기에 이제껏 남궁설아의 과거는 서늘한 마음을 품고 끊임없이 휘청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검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 마음은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았다.

달빛을 머금고 뻗어 나가는 청색의 검로.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는 남궁설아의 모습은 마치 들판에 자라난 한줄기 꽃과도 같았고, 반짝이는 색채를 머금고 그렇게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유천하 또한 지금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그녀의 검을 바라보았다. 관찰도, 견식도 아닌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의 검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검이 자아내는 달빛의 춤을 바라보며 그는 무림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이 순간.

과거의 망념속에 사로잡혀있던 이들의 마음은 어느새 다시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봄날의 순간에서 싹을 틔워낸 군청색의 신념은 미소 속에 새롭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던 마음, 다시 흔들리지 않는 검. 그렇게 척박한 땅 위에 뿌리를 내려 다시 바람과 비에 젖으며 새롭게 피어났기에, 그리고 흔들림 속에 그 줄기를 곧게 세워 보였기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세워진 그녀의 검은 이 순간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중이었다.

작가의 말

+후기입니다.

드디어 두번째 메인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사실 본 작품을 구상하며 1화를 쓴 시점에서 이미 ‘무의 의미’ 에피소드와 본편을 구상해뒀었기에 이번 에피소드는 연재시작부터 계속해서 쓰고 싶었던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장르를 녹여내려고 한 글인만큼 무협이란 장르 하나만을 부각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유천하의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는 바로 무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쓰면서 자꾸 욕심이 생겨 타천의 마인 이후부턴 한편을 최소 2~3번씩은 갈아엎으며 계속해서 뜯어고쳤던 것 같습니다. 독자님들의 반응이 좋았던 무의 의미같은 경우는 한편당 4번씩은 다시 썼고, 본 막간은 왜인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7번이나 다시 썼습니다. 솔직히 그러다보니 이제껏 쌓아뒀던 비축분까지 대부분 소모해버려서, 제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들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글은 독자님께 보여드릴수 없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기에 미련하게 굴고 있을 뿐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엄청 만족스럽진 않으니까요... : )

⠀그렇다보니 이후에 연재를 지속함에 있어 제가 원하는 흐름이 제대로 보여지고 있는게 아니라, 단순히 하루하루를 떼우기 위한 업로드를 하는 경우가 생길것같다면 아마 바로 1주일정도 휴재를 선언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평소에 열심히 글을 써서 그런일이 없도록 해야겠지만... 아무래도 한편의 분량이 많은편이고 제가 손이 조금 느린편이라 어떻게 될지는 조금 두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따름입니다.

⠀그러니 추후 제가 갑자기 1~2주 정도 휴재를 선언하더라도 불안해하지 마시고, 그저 더 좋은 글을 보여드리기 위해 연독률이고, 돈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전체적인 글의 재미만을 생각해 결정은 내렸다 받아들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글의 흐름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드리자면, 이전에도 몇번 말씀드린적이 있듯이 저는 사건전개->보상->사건->보상 위주의 이야기보다는 어떠한 일을 겪음으로서 인물들이 외적/내적인 성장을 이루는것을 보여주는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본 작품에선 인물들의 감정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분량이 빌드업을 위해 사용되는 편입니다. 물론 독자님의 성향에 따라서는 무의미하고 지루한 이야기로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인물들의 감정과 깨달음이 단순히 감정과잉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장치가 활약하기 전까지 최소 수십편 전부터 조금씩 인물들의 이야기를 깔아두는 편이고, 다시 한참 뒤의 이야기를 위한 떡밥을 초반부터 조금씩 계속해서 뿌려오고 있습니다. 그저 직접적으로 설명하는걸 꺼려하기에 스리슬쩍 묻어놓았을 뿐이지요.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앞으로는 어찌 전개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연재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단 한편도 무의미하게 쓰인 이야기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불필요해 보이는데 비중이 크다 느껴지셨다면 죄송하지만, 저로서는 모두 필요하다 느껴져서 배치한 요소였습니다. 급작스러운 감정과잉이 되는것을 막기 위해서, 편의성을 위한 작위적인 요소가 되는것을 막기 위해서, 세계관 내의 개연성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서. 저는 느릴지언정 이야기의 입체성을 쌓아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물론 이게 보편적인 웹소설의 메인스트림에선 다소 벗어난 전개방식이겠지만... 저는 순간순간의 전개가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읽었을때 즐거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1화에서부터 그런 글을 지향하고 있었으니 이제까지의 이야기가 재밌으셨다면 앞으로도 이해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더 재밌게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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