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78화 (78/205)

타천의 마인 (3)

그림자를 휘감은 마율령의 팔.

칠흑의 별무리를 덧씌운 유천하의 검.

일그러지고 뒤틀린 팔과, 다시 일그러지고 깨져나가는 검이 맞부딪힌 순간. 타격이 교차한 자리로부터 막대한 기의 파랑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다고 너한테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냐 이 미친 새끼야! 제발 좀 꺼져!!]

콰과가가가-!!!

타점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여파.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그들이 맞부딪힌 땅이 박살 나 회오리를 자아낸다. 하지만 삽시간에 휘몰아치는 힘의 격류 속에서도 유천하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흐름을 비껴내고, 대기의 결을 흘려내며 그대로 마율령의 간극속으로 들어가는 검.

그리고 다시금 쏟아지는 맹공!

마율령은 마력 파동을 터트려 틈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한순간에 쏘아진 유천하의 쾌검은 흐름을 끊어버렸고, 이어서 변형된 팔의 무게로 밀어붙이려 했더니 흔들리는 검극은 그대로 그의 공격을 허공으로 흘려보냈을 뿐이었다.

쾌검에서 패검으로, 패검에서 중검으로.

중검에서 다시 유검, 유검에서 환검.

쾌快 패覇 강强 환渙 중重 둔鈍 유流

마율령의 대응에 따라 순식간에 뒤바뀌는 검의 형세는 수많은 갈래로 피어나왔고, 자신의 공세를 농락하다시피 이어지는 유천하의 검세에 마율령은 점점 다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크륵! 이 괴물 같은 자식!]

도대체 이건 뭐하는 새끼란 말인가!!- 마율령은 다급히 손을 뻗어내면서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자신도 어디 가서 꿇릴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실력이었으면 이 좆같은 세계에서 적원회주란 자리까지 올라가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녀석은 그런 자신을 순식간에 타천으로 내몰았고, 이런 상황이 된 순간에도 녀석은 자신을 농락에 가까울 만큼 일방적인 공세를 강요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

심지어 마율령이 마수에 가깝게 변용된 몸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오히려 유천하 또한 마율령의 움직임에 적응하며 더 살벌한 대응을 펼쳐냈다.

이게 진짜 말이나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기껏 타천을 했는데도 왜 상황이 아까와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대체 왜 이런 실력을 갖춘 녀석이 하필 지금 이곳에 와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마율령의 가슴속엔 다시 답답함이 쌓여갔고, 동시에 그 심장에서부터 그림자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여기서 뒤질 것 같냐? 그건 좆같잖아 시발······ 좆같다고 이 새끼야!!]

“······.”

그렇게 폭발하는 형체 속에 뻗어진 마율령의 손이 다시 한 번 유천하의 검을 붙잡았다.

그리고 마율령의 특성이 발현되는 순간.

퀴식-! 유천하는 그대로 마율령의 팔을 베어냈고, 그렇게 떨어져 나간 팔은 파동으로 변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콰과가가가-!!

허나 그 잠깐의 사이 동안에도 유천하의 검은 그림자에 갉아 먹혀 점점 끼긱- 실금이 새겨졌을 따름.

[내가! 내가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는···!]

“관심 없으니 닥치거라.”

하지만 유천하는 그에 개의치 않고 망설임 없이 검을 그어냈다.

퀴이잉-!

막대한 거력을 머금은 검이 시간을 가로질러 그림자를 베어 가른다. 휘둘러오는 팔을 무시한 채 안으로 파고들어 간 신형은 그대로 바람의 결을 타고 흐드러지듯 검극을 수놓았고, 춤과도 같이 움직인 검신은 그대로 일 검 속에 흐름을 담아내며 녀석의 육신을 베어냈다.

시간을 압축하고, 압축하고, 압축한 세계.

그곳에서 번뜩거린 묵빛의 섬광.

서걱-! 뒤늦게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땐 이미 마율령의 육신이 수차례 난도질당한 뒤였을 뿐이었다.

[----------------------------!!]

그 순간 마율령의 입에서 인지를 벗어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마율령의 본질은 한층 더 마수에 가까워져갔고,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은 기괴한 형태로 변형. 순식간에 마율령의 몸체에 6개의 다리가 돋아났다. 그리곤 흉물스러운 외형으로 변한 녀석은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도심을 내달리기 시작한 마율령의 몸체.

그리고 그 즉시.

후우웅-!! 마율령, 아니 이제는 마수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형상의 괴물의 몸을 향해 바람의 결이 휘몰아쳤고, 그 미약한 힘은 녀석이 뛰어오르는 순간 무게중심을 흐트러트림으로써 그 움직임을 방해했다.

[크륵···!]

허공에서 기우뚱거리는 마수의 형상.

그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육체를 변형시킨 녀석은 그대로 거미와 같은 모습으로 다리를 펼쳐내 주변의 건물들을 찍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꾸드드득-!!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콘크리트가 빨려 들어감과 동시에 마율령의 표피에 돌무더기가 돋아나기 시작. 그렇게 8개의 돌기둥을 만들어낸 마율령은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검강을 향해 그 다리를 휘둘렀고, 그에 유천하는 옆에 있던 건물을 박차고 중력을 거슬러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다시 한 번 교차하는 신형.

그리고 벼락처럼 뻗어 나간 일격!

-------------------!

순간적으로 뽑혀 나온 칠흑의 반월은 소리조차 베어버리며 마율령의 다리를 잘라냈고, 그 직후- 터져나오는 그림자의 파동.

콰가가가가가-!!

허공에서 터져 나온 그림자의 격류 속에서도 유천하는 아무렇지 않게 그 흐름을 응시하였고, 바람을 발판삼아 공중에서 회피기동을 펼쳐보았다.

후웅-! 뭉쳐진 바람을 내리찍고 쏘아지는 칠흑의 신형은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 마냥. 허공에 무수한 선율이 그어지며 칠흑의 색채가 종횡무진으로 한 폭의 그림을 자아낸다.

허공을 밟고 다시 허공으로.

하늘을 발판삼아 새겨지는 궤적.

그 사이에서 다시금 검로가 펼쳐졌다.

찰나를 격하고 뻗어진 검극은 구름을 가르듯 마율령의 몸체를 베어냈고, 그 순간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 반쯤 녹아든 근원석이 유천하의 육안에 엿보였다.

물론 근원석이 드러난 순간은 아주 잠시였을 뿐. 순식간에 꾸드득- 거리며 메꿔진 몸체 속에 마율령이 고통 어린 분노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크륵···! 도대체 어떻게···!! 너 같은 새끼가 존재··· 하는 거지? 캬큭···! 이 좆같은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냐! 도대체 왜!!]

육신의 목소리와 크르륵거리는 이형음이 뒤섞인 한탄이 그 입에서 새어 나왔고, 그 소리를 흘려들으며 유천하의 감각은 순간적으로 시간을 되새겼다.

지금까지 약 1분 30초.

최악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1분.

여유를 부린다면 최대 3분 정도.

그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유천하는 판단을 끝 맞춤과 동시에 다시금 금이 간 검을 휘둘렀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율령은 가슴속에 쌓인 답답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힘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 거냐? 크르···! 대체 왜 그런 힘으로 이런 짓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거지? 사람을 구하려고? 각성자에겐··· 크르륵! 의무가 따르니까? 크륵!! 그런 거냐?]

“······.”

[씨발···! 지랄 맞은 소리! 도대체 왜 힘을 가진 자가 눈치를 봐야 하는 건데!! 다른 사람을 왜 도와야 되는 거지? 왜 다른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지? 도대체 왜!!]

난데없이 쏟아져나오는 분노 서린 외침.

아무래도 침식에 뒤섞이면서 정신이 나간 모양일까? 마율령이 두서없는 외침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그것을 증명하듯 마율령의 형상을 이루는 마력은 점점 불안정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침식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원래 갖고 있던 광증인지, 혹은 융합을 통해 변형된 까닭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마율령의 몸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기세도 들쭉날쭉 기이한 파장을 쏟아내기 시작한 상황.

그렇기에 한 가지 확실한 건- 유천하가 보기엔 마율령은 점점 사람으로서의 본질을 잃어가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에서 마인으로, 그리고 마수로.

단 몇 분 사이에 진행돼가는 녀석의 변화를 바라보며 유천하의 머릿속으론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고, 그렇기에 유천하는 담담히 그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물론 서걱-! 검을 휘두르면서 말이다.

“그런 모습이 되면서까지 살고 싶었더냐.”

[크륵··· 살고 싶냐고? 살려달라면 살려줄 건가? 살고 싶다. 크르륵···!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원래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크륵!! 살려달라고 이 좆같은 새끼들아!!]

이제는 무공마저 까먹어 가는 모양인지 마율령의 팔은 아무런 형식 없이 유천하를 향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왜 좆대로 살면 안 되는 건데! 왜 이런 힘으로 빌빌거리면 살아야 하는 건데···! 왜 죽이면 안 되는 건데? 답답해. 답답하다고 씨발!!]

“너. 그거 병이야.”

[-------------------------------!!]

그저 단순하게, 직선적으로.

하지만 이미 마수에 가깝게 변용된 그의 육체는 이미 몇 배로 거대해진 상태였고, 유천하의 입장에선 그 공격을 최대한 허공으로 흘려보냈을 뿐이지만. 안타까웠던 점은 검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는 것.

콰아앙-!!

카각- 마율령의 팔을 막아낸 순간 뒤틀린 검신에서 비명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이 순간 다시 2분.

끼긱거리는 검신과 으르렁거리는 마율령의 모습을 마주하는 도중. 툭툭-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을 받아내며 유천하의 머릿속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

“······.”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

이러다가 이하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 나간 녀석을 상대로, 이래서야 정신 나간 짓거리를 벌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겠는가.

고작 사람들이 죽는 게 거슬려 내 스스로 위험을 부담하는 게 맞는 걸까?

물론 유천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평범치 않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전생의 지구와 환생 후의 무림. 그렇게 두 개의 세계를 지나쳐온 자신의 가치관은 분명 어정쩡한 색채로 뒤덮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것 또한 흑과 백이었다.

순례자의 길에서 사람들의 죽음에 불쾌함을 느꼈던 마음은 백. 거리낌 없이 마인을 죽이러 다녔던 순간은 다시 흑. 이 순간 무고한 죽음을 막기 위해 마율령을 향해 검을 뻗어내는게 다시 백. 그리고 이 모든 게 무의미하다 느낀 마음이 다시 흑.

그렇다면 이것은 위선인 걸까?

아니, 그는 선을 행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분명 자신은 선인이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악인은 아니었다.

그리고 멍청이 또한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한 줌의 마음조차 없다면 그걸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스스로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선에서의 온정이라면 베풀어도 되지 않을까.

유천하는 그렇게 생각했을 따름.

하지만 그건 소교주 유천하가 가지기엔 어설픈 마음이었고, 그렇기에 유천하가 무림에서 보냈던 지난 세월은 어찌 보면 온정을 버려내는 시간이라 봐도 무방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유천하의 머릿속으로 아까 마율령이 내뱉은 말이 스쳐 지나갔다.

이 힘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냐는 말. 대체 왜 그런 힘으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냐는 말. 힘을 가진 자가 왜 눈치를 봐야 하냐는 말. 교의 마인들과 너무나도 똑같은 말을 내뱉은 지라 솔직히 말해서 그로서는 조금 반가울 지경이었다.

또한, 그렇기에 혐오스러웠을 뿐.

그런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이 느리게 유영하기 시작한다.

왠지 모르게 이 순간 유천하의 머릿속에는 그 날의 문답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율령의 한탄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고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유천하의 귓가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을 따름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죽이지 않는 것도 그건 검을 든 자의 선택이지, 검의 선택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 유천하의 입에선 저도 모르게 한가지 생각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을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하더냐.”

[크륵···! 개소리야 시발! 그딴 데 이유가 어딨다고··· 크르륵!! 뒤져라 제발 좀!!]

콰아아앙-!!

기둥이 되어 내려치는 마율령의 팔.

그것을 막아낸 검극이 끼긱거린다.

점점 금이 가고 있는 낡아빠진 검신은 분명 소교주 유천하의 검이었고, 자신의 검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 다는 듯 거친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정식으로 소교주에 취임하던 날.

아버지께 선물 받았던 날카롭던 검.

어찌 보면 이 검은 자신의 의무를 상징하는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소교주가 된 이후부턴 한치도 몸에서 떼놓은 적이 없었고, 수많은 일을 겪은 와중에도, 이처럼 차원의 벽을 넘어온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앞을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검위론 점점 거미줄처럼 실금이 그어지고 있었고, 소교주 유천하의 의무 또한 이 순간에 와서는 과거가 되어버린 잔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인에 이유가 필요 없다면.”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 없다면, 다시 사람을 살리는데도 이유가 필요 없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 그 당연한 명제가 부정당하는 세계는 과연 얼마나 삭막하단 말인가.

하지만 무림은 삭막한 세계였다.

하지만 다시-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이곳은 소천마 유천하의 무림이 아니었고,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불살에도 이유는 필요 없겠지.”

애초에 자신의 바람을 무로서 관철하니 무인이었고, 그런 자들이 자신의 뜻을 내세우니 그렇기에 무림이었다.

그렇기에 분명 어린 날의 자신은 그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자신은 천마신교의 소교주였고, 그곳에서 그런 마음가짐을 관철하기엔 힘이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유천하는 소교주가 아니었다. 그저 이 세계에 흘러들어온 한 명의 사람일 뿐. 유천하는 금이 가기 시작한 검신을 바라보며 그 사실을 확연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떠한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분명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관철할 힘을 갖추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그저 원하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일 뿐.

이건 그런 문제였다.

소교주 유천하의 무림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 이 앞에 서 있는 건 ‘유천하’의 무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그게 이 순간 유천하의 머릿속에 든 생각.

그리고 다시.

‘3분.’

지금 중요한 건- 이제는 정말로 끝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이었고, 이 순간 가장 빠르게 마율령의 몸체를 뚫고 근원석을 꿰뚫을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했다.

‘······.’

그렇기에 순식간에 휘몰아친 고민 끝에 유천하는 선택을 내렸다.

이제까지는 어떻게든 부여잡고 이 순간까지 끌고 왔지만 이런 순간에서까지 집착하고 싶진 않았다. 어찌 보면 이 또한 마음이 흔들렸다는 증거였고, 마음이 여유 속에 좀 먹혔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뿐.

아니, 애초에 한계까지 내몰린 검을 언제까지 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러니 이제는 놓아줘야 할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련.

세계를 이어주고 있던 유일한 증거물.

그리고 자신을- 소교주 유천하를 대변하고 있던 하나의 검.

미련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의 손을 타고 패도적인 내력이 검신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직-! 내력이 주입된 유천하의 검이 한순간에 진동하며 깨져나갔고, 이미 한계치까지 혹사당했던 과거의 의무 위로 점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콰지직-!

[······너! 설··· 크륵!!]

순식간에 마율령의 팔을 베어 가르고 뻗어 나간 칠흑의 궤적. 그리고 그 궤적의 끝에서 검극이 겨누고 있는 방향은 그의 심장.

그곳은 그림자의 본질이 자리한 곳이었다.

그렇게 잔뜩 달아오른 검신이 그림자 속에 파고든 바로 그 순간. 콰아앙-!! 그의 미련은 칠흑의 별무리속에 휩싸여 비산하는 과거가 되었고, 깨져나간 미련은 그대로 마율령의 육체를 향해 공간을 격하고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

지나간 과거는 별빛이 되어 그림자의 세계를 꿰뚫었다.

***

투둑- 한두방울씩 떨어져 내리던 빗방울은 이내 점점 그 몸집을 불리더니 순식간에 도시를 적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흐릿한 하늘 아래 산산이 찢겨 나간 그림자의 몸체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그곳에서 금이 간 근원석을 가슴에 품은 채. 마율령은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을 뿐.

[아··· 시발. 이제야 정신이 좀 드네.]

“······.”

[내가 뭔 소리를 한 거냐 시발. 아. 존나 쪽팔리네 진짜. 야. 나 아까 그거 제정신으로 한 말 아니었다? 알고 있지?]

그리고 유천하는 그런 마율령에겐 눈길 조자 주지 않은 채 자신의 손을. 정확히는 손에 들려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반으로 깨져나간 검신.

투둑- 금이 간 검신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져 튕겨 나간다. 세로로 나눈다면 검극에서부터 몸통까지가 떨어져 나간 검은 그렇게 짤막한 몸체를 선보이고 있었다.

마음먹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역시 뒷맛이 깨끗하진 않구나. 유천하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검은 유천하가 무림에서 넘어왔다는 증거나 다름없었기에, 다시 소교주 유천하를 증명해주는 벗이었으니. 유천하는 이 순간. 중요한 무언가를 내버렸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 속에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유천하는 이내 감정을 털어내고 마율령을 향해 반 토막 난 검을 들어 올렸다.

[······아. 이대로 냅둬도 죽을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진짜.]

“······.”

이제 약 3분하고도 20초.

남아있는 업륜을 모조리 가속으로 돌린 채 뛰쳐나가도 이동하는 데 걸릴 시간을 생각하면 이젠 정말 떠나야 할 시간.

그렇기에 유천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이미 금이 간 근원석을 향해서, 그리고 마율령의 영혼이 자아내는 희미한 연결을 향해서. 반 토막 난 검은 궤적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런 궤적을 바라보면서도 마율령은 입을 이죽거렸을 뿐이었고 말이다.

[갈 땐 가더라도 담배 한대 정도는······]

서걱-!

그렇게 소리를 두고 그어진 검은 그림자를 베어 갈랐고, 산산이 조각난 그림자의 근원석이 허공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 씹새끼- 그렇게 허공에 떠오른 마율령의 얼굴은 마지막 말을 자아내었고, 그런 마율령의 몸체가 허공을 향해 터져나감과 동시에 유천하의 귓가로 세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상세계에 업적이 기록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유천하는 빗줄기를 맞이하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 뒤였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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