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1)
“······해서 차원단면의 트리거값을 추정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다시 해당 차원의 마력농도와 차원방벽의 쐐기점입니다. 물론 특이점을 바로 관측할 수만 있다면 다른 방법은 필요 없겠지만 그건 대부분의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하린은 강연대에서 흘러나오는 교수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멍하니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그 위로 손가락을 가져가더니 이내 고개를 휘저으며 다시 펜을 집어 들었고, 다시 얼마 안 가 멍하니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물론 그녀가 이러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수신 – 0 / 발신 – 27]
유천하를 마지막으로 본지도 벌써 나흘째.
남궁설아의 수련을 돕기 위해 안휘성으로 떠난 그가 이제껏 연락 한 통 보내오지 않으니 당연히 걱정되지 않겠는가?
하물며 유천하는 이하린에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고, 남궁설아 또한 그녀의 손으로 적어 내려간 소중한 아이였다. 그런 만큼 그 두 사람이 자신의 참견으로 인해 자신이 설정하지 않은 새로운 미래로 발을 들이밀고 있었으니 그들을 걱정하는 건 빙의자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뿐.
적어도······ 이하린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연락 한 번 정도는 해주지 그래도.’
이 아이는 정말 왜 항상 이렇게 신경 쓰이게 하는 걸까? 이 순간 이하린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그렇게 툴툴 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이래서야 언제 보여주게 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 그녀는 슬그머니 자신의 손등을 한번 바라본 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휴.”
물론. 유천하는 자신이 아는 수많은 이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었고, 그 실력만큼이나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무섭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에게만큼은 항상 상냥하고 착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이하린은 자신의 걱정이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쪽으로 신경이 쏠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에게도 남궁설아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한가득하였기에, 오히려 그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 씁쓸함만 더 부각되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한 번만 더.’
지잉- 그렇기에 이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선 무언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그녀의 가호 ‘저작권리의 가호’가 발동했음을 인식시켜주는 트리거였고, 세계가 그녀에게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다는 증거.
‘······역시 아직도 남궁세가에 있구나.’
그렇게 남궁설아가 아직 안휘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또 확인한 이하린은 자연스레 그곳에서 같이 수련에 몰두하고 있을 유천하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참고로- 저작권리의 가호는 상당히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알고리즘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이하린이 ‘원작’을 집필하면서 작성했던 수많은 설정과 인물들. 그 모든 일에 대한 정보와 파생정보를 그녀가 원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으로 제공해주는 개념의 가호였고, 그 정보량과 접근성만큼이나 상당히 뛰어난 성능의 가호였다.
하지만- 그 말은 즉.
반대로 말하자면 그녀가 직접 작성했던 내용이 아니라면 이하린 또한 그에 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다는 소리기도 했는데, 그나마 설정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다른 설정과 얽혀 있는 부분이 많았기에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지만 인물들에 관한 것 만큼은 정말 그녀 스스로 설정했던 인물이 아니고선 확인할 방도가 없었던 것.
이하린은 분명 이렇게 강의실에 앉아있는 상태에서도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진시우가 어젯밤에 마인 사냥을 하고 왔다는 사실도. 아리엘이 평소처럼 새벽 늦게까지 수련을 했다는 사실도. 이솔라가 악몽을 꾸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심지어 마르네가 지금 수업을 땡땡이치고 수련장에 틀어박혀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설정한 인물들에 관해서라면, 특히나 주연인물들에 관해서라면 많은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설정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그렇기에 이것은 세계가 그녀에게 전해준 특권임과 동시에 그녀가 이 이야기를 집필한 창조주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족쇄에 가까운 힘이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게- 그녀가 이제껏 남궁설아의 정보를 계속해서 확인했던 이유였다.
지잉- 세계의 지식과 동화되는 기분.
‘······걱정되게 진짜.’
하지만 티잉- 역시나 유천하의 정보는 알아낼 수 없었다.
자신이 써내려간 인물이 아니었던 만큼 이하린은 유천하에 대해선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었고, 그녀로선 오로지 남궁설아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유천하의 존재감을 확인해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난 나흘 동안 이하린이 남궁설아의 위치를 조회한 횟수만 해도 벌써 46번째에 달했을 정도.
‘안휘성에 있는 황혼탑이··· 4체. 여명탑은 16체. 역시··· 거기까진 아슬아슬하게 심연의 영향권에 있는 걸까.’
그 덕분에 이하린은 자연스레 안휘성과 합비에 생성돼있는 잿빛탑의 개수마저 알게 되었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진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정말 순수하고도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의 안위를 계속해서 체크해보며 이런저런 걱정을 해나갔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하린의 머릿속으로 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에는 아직 확인을 안 해봤구나.’
지난번 카룬드의 일을 겪은 만큼 이하린은 그 이후부터 주기적으로 가호를 발동시켜 ‘원작’의 주요 빌런들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었는데, 역시나 대부분의 빌런들은 시기에 맞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침 남궁설아와 유천하로 인해 신경이 팔려있던 만큼 4월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매일같이 확인하던 습관도 며칠 전부턴 다소 뜸해졌던 상태.
그렇기에 생각이 난 김에 조금 신경이 쓰였던 만큼, 이하린은 빠르게 가호를 발동시켜 원작의 위험요소들을 체크해보았다.
그렇게 이하린의 머릿속으론 순식간에 세계의 정보가 흘러들어왔고,
‘그림자 교단은··· 역시 라피냐한테 사냥당하는 중이고, 하르트는 똑같이 자유연맹에 의탁 중··· 그리고 위타극은······ 어?’
그 순간- 이하린은 덜컥 얼어붙고 말았다.
지잉- 지잉- 순식간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가호를 재차 발동시켜보는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세계가 그녀에게 전해주고 있는 이야기는 오직 조금 전 들려왔던 내용 그대로였을 뿐.
그렇기에.
쾅-!!
그녀는 이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강의 도중 갑작스레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그녀의 행동에 일순간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지만, 그 기묘한 정적 속에 생도들이 이하린을 바라보았을때는 이미 그녀가 문을 열고 강의실 바깥으로 뛰쳐나간 뒤.
그렇게 복도를 내달리는 그녀의 등 뒤로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걸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오로지 한 가지 사실만을 되새기며 다급히 발을 박차고 뛰쳐나갔을 따름이었다.
‘도대체··· 왜?!’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청두시에 있었던 자가 왜 갑자기 저곳에 가있는 건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가 있는 것인지도 그녀로선 알 수 없는 부분.
하지만.
지잉- 세계가 이야기해주는 정보가 그녀의 몸을 일으켰기에, 그 정보가 의미하는 게 너무나도 뚜렷했기에. 만의 하나에 가능성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기에.
‘타천자 위타극. 현 위치 안휘성. 합비.’
그녀는 게이트를 향해 달려나갔다.
***
서로의 몸을 겹치는 두 개의 검.
반동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상대의 검신을 꺾어내기 위해 내질러진 혼신의 일격은 그 순간 거친 비명을 토해냈다.
콰앙-!! 공동이 떨려올 정도로 거세게 맞부딪힌 일격은 그대로 막대한 기의 파랑을 토해내며 피처럼 붉은 불씨를 쏟아내었고, 굉음 사이에서 다시 한 번 패검이 작렬하였다.
전신의 힘을 그러모아, 한가지 극점으로 인도하여 오로지 눈앞의 존재하는 모든 걸 베어 가르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쏘아져 나가는 칠흑과 청색의 궤적.
큐융- 콰아앙!!
그 검들은 중검처럼 무겁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강검처럼 굳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저 패도覇濤를 자아냈을 뿐.
쿠구구구-!!
바람 한점 통하지 않는 폐쇄된 연무장 속에서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갔고, 그렇게 터져 나오는 굉음 속에선 두 개의 궤적이 실타래처럼 엉켜 들어 엇박의 박자를 자아냈다.
그리고.
쾅-!!
남궁설아의 검이 한순간에 허공을 가르고 날아감과 동시에, 텅 비어버린 그녀의 품으로 파고든 내 검은 그대로 그녀의 앞에서 멈춰 섰을 따름이었다.
퀴이잉-! 그렇게 자신의 목 앞에서 멈춰선 검신을 바라보며 남궁설아는 이내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아직도 두려워하시는군요.”
다소 뜬금없는 말.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한듯싶었다.
“의념은 믿음의 힘입니다. 스스로의 시간과 노력을 의심하지 마세요. 생사의 간극에서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딜 수 있어야 진정한 패검에 발을 들이는 셈입니다.”
“······.”
떨려오는 남궁설아의 눈빛을 바라본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검을 갈무리하였다. 그리고는 튕겨 나간 남궁설아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의념을 통해 공중에 떠오른 그녀의 검이 이내 나를 향해 날아왔고, 그 순간 남궁설아는 지금의 상황도 잊어버렸는지 나를 보며 나직이 감탄을 토해냈다.
“······정말 언제봐도 깔끔한 의념이세요.”
“별거 아닙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가볍게 흘리며 손으로 그것을 낚아챘고, 내 시야에 들어온 남궁설아의 검은 당장에라도 깨질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아직 4~5번은 더 버틸 것 같군요.”
“······.”
담담하게 흘러나온 말에 더 빠르게 떨려오는 남궁설아의 동공.
“그래도 교체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
그 모습이 재밌었기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지만 나는 이내 그 검을 구석에 던져버리고는 한쪽에 놓여있던 거치대에서 새로운 검을 끌어와 남궁설아를 향해 던져주었다. 그러자 몸을 움찔거리며 검을 받아내는 그녀.
조금 웃기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서로 검을 부딪치며 수련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이틀째. 그동안 검격을 교환하며 깨먹은 검의 개수만 해도 12개나 되었다. 그런 만큼 아무리 가속특성이 있는 남궁설아라 할지라도 수시로 전투 도중 검이 깨져나간다면 당연히 겁을 먹지 않겠는가?
솔직히 그건 누구라도 꺼림칙해 할만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거력이 실린 검의 파편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적인 공격과 다름없었고, 실제로 무림에서는 파검산이라고 검을 깨트려 공격하는 희한한 초식도 존재했을 정도.
그렇게 잠시 무림에서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다시 허리춤에 메여있던 검을 뽑아 천천히 살펴보았다.
역시나- 그녀의 검과 마찬가지로 당장에라도 깨질 것처럼 일그러져있는 검신. 내 검은 중원에서 이곳으로 처음 넘어올 때부터 이런 상태였지만 요 며칠간의 패검 수련을 지나쳤더니 상태가 더 심각해진 것이었다.
그전까진 위태로웠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젠 정말로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어지간한 상대라면 나뭇가지를 들고서라도 문제없이 대처할 수 있었고, 아직은 조금 더 버틸 수 있겠다 싶었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검을 내리고는 고개를 들어 남궁설아를 바라보았다.
“패검은 패도覇道의 자신감입니다.”
“······예.”
“다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한순간의 공격에 전념을 쏟아붓는 공격. 패覇란 말에 부합될 만큼 패도적인 기세로. 모든 걸 오시하겠다는 마음가짐 속에 뻗어져 나가는 검격.”
“······.”
“그게 바로 패검입니다.”
내 말에 남궁설아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왜 망설이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내 말에 조금 시무룩해지는 그녀.
항상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남궁설아였지만 수련에 들어오고 나선 조금씩 표정이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간의 일을 겪으면서 꽤 주눅이 든 모양.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가 이제서야 조금 17살짜리 아이처럼 느껴졌기에 나로서는 조금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지적은 제대로 해야 했기에 묵묵히 말을 이어나갔을 뿐.
“제가 설아씨에게 중검이나 강검이 아닌 패검을 권유한 까닭은 제왕검형이 본디 패검을 지향하는 검이기 때문이며, 설아씨의 습관을 제대로 교정하려면 검의 원형을 찾아갈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힘의 배분 말씀이시지요.”
“예. 그간 설아씨는 빠르기를 위해 몸에 여러 습관을 새겨놓았습니다. 빠르게 검을 내질러야 하니까 손목의 완급조절이 수시로 발생하고, 목표에 검이 닿았다 느끼는 순간 다시 검을 빼니 검격에 실린 힘이 온전히 상대에게 닿지 않는 겁니다.”
내 말에 그녀가 한 손으로 반대쪽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땅바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걸 제대로 교정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텐데 다행히 제왕검형은 패검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었기에, 설아씨는 선조들의 길들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단점까지 고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남궁설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지난 며칠간 상당히 좋아지셨습니다. 아마 마지막 망설임만 버리신다면 분명 카룬드정도의 방어력을 갖춘 상대라도 그 검으로 베어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정말인가요?”
“예. 그러기 위해서 지금껏 패검을 익힌 것이니까요. 안 좋은 습관들도 얼추 개선돼가는 중이니 조금만 더 노력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속도는 변속제어로 보조할 수 있으니 충분하고, 패검을 통해 온전한 힘을 온전한 극점으로 내보낼 수만 있다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약간의 칭찬을 건네주자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을 숨기려 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 꿈틀거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내던지세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인의 삶은.”
“투쟁이다.”
“예. 바로 그렇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하도 붙어있었더니 이젠 대화도 그럭저럭 잘 통하는 느낌.
“그럼 다시 한 번 해봅시다. 이번에는 깨지기 직전까지 놓치지 않는 걸로요.”
“······예!”
그렇게 남궁설아에게 적절히 채찍과 당근을 제시해준 뒤 나는 다시 검을 뽑아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아까처럼 서로를 검을 든 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잔잔하게 가라앉는 기세.
그리고 다시 터져 나오는 살의.
그렇게 고요함 속에 서로의 검이 망설임 없이 교차하기 시작한 순간.
콰아아아앙-!!!
그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
갑작스레 터져 나온 굉음과 함께 밀폐돼있던 연무장이 한순간에 흔들렸다. 지반 밑에 존재하던 시설인 만큼 외부에서 터져 나온 충격이 그대로 벽면을 타고 내부까지 전해진 것처럼 보였다.
콰가가가가-!!
그렇게 난데없이 울려 퍼진 굉음과 함께 우리는 서로를 향해 휘두르던 검로도 그대로 멈춰 세웠다.
그리고.
눈빛을 한번 교환한 뒤 그대로 바깥을 향해 발을 박찼다. 철그럭-! 한순간에 문을 열어 재끼고 지상으로 향했고, 그렇게 바깥으로 나온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게 대체?”
“······.”
도시 곳곳에서 피어나오는 연기.
콰아아아앙-!!!
그리고 다시 한 번 울려 퍼진 폭음!
이곳에 처음 방문할 때는 평화롭기만 했던 도시의 거리가 난데없이 전화에 휘말려 있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다시 한 번 남궁설아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
하지만 대화는 필요 없었다.
쾅-!! 지면을 부술 듯이 발을 박찬 우리는 그대로 도시를 향해 달려나갔다. 단순히 폭발이 한번 일어난 것 뿐이라면 모를까 저렇게 도시 곳곳에서 폭발이 터져 나온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었기 때문.
하물며 잿빛탑도 멀쩡히 있었으니 침식역류가 일어난 것도 아닐 터였고, 만상의 눈으로 지켜본 시야 속으로도 딱히 이상징후는 관측되지 않았다.
그러다면 도대체 왜 테러가 일어난 걸까?
갑자기 이곳이 왜 테러를 당한 것인지도, 그리고 도대체 누가 테러를 시도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몹시 위험한 상황이란 건 분명했기에 우리는 한순간에 거리를 내달렸을 뿐이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이상 위험성이 존재했기에 남궁설아는 놔두고 오고 싶었지만, 조금 전 있었던 순간의 시선 교환. 그 속에서 나는 그녀의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었기에 아무 말 없이 그녀와 함께 도시를 내달렸다.
콰아아아앙-!!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강렬한 굉음.
“속도 높입니다.”
“예!”
그 말과 함께 손등에 있던 업륜이 우웅- 마력을 토해냈고, 그와 동시에 내 몸에 가속이 발현되었다. 마찬가지로 남궁설아 또한 한순간에 특성을 발현시키며 우리는 초속의 세계에 접어들었다.
후우웅-! 풍결의 가호로 대기의 결까지 빗겨내며 가속된 우리의 몸은 한순간에 수백 미터를 내달리며 시가지로 접어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이 소동의 범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온몸을 핏빛으로 물들인 채. 도망가는 시민들을 향해 악의를 쏟아내고 있는 마인들.
“하하하하!!”
“다 뒤져라 이 새끼들아!! 하하!!”
만상의 눈으로 남궁설아보다 먼저 녀석들을 발견한 나는 그대로 천마신공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풀려나오는 다섯 갈래의 매듭. 바람이 내 발밑에 휘감겼고, 손등이 다시 한 번 마력을 토해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빨리 죽이고 다···”
“어딜 도···”
공간을 격하고 수십 미터의 거리를 넘어 그어진 칠흑의 궤적.
마인들이 나를 발견하기도 전에, 그리고 도망가는 사람의 등을 향해 총탄을 쏟아내기도 전에, 내 검은 그대로 마인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
“······?”
서걱- 뒤늦게 새어 나온 소리 속에 의아함을 담고 있는 얼굴들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푸슉-! 사방에서 핏줄기가 솟구쳐 나왔다.
그렇게 목 없는 인형들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허물어진 순간.
남궁설아 또한 이곳에 도착했고, 그녀는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마인!”
“침식 마인은 아닙니다.”
사방에 널려있는 시민들의 시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속에는 차가운 분노가 새겨졌고, 그녀로부터 싸늘한 살의가 피어나오기 시작했다.
나 또한 이 상황에 몹시 불쾌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기에 살의가 새어 나오는걸 체감했고, 그와 동시에 나는 만상의 눈으로 도심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의 상황은 마인들의 도심 테러.
제대로 된 정황파악은 힘들었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테러의 주동자 또한 이곳에 있을 터.
그렇기에 급격하게 느려진 시계속에서 나는 만상의 눈으로 원경을 투시해보았고, 세계와 동화된 내 눈은 마력의 흐름과 물질마저 투과한 채 도심 곳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를 배회하며 악의를 쏟아내는 마인들의 수는 분명 많았지만, 대부분은 조무래기에 가까운 수준.
하지만 유독 튀는 녀석들이 존재했다.
흉악한 기세를 숨긴 채 이런 도심 속에서도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들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남궁설아를 바라보았다.
“저는 저쪽으로 가보겠습니다. ”
“······예?”
“일반 마인들은 맡기겠습니다.”
“······!”
갑작스레 건네진 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그녀였지만, 이내 내가 어떤 종류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떠올린 모양인지 바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바로 발을 박차고 뛰쳐나가려는 순간. 남궁설아가 내게 손을 내밀어 왔고, 그건 역시나 익숙한 인사였기에 나는 그녀를 향해 마주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툭- 맞닿은 손등.
그리고 다시.
쾅-!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하린의 얼굴을 흘려내며 나는 지면을 박차며 뛰어나갔다. 이 정도 수준의 마인들을 상대로 남궁설아가 당할 리는 없을 테니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오로지 하나.
이곳에 있는 마인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