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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70화 (70/205)

마주하는 법 (2)

고개 숙인 그녀의 모습에서 각오가 느껴졌던 만큼 나는 그녀에게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답하였고, 그건 내 스스로도 이 일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쪽에 앉아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날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하신 말씀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요. 하지만 제 심경과는 별개로 두 분이 제게 그런 말을 한 까닭도 분명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그 사람에게도 당신에게도 패배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손이 미미하게 떨려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어도 괴로운 건 그대로일 테니까.

“그렇기에 저는 다른 분들께도 의견을 구해보았습니다. 제 검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요.”

“제대로 된 의견을 듣기 힘들었을 텐데요.”

“······예. 대부분은 타인의 무공에 관여하는 게 꺼려진다며 모호한 대답만을 돌려주셨고, 오직 몇몇 분만이 제게 비슷한 의견을 들려주셨을 뿐입니다.”

확실히 그건 누구나 꺼려할만한 행위였다.

물론 충분히 가까운 사이라면, 그리고 상대의 방향성이 명백히 잘못된 길로 향하고 있다면 타인의 무학에 참견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남궁설아에게는 그 정도로 가까운 사람도, 그리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해줄 만한 식견을 가진 이도 없었을 테니 이제껏 그녀를 바로잡아줄 이가 없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바였다. 애초에 그녀가 쾌검을 고집하는 게 잘못된 길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의견을 말해줬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남궁설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올바르게 조언해주려면 최소 의념과 상승무학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했고, 초식과 검형의 경계에 한 발자국이라도 발을 들인 자여야 했다.

물론 말로만 듣자면 딱히 어려울게 없는 것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걸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아직 나조차도 경계를 넘어서진 못했고 벽 앞에서 깨달음을 갈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중 철위강 교수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신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조금 흥미가 동했다.

“유천하 당신의 지적이 정답은 아닐지언정 제게는 가장 정답에 가까운 말이라고요. 아니, 오히려 련주님이나 검제께 부탁드릴게 아니라면 제게 있어선 당신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과한 평가로군요.”

“아니요. 과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 사람은 첫날부터 생도들을 지적했던 내용도 그렇고, 나와 남궁설아를 대련시킨 것도 그렇고 식견이 뛰어나 보였다.

물론 단순히 식견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미묘한 구석이 있었지만··· 적어도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맞지 않을까? 게다가 아마 익힌 무공이나 특성의 영향도 있을 거란 생각도 은연중에 들고 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또한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당신의 실력은 단순히 저보다 강하다, 아니다로 이야기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으니까요. 이렇게 함부로 짐작하는 것 또한 실례겠지만··· 당신은 최소 절정의 극의. 그곳에 발을 들여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짐작이라기엔 생각보다 정확했다.

물론 이제껏 그녀 앞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 단순히 몇 수 앞서는 걸로 설명하기엔 대련의 결과도, 환몽의 숲에서의 모습도, 그리고 침식역류 때나 마인 토벌 때의 모습도 조금 과했을 테니 말이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실력이 드러나는 것 정도는 크게 상관없었기에 어느 정도 대놓고 보여준 감도 없잖아 있긴 했다.

“그런 만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게 이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저를 찾아온 것 말입니까.”

“예. 연령대를 벗어나 생각해보더라도 당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분을 찾으려면 최소 하이랭커이상의 공략자를 찾아가야 할 테고, 그런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략에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있을 테니까요.”

“이해했습니다.”

“하물며 당신의 눈은 특별합니다. 그간 겪었던 일들을 통해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실을 말입니까?”

“환몽의 숲에서 제게 건네주었던 말도, 지난 사건 때 하셨던 말도. 모두 저와 처음 부딪혔던 첫날의 대련- 그 잠깐의 부딪힘 사이에서 간파하신 내용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내가 했던 말들을 돌이켜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검에 대해서도,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첫날의 대련 때 모두 파악하긴 했었다.

그저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었기에 이야기할 순간이 올 때마다 말을 덧붙여주었을 뿐이지 그녀의 검에서 패검의 흔적을 느낀 것도 그날의 대련 때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남궁설아에게 진짜로 그 말을 건네게 될 줄 상상도 못 하긴 했다. 아마 이하린만 아니었다면 은연중에 조언해주는 걸로 그쳤을 테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설아가 조심스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저물어가는 해를 등지고 내 앞에 선 채, 천천히 무릎을 꿇기 시작한 그녀.

“그러니 당신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남궁설아의 눈은 결연한 빛을 품은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다소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간단한 동작 속에 담긴 그녀의 절박함이 느껴졌기에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제겐- 그녀의 말이 이어짐과 동시에 서로의 눈동자 속에 서로의 모습이 담겨 비춰졌다.

“오직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

“당신이 저의 최선입니다.”

그렇게 그녀의 눈속에 담긴 군청색의 결의는 뜨거운 빛을 품고 나를 응시하였고, 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자꾸만 지난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였을 뿐.

“······예.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걸지도 몰랐다.

***

인적없는 깊은 숲 속.

그곳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학이란 확실한 정답이 없는 길입니다. 어떠한 깨달음도 결국 종래에 가선 한가지 길에서 마주치게 될 테니까요.”

“······만류귀종?”

“예. 바로 그것입니다.”

아까의 대화가 끝나고 난 뒤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방금까지 우리가 있던 곳은 항상 내가 수련을 하던 지맥이 위치한 곳이었고, 시간이 되면 그곳으로 이하린과 아리엘이 찾아올 테니 조금 신경 쓰였던 탓.

단순히 대련이나 의념을 가르쳐주는 거라면 모를까,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그녀의 검형. 그 밑바닥부터 간섭해야 하는 것이기에 다른 이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건 조금 곤란했을 따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설아씨가 나아가야 할 길 또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조금 더 빠르고, 그리고 탄탄하게 나아갈 방법이 존재할 뿐이지요.”

“그게 바로 이전에 말씀하신···”

“패검. 그리고 일념.”

그렇게 우리는 3학구의 숲 속- 하지만 원래 있던 곳에선 한참을 떨어진 곳에서 검을 든 채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왜 그 둘이 중요한지는 이전에 간략히 설명해 드렸을 겁니다.”

“예 기억하고 있어요. 제 검형이 어설프기 때문이고, 의념 또한 어설퍼 검이 흔들리기 때문이라 하셨지요.”

“그걸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 순간- 허공에 궤적이 그어진다.

가벼워진 손목. 끝 부분에 몰린 무게 중점.

그리고 최단거리로 쏘아지는 검로.

그렇게 연달아 터져 나온 내력은 팔에서부터 시작해 손목까지 한순간에 연이어 내달렸고 오로지 극쾌만을 추구하며 뻗어져 나간 검극은 한순간에 대기를 베어 갈랐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뻗어진 검극.

“!”

큉-! 뒤늦게 검명이 울려 퍼졌을 때 내 검은 이미 남궁설아의 바로 앞을 겨누는 중이었고, 갑작스레 뻗어진 검격이었기에 마음이 풀어져 있던 남궁설아는 속수무책으로 내 움직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지금 쾌검을 펼쳤습니다. 검이 어떻게 뻗어져 나왔는지 보셨습니까?”

“······예.”

그렇게 순식간에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검극을 내려다본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기본적으로 쾌검의 묘는 간단합니다. 공격이 시작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이 최단 거리로 이어지고, 공격의 무게보단 속도를 중시하기에 일반적인 검격보단 가볍게 쏘아지는 기예입니다. 쾌검을 사용하시는 만큼 이해하고 있으시겠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서늘하게 가라앉는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다른 방향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반대로 패검은 오로지 검격의 강세를 중요시합니다. 속도보다는 힘을. 거리보다는 힘의 중점을 중시하지요.”

나는 다시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잔뜩 힘이 들어간 팔이 뻗어져 나가자 일점으로 자리 잡은 힘의 흐름이 그대로 검극에 실린다. 그렇게 무게 중점과 힘의 극점이 같은 지점에 도달한 순간.

쾅-!! 터져 나온 내력은 패도의 기세를 품고 허공을 찢어발겼다.

일부러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바람의 결을 베어 가른 검격은 그렇게 대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멈춰 섰고, 이내 다시 검을 거둬들인 나는 고개를 돌려 남궁설아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패검입니다. 보셨습니까?”

“······예. 보았습니다.”

그녀는 난데없이 쾌검과 패검- 두 검을 연달아 펼쳐 보인 내 행동에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필요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기본부터 설명한다 느껴진 모양.

나는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럼 쾌검과 패검의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방금 말씀하신 대로 중요시하는 방향성이 다르다 생각합니다. 쾌검은 가볍고, 올곧게 뻗어지더라도 속도를. 패검은 느리고 동작이 커질지언정 강세를 중시하니까요.”

“예. 맞습니다. 그 둘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분명히 다릅니다. 누구나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중검, 강검과 비교했을 때 패검이 갖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중검은 무게, 강검은 힘의 기세. 그리고 패검은 다시 힘과······”

대답을 하려던 남궁설아의 입이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조금씩 달싹거렸다.

“······세 개다 힘과 무게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자세한 차이점은 잘 모르겠습니다.”

“예. 비슷합니다. 세 개 다 힘과 무게가 중요하단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 있고 패검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도드라지는 건······”

“도드라지는 건?”

“간단합니다. 패검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금 미묘하게 들리겠지만요.”

“······예?”

그녀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쾌검은 언뜻 보면 즉흥적인 검형처럼 느껴지지만 그게 아니란 걸 설아씨 스스로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아. 예.”

“공격이 단 일격으로 끝난다면 상관없겠지만 연격으로 이어지려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인 검을 추구해야 하니까요.”

“······예. 분명 그렇습니다.”

“하지만 패검은 반대입니다. 검이 신경 써야 할 건 눈앞의 상대를 베는 것. 검의 무게나, 속도, 위력 모두 고려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저 전심전력을 다 해 검격을 뻗어내는 게 패검의 가장 근본적인 뼈대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설아씨의 검형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

“패검이 내포하고 있는 방향성을 억지로 쾌검으로 틀어냈으니 어떻게 검형이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제대로 된 이해 속에 긴 세월을 들여 천천히 바꿨다면 모를까 억지로 바꿔내셨으니 당연히 무리가 갈 수밖에요.”

“어, 억지로··· 바꾼 건 아니었어요. 기존에 가문에는 패검의 묘가 담긴 검법도, 쾌검의 묘가 담긴 검법도 모두 존재했으니까요. 저는 정확히 말하자면 두 검법을 합쳐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왜 그러셨습니까.”

“······예?”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학이란 간단해 보일지언정 수많은 철학과 지식이 담겨있는 학문입니다.”

“······.”

“그런 만큼 제대로 된 무공을 창안하기란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고, 제 뜻을 온전히 펼쳐낼 수 있는 무공을 만드는 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무공을 창시한 이를 보고 사람들은 종사의 자질을 타고났다며 경탄하는 것이지요.”

내 말에 그녀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건 평소의 남궁설아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다른 표정이었다.

“하물며 전승되는 무예란 곧 사람의 업입니다. 지나간 세월 동안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고, 간단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모두 각각의 이유가 들어가 있지요. 부족한 이유는 후대의 전승자가, 미흡한 부분은 다시 후대의 전승자가 계속해서 보완해나가면서 다 같이 하나의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는 업의 축적입니다.”

“······하고 싶은 말씀은 그럼.”

“예. 설아씨가 한 행동.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저는 별도의 부언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허나 두 개의 무공을 합친다는 건 결국 그 무공이 내포하고 있던 방향성을 억지로 한곳으로 묶는다는 걸 뜻하고, 그건 솔직히 말해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정말 당연한 말이었다. 애초에 무공이란 대부분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 목적은 대부분 어떠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설정된 것일 테니 말이다.

물론 남궁설아도 그걸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 이해의 깊이가 얕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쾌를 추구하며 만든 검식에는 동작 하나하나마다 극쾌를 추구하고자한 세월이 담겨있고, 패를 추구하며 만든 검식에는 다시 검초 하나하나마다 패도의 극의를 추구하고자 한 흔적들이 담겨있을 겁니다.”

“······.”

“극쾌와 극패. 두 지점을 한 번에 충족시킬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단호히 그렇게 말했고, 내 말에 그녀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다급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 그런 검을 펼치시는 분도 존재합니다. 저는 그런 검을 본적이 있···”

“그건 그런 게 아닙니다.”

“······예?”

역시나. 그녀는 오해하고 있는듯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 설명을 덧붙였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말. 기억나십니까? 결국 만류귀종입니다. 쾌검도, 패검도, 중검도 모두 저희가 규정해낸 갈래일 뿐이고, 종국에는 결국 그 벽을 허물고 모두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나는 그녀의 시선을 들여다보았다.

“아마도 설아씨가 보신 건 결국 만검萬劍에 도달한 자의 검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말과 동시에 허공에 검식을 펼쳐보았고, 그 즉시 일천검결의 형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섬혼마검, 파천패력, 공추파성, 소혼난무, 암뢰, 일섬, 파력··· 각각의 묘리를 담은 검형은 순식간에 쾌검으로 화했다 다시 패검이 되었고, 다시 중검, 환검, 그리고 또 뒤섞여 한순간에 다른 검형으로 변화하며 이어졌다.

“···!!”

일검에서 시작된 갈래가 다시 만검으로.

만 갈래의 길을 다시 하나의 검식속에서.

그 모든 가능성은 하나의 검으로 하늘에 닿고자 했던 선조의 업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었고, 그렇기에 이 무공의 이름이 바로 일천검결一天劍結인 것이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만검을 펼치고자 하였고, 검의 형식을 벗어나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하나의 검에 서로 다른 극의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형식을 통해 자아내는 검도. 그리고 형식에서 벗어나 뻗어 나가는 검도. 모두 무결 속에 담긴 극의일 뿐이지 무의無意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저희의 상식을 넘어. 정말로 무극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런 게 가능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러지 못했고, 하나의 검형에서 추구할 수 있는 극의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벽을 넘어서려는 자들은 검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지요. 하나의 검형에 만검을 담을 수 없다면 하나의 검으로 만개의 형을 펼쳐내면 되는 것이니까요.”

이건 간단한 말이었지만 또한 어려운 말이었다. 이 사실을 직접 체감하지 못한 이가 듣기엔 막연한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직접 그 세계에 발을 들인 이에겐 그야말로 심오한 난제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남궁설아는 그 중간에 위치한 자.

“······.”

이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거세게 떨려왔고, 그 표정은 마치 이성적으로는 내 말의 진의를 이해하기 힘들어도 이제껏 패검을 쾌검으로 펼쳐내던 그녀의 본능만큼은 어느정도 내 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남궁설아에게 한가지 행동을 시켜보았다.

“한번 원래의 검형을 펼쳐보시겠습니까.”

“······예.”

갑작스러운 내 말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 그녀. 하지만 생각이 많아진 탓인지 남궁설아의 의념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 스스로도 그걸 느꼈는지 남궁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내 호흡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후웅-!!

한순간에 뻗어져 나오는 검. 그 검의 형식은 평소의 그녀가 펼치던 검보다 다소 둔중했고, 또한 거센 기세로 휘둘러졌다.

“······역시.”

하지만 나는 그녀의 검식을 바라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껏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던 부분이지만 그녀가 원형이 되는 검을 실제로 펼치는 걸 지켜보니 확연히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 스스로 인지하고 있던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남궁설아는 원형의 검을 펼치는 걸 망설이는듯한 느낌이었고, 그건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마치···

“혹시 두려우십니까?”

그 검형을 펼쳐내는 게 두려운 것처럼 느껴졌을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질문을 건네었고, 그 순간 움찔거리는 남궁설아의 손.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한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검을 펼쳐내는 게 두려우신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정말이십니까?”

“······예.”

그녀는 억눌린 대답을 토해냈지만 나는 그 대답에서 망설임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망설여 지는 것일까.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고, 그 원인을 짐작해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가지 묻겠습니다.”

“······.”

“혹시 설아씨의 아버님께서 쓰시던 검형이. 지금 사용하고 계신 검의 원형이었습니까?”

어린 시절 남궁설아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었던 건 그녀의 아버지일 터,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그녀가 사용하던 무공은 다시 그녀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무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검형이었다면 그 검을 펼칠 때마다 아버지가 위타극의 손에 죽었다는 게 떠올랐을 테고, 그 검으론 위타극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터. 물론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사람의 기억 속에 남은 화인은 쉽게 제거할 수 없는 법이었고, 나 또한 아버지가 주화입마에 접어들고 나서는 한동안 천마신공의 수련을 주저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그녀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줘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제가 무공을 처음으로 배우던 날. 스승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 특별한 말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 말을 항상 마음 깊이 유념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말에 남궁설아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을 따름이었고,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무인의 삶은 투쟁이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아버지의 얼굴.

낮은, 그렇지만 단호했던 목소리.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거라.”

어찌 보면 이 말은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저 말이 있었기에 나는 내 삶을 받아들였고, 이 삶을 마주하며 나아가고자 하였기에 나는 지금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까.

분명 삶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제자리에 서서 허물어져 갈게 아니라면 사람은 발걸음을 떼야 한다. 그 방향이 어디가 되었더라도.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 발걸음의 거리보단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렇게 말했고, 이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남궁설아의 눈이 거세게 흔들리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두려움은 미숙하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은 문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흔들리는 그녀의 검극. 나는 그곳에 손을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을 마주하세요. 그게 설아씨가 해야할 첫번째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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