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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67화 (67/205)

청백순정 (2)

“······예쁘다.”

아리엘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나 또한 그 목소리를 흘려들으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혹시나 싶은 상황을 대비하여 그녀들의 대련을 만상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내게는 그 말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이하린이 피워내는 백색의 검기도, 남궁설아가 쏘아내는 군청색의 검기도 모두 그 주인들을 닮아 흔한 색채가 아니었기에 노을빛 아래 산란하는 기의 입자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카가각-!!

물론 당사자들의 공수는 살벌하게 교차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

나는 그녀들의 격전을 묵묵히 관찰하였다.

분명 남궁설아의 검은 빨랐다. 이하린에 비해 3배에 가까운 속도. 그 차이는 생각보다 더 큰 편이었고, 그곳에서 나타나는 공세의 차이는 사실상 일방적인 흐름을 강요하고 있었다. 후발선제後發先制의 묘를 깨우친 게 아니라면 극복하기도 힘든 수준.

하지만 압도적인 빠르기로 그어지는 남궁설아의 연격에도 이하린은 자연스레 검을 들어 공격을 흘러내고 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 예측에 가까운 선행.

최적의 검형, 자연스러운 흐름.

그야말로 완벽한 공방 일체의 검로.

하지만 이하린이 후발선제의 묘리를 이해하고 검을 휘두르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건 그녀의 움직임에서도 명확히 드러나고 있었고, 그녀의 검은 남궁설아의 움직임을 읽고 대응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오로지 직감- 그녀의 움직임은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본능이었고 그건 곧 이하린이 지금 무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의념조차 몰랐던 아이라기에는 정말 빠른 성장속도.

그렇기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특성의 도움을 받는 것이겠지만 이하린은 어느새 새로운 벽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런 순간에 말이다.

***

사실 유천하로선 명확히 알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하린의 마음은 거세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녀의 검은 지난번 사건을 통해 수신의 극의를 추구하게 되었고, 그런 만큼 그녀의 검의와 의념은 다른 이를 위할 때 비로소 더 날카롭게 벼려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하린은 오로지 남궁설아를 위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남궁설아의 후회를 덜어주기 위해서.

미래의 저 아이가 슬퍼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록 검극이 향하는 곳이 남궁설아를 향한 것일지라도, 자신의 행동이 남궁설아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될지라도, 남궁설아가 겪어왔을 슬픔과 아픔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적어 내려간 것이기에.

그렇기에 이하린은 물러설 수 없었다.

남궁설아가 한계를 인정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위타극과 마주했을 때 더 크게 후회하게 될 테니까.

그런 마음을 검신에 담아 휘두르고 있었기에 이하린은 극명하게 드러나는 속도와 기본기의 차이마저 극복한 채 이 공방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녀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유천하가 짐작한 대로 이하린의 검은 이 순간 점점 무아에 접어들고 있었다. 물론 온전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갖고 있는 특성이 편법으로나마 그녀를 무아의 세계에 한 발짝 들여놓게 했을 뿐.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반인이었던 이하린이 빙의자로서 이 세상에 내던져진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자아낸 원죄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속죄를 위해 전장을 향해 스스로의 몸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검에는 형식이 없었다.

그 검은 세월 속에 쌓인 업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공을 배워서 싸워나가는 게 아니었고, 오로지 <검의 반려>의 도움 속에 속죄를 위한 일념만으로 그녀는 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 검은 쾌검도, 둔검도, 패검도, 강검도, 유검도. 그 무엇도 아닌 오로지 수신을 위한 검이었다.

처음 검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던 이 세계의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 그곳에서 비롯된 검로.

그녀 스스로의 마음과 <검의 반려>가 만나 자아내는 백색의 춤사위.

그렇기에 이하린은 경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초식이 없기에 모든 검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검은 초식이 없기에 강했고, 초식이 없기에 완벽했다. 그저 이제까진 기본기가 부족했고, 제대로 된 검의가 없었기에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만약 이하린이 제대로 된 무인이었다면, 특성을 통해 쌓아올린 실력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연마해 스스로의 업을 쌓아올려 이 경지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면,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이중 가장 뛰어난 검객은 이하린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이하린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그 가능성은 이 세계에서 오로지 유천하만이 짐작하고 있었을 따름.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지금의 실력만으로도 이하린의 실력은 남궁설아의 공세를 막아내기에 충분했다는 사실이었다.

큉-! 탄환처럼 쏘아진 찌르기.

무의식적으로 움직임의 전조를 읽어들인 이하린은 그 검극이 도달할 장소를 향해 자연스레 검을 내리그었고, 그와 동시에 캉-!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지며 남궁설아의 검이 튕겨 나갔다.

물론 그 즉시 남궁설아의 검은 벼락처럼 뻗어 나가 이하린을 향해 내리쳤지만, 첫 번째 방어에서 내리그은 검극이 우측으로 잠깐만 움직였음에도 그 공격은 가로막혔다.

카가각-!!

상단의 올려치기, 하단의 베어긋기.

중심으로 찌르기, 그리고 다시 내려치기.

쾅-!! 초속의 연전을 이어가며 어느새 그 속도에 적응했는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던 이하린의 이성도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아씨의 공격은 분명 빨라요.”

하지만- 그 말과 함께 이하린의 검세가 공격으로 전환된다. 쾌검의 세례 속에서 간신히 수비를 이어가던 백색의 검신이 이 순간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무 올곧아요!”

카앙-!! 한순간에 휘둘러진 검격이 교차하며 거친 불씨를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 이하린이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갔다.

“검이 시작되는 방향만 알 수 있다면 막을 수 있어요. 속도를 읽어낼 수만 있다면 뚫리지 않을 수 있어요!”

“······방어만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남궁설아가 분노를 토해내며 검극을 내질렀다. 맞부딪히는 서로의 검. 카가각-!! 하지만 한쪽의 검은 흔들렸고, 한쪽의 검은 올곧게 나아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러면··· 기회를 엿볼 수 있으니까요!”

캉-!! 백색의 마음이 청색을 빗겨냈다.

동시에 서로의 신형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검격사이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하린의 발걸음은 어느새 각자의 간극을 밟고 넘어가 남궁설아의 검역을 묵묵히 즈려밟았다.

마치 이 상황이 실전인 것처럼.

팔이 잘리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그렇게 이하린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남궁설아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카가가각-!!

검명이 토해지고, 무수한 잔상이 새겨지며 흩날리는 청백의 선율 속에서 이하린은 이 순간- 호흡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그녀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순백의 신념.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자세 그대로, 자연스럽게 피어난 백색의 별빛은 그 마음처럼 찬란한 빛을 품고선 소녀의 검을 받아내었다.

카가각-!! 다급하게 피어난 남궁설아의 검강이 불완전하게 휘몰아치며 이하린의 검과 교차하였다. 그렇게 군청의 후회와 순백의 결의가 부딪혔고, 서로의 마음이 순식간에 한점을 통해 얽혀들어 갔으며······

그리고 교차는.

퀴이잉-!!

다소 충격적인 결과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

“······.”

남궁설아의 검을 베어내고, 그대로 그녀를 향해 겨눠져 있는 이하린의 검. 그 검 위로는 새하얗게 빛나는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와 반대로 반쪽이 잘려나간 남궁설아의 검 속에선 청색의 기류가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푹- 두 동강 난 반쪽의 검신이 그대로 흙에 파묻힌 순간.

이하린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설아의 얼굴 위로는 무수히 많은 감정이 한순간에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는 그렇게 이를 악문 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분명 접전까진 예상했지만 나도 이런 결과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내 예측을 빗나간 결과에 조금 감탄스러울 정도였고, 아리엘 또한 다소 얼떨떨했는지 작게 입을 벌린채 이하린을 바라보았을 따름.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마주한 채 서 있던 이하린은 천천히 검을 내리며, 슬픈. 하지만 곧은 눈으로 남궁설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아씨가 약한 건 아니에요.”

“······.”

“제가 운이 좋았을 뿐이지 실전에선 분명 설아씨가 더 강할 거에요. 어떻게 보면 제가 수비에 적합한 편이기에 설아씨의 공격을 계속해서 받아낼 수 있었던 거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이런 저한테 발목이 잡힐 만큼 지금의 검은 한계가 뚜렷한 것도 사실이에요.”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말에 남궁설아는 넋을 잃은 얼굴로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한순간에 초췌해진 남궁설아의 얼굴 위로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는듯 싶다가도, 이내 다시 사라졌을 뿐이었다.

“······.”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패배했다는 건 사실이었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테지만 그간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모조리 부정당하는 기분은 분명 끔찍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나처럼 실력 차이가 명확히 나는 상대와의 대련이 아닌, 그녀와 엇비슷한 아니, 더 낮은 경지의 상대에게 진 것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이하린의 실력에는 나도, 아리엘도 상당히 놀란 상황이었다.

아니, 솔직히 나는 카룬드를 상대로 이하린이 마지막으로 보여줬던 한 수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는 만큼 이하린의 잠재력은 분명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 그 순간- 이하린이 피워냈던 의념의 칼날은 나조차도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올곧은 일념 속에 피어올랐던 것이다.

확실히 카룬드를 상대로도 혼자 버틴 게 우연은 아니었던 걸까?

아무리 그녀의 특성이 육체를 보조하고, 상승 무학의 영역이 의념에 큰 영향을 받는 법이라지만 마음가짐 하나로 이렇게까지 달라진다는 게 정말 신기할 따름.

그렇게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쾌검도 좋아요. 하지만 다른 방식을 응용해야 해요. 설아씨의 검은 너무 올곧으니까요. 그러니 쾌검도 좋지만, 설아씨의 특성인 변속제어를 살릴 수 있는 검. 당신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런 거에요. 예를 들어 둔검같은······”

아니. 그랬을 것이다.

“아니요. 그 말은 틀리셨습니다.”

“······네?”

내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갑작스레 끼어든 내 말에 울분을 삼키던 남궁설아도, 그런 그녀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하린도 모두 멈칫한 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둔검은 아닙니다. 물론 쾌검과 둔검사이의 변곡점이 하나의 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설아씨에게 어울리는 것도, 필요한 것도 그게 아닙니다.”

“······천하씨?”

내 말에 이하린이 약간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둔검의 극의는 호흡과 공간을 장악하는 것. 그렇기에 둔검을 수련하다 보면 설아씨의 단점도 분명 많이 개선될 테지요. 하지만 그게 최선은 아니며, 설아씨에게 더 적합한 길은 따로 있습니다.”

“······.”

“흐름을 간파하고, 호흡을 흐트러트려서 간극을 제어할 수 있더라도 결국 베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설아씨에게 필요한 건 쾌검도 둔검도 아닙니다.”

난데없이 시작된 내 말에 이하린도, 그리고 남궁설아도 제대로 따라오지 못했는지 그녀들은 아연한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 또한 이 상황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다.

타인의 무공에 간섭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만큼, 조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행동의 무례함을 아는 만큼 나는 어지간해선 남궁설아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게 조언만 곁들여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작에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이하린의 대사는 기어코 현실에서도 똑같이 펼쳐져 버렸고, 나는 그녀들이 이상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물론- 나름의 생각도 있었다.

내가 이하린이 쓴 ‘원작’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본 원작에서의 이하린은 분명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원작의 이하린은 지금처럼 남궁설아에게 둔검을 종용했지만 남궁설아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물며 원작에선 성취가 느렸던 이하린이었던 만큼 대련의 결과는 지금과 달랐고, 그렇기에 남궁설아를 온전히 설득해내진 못했던 것이었다.

허나 그 대련 이후 남궁설아는 변해갔다.

이하린이 엉엉 울면서 건네준 말에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그녀는 이후 쾌검에 대한 집착을 버렸고, 변속제어의 방향성을 모두 활용하며 검세의 형에서 벗어나 성장해 나갔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위타극의 검을 마주하게 된 순간에 제대로 피어났고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전생의 시절- 그러니까 단순히 내가 일반인이었을 땐 그런 전개를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등장인물이 성장했나 보구나.

딱 그 정도의 감상.

하지만 환생을 통해 무림을 겪고, 유식에 도달하기 위해 수양을 쌓고 있는 지금의 내게는 그런 이야기의 흐름이 다르게 다가왔을 따름이었다.

원작의 남궁설아는 둔검을 받아들였을까?

아니, 직접 그녀의 검을 마주한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둔검은 그녀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만 그건 결국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녀에게 놓인 길은 수많은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말했듯 이하린은 무학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소 무지한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원작의 남궁설아는 그저 자신이 나아갈 방향대로 나아갔을 것이다. 쾌검도, 둔검도, 패검도 끝내 가선 모두 한가지 길로 향하게 될 터였고, 검의 극의는 결국 한군데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만류귀종 萬流歸宗

모든 흐름은 결국에 하나로 향한다.

만검으로 갈라져 나간 검의 갈래도 결국에 가선 하나의 검에 담기게 되고, 초식의 벽을 허물고 검형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서 일검으로 만검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검의 극의.

내 검- 일천검결이 지향하는 바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검객이 추구하는 극의는, 그리고 원작의 남궁설아가 나아갔던 방향성 또한 바로 그곳에 있을 터였다.

그러니 남궁설아의 검도 언젠가는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에 도달할 것이다. 둔검을 깨닫게 되더라도, 그저 쾌검으로 꾸준히 나아가더라도. 깨달음의 갈래는 다를지언정 종착지는 한곳으로 향할 테니 말이다.

허나 모든 일에는 효율이 존재했다.

모든 인과는 시간의 흐름 속에 펼쳐지고, 남궁설아에게 필요한 깨달음은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 너무 많은 걸 필요로 할 것이었다. 그녀의 쾌검에 둔검이 접목된다 한들 그건 단점이 보완 되는 것일 뿐.

그러니 그녀의 검이 조금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올바르게 원래의 방향성대로 나아가려면 조금 더 효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다.

“설아씨에게 필요한 건.”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나침반. 그것은-

“바로 패검覇劍입니다.”

그렇게 내 말에 잠시 넋이 나간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설아씨의 검. 그 검의 원형은 변형되었을지언정 분명히 패검이었습니다. 검초의 곳곳에서 그 흔적이 묻어나고 있으니까요.”

이건 이전에도 그녀에게 말했던 사실.

남궁설아의 검- 그건 분명 패검을 기반으로 변용된 쾌검이었다. 나는 첫 대련의 순간 그걸 깨달을 수 있었다.

“둔검··· 예. 나쁘지 않습니다. 실전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둔검을 수련하면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은 많을테니까요.”

하지만-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본디 무공이란 세월 속에 쌓여온 사람의 업. 그리고 설아씨의 검- 그 검형을 만든 이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성은 분명 패도의 길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세월을 거쳐 패검을 통해 만검에 닿기 위해 정제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

환몽의 숲에서도 이야기했던 부분인지라 남궁설아는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위로는 다소 지친 모습이 엿보이고 있었다. 당연히 이하린에 이어서 나까지 이러고 있으니 당연히 머리가 복잡할 테지.

하지만 이왕 이하린이 시작을 끊어버렸으니 나로서는 그녀들이 제대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분명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쾌검을 통해서도, 혹은 둔검을 통해서도 그 끝에 닿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장 빠르고 안전한, 그리고 확실한 방법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남궁설아를 마주 보았고, 점점 투명해져 가는 그녀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말씀드리겠습니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목소리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길은 쾌검도, 둔검도 아닌 패검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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