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밤 (4)
다시금 적막이 찾아온 폐허의 밤.
그곳에서 시작된 살의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지만, 그 살의를 받아내야 할 것들은 이미 모두 그림자로 화해 허공에 스며든 뒤. 그렇기에 오갈 데 잃은 분노는 그저 그녀의 속을 들쑤셨을 뿐이었다.
“······.”
마인들이 활동하던 도시.
그리고 이제는 다시 폐허가 된 도시.
그 도시 깊은 곳에는 마인들이 사용하던 아지트가 존재했고, 방금전 우리는 그곳에 발을 들임으로써 한가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사방에 널려있는 화기와 시체들.
그곳에는 수많은 화기와 폭약이 정돈된 모습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혈마공의 성취를 높여줄 재료 또한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혈마공의 재료는 한가지였을 뿐.
“······.”
그렇기에 사방에 널려있는 사람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남궁설아는 여러 감정을 집어삼켰고, 이내 직접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시신을 하나씩 그러모아 바닥에 바르게 눕혀주기 시작했을 따름이었다.
묵묵히 사람들의 유해를 수습해주는 그녀.
하지만 나는 살벌하게 퍼져나오는 살의 속에서 그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 불편한 침묵을 견디다 못한 하오란이 말없이 우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정리를 끝낸 남궁설아가 몸을 일으켰고, 그렇게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하오란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그녀의 눈빛은 빛 한 점 없는 차가운 색채로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 전 마인들이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이자는 등천도시를 테러한 마인이 맞습니까?”
“······.”
북풍한설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
저 질문은 분명 내게 건네는 것일 테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하오란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 서늘함과 차가운 살의에 하오란이 움찔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라고 말씀드려도 믿지 않으시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확히는 침식마인이 아닌, 마공을 익힌 마인입니다.”
“······하지만 등천도시를 테러했다는 말은 사실이군요. 그렇다면 왜 도시를 테러한 범죄자가. 왜 당신과 함께 이곳에 있는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녀는 말을 짓씹듯이 또박또박 끊기는 목소리를 건네왔고, 난 그 목소리 속에 담긴 절제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아까 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남궁설아는 칼을 빼어 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지만 그나마 남궁설아는 이전의 행동을 통해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었던 건지 그저 가만히, 그리고 억눌린 분노를 조용히 표출했을 뿐이었다.
물론 하오란의 일은 나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그녀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그리고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사정을 설명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에 앞서 먼저 말씀드리자면 마공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녀석들이 익힌 마공··· 혈마공처럼 연공 방법 자체가 타인의 생명을 유린해야하는 사도邪道의 마공과, 그저 정형에서 벗어났기에 마도魔道라 불리는 외도外道의 마공. 그것을 통틀어 사마외도라 칭하지만 분명 갈래는 나누어집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던 무림의 지식이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알아본 결과 이 세계에서도 어느 정도 통용되는 개념이었다. 애초에 내가 살아온 무림과 조금 달랐을 뿐이지, 이곳에도 물론 무림이 존재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그리고 저자는 외도의 마인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하오란을 쳐다보며 그리 말했고, 그는 내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거리며 변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마, 맞습니다! 저는 무공을 연마한답시고 사람을 죽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대신 저자는 연마한 무공으로 사람을 죽였겠지요. 등천도시를 테러한 것처럼요.”
“······.”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에 하오란은 바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저건 사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이건 마인들의 대화를 통해 이미 들통난 부분이었던지라 변명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조금 곤란할 뿐이지 딱히 내게 피해가 갈만한 내용도 아닌 만큼 어설픈 거짓말은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애초에 나로서도 필요에 의해서 하오란을 살려둔 만큼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할건 아니었고, 하오란이 쓸모없는 녀석이었다면 나부터 바로 녀석을 죽였을 터였다.
남궁설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 그날의 테러로 몇 명이 죽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72명입니다.”
“예. 72명입니다. 당연히 모두 일반인들이었고,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던 어린아이도 있었으며, 자식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 가게에 들렸던 부모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기분이 조금 번잡해졌다.
허나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말을 수긍하였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고, 심정적으로는 나도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날의 테러가 일어날 때 저는 그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그럼.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왜. 왜! 저자와 함께하고 계신 겁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그리 대답했다.
그 말에 남궁설아는 호흡마저 멈춘 채 나를 바라보았고, 그런 남궁설아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주변을 가리켰을 뿐이었다. 마침 이 상황은 무척이나 적절한 변명거리였으니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시겠습니까?”
사방에 널려있는 시체들.
나는 손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저자 한 명을 연맹에 넘긴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수감소에 유치되거나, 사형당하거나 겨우 둘 중 하나뿐이겠지요.”
“······.”
“하지만 이렇듯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음지 속에는 수많은 마인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인들은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지금처럼 더 큰 피해로 되돌아 올뿐입니다. 그렇게 일이 벌어진 뒤에 움직여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날의 테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 기관이 있는 겁니다.”
“아니요. 저는 그날의 사건을 직접 겪으면서 느낀 바가 있습니다. 음지에 자리한 마인들을 대비하기엔 양지에 자리매김한 기관으로선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다른 이들을 믿고 가만히 있기보단 내 손으로 직접 주도해 나가는 걸 선택한것 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실제로도 저런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조직화함으로써 나타나는 일의 효율성은 일개 개인으로선 따라가기 힘든 법이었고, 분명 하오란을 연맹에 넘기더라도 내가 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로 돌아올 터.
하지만 내 최종적인 목적은 사람들의 구제가 아닌 위험의 제거였기에 이것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도 그녀의 과거를 알기에, 그녀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성의 이유를 말이다.
“그렇기에 저는 마인을 사냥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마인을 혐오하고, 제 손으로 마인들을 사냥하기를 원했으며 저자는 오직 그걸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한순간에 그녀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또한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자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방치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게는 저자를 제어할 수단이 존재하고, 제가 녀석을 용인하는 이유는 단 하나. 마인을 사냥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오늘처럼요-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고, 그런 내 태도에 남궁설아가 점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애초에 나는 그녀가 마인을 혐오하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대답했고, 역시나 내 생각대로 대답을 들은 남궁설아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을 뿐.
하지만 감정과는 별개로 신념 자체는 올곧은 아이였기에 내 말을 덥석 받아들이기는 힘든 모양.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그게 옳은 방법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옳지 않습니다. 저는 옳은 길을 선택한 게 아닙니다. 필요한 일을 선택했을 뿐이지요. 분명 저자는 그날 자신이 저지른 일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제 사적인 의도를 위해 그걸 유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대답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저자는 언젠간 반드시 자기가 치른 일의 대가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하오란의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모든 건 하오란도 동의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쓸모가 다한 녀석이 가게 될 곳은 연맹의 수감소였고, 그게 우리가 나눈 거래의 결과물이었다.
물론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녀석은 그날 죽었을 테지만 이게 내가 녀석에게 베풀 수 있는 자비의 한계였을 뿐.
“······.”
어쨌든 그런 내 태도에 남궁설아는 마치 시간이 멈춰선 듯 얼어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분명 그녀로서도 고민이 되는 것이겠지.
이 순간 그녀의 표정 속에는 많은 고뇌가 오가는 게 엿보였고,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면서도 그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보다 당당한 내 태도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공략자로서 납득할 수는 없는 걸까? 혹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아까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을까 걱정하는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한마디 말을 덧붙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이 말은 분명 숨겨진 의미 없이, 말 그대로의 의미를 품고 건넨 말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제가 설아씨를 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르게 들렸던 모양.
이 순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고, 그중에서 가장 짙은 색채를 발하는것은 두려움이었을 뿐이었다.
***
매캐했던 화약 냄새마저 가라앉고 어둠만이 자리 잡은 도시. 그곳에서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래는 마인들이 생활했던, 그리고 조금 전까지 유천하와 남궁설아가 존재했던 그 도시에는 다시 온전한 적막이 내려앉고 있었지만, 그 텅 빈 도심 사이로 뒤늦게 발걸음을 옮기는 한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마법으로 코팅된 로브 코트를 걸친 남자는 후드를 푹 눌러쓴 채 천천히 마력을 방사시키며 도심을 거닐었고, 그는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인들의 아지트’였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장소의 주인들은 몇 시간 전 그림자로 화해 터져나간 뒤였기에 그가 볼 수 있었던 건 사방에 낭자한 핏자국과 터져나간 화기의 잔해물. 그리고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는 일반인들의 시체들.
딱 그 정도였을 뿐.
“······허.”
그렇게 그 광경을 목도한 사내의 입에서 순간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자신의 시야로 들어오는 광경에 이게 함정인가 순간 의심했을 정도였지만, 이내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조용히 후드를 벗어젖혔다.
그러자 드러나는 건 푸른빛의 머리카락. 30대 초반, 아니 20대 후반이라고 해야 할까? 미묘한 연령대로 추정되는 얼굴을 한 남자는 조심스레 바닥을 짚고 마력을 퍼트렸다.
고오오- 그렇게 남자의 손을 중심으로부터 퍼져나간 마력의 그물은 이내 삽시간에 도심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 결과 남자는 이 도시에 남아있는 게 오직 생쥐 몇 마리 뿐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뭐야 이게.”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주머니에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곳에 마력을 흘리며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우웅-!!
“반응은 있는데··· 아무도 없다라.”
그가 꺼내 든 펜던트는 침식 마인을 탐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도 공학 품이었고, 펜던트 가운데에 박힌 보석이 멀쩡하게 울려대는 이상 그게 고장 났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장소는 맞았는데 다 죽었다는 건가?’
남자- 위넌트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경지에서 벌어진 인신매매의 흔적을 발견했기에 토벌에 나섰건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걸까? 그렇기에 위넌트는 가만히 자리를 쓸어보며 구석구석을 살펴보았고, 이내 그는 바닥에서 반짝거리는 작은 무언가를 발견해볼 수 있었다.
“······.”
순간 이게 뭔가 싶었지만 위넌트는 왠지 모를 익숙함 속에 그것을 계속해서 들여다보았고, 이내 그것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위넌트는 바로 팔을 들어 올려 워치를 조작하였다. 그러자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
[뭐야 벌써 끝났어?]
“아니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 무슨 소리야 그게.]
“글쎄요. 근데 도망친 것 같지도 않고 교전의 흔적은 남아있는 걸로 봐선 누가 와서 싹 다 토벌한 모양입니다. 다른 곳과 겹친 걸까요?”
위넌트의 말에 건너편에선 잠시 침묵이 맴돌았고, 얼마 안 가 다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적어도 내가 아는 정보 내에선 겹치는 곳은 없었어.]
“그렇군요. 역시.”
[역시···?]
위넌트의 반응에 상대방은 의문을 자아냈고, 그 반응에 그는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마인이 있던 도시, 하지만 모두 죽은 도시.
흔적을 봐선 누군가가 먼저 선수를 친 모양인데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가··· 그것이었고, 위넌트가 발견한 동그란 물체- 특별하게 가공된 단추는 이곳에서 발견하기엔 다소 뜬금없는 물건이었을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조금 재밌는걸 발견한 것 같아서요.”
그곳에는 있는 표식. 그리고 처리된 마법.
그건 등천회랑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
다시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해가 저물어가는 어스름의 시간. 오늘도 여전히 3학구의 숲 속을 방문한 나는 지금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는데-
“너···! 너! 그거 뭐야!”
-아리엘과 알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 중이었지만 이제껏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 건 한 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쏘아붙이는 그녀의 태도에도 나는 그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을 따름.
나는 의아함을 담아 그녀에게 되물었다.
“무슨 일인데?”
물론 그런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로 씩씩거렸지만 말이다.
“···무, 무슨 일?! 정말 몰라??”
“······?”
“보고서! 보고서에 쓴 거 뭔데 너!!”
“······아.”
나는 바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로 필수전공수업- 실전 전투 분석개론 시간에서 시행되었던 생도들의 배치고사 영상 분석은 기존에 공지된 대로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고 그 말은 즉- 4월을 넘긴 저번 주차에 와선 드디어 관찰이 끝나게 되었다는 말.
[실전 전투 분석개론 생도 관찰보고서]
[No.3804017 유천하 - 보고서 취합]
그렇기에 오늘 아침. 생도들에게 그 결과물인 관찰 보고서가 전달되었다.
그렇기에 아침부터 생도들은 서로의 내용을 공유하며 이래저래 북적거렸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관찰 보고서에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을 따름.
그 이유는 간단했다.
[대상자 유천하 / 작성자 아리엘]
[빠르면서도 확실한 일격. 해당 생도의 전투는 그렇게 요약된다. 전장을 살펴보는 판단력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단력이 특출나며, 고랭크의 마수를 상대로도 힘의 낭비 없이 일격으로 마무리하는 실력만큼은 별도의 부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
아침에 보고서를 받자마자 전부 훑어보기는 했지만, 아니나다를까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별거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강하다, 빠르다, 뛰어나다, 훌륭하다··· 등등. 어찌 보면 당연한, 그리고 어찌 보면 식상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고 크게 도움되는 내용은 없었던 탓. 물론 애초에 생도들의 역량과 배치고사라는 한정된 조건을 생각하자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게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설령 그런 역량을 갖췄더라도 저런 난이도의 시험 속에서 내 밑천이 드러날 리도 없었으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만큼 나는 관찰보고서를 받고도 별 감흥 없이 넘겨버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설마 기억 못하는 거야? 진짜로?”
아무래도 그녀는 아니었나 보다.
이 순간 아리엘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고, 노을빛을 머금은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오늘따라 더 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이 생각보다 격했던 만큼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 그녀의 관찰보고서에 뭐라 적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그때가 아마도···
“······뭐 한계가 명확해? 부족한 역량? 일정수준 이하의 적에게만 통해? 진짜··· 그렇게 써놓고도 기억을 못 한다고?”
“아.”
그녀의 말을 들으니 명확히 기억났다.
이하린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던 날. 그 다음 날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아무래도 전날 밤 이하린과의 일을 통해 조금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기에 나도 모르게 너무 직설적으로 적었던 모양.
확실히 내용을 조금 세게 적긴 했었다.
그렇게 그 날의 기억을 잠시 되새기고 있자니 그 순간 아리엘의 몸에서 강대한 마력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휘몰아친 마력은 역시나 특별한 형상으로 굳어져 갔다.
그러자 허공에 마력의 문자가 떠올랐다.
[(⊙_⊙)]
[(ʘ言ʘ╬)]
······그래도 내용 자체는 객관적으로 적은 바인데 아무래도 타격이 조금 컸던 모양.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표현이 조금 과하긴 했네. 미안.”
“과했어!! 특히 뒷내용은 더 심했···!!”
“근데 틀린 말은 안 적었다 그래도?”
“······.”
그녀가 굳은 듯 멈춰 섰다.
끼긱- 거리는 느낌으로 나를 바라본 아리엘의 표정 위로는 그녀답지 않게 많은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 그러는 건 분명 실례일 테니 나는 그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네 언령이 뛰어난 것도 맞지만 현재 네 수준에선 한계가 명확한 것도 맞아. 속도와 화력. 두 개를 한꺼번에 잡으려면 아직 개선이 더 필요한 부분이잖아? 특히나 언령에 저항할 수 있는 적을 만나게 된다면 그 부분은 더 크게 두드러질 테고 말이야.”
“······그건!”
“카룬드.”
그녀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려왔다.
“지난번 일로도 느꼈을 텐데?”
“······그거언··· 맞긴 하지마안······”
내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은 못 찾았는지 그녀의 고개가 점점 처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녀 스스로도 지적받은 내용이 틀리지 않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저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었기에 자존심이 상했던 거겠지.
그런 만큼 아리엘은 고개를 수그린 채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너. 미워. 진짜.”
[왜 그렇게 말해? (╥_╥)]
[너무해! 너무해! (T⌓T)]
그리고 당연히 그에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대답도 한정돼 있었고 말이다.
“······수고해.”
“이럴 땐 위로라도 좀 해주면 어디 덧나?”
순식간에 고개를 치켜든 아리엘이 내 팔을 찰싹 때려왔다. 딱히 아프진 않았지만 저번에도 그러더니 조금 어이없었을 따름.
그렇게 내가 말없이 아리엘을 응시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내 기감속으로 두 명의 사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음?”
다만 나는 그 기척에 다소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두 기척다 내게는 익숙한 이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 조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부스럭- 풀숲을 가르고 이하린과 남궁설아가 동시에 나타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