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밤 (1)
일렁거리는 공간의 단면.
나는 무심히 그 현상을 들여다보았다.
차원의 벽을 넘을 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지만 만상의 눈으로 들어오는 공간의 모습이 꽤나 신비로웠던 탓. 덕분에 게이트를 이용할 때면 항상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공간의 단면을 본다 해서 내가 그걸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이건 이능과 마법이 자아내는 영역이었고, 현상을 직시한다 한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에는 조금 익숙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당장은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만 혹시라도 공간계 특성을 사용하는 자와 싸우게 된다면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나는 조심스레 기척을 죽이며 도심을 벗어났다.
그렇게 최대한 모습이 찍히지 않게, 기록이 남지 않게 은밀히 움직인 뒤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고, 이윽고 나는 침식영역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간간이 가속마저 발현한 채 한참을 내달리고 있자니, 시야에 들어오는 잿빛탑이 점점 많아짐과 동시에 자연스레 사방에 돌아다니는 마수들의 비율 또한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대략 한 시간쯤을 그렇게 이동하고 나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한 도시의 모습.
아니, 분명 이전에는 사람이 살았을 테지만 이제는 그냥 아무도 없는 폐허가 되어버린 곳이었고, 나는 그 황량한 석재 숲에 접어들면서 만상의 눈으로 천천히 도심 속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자 물질을 투과한 시야가 기의 흐름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사람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접경지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그런 걸까. 다행히 수호자급 마수는 돌아다니지 않는 듯싶었다. 솔직히 여명급까지는 있어도 큰 문제가 없었던지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내 목적이 마수 토벌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시야를 돌렸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온 모양.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은 있었다만 그래도 정보가 맞긴 했나 보다.
그렇게 대략적으로 도시의 상태를 투시한 나는 사전에 이야기된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로 접어들면 보이는 기하학구조의 디자인 건축물. 이제는 허름해진 외견이었지만 특징은 살아있었기에 나는 금방 그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상대는 먼저 와 있었다.
하오란이 내게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오, 오셨습니까.”
“마인들의 규모가 이전에 봤던 정보보다 더 크군. 이곳도 적원회의 분파인가?”
다짜고짜 파악한 내용부터 이야기했더니 하오란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벌써 훑어 보셨습니까? 그··· 분파까지는 아닌데 적원회와 엮여있는 곳이긴 합니다. 규모는 아무래도 변동이 있었나 봅니다.”
“엮여있다?”
“예. 산하조직은 아니지만 주 거래조직은 맞습니다. 워낙 건수가 많은 녀석들이라 그나마 정보가 확실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되돌아온 하오란의 대답에 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전부터 의아했다만 침식마인이 어째서 조직을 이루고 있는 거지? 너희도 지난 테러 때 침식된 마인을 고용했었는데 따로 루트가 있는 건가?”
사실 원작에선 침식마인들의 행동 양상이 그다지 자세하게 묘사되진 않았었다. 그저 마인들은 사람을 증오하고 죽이기 위해 이런저런 사고를 쳤고, 이하린은 그들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 발 벗고 뛰어다녔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타천자와 얽힐 때가 아니면 생략되는 부분도 많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직접 침식마인과 마주한 입장에선 그 부분이 조금 의아했을 따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눈으로 바라본 침식마인은 단순히 타락한 인간이라기보단, 그림자 마수가 변용된 개체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공을 익힌 녀석들을 평범한 사람이라 부르기도 조금 그랬지만, 그렇다 한들 침식마인과 일반 마인을을 같이 묶기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침식마인들에게도 사람으로서의 자아가 있으니 목적을 위해 기본적인 수준의 행동은 할 수 있을 테지만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인 녀석들이 ‘일반적인’ 마인의 조직과 어울리는 게 조금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부분을 하오란에게 물어보았고 하오란은 그에 조심스레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침식마인이 사람을 증오하는 건 맞습니다만 사실 그 자식들은 그냥 사람만 죽이면 이렇든 저렇든 신경 쓰지 않는 놈들입니다. 기본적인 근간은 사람인지라 먹고 사는 문제도 있고 말입니다.”
“······그 말은 침식마인도 밥은 돈 주고 사 먹는다 뭐 이런 말이더냐?”
“아,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물론 검문이 활발하지 않은 접경지에선 그러고 사는 녀석들도 꽤 있긴 합니다만, 제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녀석들은 대부분 여기 있는 놈들처럼 침식영역에서 생활하면서 저희 같은 뒷세계의 인물들과 거래를 통해 물자를 조달받는 편입니다.”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인 하오란은 내가 뭐라 말하기도전에 빠르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녀석들은 침식영역에서 생활해도 무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수들은 침식마인을 건드리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보니 녀석들도 괜히 도시에서 생활하다 이면 기관에 발각될 바엔 이런 곳에서 사는 걸 선택하는 편이고, 저희 같은 뒷세계의 조직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때도 꽤 많습니다. 당연히 위치는 주기적으로 바뀌지만 말입니다.”
“······썩 좋은 도움은 아니겠군.”
“아······ 그, 그렇습니다. 무, 물론 조직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그··· 침식영역을 통한 밀수나, 접경지의 인신 매··· 저, 저는 그런 일은 안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순간 불쾌해진 기분이 얼굴 위로 드러났는지 하오란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나는 표정을 추스르곤 그에게 가볍게 손짓을 내저었다.
설명을 계속하라는 의미였다.
“어, 어쨌든 그렇게 도움을 받거나 따로 고용을 하게 되면 저희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고, 마인들은 말씀드린 방식으로 저희를 돕는 편입니다! 어차피 녀석들의 욕구는 사람을 죽이는 것뿐이지 착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 일반시민을 죽여야 한다. 이런 건 아니니까요. 저들끼리 사람을 죽이나 저희와 어울려 사람을 죽이나 딱히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군.”
확실히 그런 식으로 활동을 하는 거라면 원작 속에서 마인들의 배경이 따로 조명될 이유는 없었다. 저래서야 그냥 일부를 제외하곤 평범한 범죄자나 다름없었고, 이하린이 마인 토벌을 자행하긴 했지만 주로 집중된 부분은 주연인물들과 얽히는 타천자와 관련된 이야기뿐이었으니 말이다.
조금 궁금증이 해소된 기분이었다.
“이곳에 있는 녀석들과 거래해본적은?”
“아··· 직접 한 건 아니고, 다른 조직이 거래하는 건수에 얽힌 적은 있었습니다. 이쪽 녀석들은 주로 밀수를 하는 녀석들입니다.”
“밀수라면. 어떤 종류의?”
“그··· 화기나 사람입니다.”
애초에 살려둘 생각은 없었지만 조금 더 진지하게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수품의 내역이 불쾌하기도 했고, 위험하기도 했던 탓.
참고로 내가 지난 2주간 토벌했던 마인들은 주로 개인이거나 소규모 단위의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교전이 벌어져도 크게 무리 될 건 없었고 그나마 며칠 전에 토벌했던 조직은 규모가 좀 있는 편이었지만 대부분 순수히 무공으로만 싸움을 벌였기에 사냥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다.
하지만 수십 명 규모의 조직이 화기를 사용해 덤벼든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아무리 열심히 단련했더라도 급소가 파괴되면 죽는 게 사람이지 않은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현대의 병기는 조금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군. 그럼 슬슬 시작하지.”
“예.”
그렇기에 잠시 후 시작될 토벌을 생각하며 차분히 의식을 가라앉히던 순간.
“······.”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에 휩싸였다.
기감이나 감각에 무언가 걸려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의념을 일깨우던 순간 무언가 본능에 가까운 직감의 영역에서 난 부정확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신경이 거슬리는 느낌.
감각이 불쾌해지는 이 미세한 거슬림.
그건 무척이나 익숙한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그 순간- 만상과 동조된 눈은 물질을 투과해 원경을 바라보았다.
***
남궁설아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는 의식이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체감했다. 그건 접경지를 넘어 침식영역에 발을 들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녀가 생각했던 건 별게 아니었다.
만약 제 생각대로 그- 그러니까 유천하가 연맹특수군이나 이면순례자에 속한 인물이라면 그를 통해 이면기관과 접촉할 생각을 해봤을 뿐.
물론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남궁설아 또한 그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우선 유천하가 집행기관의 소속된 이가 맞는지 확인해본 후. 토벌을 돕는 식으로 접근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렇다- 남궁설아는 그런 목적을 갖고 유천하의 행적을 뒤쫓아온 것이었다.
물론 이미 지난번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으론 유천하를 미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였기에 평범하게 그의 뒤를 쫓는 것은 힘들었다. 유천하의 특성은 관찰계열이기도 했고, 기본적인 경지의 차이가 나는 만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그녀에겐 후각이 존재했다.
유천하의 체향은 굉장히 독특한 편이었고, 생각보다 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소 시간을 두고 쫒아가더라도 그녀는 그의 행적을 뒤 쫒을 수 있었다. 물론 인적이 드문 침식영역이기에 냄새가 뒤섞일 일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고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미행이라기에는 상당히 먼, 그러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유천하의 뒤를 밟을 수 있었고, 그렇게 그녀는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침식영역의 폐허가 된 도심 속에서 유천하가 은밀히 누군가를 만나는 모습을.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 폐허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냄새는 오로지 짙은 혈향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저 도시에 존재하는 건 오로지 마인 뿐이라는 사실을!
최소 열, 아니 스물 이상.
끈적거리는 그림자의 마력. 도심으로 이어지는 잔향은 그리 많지 않았고, 유천하를 제외한 모든 향은 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혼탁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구역질이 날 것 마인의 냄새는 도심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마인들이 거주하는 도시라는 말. 그리고 유천하는 그곳에서 마인을 마주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만약 유천하가 마인과 교전을 시작했다면 남궁설아가 불필요한 오해를 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머릿속엔 무수히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이렇게 은밀하게 마인과 접촉해서 대체?
그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목격한 남궁설아의 호흡은 잠시 흐트러졌고, 그 순간- 갑작스레 유천하의 고개가 그녀가 있던 방향으로 틀어졌다.
그리고는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
“···!”
멈춰있던 풍경 속에 유천하만 빠져나간 것처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와 같이 있던 남자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주변을 둘러보았을 정도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녀가 그 사실을 인지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머릿속엔 그날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기 시작했다.
2학구에서 유천하를 미행했던 날.
그날 일순간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 남자는 이내 순식간에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거리부터가 말도 안 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고, 아무리 유천하의 경지가 뛰어나다 한들 이 거리에서 자신의 인기척을 감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그녀가 착각했던 사실은 유천하의 눈이 그녀의 생각보다 더 특별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
등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남궁설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건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유천하의 모습.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 괴물 같은 남자는 정말로 그 거리에서 자신의 인기척을 느꼈다는 말! 그녀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의 긴장을 풀어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또한 은밀하게 특성을 발동시켰다.
그녀의 시간이 가속되기 시작했다.
“그건 제가 물을 말인 것 같군요.”
“······제가 묻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동시에 유천하의 무기질적인 시선이 남궁설아에게 맞닿았다. 그녀 또한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방금 옆에 있던 자. 마인이 아니었나요? 저는 당신을 신뢰하고 싶지만 이 상황은 오해하기 좋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말보다는 우선 제 뒤를 밟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조금 불쾌하군요.”
유천하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남궁설아가 빠르게 발을 박차 뒤로 물러섰다.
“아니요. 우선 멈춰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녀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거기서 제대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저자와의 관계는 무엇인지, 이곳에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를요. 제가 비록 당신보단 약할지언정 연맹에 연락하나 못 넣을 정도로 어수룩하게 단련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굉장히 무례하군요.”
“만약 모든 일이 제 오해였다면 무엇을 요구하시든 직접 무릎 꿇고 사죄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부탁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침착하게, 그러면서도 서늘하게 이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의념이 예리하게 피어올랐고 군청색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오해가 아니었다면 조금 조심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그런 그녀의 태도를 바라보며 유천하는 당연히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미행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으며, 이렇게 직접적인 태도를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조금 어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물론 다시 또 미행당했다는 사실 자체도 기분이 조금 불쾌했고 말이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복잡한 심경을 담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이해가 안 되는군요. 만약 오해가 아니었다면 이 상황이 굉장히 위험하다 생각되진 않으십니까? “
“위험하다 생각합니다.”
“생각한 다라··· 이걸 용기라 해야 할지 만용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둘 다 아닙니다. 상대할 자신은 없지만 도주할 자신은 있으니까요.”
“······.”
우선 가장 의아한 부분을 이야기했지만, 되돌아온 남궁설아의 대답에 유천하는 속으로 잠시 한숨을 내쉬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이 아이는 너무 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었다. 아니, 주연인물들의 대다수가 너무 극단적인 성향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하린도, 눈앞의 남궁설아도··· 그 외의 다른 아이들도 모두 침식과 관련된 일에 얽히면 너무 막무가내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안위보다 신념을 우선시하는 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분명 한순간만 잘못된 판단을 내려도 돌연사하기에 딱 좋은 태도.
솔직히 말해서 어린 시절의 저 자신을 보는 느낌도 없잖아 들었기에 조금 미묘한 감상마저 일어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그녀에게 몇 가지 충고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추후 이하린의 동료가 될 사람이기도 했고, 그녀의 사연이 조금 신경 쓰이기도 했던 탓이었다.
물론 기분이 썩 좋진 않았기에 부드럽게 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설아씨는 지금 세 가지를 착각하셨습니다.”
“······세 가지? 그게 무엇인가요.”
“첫 번째.”
그리고 그 순간.
“역량을 잘못 파악하셨습니다.”
“···그게 무.”
슨!- 눈을 한번 깜빡거릴 시간. 비유가 아닌 실제로 그 찰나의 틈새에 유천하가 남궁설아를 향해 쏘아졌다.
한순간에 최대로 가속한 남궁설아의 신형이 길게 늘어졌고, 그와 동시에 유천하의 손등 위에서 우웅- 업륜이 마력을 토해냈다. 그 순간 다시 유천하의 신형이 흑백의 잔향으로 늘어지며 공간을 격하고 달려들었다.
단 한 호흡.
서로의 신형이 수차례 교차했다.
수십 미터의 자리를 박찬 두 사람의 신형이 잔상을 남긴채 빠르게 교차하며 서로의 거리를 가늠했고 유천하의 눈은 흐름을 예측했다.
그렇기에.
“설아씨의 실력으로는.”
퀴이잉-!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제게서 도망치는 것 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녀의 목을 겨누고 있는 일그러진 검극.
처음 발을 박찼던 곳에서부터 수십 미터가 떨어진 어느 한 건물의 외벽을 등지고, 차가운 예기는 그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아시겠습니까?”
“······.”
손끝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그대로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것처럼 그 차가운 검신은 흉악한 살의를 토해내며 그녀를 찢어발기고 있었고, 그렇게 유천하가 뽑아든 검은 순식간에 대기를 격하고 쏘아져 그녀의 목에 당도해 있었다.
이 순간 남궁설아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