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역류 (4)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며 마수를 패대기치고, 군청색의 휘광이 번쩍거리며 마수의 움직임을 옭아매는 순간.
칠흑의 색채는 그림자를 가르고 지나갔다.
--------------------------------!!!!!
마력을 토해내던 부리가 잘려나가면서 어긋난 포효가 울려 퍼졌다. 무형의 압력이 쏟아져 나왔다.
콰아아아-! 그와 동시에 마수는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주변을 휘저었고, 그렇게 펼쳐진 날개를 향해 푸른 파동과 남색의 검기가 쏘아졌다.
우웅- 콰아아아!!
퀴이이잉-!!
하지만 날개 표면에 일렁거리는 그림자는 그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냈을 뿐.
“큭!”
“아 씨!”
쾅!- 걸리적거리는 인간들을 순식간에 쳐낸 마수는 자신의 몸을 베어낸 적을 노려보며 다시 마력을 토해냈지만 그 순간 이미 유천하는 마수의 감각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온 뒤.
그리고 서늘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서걱-!! 피륙이 갈라지는 날카로운 절삭음이 대기를 베어냄과 동시에 그대로 잘려나가는 마수의 한쪽 발.
--------------------------------!!!!!!!!
몸체를 구성하고 있던 마력의 흐름이 그대로 끊어져 버리자 마수가 비명을 토해냈다. 똑같은 일그러진 울음소리였지만 전자가 포효였다면 이번만큼은 확실한 비명이었다.
마수의 상처는 순식간에 꿀렁거리며 재생되었지만 마력이 끊긴 부분만큼은 그 몸을 휘감고 있던 압력이 현저히 약해졌기에, 그 사실을 파악한 다른 이들은 순식간에 그곳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마력 파동을 뿜어낸 마수는 거친 하울링을 토해내며 그대로 유천하의 행적만을 쫒아 몸을 튕겨냈다.
그건 온전한 인식 속에 이루어진 행동이 아닌 본능적으로 이루어진 일.
쾅! 콰광! 쾅쾅!!
폭음이 울려 퍼지며 무너져내려 가는 벽 사이에서 흙먼지가 피워 오른다. 주변에 산재한 건물을 들이박으며 벼락처럼 움직이는 묵직한 동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
허나 마수로선 유천하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유천하의 신형은 빌딩에 틀어박힌 마수의 몸체 위로 사뿐히 내려섰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잔해 사이에서도 그의 상태는 그저 평온했다.
그 순간 마수의 꿈틀거리는 눈동자가 유천하를 응시했다. 서로의 시야가 교차했고, 둘의 눈동자는 똑같이 시커먼 흑색이었다.
황혼급까진 이지가 없는 게 맞나 보군- 그런 생각 속에 유천하는 마수를 바라보았고, 비록 사람의 감정을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유천하의 무기질적인 표정은 마수의 흉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따름.
그 순간 다시 한 번 마력이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과과가-!!!!
연이어 20m에 달하는 몸체를 감싸고 있던 날개가 그대로 쭉 펼쳐지더니 주변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잿빛의 날개는 그렇게 수십 가닥의 채찍으로 갈라지며 순식간에 전장을 쑥대밭으로 휘저었다.
하지만 유천하는 공세의 틈을 밟아나가면서도 만상의 눈으로 마수의 형상을 끊임없이 응시했을 뿐이었다.
“······.”
이전의 유천하- 그러니까 특성을 개화하기 전까지의 유천하는 세상 만물이 하나의 근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했었다.
유형은 무형의 체계 속에 파생된다.
허나 유형을 이루는 건 별개의 요소.
삼라만상의 근간에는 기가 자리했고, 그건 물질과는 별개의 세계 속에서 만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근원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환생을 경험했던 유천하가, 본인의 눈을 통해 무림을 마주하며 느꼈던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만상의 눈은 소년의 세계를 한층 더 높은 곳으로 끌어다 주었다.
고오오오-
기는 근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생멸 변화를 이끌어내는 무수한 요소 중 가장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그렇다 한들 정확한 근원은 아니었다. 마력도 업도, 인과도 모두 다변 속에 세계를 이루는 요소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근원은 무엇일까.
삼라만상의, 생멸변화를 자아내는 근본적인 시작점은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 걸까. 전생의 지식과 현생의 지식. 스스로 겪어온 무수한 일과 이론은 만상을 직시함으로써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마음. 아니 염원.
단순히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닌, 그보다 조금 더 본질적인 이야기. 염원보다 더 염원에 가까운 만상의 시작점.마음은 무수한 인과를 틀어내며 생멸 변화의 만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건 인지함으로써 확립된다.
실존과 허상의 본질은 모두 인지에서 비롯된 일이었고, 생각함으로써 형질이 규정되며, 규정함으로써 실존한다.
그렇기에 세상은 다변한다.
그렇기에 즉- 본질은 공허하다.
그것이 만상의 눈을 개화함으로써, 그리고 업륜을 마주함으로써 유천하가 얻은 깨달음이었다. 아직 굴레를 벗어던지진 못했지만 유천하는 그렇게 그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오온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크-------------아아----!!!!
서걱-!!
의념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표상. 마음의 본질을 깨달아가는 유천하의 일념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졌다.
우우웅-!
스스로를 관조하고, 세상을 지각하여, 만물의 표상을 직시한다. 의지를 관철하여 생각을 일깨움으로써 무로 나아간다. 마음을 깨달아 영혼을 벼려낸다.
무아의 세계 속에서 유천하는 생사의 간극속으로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압도적인 마력의 격랑 속으로 나아가며 흐름을 인지했고, 다시 그것을 규정하며 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수놓으며 그어지는 유천하의 검.
그렇게 명정하게 연마된 칠흑의 궤적은 마력의 본질마저 베어내며 무아의 세계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수를 공격하던 그녀들은 지금의 상황도 잊어버린 채 감탄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무슨 귀신이라도 들렸냐 미친···!!”
“움직임이··· 너무 완벽해.”
빛살처럼 나아간 검극은 마수의 몸체를 깎아내렸고, 춤을 추듯 흘러나간 움직임은 그대로 마수의 전신을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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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베이는 즉시 근원석에서 토해진 마력이 마수의 몸체를 재생시키고 있었지만 그렇다 한들 피해를 무시할 순 없었던 것.
하지만 마수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우우웅-!! 유천하의 손등이 공명음을 토해낼 때마다 순간적으로 가속된 유천하의 신형이 마수를 베고 지나갔다. 다시 피하고, 막아내고, 베어낸다.
그야말로 한치의 낭비도 없는 운용.
이 순간 전장을 내리찍고 있는 단정한 살의는 천천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마수를 베어내고 있었고, 그를 돕기 위해 그리고 마수의 비행을 막기 위해 각각 마수의 날개를 공략하고 있던 마르네와 남궁설아의 뇌리로는 그 움직임이 점점 각인되어가고 있었다.
유천하가 강하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당연했다. 직접 겪은 것도, 눈으로 목격한 것도, 귀로 들은 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전에서 마주한 유천하의 실력은 그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강함? 아니, 단순히 강함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황혼급 수호자의 방어력을 뚫고 저렇게 격전을 이어나가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녀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건 별개의 요소였다.
쉬긱- 퀴이이잉!!
그의 검은 맹렬했지만, 움직임은 고요했다.
마수가 내뿜는 흉포한 포효소리도, 그 속에 묻어나오는 끈적한 마력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유천하의 검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것처럼.
마수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처럼.
그의 검은 자연스럽게 나아갔다.
그렇기에.
“······아.”
남궁설아는 이 순간 환희를 느꼈다.
고수란 무엇인가? 그건 결국 수가 높은 자를 칭하는 말이었다. 단 한 수. 한 수의 앞일지언정 현재의 너머를 내다볼 수 있는 자. 상대의 호흡을, 흐름을, 움직임을, 기세를.
모든 걸 읽고 한 수 앞을 앞서나가는 자!
무림은, 그리고 무인들은 이제껏 그런 자들을 ‘고수’라 칭송하며 우러러보았다.
그렇다면 유천하는 고수인가?
퀴이이잉-!!
남궁설아는 이제서야 유천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강했다. 자신은 강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단순한 이야기였다.
적을 죽이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이 아름답게 단조 되어 강렬한 의념을 피워냈고, 상대의 흐름을 읽고 그 앞으로 나아가는 검로는 마치 모든 게 짜여진 각본처럼 느껴졌다.
마력의 파동을 베어내며 나아가는 유천하의 검로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검무였다.
“아름다워······.”
그가 선보이고 있는 검로는 그녀가 바라는 이상에 가까웠다. 마치 풀고 있던 문제의 정답이 눈앞에 자리 한 듯, 그녀의 눈앞에 해설지가 펼쳐진 기분이었다.
---------------------------------------!!!!!
퀴기기긱-!!
마수가 포효를 터트린다. 그 칙칙한 몸체에서 쏘아진 깃털들은 끈적한 마력을 품은 채 주변을 꿰뚫었다.
“······.”
하지만 유천하의 검은 단 두 번.
남궁설아 자신이 열 두 번을 휘둘러 막아낸 공격을, 마르네가 있는 힘껏 파동을 흩뿌리며 튕겨낸 공격을.
그는 두 번의 검격만으로 떨쳐냈다.
다시 터져 나오는 마수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포효소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면 그건 착각이었을까? 아니- 남궁설아는 그게 착각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마수가 도주하기 시작했으니까!
콰아아아앙-!!!
온몸을 회전시키며 분열된 날갯짓으로 주변을 떨쳐낸 마수는 그대로 몸을 박찬 채 지면을 향해 마력을 쏘아냈다.
콰가가가가-!! 방대한 마력포화에 스스로의 몸이 깎여나가면서도 마수는 저 자신의 몸을 포탄처럼 허공을 향해 튕겨냈다.
“!!”
“아니 저 새끼가?!”
날갯짓에 튕겨 나간 마르네와 남궁설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오직 유천하만이 날갯짓을 베어낸 채 마력포화를 뚫고 마수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마수의 몸은 이미 순식간에 허공 너머로 솟구친 뒤. 그 중심지에서부터 으르렁거리는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짜증나는군.”
하지만 자해하듯 허공에 몸을 띄운 마수는 그대로 날개를 펄럭거리며 최대한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비행을 시작하였을 뿐이었고, 그 모습을 바라본 그들은 저마다 판단을 시작했다.
아직 마수의 높이가 그리 높진 않았다. 하지만 맨몸으로 다다르기엔 불가능한 높이.
“미친!!”
웅! 우웅!! 우웅-!!
마르네가 최대한 마력을 그러모아 마력의 창을 난사했지만 지상에도 뚫지 못한 방어를 이 거리에서 뚫을 리는 만무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마수를 쫒아가야하지.
남궁설아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고···.
“!”
한순간에 땅을 박차며 음속에 접어들었다.
마수가 이동하는 방향.
그곳에 놓인 한 건물.
본래라면 전망대로 쓰였을 고층의 빌딩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녀의 신형이 한순간에 도로를 내달려 목표했던 위치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팟-!
팔라조 롬바르디아- 그렇게 쓰인 건물의 벽을 박차며 그녀는 허공으로 도약했다. 건물의 외관은 매끈한 유리창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흡!”
챙-! 유리창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그녀의 발이 창틀에 맞닿는다. 웅크려지는 허벅지로 막대한 혈류와 내공이 모여든다.
그리고 다시 도약.
최대 속도로 가속된 그녀의 몸이 한걸음에 몇 개의 층을 뛰어넘으며, 순식간에 건물의 최상층을 향해 쏘아졌다. 외벽을 타고 상승하는 소녀의 신형.
휘릭-!!
음속에 가까워진 속도와 경공이 합쳐진 신기 속에 그녀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건물의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온도마저 달라진 고층의 마천루로 뛰어오른 남궁설아는 그대로 다시 한 번 옥상의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렇게 섬 찟한 바람 소리가 휘몰아치는 상공에 도달.
그곳에서 소녀는 마수와 마주하였다.
자신의 10배가 넘는 크기. 압도적인 체구의 괴물을 마주하면서도 그녀의 검에선 일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상에서 180m가량 떨어진 그곳에서 짙은 바다와도 같은 색채가 그녀의 검을 뒤덮었고, 그 순간 마수의 눈앞에 나타난 건 하나의 검.
그리고 그 검은.
퀴이이잉-!!
그녀가 이제껏 휘두른 그 어떤 검로보다,
그녀가 이제껏 피워낸 그 어떤 검강보다,
완벽한 선이 되어 그어졌다.
잿빛을 향해 쏘아지는 군청색의 일념!
카가가각-!!
하지만 부족했다.
캉-! 살을 베어내는 듯 싶다가도 순식간에 튕겨 나온 검은 그대로 건물 위로 팽개쳐졌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도 허공. 그러니까 말 그대로 허공 속에 튕겨져 나갔다. 그렇게 잠시 정체되던 마수의 몸도 더, 더 높은 상공으로 솟구쳤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이럴 걸 예상하였으니까. 이 약간의 시간. 그저 그걸 벌기 위해서 달려온 것이었으니까.
“······아까처럼!”
허공에 울려 퍼지는 외침.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솟구치는 한 명의 인기척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건물을 타고 달려온 한 사람의 존재를.
“······.”
그 순간 중력에 휩싸인 남궁설아의 눈은 중력을 거스르는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마치 아까와도 같은 상황.
아무 소리 없이, 눈빛으로 이루어진 대화.
그가 도달해야 할 곳은 아까보다 더욱 높아졌기에 남궁설아는 팔을 교차해 그를 향해 내밀었고, 유천하는 그대로 옥상을 박차고 그녀에게 뛰어들었다.
하늘에서 소년과 소녀의 신형이 교차한다.
두 손으로 유천하의 발을 받아낸 남궁설아는, 유천하가 발을 박차는 타이밍에 맞춰 그대로 그의 몸을 하늘 위로 내던졌다. 하늘을 향해 뻗어진 그녀의 손, 그리고 그곳을 박차고 튀어 오른 그의 신형.
후우웅- 쾅-!!! 그 순간 남궁설아의 몸이 지면을 향해 튕겨져나갔다.
순식간에 몸을 감싸오는 물리법칙 속에서 급속도로 추락하는 남궁설아의 몸과는 반대로 하늘로 솟구치는 유쳔하의 신형.
마수를 공격하며 튕겨 나갔던 만큼 이 순간 남궁설아가 위치한 곳은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순수한 허공이었다. 수백 미터를 박차고 뛰어올랐던 만큼 그녀를 기다리는 건 수백 미터 아래의 지면이었을 뿐.
잠시 상공에 잠시 부유하던 그녀의 몸은 중력에 휩쓸려 서서히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수를 향해 칠흑의 검강을 자아내는 유천하의 모습을.
그 곳에서 그어지는 아름다운 궤적을.
----------------------------------------!!!!
그렇게 지상에서부터 그녀의 몸을 받아내기 위해 쏘아지는 푸른 마력에 휩싸인 채, 남궁설아는 멍하니 그 궤적만을 바라보았다.
***
인정한다. 방금은 너무 안일했다.
유천하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마수의 특성을 고려했어야 했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인 걸지도 모른다. 유천하는 잠깐의 차이로 마수의 움직임을 놓쳤고, 그 잠깐의 차이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뻔했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어.’
남궁설아가 벌어준 잠깐의 시간은.
그를 이 자리로 데려다 놓았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손대중은 필요 없어.’
유천하의 눈은 이제 마수를 간파했다.
그건 단순히 만상의 눈으로 들여다보는걸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마수의 기세, 움직임의 규칙성, 외피의 방어력, 공세의 호흡, 마력의 유동성, 시선, 생각, 본능, 이성.
그 모든 걸 파악했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내면의 매듭이 모조리 풀어져 나왔다. 여섯 갈래의 매듭이 샅샅이 풀려나오며 막대한 거력이 유천하의 몸을 타고 내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우우웅-!! 유천하의 손등이 기이한 공명음을 토해내며 천마신공에 녹아들었고, 삼라만상의 업이 녹아든 마력은 그대로 한 가닥의 실타래가 되어 유천하의 매듭과 어우러졌다.
쿠우우우우-
그러자 검에서 피어오르는 칠흑의 별무리.
마치 하늘마저 베어버릴 듯 날카롭게 주조된 검날은 강렬한 살의를 품고 영혼의 날을 내세웠다.
---------------------------------············
그렇게 한없이 늘어지는 세계 속에서 유천하는 오온을 통해 세상을 직시했다.
마수의 거체, 그 중심부에 자리 잡은 막대한 마력의 진원지. 탑의 주인들이 ‘수호자’급이라 칭해지는 이유. 무한한 재생의 기반.
‘근원석은 포기한다.’
조금 전까진 괜히 근원석만 따로 분리할 수 없나 간을 보려다 마수를 놓칠뻔했다. 그야말로 바보 같은 실수.
그러므로 결단은 빨랐다.
여섯 갈래의 매듭과 한 가닥의 실타래 속에 쏟아져 나온 패도적인 기세는 한가지 일념 속에 녹아들어 허공을 베어 갈랐다.
잿빛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칠흑의 섬광.
휘두른 검에서 쏘아진 반월은 공간을 격하고 늘어져 마수를 향해 쏘아졌고, 찰나를 비집고 내달린 고밀도의 별무리는 하나의 궤적을 상공에 새기며 마수의 중심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동안 끊어낸 마력의 사이.
흐름이 끊긴 실낱같은 방벽의 틈새.
그 사이를 베어가르는 흑색의 선율!
쐐애애애액-!!
그렇게 뒤늦은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고,
콰직-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늘에서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근원석이 깨져나가는 소리는 이내 강렬한 폭발과 함께 메아리쳤고, 비명을 살해한 검은 마력은 그대로 한 곳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며 터져 나왔다.
콰과가가가가-!!!
그리고 그 마력의 소용돌이는 막대한 에너지의 파동을 허공에서 터트리며 마수의 잔재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잿빛으로 물들어가던 세계의 색채 또한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잿빛이 사그라지며 찾아오는 푸른 하늘.
[만상세계에 업적이 기록됩니다.]
‘···끝났군.’
유천하는 그 현상을 관측하며 밀려오는 기파를 흘려보냈다. 그리곤 흩날리는 마력의 잔재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중 일부의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기에 유천하는 천천히 내력을 갈무리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황혼급 마수여서 그런 걸까? 이 정도면 몇 달은 연공에 몰두했어야 얻을 수 있는 기운. 상당한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나쁘지 않아.’
역시 깨달음의 갈무리가 온전히 끝나고, 다음 경지로 나아갈 준비만 맞춰진다면 그때부턴 침식공략을 시도하는 게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유천하는 산산이 조각난 근원석의 부스러기를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흩날리는 마력의 잔재와 그 사이에서 추락하는 깨진 조각들.
‘······근원석은 아쉽네.’
근원석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떠올리며 아쉬운 마음으로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자니 그 순간, 유천하의 귓가로 한줄기 음성이 울려 퍼졌다.
[만상세계가 당신의 업적을 칭송합니다.]
[당신의 앞날에 만상의 축복이 깃듭니다.]
갑작스레 들려온 만상세계의 목소리.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마력.
그리고 그 순간.
[가호가 생성됩니다.]
세계의 가호가 그의 몸에 깃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