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역류 (3)
-캬하아악!!
“뒤져 이 새끼야!!”
왜 하필이면 지금!- 그게 이 순간 황찬룡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침식역류가 발생한 순간. 그들은 황혼탑 바로 앞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그런 만큼 한순간에 마력 파동에 그들은 그대로 휩쓸릴 수밖에 없었고, 정신을 차린 아이들이 상황을 이해했을 땐 이미 함께하던 연맹군의 반절이 정신을 잃은 뒤였을 뿐.
“큭··· 저, 저희를 두고 생도분들만이라도 어서 피하셔야······.”
“저희는···! 그런 거 안 배웠습니다!!”
“생도한테 그딴 소리를 할 시간에 폭탄이라도 하나 더 까세요!”
콰아아앙-!!
그나마 침식 방어전을 치르는 이들이었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무장이 갖춰져 있다는 게 다행이었고, 어쩌면 팀의 구성 또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각 라인별로 편성이 되었다는 것도 다행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크라아아아아!!!
“꺄악!”
“이 자식이!!”
피식- 콰아앙!! 그런 조건이 더해졌더라도 침식역류의 중심지에서 버티는 건 그들의 실력으로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을 따름.
“밀란! 괜찮아?!”
“···윽. 괜찮으니까 앞에 봐 병신아!”
“비키십시오!!”
투두두두!!!
콰아아앙-!!!
얼마나 더 버텨야 되는 걸까. 아려오는 팔에 내공을 순환시키며 황찬룡은 생각했다.
이제 역류가 터진 지 고작 1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토벌한 마수의 수만 해도 벌써 수십 마리에 이르는 수준.
역류가 시작된 근원지였던 만큼 그림자 마수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었고, 이 상황을 종결시키려면 수호자급 마수를 잡고 근원석을 박살 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선두 공략자가 아닌 일개 생도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애초에 생도들의 한계는 이미 진작에 찾아온 지 오래. 페이스 분배 없이 내달린 찰나의 격전 속에서 그들의 마력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저 포기하고 죽을 수는 없으니, 그리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최대한 힘을 쥐어짜 내는 중이었다.
그어지는 검. 휘몰아치는 마력.
총탄을 쏟아붓는 군인들과 함께 기절한 인원들을 보호하며 아이들은 터질 것 같은 호흡 속에 이제껏 배운 바를 쏟아내었다.
-캬하아악!!
쉬깅! 콰앙-!!
그렇게 달려드는 마수를 간신히 베어 넘긴 황찬룡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칠흑의 형상. 황혼탑에서 뛰쳐나온 수호자급 마수는 계속해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고오오오-
끊임없이 일렁거리는 부정형의 악의.
오감이 저릴 정도로 흉포한 마력.
그저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기운에 황찬룡은 끔찍한 기분 속에 휩싸였다. 온몸에 오한이 돋아났다.
“저 녀석···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생각인 거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야?!”
“가만히 있는 게 다행이에요 지금은!!”
“제발, 제발! 계속 저러고만 있어라!!”
당연히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상공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존재감에 서서히 정신력이 갉아 먹히는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 저런 걸 상대해야 한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렇기에 그들은 마수가 그저 허공에 계속 체류하고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
그 순간 하늘에서 마력이 터져 나왔다.
-----------------------------------!!!!!!
울려 퍼지는 마수의 포효소리. 그 압도적인 마력의 해일이 허공에서부터 터져 나오며, 그 속에 담긴 묵직한 압력이 끔찍한 부정사념과 함께 그들을 휩쓸었다. 그렇게 하늘에서 시작된 칠흑의 파동은 눈 깜빡할 사이에 그들이 서 있던 전장을 가볍게 휩쓸고 지나갔다.
쿠구구구구-!!!
하지만 그 효과마저 가볍지는 않았다.
“······윽!!”
“큭···! 이게!”
“···아악!”
“컥··· 커억.”
순식간에 들끓어 오른 마력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남은 연맹군들마저 일제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고, 생도들 또한 몸을 비틀거렸다.
후우우웅-!!!
설상가상. 이제껏 하늘을 배회하던 마수의 날개가 가지런히 접히며 그대로 지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낙하, 아니 돌진.
그 말이 더 어울리는 기세로 하늘을 가르고 떨어지는 검은 유성. 그 몸체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마력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기에 잿빛의 잔향을 허공에 새기며 떨어져 내리는 검은 별을 본 순간, 생도들은 절망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아.”
“······하.”
설상 저 공격을 막아낸다 하더라도 주변에 널린 수많은 마수와 저걸 동시에 상대하는 건 그들의 역량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 아니, 저 마력량만 보아도 그들로선 생채기 하나 입히기 힘들게 분명한 수준이지 않겠는가.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3초, 아니 2초쯤 지났을까.
마수가 다가오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그들의 머릿속엔 무수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는 걸까? 이렇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쓰러진 사람들도 모두 같이?
-----------------------------------!!!!!
그렇게.
거대한 마수가 그들의 눈앞에서 날개를 펼쳐내고, 난데없이 찾아온 인생의 끝을 실감한 아이들이 마지막을 수용하며 기절한 사람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마력을 피워 냈을 때.
쿠우우우우-
저 멀리서부터 날아온 푸른 마력은.
“어디서!!!”
콰과과과과-!!!!
한 줄기 파도가 되어 그곳을 휩쓸었다.
“감히!! 좆같은 마수 새끼가!!!”
하늘을 수놓은 푸른 물결.
마수를 밀어내는 마력의 파동.
콰아아앙!
그림자를 뒤덮은 마력의 해일에 생도들이 고개를 돌리자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한 사람의 모습.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끊임없이 마력을 쏘아내는 녹색 머리의 여인- 마르네 아일리시가 그곳에 서 있었다.
“여기 쳐다볼 시간에 공격이라도 해!!!”
그녀가 쏘아 보내는 마력의 파동에 마수는 한순간에 하늘로 밀려나 버렸고, 그에 마수는 불쾌한 울음소리와 함께 마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
후우웅- 콰아아앙!!
그러자 마수의 입에서 쏘아진 검은 마력.
“아··· 씹!!!”
웅- 우웅-! 우우웅-!!!
하지만 그녀로서도 수호자급 마수를- 그것도 황혼급 마수를 상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였기에, 마르네의 마력은 순식간에 밀려났을 뿐.
그렇게 지상과 상공. 그 중간의 극점에서 맞부딪힌 검고 푸른 마력의 포화는 서로를 밀어내며 막대한 파동을 내뱉었고, 푸른 마력은 삽시간에 지상으로 깎여나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도와주러 온 그녀마저도 순식간에 당해버릴 상황.
그제서야 정신을 회복한 생도들이 황급히 그녀를 도우려 했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들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이었다. 마수는 허공에서 마력을 토해내고 있었고, 그들 중 두 명은 평범한 무인에 불과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 멍청이들이 진짜···!! 큭!!”
--------------------------------------!!!!!
점점 밀려나는 마르네의 마력. 푸른 파도를 헤집고 날아가는 잿빛의 창은 그대로 마르네를 꿰뚫을 것처럼 쏘아지고 있었다.
콰가가가가-!!
쿠구구구구-!!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황찬룡은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녀가 당하면 지금 죽나 잠시 후에 죽나 똑같은 결과. 그렇다면 검이라도 집어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에 그가 남은 내공을 모조리 쏟아부어 검을 창처럼 잡아 들고 하늘을 향해 겨눴을 때.
그렇게 그는 볼 수 있었다.
퀴이이잉-!!
하늘을 향해 쏘아지는 두 개의 궤적을!
***
현장에 도착한 순간.
그 상황을 인지한 남궁설아의 신형은 한순간에 음속에 접어든 채 발을 박찼다. 옆에 있던 건물 위로 단숨에 뛰어 올라간 그녀의 신형이 그대로 건물 사이를 타고 옥상에 도달. 그리곤 한순간에 허공을 향해 발을 박찼고, 그렇게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일순간 단번에 30m 가까이 치솟은 그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도약력.
하지만 마수에게 닿기엔 부족한 높이였다. 그렇기에 허공으로 떠오른 군청색의 소녀는 생각했다. 검격은 닿지 않는다. 최소 한 번의 도약은 더 필요했다.
허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 온 건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고, 그녀와 같이 온 사람의 실력은 이미 제대로 견식한 바였으니까. 그렇기에 남궁설아는 아직 하강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상에 있는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그 잠깐의 시간. 찰나의 틈새에서 그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 즉시-
“···.”
“···.”
쾅-! 유천하가 발을 박찼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건물을 즈려밟고 뛰어오른 신형이 한순간에 허공을 향해 도약. 그렇게 한순간에 솟구친 칠흑의 궤적은 순식간에 그녀와 같은 높이에 도달했고, 이제야 막 중력의 손아귀에 붙잡힌 남궁설아의 어깨 위로 유천하의 발이 맞닿았다.
그리고 그녀를 밟고 다시 한 차례 더 도약.
파아앙-!! 공기가 터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남궁설아의 신형이 땅을 향해 쏘아졌고, 동시에 유천하의 신형은 하늘 위로 한 번 더 솟구쳤다.
거기까지가 현장에 도달한 시점부터 대략 1초를 반으로 두 번 쪼갰을 시간.
남궁설아의 육체가 땅으로 강하함과 동시에 포탄처럼 튀어 오른 유천하의 신형. 그 상황에서 유천하는 다시 한 번 검을 밟고 하늘을 향해 도약했고, 그와 동시에 의념을 통해 검을 회수하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처음의 시도부터 시작해서 이어진 세 차례의 도약은 유천하의 세계를 하늘로 올려다 놨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
이 순간 유천하는 마수의 눈앞에 자리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인간. 그에 마수가 의아함을 표출함과 동시에 유천하의 내면에선 매듭이 풀어져 나왔다.
퀴이이잉-!!
시작은 가볍게.
이 순간 유천하의 머릿속에 든 생각.
‘우선은 전력을 파악한다.’
천마신공 天魔神功
패도적인 기세로 터져 나온 칠흑의 기류가 검을 휘감고 하나의 검신을 자아냈고, 날카롭게 벼려진 의념이 맹렬한 파괴력을 직조해내며 검은 별무리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격.
‘공추파성 攻錐破城.’
콰아아아앙-!!!!
--------------------------------------!!!!!
굉음과 비명이 울려 퍼진다.
중검의 묘리가 담긴 칠흑의 별무리는 망치질을 하듯 마수의 몸통을 내리쳤고, 그렇게 마수의 몸체는 중력에 못 박혀 땅바닥을 향해 급속도로 팽개쳐지기 시작했다. 마수의 포효와 어우러진 굉음이 소리의 잔향을 새기며 허공 속에서 길게 늘어졌다.
쿠우우-!!!
“한 번 더 찍어!!!”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재촉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그대로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하강.
천근추의 수법으로 가속한 유천하는 다시 한 번 검극에 힘을 집중시켰다. 패와 중. 그렇게 두 개의 묘리가 섞인 움직임은 거력을 머금은 채 그대로 마수를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천마신공 天魔神功
일천검결 一天劍結
제마검형 際魔劍形
‘파력 罷力’
슉- 콰아아앙!!!
허공에서 터져나오는 강렬한 굉음! 중력과 무게 중점이 몰려든 검극이 마수의 후두부를 강타함과 동시에 유천하와 마수의 동체가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칠흑의 별.
추락하는 샛별은 그 거대함 몸체에 맞게 한순간에 중력에 휘감겼고, 그렇기에 마수의 몸체는 순식간에 지상에 도달했다.
쿵-!!! 드드드- 육중한 몸이 지면에 맞닿음과 동시에 막대한 질량감이 느껴지는 굉음이 울려 퍼지며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건물들이 일제히 떨려왔다. 저 거구는 지면에 도달하는 것 만으로도 파괴적인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다.
“비켜 이제!!”
우웅-! 콰아아아!!
하지만 지면에 도달하기 직전에 유천하는 이미 마수를 짓밟고 허공으로 도약한지 오래였고, 그곳으로 다시 마력의 파동이 해일처럼 쏟아졌다.
쿠구구구구-!!
--------------------------------!!!!!
울려 퍼지는 포효소리.
마력 파동에 휩싸인 마수를 바라보며 유천하는 방금의 감각을 되새겼다.
마수를 강타했을 때 느꼈던 검극의 느낌.
휘몰아치던 마력의 반탄력.
‘내구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야.’
녀석은 생물체의 수준은 확실히 벗어났다. 아니, 애초에 생물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소리였지만 탄성, 강도, 반탄력 모두 상당했다.
단순한 방어력만 고려해보자면 카룬드가 더 강했지만, 그건 카룬드의 특성이 강체화였기 때문이지 전체적인 마력의 양만 보면 비교할 수 없는 수준. 게다가 그림자 마수인 만큼 재생력도 뛰어나지 않겠는가?
유천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슈- 콰아아앙!! 마수의 입에서 쏘아진 마력포화에 마르네의 파동이 밀려나자, 그 즉시 남궁설아가 가속을 발현한 채 마수에게 달려나갔다.
“큭!!”
“가세하겠습니다!”
퀴이이잉-!!
동시에 허공을 박찬 유천하의 몸이 궤적을 그으며 마수의 날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베어낸다는 일념 속에 벼려진 영혼의 날이 검신에 서리며 그어지는 칠흑의 실선.
서걱-!!
카가각!
그렇게 방어력을 뚫지 못한 남궁설아의 검이 마수의 몸에서 튕겨 나옴과 동시에 유천하의 검강이 마수의 날개를 베어냈다. 그러자 베어낸 날개가 그대로 허공 속에 녹아내리며 막대한 양의 마력으로 화했고······
그리고 그 순간.
--------------------------------!!!!!
“!!”
그 중심지에서부터 그림자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한순간에 마력으로 화한 몸체는 압도적인 열량을 품고 사방으로 뿜어졌다.
콰가가가가!!!
“큭!!”
“꺄, 꺄아악!!”
“아 씨발!”
갑작스레 터져 나온 마력의 파동.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그림자의 물결.
그 압도적인 마력방사에 아이들은 일제히 휩쓸려 튕겨져 나갔고, 그 마력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사방으로 휘몰아친 푸른 파도가 기절한 사람들을 영역 밖으로 날려 보냈으며, 중심에서 뻗어나온 칠흑의 반월은 파동을 베어 갈랐다.
그 결과- 맹렬한 증오가 담긴 마력은 한순간에 주변을 공백으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텅 비어 버린 도심의 가운데서 이 순간 즉각적으로 그림자를 상쇄하며 자리를 지킨 이는 고작 셋.
“윽··· 타입은 비행종, 속성은 파동형과 부정형의 이중복합. 마력량은 최소 5000 AC. 마력방벽의 내구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괴물이에요.”
코앞에서 파동에 휩쓸려 비틀거리면서도 냉철하게 마수를 분석하는 남궁설아.
“···마력량 한번 존나게 많네. 야! 미안한데 네 공격밖에 안 통하는 것 같다 이거.”
다른 이들을 날려버리느라 파동에 직격당해 피를 토해내면서도 기세만큼은 변함없는 마르네 아일리시.
그리고.
“토벌은 내가. 날지만 못하게 막아.”
유천하.
온몸에서 칠흑의 기류를 내뿜으며 마수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검신에서는 당장에라도 마수를 두 동강 낼 듯한 살벌한 예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수의 입에서 흉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그 거체를 중심으로 세계가 색채를 빼앗기듯 잿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수가 품고 있는 근원석에서부터 본격적인 침식역류가 시작되었다는 증거.
그걸 확인한 이상 멈춰 설 시간은 없었다.
피부가 저릿해질 만큼 흉포한 마력을 느끼면서도 아이들은 저마다 눈빛을 가라앉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생도일지언정 그들은 공략자였고, 그들은 스스로의 의무를 잊지 않았으니까.
“존나 꽥꽥대네 저 씹새!”
“······우측날개 맡겠습니다.”
“······.”
그렇게 그림자에 물든 잿빛의 도심 속에서 두 명의 공략자와 한 명의 환생자는 마력을 피워 올렸고, 괴물의 포효 속에 다시금 전장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
그 순간 유천하는 오온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