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검 (1)
물론 나로서도 조금 당황스러운 말이긴 했지만,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무시해.”
괜히 그 녀석한테 번호를 알려줬다간 이래저래 귀찮게 굴 게 뻔했기에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러자 그런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아리엘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되게 칼 같구나?”
“걔는 좀 그래.”
평소에 비해 꽤 직접적으로 말했기에 옆에서 눈을 깜빡거리며 듣고 있던 이하린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혹시 마르네씨 싫어하세요?”
“아니요. 그냥 성격이 저랑 안 맞습니다.”
“으음··· 둘이 그런 느낌이긴 하네. 그래도 입이 험해서 그렇지 나쁜 애는 아닌데···.”
“맞아요! 마르네는 나쁜 사람 아니에요!”
창작자로서의 마음이 타올랐는지 이하린이 갑자기 마르네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어? 하린이 너 마르네랑 아는 사이야?”
“······네? 아··· 그··· 친한 건 아니고오······.”
물론 지금의 그녀가 마르네랑 따로 얽힐만한 일은 없었기에 바로 아리엘에게 꼬투리를 잡혔지만 말이다.
나는 적당히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것보다 이유는 뭔지 들었어? 갑자기 내 번호는 왜 달라고 한 거야.”
“응? 아. 별거 아니었어.”
“뭔데.”
“그냥 심심할 때마다 욕하고 싶대.”
“······아.”
“······걔는 진짜 미친 건가?”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는 딱히 친한, 아니 친한 걸 떠나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눠 본 적 없는 사이였다. 심지어 그렇게 두들겨 맞았, 아니 대련을 겪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
그 녀석은 진짜 중원에서 태어났다면 훌륭한 사파인이 되지 않았을까?
신교에서 태어났으면 암영비천대에 집어넣고 정기적인 교육을 해주었을 테고, 일반 민가에서 태어났다면 길 가던 무림인에게 중원식 예절교육을 받았을 게 분명한 녀석이었다.
다만 무림의 예절교육은 내세가 아닌 후세에서 예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기에 이곳과는 맞지 않았고, 적도 아니고 어린아이의 치기에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거슬리는 건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할 뿐.
물론 그렇다고 그런 행동까지 좋게 봐줄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알려주지 마. 아니 그것보다. 나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 같은데 그 정도면···?”
“아니 그냥 뭐··· 상관없을 줄 알았지. 어차피 천하 너는 내 연락도 매일 무시하니까 말이야··· 응!”
“······.”
그 말과 동시에 아리엘의 온화한 얼굴 위로 불만스러움이 떠올랐다.
“솔직히 평소에 제대로 답장해주는 건 하린이 밖에 없지?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아, 아니에요! 저도 자주 무시당해요!”
“정말···? 너무하네. 나는 친구도 아니니까 그런가 싶었는데 하린이도 무시당한 거야?”
“앗, 그, 그런 건···.”
갑작스레 튀어나온 장난스러운 말투.
하지만 느낌이 묘했다.
“괜찮아 하린아.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답장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걸? 아. 차단한다고 한적은 한번 있었네? 아무래도 천하는 나를 싫어하는 거 아닐까······”
“···!! 그, 그건 아닐 거에요!”
“그치만··· 그게 아니라면 답장 정돈 해줬을 거 아니야. 천하는 혹시 내가 귀찮아?”
내가 한 번도 답장을 안 했다고?
장난이 담긴 말은 가볍게 무시한 뒤,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 제대로 답장을 보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한번 있긴 했다.
처음 번호를 등록할 때 한마디 정도?
물론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평소에는 알림을 꺼두는지라 워치를 잘 안 보는 편이었고, 가끔씩 확인을 하게 될 때는 그때마다 그녀가 보냈던 내용이 뭐라 대답하기 애매했던 탓.
하지만 그간 자주 무시한 건 맞았기에 미안한 감이 없잖아 들었던 나는 그녀에게 빠르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
“······어?”
“······?!”
그러자 아리엘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사실 뭘 하고 있을 때는 알림을 꺼놓는 편이라서 말이야. 애초에 연락을 주고받는 거 자체가 영 습관이 안 붙기도 하고, 할 말이 있을 땐 직접 말하는 게 편하거든.”
“······.”
솔직히 불편한 감도 조금은 있었다. 낮에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진 삶이 길었던 탓인지 아직까진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익숙지 않았던 것이었다. 스마트폰이 아닌 워치라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고 말이다.
물론 이것도 익숙해지면 바뀌겠지만 누군가랑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도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난 상황. 아직은 영 불편했다.
그런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미묘한 표정을 한 아리엘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그··· 싫다는 건 아닌 거지 그럼?”
“갑자기 무슨 소리야.”
휴- 옆에 있던 이하린이 숨을 내쉼과 동시에 아리엘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그녀는 난데없이 손바닥을 펼치더니 내 팔을 찰싹 때려왔다.
“난 또 깜짝 놀랐잖아! 너···! 방금 말하는 타이밍이 너무 이상했어!”
“아··· 뒤에 한 말? 그건 쓸데없는 소리라서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꼈어.”
“······진짜 너무해!”
내 말에 아리엘은 평소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런 그녀의 표정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기에 조금 신기하단 생각을 하고 있자니 주변으로 마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o﹏o。) џ(ºДºџ) ヽ(゚Д゚)ノ]
물론 나로서는 그 내용보다도 점점 다채로워지는 그녀의 마력조형 실력이 사뭇 감탄스러웠을 뿐이었다.
***
다음날 저녁.
오늘 배정된 강의를 모두 이수한 나는 어느덧 지기 시작한 석양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여전히 3학구로 향하는 발걸음이긴 했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른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째 하루종일 이론수업만 들어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한 느낌. 걸어가는 와중에 조금씩 몸을 풀고 있자니 온몸에서 뚜둑-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주는 자체 휴강이나 해볼까.’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수련이나 하고 싶었지만 이론 점수 4점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심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내용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기에 다음 시험에선 어느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차라리 실습이론이라면 유익하기라도 할 텐데···. 수요일의 수업은 정말 순도 100% 이론으로만 이루어진 수업이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우웅- 그 순간 워치가 울려왔다.
지난밤의 일로 아리엘에게 꽤나 시달렸던 나는 반사적으로 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메시지의 내용.
[웹 발신 : 등천회랑 대외홍보팀에서 공지드립니다.]
[영결식 및 타천자 토벌 건에 관한 훈장수여식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일시는 2020년 4월 03일이며, 훈장 수여 주관은 세계연맹, 수여 대상자는 각각······]
“아니네.”
이하린이나 아리엘이 보낸 메시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타천자 토벌 건으로 표창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니 제대로 훈장까지 수여되는 모양.
훈장이라··· 솔직히 내가 공략자가 돼서 랭킹이나 신경 쓸 팔자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훈장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같이 지급될 포상금은 조금 신경 쓰였다.
‘···검이나 새로 살까.’
그런 생각 속에 나는 내 허리춤에 있는 검을 쳐다보았다. 열심히 손질하고 관리했기에 겉모습만큼은 멀쩡한 외관.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자면 이미 고물이나 다름 없다는 게 문제였다.
중원에서부터 쓰던 걸 들고 온 만큼 원래대로라면 꽤 명검 축에 속하는 녀석이었지만 마지막 혈전 때 상당히 무리했던 탓인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아마 검혈마제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낸 게 가장 큰 요인이지 않을까? 단 두수를 막아낸 것만으로도 검이 일그러졌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스르릉- 나는 검집에서 칼을 뽑아보았다.
‘예기야 검기로 어떻게 무마한다 쳐도···.’
그리곤 손가락으로 검날을 튕겨보았다.
그러자 투웅- 묵직하게 흔들리는 공명음.
확실히 상태가 영 아니었다.
‘이래서야 언제 부러질지 모르겠군.’
지금이야 업륜이 있으니 격전 중에 검이 부러져도 어떻게 임기응변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제대로 검을 바꾸는 게 좋을듯싶었다.
원작대로라면 1학기 내에만 해도 타천자를 최소 한 명은 더 때려잡아야 했고, 카룬드때의 묘사와 비교하자면 다음 상대는 조심할 필요성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이랭커급을 상대로 방심했다간 분명 곤란한 일을 겪게 될 터였다.
‘그래도 며칠 정도는 문제없겠지.’
하지만 그건 지금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었고, 당분간은 침식역류나 잔챙이 사냥 정도만 대비하면 될 테니 지금 당장은 이 검으로 충분하긴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등천의 구도자와 계약된 만큼 요청을 넣으면 제대로 된 장비 정도는 얼마든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게 대부분 침식공략과는 별개로 원작의 기억을 토대로 움직이려는 거였기에 요청사유도 애매했고, 흔적을 남기는 게 싫었을 따름.
“······.”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걸었더니 어느새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그녀도 나를 발견한 듯 인사를 건네왔다.
“······오셨군요.”
“예.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니에요. 그것보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 남궁설아가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자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노을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저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돕는 거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나는 그리 대답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어제 남궁설아가 내게 그런 부탁을 건넬 줄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걸 예상치 못한 거지만.’
애초에 원작에선 이런 게 하나하나 설명되진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 남궁설아의 옆으로 다가간 나는 그 앞에 세워진 거대한 백색의 석탑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사용해도 되는 건 맞습니까?”
“예. 간신히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일반 생도였으면 허락이 안 나왔을 텐데 어떻게 허가를 받아낸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천중무련의 배경을 이용한 거긴 하겠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라면 이 탑의 기능은 확실히 쓸만한 구석이 많았으니 말이다.
나중에 나도 허락을 받아낼 수만 있다면 바로 이하린을 집어넣어야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탑으로 다가갔다.
“그럼 갑시다.”
“예.”
그녀는 탑 입구에 학생증을 갖다 댔고, 그러자 입구에 설치된 마력회로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머릿속엔 한가지 음성이 들려왔다.
그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백색탑 – 환몽의 숲에 입장합니다.]
우리는 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
[순례자 유천하가 환몽의 숲에 입장합니다.]
[각성자 남궁설아가 환몽의 숲에 입장합니다.]
“아.”
차원의 단면을 넘어가는 이 느낌- 꽤나 익숙하면서도 낯선 오묘한 기분 속에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확실히 다르네’
순례자의 길 이후로 두 번째로 겪는 공간.
입학식 때는 탑의 기능만 따로 활성화 시켰던지라 이면세계에 진입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순례자의 길 때는 아직 만상의 눈이 개화하기 이전의 경험이었고, 만상의 눈을 개화한 후 탑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
그런 만큼 만상의 눈으로 바라본 이면세계는 확실히 신비로웠다. 평소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도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은 포착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기하군.’
법칙에서 벗어난 세계.
삼라만상에서 피어난 가능성의 세계.
이렇게 일반적인 법칙에서 벗어난 공간이니 순례자의 길이나, 입학식 때의 배치고사 같은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남궁설아도 적응이 됐는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럼 바로 진행해도 될까요?”
“아. 예. 상관없습니다.”
“그럼 안내할게요.”
그 말과 함께 남궁설아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안개가 짙게 깔린 칙칙한 색채의 숲.
그 중심에 놓인 백색의 구슬을 향해서.
“저게 탑의 근원석인가요?”
“예.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원래대로라면 이곳에 수호자급 마수가 있었겠군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리 말했다.
참고로 우리가 지금 들어와 있는 이곳- ‘환몽의 숲’은 3학구에 존재하는 황혼급 백색탑 중 하나로써 원래대로라면 잿빛탑의 마수가 지키고 있었을 곳이었다.
하지만 공략자의 손에 토벌되어 보관되어왔던 근원석은 등천회랑이 설립되는 과정에서 연맹에 기부되었고, 그 결과 다른 국가와 기관의 손을 통해 전달받은 근원석과 함께 백색탑으로 재탄생하게 됨으로써 회랑에는 1개의 멸화, 12개의 황혼, 76개의 여명. 총 89개의 특수 기능시설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고 말이다.
“예. 그것도 환몽의 숲을 공략한 분들의 기록에 따르면 근원석의 마력도 원래는 동급의 탑보다 배로 더 강한편이었다 해요.”
“허가 받는 것도 힘들었겠습니다 그럼.”
“······예. 솔직히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된 게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백색의 구슬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여기에 손을 올리고 내력을 불어넣어 주세요. 펼쳐지는 허상은 당신의 심상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나는 대답과 함께 구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력을 끌어올려 구슬에 주입했다. 그러자 구슬 내부에 지잉-! 하고 파동이 몰아쳤고, 그와 동시에 이면세계의 마력 흐름이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군요.”
나는 그 현상을 만상의 눈으로 지켜보았고, 그렇게 뒤틀린 마력이 한 곳에 뭉쳐지더니 끈적한 잿빛의 덩어리가 되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순수하게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체.
아니, 실체에 가까운 허상이었고, 나는 그 허상을 바라보며 심상을 떠올렸다. 떠올린 심상은 별게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의 기억- 타천자 카룬드.
그게 남궁설아가 나를 찾아온 이유였기에 나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쿠루룩- 쿠루룩-!
뒤틀린 허상으로부터 순식간에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이내 그 끈적한 몸체는 점점 사람의 형상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곤 눈 깜빡할 사이애 우리의 앞엔 타천자 카룬드- 아니 카룬드의 허상이 탄생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신기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제어는··· 아 근원석에 연결된 사람이 하는 거군요.”
[죽어라-!!!]
움직여라-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카룬드의 허상이 그대로 우리를 죽이려고 땅을 박찼다.
한순간에 좁혀지는 거리.
순식간에 다가온 허상은 온몸에서 그림자를 뿜어내며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멈춰라-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바로 앞에서 카룬드의 팔이 멈춰졌다.
[······.]
급작스러운 정지였지만 카룬드의 몸은 한치의 떨림도 없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렇게 그 형상은 관성도, 중력도 무시한 채 그대로 정지한 상태로 멈춰 섰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