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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48화 (48/205)

교차점 (3)

오늘은 달빛이 밝은 밤이었다.

3학구에서의 수련도 이젠 일상이 된 기분.

사실 업륜의 활용방안도 얼추 연구가 끝나가는 마당인지라 수련을 굳이 계속 지맥 위에서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신교에서 사용했던 연무장도 숲 속에 있었기 때문인지 최첨단 시설로 이루어진 수련실보단 이쪽이 조금 더 정감이 가기도 했고, 이곳에서 수련한다고 딱히 나쁠 것도 없었기에 계속 3학구에 나오는 중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존재했고 말이다.

“집중하세요. 집중.”

“······넵!”

이하린은 대답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의념은 본디 무형의 힘. 구체적인 이론으로는 규정되기 힘든 능력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수련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예시가 바로 이것.

“사각형.”

내 말을 들은 이하린이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물의 형상을 조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형태로 물을 들어 올렸고, 대야만한 물통에 가득 담긴 물- 그곳에서부터 솟구친 물줄기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렇게 기괴한 형태로 일그러지던 물은··· 이내 팡-! 하고 다시 통으로 쏟아졌다.

“······아.”

“형상을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의념을 유지하는 겁니다. 늦게 오신 만큼 더 집중해 주세요.”

“······네에.”

“이번에는 원형으로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하린의 경지는 이제 막 의기상인에 발을 들인 수준이었다. 신검합일을 할 수 있고, 정신을 집중하면 검강을 뽑아낼 수 있는 실력.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간단한 허공섭물의 수련을 시키는 중이었다.

의념 그 자체의 힘에 익숙해지면 점점 나아갈수록 의지만으로도 물리력을 행사하고, 사람마저 베어버릴 수 있게 되겠지. 이건 모두 그걸 위한 수련이었다.

그렇게 이하린을 지도해주고 있자니 한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나는 이미 기감으로 그녀의 접근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뿐히 그걸 무시했으며, 그 순간 잠시 흐트러질뻔한 이하린의 집중력도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애초에 이곳에 올 만한 사람은 뻔했으니 말이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그녀. 후드티와 레깅스라는 평소보다 다소 편해보이는 복장으로 이곳을 찾아온 아리엘은 우리를 보자마자 다소 의아하단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너희 지금 뭐 해?”

이렇게 표현하자니 조금 웃겼지만, 아무래도 커다란 물통에 손을 담그고 참방참방 거리고 있는 이하린과 그걸 구경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이상했던 모양.

나는 그녀에게 간략히 설명을 해주었다.

“저번처럼 하린씨 의념 수련 중이야. 그건 그렇고 오늘은 좀 늦게 왔네?”

“아. 오늘은 다른 볼일을 좀 보고 왔거든. 그것보다······”

그 말과 함께 아리엘은 이내 후드 주머니에서 캔 음료를 두 개 꺼내더니 내게 휙- 하고 던져주었다.

“이거! 하린이한테도 하나 줘. 뭐 좀 사려고 갔는데 2+1이길래 너희 생각나서 샀어.”

“···아! 감사합니당!”

그 대답과 동시에 떠오르고 있던 물이 또다시 철퍼덕- 하고 물통으로 낙하했다.

그 소리에 나는 자연스레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그에 이하린은 나를 보며 해맑게 방긋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실전에서도 이렇게 집중이 풀리면 큰일 납니다. 주의해주세요.”

“넵!”

그렇게 나와 이하린이 미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아리엘이 다소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하린이가 지금 하는 게 마력으로 염력 수련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으음··· 비슷한데 조금 달라요! 마력 없이 순수한 정신력으로 띄우는 거라서요.”

“아. 의념이랬지?”

그 말에 아리엘이 물통 앞으로가 쪼그려 앉더니 그곳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러자 그곳에서부터 퍼져나오는 마력의 흐름.

우웅- 물통에 파문이 일어남과 동시에 아리엘의 손가락 위로 동그란 구의 형상으로 물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었다.

“!”

“어··· 여기서 마력을 빼면······.”

그녀의 손끝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나는 만상의 눈으로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정신력이 아닌 마력에서부터 시작된 힘의 흐름은 이내 마력이 제거됨으로써 역순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정신력만으로 유지되는 힘. 염력이었다.

그렇게 마력이 사라지자 물의 형상은 구심점이 빠진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그 형상 자체가 풀려나지는 않았다.

“······!”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그녀. 백색의 손가락 위로 모여든 물은 조금씩 형상을 바꿔나갔다. 정신력으로 빚어낸 무언의 힘이 천천히, 그리고 위태롭게. 하지만 형상을 갖추면서 현상을 제어했고······

[왜 ㄴㅐ 연ㅤㄹㅏㅋ 무시헤 ?]

“······.”

그렇게 다소 흐트러진 문자의 형상으로 조형된 물 덩어리가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할 말을 잃은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았고, 이내 그 형상은 팍- 하고 흩어져버렸다.

“음··· 그냥 하려니까 힘드네 역시.”

“······와! 방금 정신력만으로 염력을 쓰신 거 맞나요?! 마력이 아예 사라졌었는데···?”

“응! 저번에 천하가 의념이랑 마법사들이 쓰는 정신력과 염력은 비슷한 개념일 거라 했었거든.”

“아··· 그때!”

다소 어이가 없었던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면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떠올랐던 형상의 내용이 조금 당황스러웠던 탓이었고, 그런 내 시선에도 그녀는 그저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을 뿐이었다.

“······.”

물론 마지막으로 왔던 메시지에 답장을 안 해준 건 맞았기에 딱히 할 말은 없었던지라, 나는 그냥 고개를 한번 내저은 뒤 이하린을 위해 설명을 보충해 주기 시작했다.

“······예. 정확하진 않지만 제 생각에 둘은 비슷한 갈래의 힘입니다. 또한 저는 무공과 마법은 시작점이 다를지언정 서로 교차하는 부분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과 함께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의념을 일으켜 물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보편적으로 무공을 익힌 이는 체내의 내력을 이용해 물리적인 현상을 조절하는데 능하고, 마법을 익힌 이는 체외의 마력을 운용해 비물질적인 현상을 일으키는데 능한 편입니다.”

동시에 나는 의념의 갈래를 세부적으로 투사해보았고, 그러자 두둥실- 하고 서서히 떠오른 물 덩어리가 일정한 형태로 잘게 나누어졌다.

“와.”

“!”

그녀들이 눈을 깜빡거린다.

“하지만 그간 지켜본 결과- 마법사라고 육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고, 무인이라고 체외의 마력을 운용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려울 뿐이지요- 말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나는 의념을 조절했다.

마력, 내 경우에는 내공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의념만으로 들어 올린 물 덩어리들이 느릿하게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의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으로 현상을 사역하는 힘은 무인에겐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지만, 마법사에겐 마법에 입문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계단에 불과하단 느낌이니까요.”

그리고 이내- 그 물 덩어리들은 저마다 제각기 다른 속도로 공전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빠르게, 하나는 느리게, 다시 하나는 평범한 속도로··· 등등. 신경이 분산되는 게 영 거슬렸지만 전투 중도 아니었고,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 묘기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떠다니는 물방울들.

그러자 조금 전까지는 다소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리엘도 이 모습을 보고는 그저 벙찐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거렸을 뿐이었다.

“······뭐야 저게.”

“애초에 의념 자체의 힘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닙니다. 유용하긴 해도 의념 자체의 힘으로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건 무척 비효율적이니까요.”

하지만- 나는 말을 덧붙임과 동시에.

내력을 일깨워 의념에 힘을 실었다.

“제대로 된 의념과 마력이 만난다면···”

그리고.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핏-! 한순간에 쏘아지는 물방울들.

주변을 떠다니던 구체들은 일순간 물의 탄환이 되어 한곳을 향해 날아갔고, 그 순간 쾅-! 콰광-!!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물덩이들은 나무에 틀어박힘과 동시에 형체를 잃고 바닥으로 쏟아졌지만, 이미 나무의 몸통은 총탄에 맞은 것처럼 벌집이 된 뒤. 잠시 휘청거리던 나무의 몸통은 이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바닥을 향해 기울어졌다.

그리고는··· 쿵!

숲 속에 울려 퍼지는 둔중한 소리를 흘려보내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걸 기로 행하면 그게 바로 무인들이 말하는 탄기공이 되는 것이고, 마법사들이 마력으로 행한다면 뭐··· 마법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요.”

“······.”

“······.”

거기까지 말한 뒤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연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하린에게는 예시를 보여줄 겸, 아리엘에게 설명을 보태줄 겸 보여준 시범이었는데 어째 반응이 조금 미묘한 느낌.

“······아무튼 의념은 수련할수록 그 깊이가 생기는 힘입니다. 강한 정신력은 더 강한 결과를 낳게 되니까요.”

그렇게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자,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저마다의 감상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와! 와!! 진짜 마법 같았어요!”

“이건······ 나도 신기한데? 저게 어딜 봐서 무공이야? 완전 마법이랑 똑같잖아!”

“말했잖아 갈래는 비슷하다고. 그리고 허공섭물정도는 다른 무인들도 자주 사용하지 않아? 너도 몇 번쯤은 봤을 것 같은데.”

“허공··· 뭐? 아니, 무련쪽 공략자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건 아닌데··· 하지만 이 정도로 쓰는 건 처음 보는 걸?”

아리엘이 신기함과 의아함. 두 개의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에 옆에 있던 이하린도 그 말이 공감됐는지 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로서도 그녀들의 반응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탄기공도 아니고 주변의 물체를 이용해 이러는 건 어지간해선 볼일이 없었을 테고, 이렇게 천천히 보여줄 만한 사람도 없었을 테니 당연한 결과.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 다 이유가 존재했지만 말이다.

“그야 보통은 이런 식으로 안 쓰거든.”

“응? 왜···? 파괴력도 좋아 보이는데?”

“굳이 이렇게 의념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칼질을 한번 더하는 게 더 효율적이잖아. 우리는 마법사가 아니니까. 의념의 낭비야.”

아!- 내 말에 그녀들이 이해한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 필요하다면 이런 식의 응용도 요긴하게 쓰일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지간해서는 그냥 의념을 실은 검격을 휘두르는 게 더 효율적이었니 말이다.

애초에 본신의 무공으로 제압하지 못할 상대라면 이런 잔재주도 통하지 않을 터.

그렇다 보니 중원에서는 대부분 그냥 잔챙이들을 상대할 때 쓰거나, 아니면 그냥 과시용으로 쓰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대충 객잔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면 의념으로 검을 뽑아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경험상 그건 꽤 효과가 좋은 방법이었다. 허공에서 칼이 날아다니는 것만 보여줘도 대부분은 기겁하며 도망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 예외도 존재하긴 했다.

“물론 정말 높은 수준까지 의념을 갈고 닦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해. 그때부터는 단순히 효율로 말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일 수 있게 되니까 말이야.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라서 그렇지.”

그 예시가 바로 이기어검이나 격공같은 경우였다. 본신의 무공만으로는 보이기 힘든 모습, 물리법칙을 초월한 현상을 자아내는 상승의 경지에서는 효율은 부가적인 요소일 테니 말이다.

거리를 격하고 생각의 속도로 쏘아지는 병기와 일말의 전조도 없이 터져 나오는 기공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을 하겠는가?

물론 심검까지는 솔직히 터무니없는 영역이었지만, 대부분의 초절정고수들은 이기어검이나 격공의 수법을 애용한다는 걸 나는 몇 번의 마주침 끝에 알게 되었다.

“······해볼래요!”

잠시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자니 뭔가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인지 이하린이 어느새 다시 물통 앞으로 달려가 쪼그려 앉았다.

방금 내가 보여준 걸 따라 해보려는 걸까?

열심히 얼굴을 찌푸리며 물장구를 치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하린은 물통에 손을 담그고선 열심히 의념을 그러모아 물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안 되네.”

철썩- 당연하게도 지금의 그녀에겐 무리였을 뿐. 아직 그녀는 허공섭물 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방금의 시범이 인상 깊었는지 계속해서 도전해보는 그녀였지만 옆에서 보기엔 그저 찰박거리며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 웃지 마세요!”

물론 그건 아리엘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런 우리들의 반응에 이하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을 뿐이었다.

***

나는 잠시 휴식을 선언했다. 안 그래도 이하린의 집중력이 풀릴 대로 풀린 느낌이기도 했고, 방금의 일로 흐름이 조금 끊겼다 느껴진 탓.

그렇게 우리는 다 같이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았다. 아리엘도 오늘은 수련보단 그냥 우리를 구경하러 왔던 건지 별말 없이 나무 위에 올라섰고, 그렇게 나란히 쪼르르 둘러앉아 그녀가 사 왔던 음료수를 마시고 있자니 옆에서부터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의아해진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응? 아니 그냥.”

장난이라도 치고 싶은 건가 싶었는데 눈빛이 잔잔한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의아한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았더니 아리엘은 이내 옅게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거 사실 답례다?”

“답례?”

“저번에 구해준 거.”

“아···?”

그 말에 나와 이하린은 마시고 있던 음료수 캔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반응이 웃겼는지 아리엘이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장난이야 장난. 설마 진짜 그걸 답례라고 줬겠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건 나중에 꼭꼭 제대로 갚아줄 거야!”

“안 그러셔도 돼요···!”

“아니야. 너희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는걸? 이건 정말 진심이야.”

“······.”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말에서부턴 진지한 기색이 느껴졌다. 아리엘은 그리 말하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한번 쳐다보았고···

이내 나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그날. 갑자기 마인을 마주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네. 깜짝 놀랐죠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위험했던 것 같아. 마인이랑 직접 마주한 것도 그 날이 처음이었는데 하필이면 그게 타천자였으니까.”

그 부분은 이하린이나 나나 모두 같은 느낌일 것이다. 서로가 예상하던 시간대보다도 더 빨리 벌어진 사건에 나도 당황했을 정도니, 이하린 또한 마찬가지였겠지. 서로가 걱정한 요인은 달랐을지언정 이번 침공은 누구에게든 꽤 위험한 타이밍이었다.

“그러고 보니 천하는 더 놀랐겠다. 등천도시에서도 마주쳤으니까.”

“···뭐 그렇지.”

“그 상황에서도 마인들을 심문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제때 와주지 않았으면 정말 위험했던 상황이었잖아.”

“······맞아요! 천하씨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에요.”

물론 제대로 된 사정은 달랐지만 나는 그녀들에게도, 그리고 연맹에게도 그날의 행적을 그렇게 설명했을 뿐이었다.

솔직히 좋은 변명은 아니었지만 마인을 잡은 것도, 심문한 것도 맞았고, 숲에서 죽였던 녀석은 침식마인이 아닌지라 시체가 온전히 남았다는 것도 중요한 증거였으니 다행히 별문제 없이 넘어가긴 했었다.

잠시 그날의 일을 떠올리고 있자니 어느새 아리엘이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응. 하린이 너한테도 그렇고, 천하한테도 그렇고 정말 큰 도움을 받은 거지······.”

내 모습이 비치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난 그걸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그래도 구해준 건 사실이니까.”

그런 아리엘의 눈빛은 진중했고,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 줘.”

“······.”

“네 부탁이라면 꼭 도와줄게. 반드시.”

“······그래.”

그냥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싶었던 걸까?

왠지 모르게 미묘한 느낌이었다만 아리엘의 성격을 생각해본 나는 이내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 아리엘은 장난기가 많을 뿐이지 기본적으로 심성 자체는 무척이나 올곧은 아이였으니 말이다.

“하린이도 마찬가지야. 알았지?”

“······어어··· 넵!”

물론 이하린도 나도 딱히 그녀에게 부탁할 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든 나든 둘 다 일이 생기면 알아서 처리하려는 성격이었고, 굳이 다른 사람을 신경 쓸 바에야 혼자서 해결하는 게 편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런 생각 속에 아리엘의 말을 적당히 흘려들었다.

“······.”

“······.”

“······.”

그렇게 일련의 대화가 지나가자 잠시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방금의 대화를 통해 다들 나름대로 생각에 잠긴 모양.

아마도 아리엘은 그날의 일을,

이하린은 다시 그날과 앞으로의 일을.

그녀들은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되었을 따름이었다.

그때 선선한 밤의 봄바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달빛을 받으며 다 같이 이러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참 유유자적한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색해.’

하지만 역시 이런 분위기는 영 체질과 맞지 않는 느낌. 그렇기에 아무런 말이나 꺼내 분위기를 환기해볼까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도 없었기에 조금 곤란할 따름이었다.

···그냥 다시 수련이나 시작하자.

어색한 느낌 속에 그렇게 결심했더니 때마침 아리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맞다. 천하야.”

“어.”

“마르네가 너 번호 알려달라는데 괜찮아?”

“······.”

“······마르네씨가 왜요?”

그 순간 이하린이 눈을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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