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꼭 도와줄게 (‘-‘*ゞ)
시간을 보니 어젯밤에 보낸 메시지.
마지막 내용이 조금 의아하긴 했다만, 아마도 타천자 때의 일을 보답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내가 그녀의 도움을 받을만한 일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뭐라 답장하기가 모호했던 만큼 그냥 무시할까 고민하고 있자니 내 등 뒤로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작은 보폭, 조심스러운 발걸음.
나를 놀래켜볼 생각인지 살금살금 접근하는 그녀였지만 이미 진작에 기감으로 파악하고 있던지라 난 적당히 타이밍을 맞춰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을 뿐이었다.
“안···!”
“예. 좋은 아침입니다.”
“······녕하세요오오···.”
순식간에 시무룩해지는 그녀- 이하린.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뒤 다시 메시지목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메시지의 주인은 눈앞에 있었지만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안 오시는 건가요?]
[편안한 밤 되세용 : ) ]
[강의실에 도착하셨나요?]
그렇게 이하린이 보낸 메시지를 슥 훑어보고 있자니 옆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그녀가 입술을 쭉 내밀며 조금 소심하게 옹알거렸다.
“······어제 보낸 거를 이제 확인하시구···.”
“아···. 어젯밤에 일찍 잠들어서요. 미처 못 봤네요. 죄송합니다.”
“······정말요?”
“예. 피곤했거든요.”
내 말에 눈을 흘기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녀에게 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자 그녀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해맑은 미소로 화답했을 뿐이었다.
왠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그녀와의 거리감이 조금 더 좁혀진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내게 호의적인 그녀였지만 이제는 거리감마저 다소 사라진 기분. 그녀가 나를 대할 때의 태도 자체도 이전보다 조금 더 친밀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이대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수련을 시키면 그녀는 무사히 원작의 후반부까지 도달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이하린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창가로부터 날아온 선선한 바람은 그런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
수업이 끝나자 이하린은 빠르게 사라졌다.
헤어지기 전 그녀는 오늘 수련에 조금 늦을 것 같다 말했는데, 혹시나 싶어 다시 마인토벌이라도 시작한 건가 추궁해보았더니 정말 순수하게 외부에 볼일이 있는듯싶었다.
아마 또 뭔가를 얻으러 가는 게 아닐까? 정확히 무슨 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의 행보를 생각하면 아마도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애초에 원작의 이하린은 혼자 알아서 잘 성장했었으니까.’
사실 의념과 깨달음의 성취가 느렸을 뿐이지 원작의 이하린은 혼자 이런저런 기연을 주워 먹으면서 착실히 성장했었다. 물론 그런 만큼 위험한 순간도 많았기에 내가 이렇게 신경 쓰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시점에서 벌써 의념을 터득한 만큼 조금만 신경 써줘도 아마 이하린은 원작보단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적어도 어디 가서 눈먼 칼에 맞고 오진 않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다만 사실······ 수업이 끝나고 이하린이 내게 같이 점심을 먹지 않겠냐 제안했었는데, 딱히 생각이 없었던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러자 이하린은 갑자기 볼 일이 생겼다며 빠르게 뛰쳐나갔고, 그 반응에 뒤늦게 아차 싶었던 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을 따름.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도 다소 곤란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계획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민망해서 도망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뭐··· 어쨌든 알아서 잘하겠지.’
그렇게 생각을 털어낸 나는 오늘 수련할 내용을 생각하면서 기숙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잠시 걷고 있자니 얼마 안 가 조금씩 기시감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계속 따라오는 기분.
“······.”
사실 회랑 내를 걸어 다닐 때면 항상 아이들의 관심도 따라다녔기에 사소한 시선 정도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그런 시선이 1학구를 벗어나 기숙사 지역으로 올 때까지 계속 따라다닌다면 조금 이상한 느낌이지 않은가?
누가 따라오는 것인지 기감으로 파악해보려고 했다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꽤 긴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다는 소리는 상대의 감각도 꽤나 예민하다는 말. 미행 자체는 어설픈 거로 보아 별일은 아니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거슬리는 건 거슬리는 거였다.
‘어떻게 할까 이걸.’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일부러 생도들의 발걸음이 적은 구역을 통해 이동해보았지만, 그래도 역시나 미행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고를만한 선택지는···
첫 번째. 가볍게 따돌린다.
두 번째. 누군지 잡아낸다.
“······.”
나는 그 즉시 만상과 동화된 눈으로 한순간에 시선이 감지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황급히 벽 너머로 몸을 숨기는 게 느껴졌지만 내겐 소용없는 일.
대기를 너머, 벽을 뚫고 마력의 흔적마저 직시하며 상대를 응시한다. 만상의 눈은 그렇게 물질을 투과해 너머를 인지했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예상 밖의 인물.
‘······쟤가 왜?’
아니,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영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미행까지 할 일인가 싶어서 조금 의아한 기분이었다.
때마침 꺾이는 길이 나타났다.
그녀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벽을 도는 타이밍에 움직인다면 따돌리든 잡아내든 모두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잠시 고민했고,
‘아무래도 역시···’
순식간에 가속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업륜의 마력은 공명음을 토해내며 순식간에 가속의 발현과정을 카피했고, 내 몸은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풍경이 늘어지며 서로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진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타이밍에 이루어진 일련의 동작은 상대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을 뿐. 그렇게 일순간 내 움직임을 놓친 그녀는 잠시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는 듯싶더니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내 움직임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속을 발동하며 자리를 박차는 그녀- 남궁설아.
하지만 상황파악이 너무 늦었다.
“?!”
그녀가 발을 박찼을 때는 이미 거리가 좁혀진 뒤였고, 다급하게 자리를 뜨는 그녀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허공에서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툭- 이내 동시에 멈춰 섰다.
“······.”
“······.”
이렇게 된 이상 도망치는 게 더 이상한 그림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러갔다.
그녀는 잔뜩 굳은 인상으로 뭐라 입술만 오물거리고 있었고, 나는 미묘한 기분 속에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건네었다.
“미행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
“미행이 아니었다고 말하기엔 상황이 조금 공교롭군요. 제가 그걸 못 느꼈을 것 같습니까?”
“······행······ 한 건 맞습니다.”
“예. 이유는요?”
그녀가 다시 또 입을 오물거렸다. 그녀 또한 이 상황이 상당히 민망했던 모양인지 귓가가 조금 붉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들키지 않을 거라 자신했던 모양.
나는 나직이 그녀를 추궁했다.
“대답해주시지요. 계속 그러고만 있으시면 괜한 오해만 더 생기지 않겠습니까?”
“괜한··· 오해요?”
“설마 생도끼리 해코지를 하려고 미행한 건 아닐 테고, 그렇다고 볼 일이 있다기에는 아까 수업시간에 이야기했을 테니 그것도 아니고··· 그러면 뭐가 남을까요. 남들 앞에서는 꺼내기 힘든 이야기. 그러면서도 미행까지 해야 할 이야기. 그렇다면······”
“······그, 그런 건 아닙니다!”
그녀가 황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항상 냉랭했던 표정이 삽시간에 무너지며 그녀의 눈가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런 게 뭡니까?”
“······아, 아니. 아무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해코지라도 하려고 온 건가요?”
“······그것도 아니에요.”
사실 짐작 가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미행당했다는 게 조금 불쾌했기에 일부로 더 짓궂게 구는 것일 뿐. 물론 그녀도 나를 해하려고 뒤를 밟은 건 아니었겠지만 그간의 생활 때문에 미행과 암살에는 조금 예민한 편이 된 지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젠 슬슬 대화를 진행해야겠지.
“어쨌든 다른 사람들 앞에선 하기 힘든 이야기라 이렇게까지 한거겠지요.”
“······예.”
“듣겠습니다. 말씀하세요.”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는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고, 굳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당신한테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부탁 말입니까?”
“예. 부탁이요.”
이건 조금 예상 밖이었다. 기껏해야 타천자와 관련된 질문일 거라 생각했는데 부탁? 그녀는 무엇을 부탁하려는 걸까.
의아함에 나는 그녀에게 물어봤고.
“어떤 부탁인가요?”
그녀는 이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