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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46화 (46/205)

교차점 (2)

억눌린 신음인지 아니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하소연인지, 뭔지 모를 하오란의 웅얼거림을 무시하며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말해주마. 내가 금제를 온전히 풀어주는 날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아··· 아.”

“너는 그 날 죽는 것을 거부했으며, 이건 네가 선택한 결과일 뿐이니까. 알겠느냐.”

“···아, 알 게, 겠습니다.”

그렇게 금제의 주기를 다시 한 번 조작한 나는 그의 머리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러자 하오란의 고개가 서서히 들려 올라왔고, 그는 그렇게 두려움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전에 이야기한 건?”

“···예, 예!!”

며칠 동안 금제에 꽤나 시달렸던 건지 그는 금제가 완화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벌벌 떨며, 그 떨리는 손으로 나를 향해 하나의 기기를 건네었다.

“여, 여깄습니다···!!”

“······.”

태블릿을 받아드는 순간 연결된 손에서부터 격한 떨림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화면 위를 조작해 자료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꽤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하오란의 조직에서 파악하고 있던 마인들의 행적, 위치, 규모 등.

“자료가 틀릴 가능성은 어느 정도지?”

“가, 갑급에 있는 자료라면 틀릴 가능성이 없습니다! 다, 다만 순차적으로 내려가서 정급으로 가면 사실상 뜬 소문에 가깝다 새, 생각하시면··· 흡!!”

마지막 말에 그를 내려다봤더니 하오란이 순식간에 몸을 움츠러트리며 고개를 숙여왔다. 그의 몸은 이전보다도 더 떨리고 있었다.

“이유를 설명해 보거라.”

“이, 일부를 제외하곤 마, 마인들은 본디 행적을 숨긴 채 이곳저곳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 그런 마인들은 자신의 행적을 절대 드러내는 법이 없고, 오로지 일부만이 뒷세계의 일로 계약을 맺으려고 모습을 드, 드러냅니다···!”

“······.”

“저, 저희와 최근의 거래 기록이 남아있는 마인들은 갑급에. 그, 그리고 이전의 기록이 남아있는 마인들을 을급에. 따로 행적이 파악된 자들은 병, 그리고 정은 말씀드린 대로··· 소, 소문을······.”

“그만.”

나는 천천히 자료들을 머릿속에 주입했다.

정보의 양이 적진 않았지만 외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내용은 거래기록이 아닌 녀석들의 규모와 위치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정보를 숙지했다 느낀 즉시 내력을 일으켰고, 그 순간 콰직-! 박살 난 기기로부터 불꽃이 튀어 올랐다.

“······아.”

“너는 주기적으로 내게 내력을 주입받아야 할 것이다.”

“······.”

“2주의 한번. 토요일 자정에 이곳으로 오거라. 네가 들고와야 할 건 마인의 정보, 침식지역의 동향. 그것들이다. 알겠느냐?”

“······예, 예!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한가지 있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간과하고 말았던 부분.

그건 바로- 원작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이하린이 무공에 대해 모르고 있듯이, 원작에 나오지 않았던 요소들이 존재하듯이, 이곳은 만물이 실존하며 살아 움직이는 세계였다. 세상의 움직임은 결코 고정돼 있는 게 아니었고, 인과는 복잡한 요소였다. 하물며 원작에선 이하린만이 사건을 비트는 인과의 축이었다면 이제는 나까지 더해진 상황.

그러니 원작의 전개가 그러했듯 앞으로의 전개 또한 분명 내 예상을 벗어날 확률이 높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추가된 이상, 그리고 내가 원작과 다른 행보로 나아가는 이상 그건 필연적인 결과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라질 미래가 무섭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멍청이나 할 짓이지.’

그렇기에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볼 생각이었다. 3차 세계침식은 어차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나는 이하린이 무사히 원작의 후반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만.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침을 분명하게 정할 수 있었다.

애초에 잿빛탑 공략이라면 모를까 마인들의 침공 따윈 그녀에게도, 내게도 불필요한. 쓸모없는 이벤트.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모두 죽인다.’

그들이 앞으로의 미래에 끼어들기 전에.

내 인지 너머에서 위험을 불러오기 전에.

그리고, 이하린의 생명을 위협하기 전에.

인류에 대한 증오를 마음에 품고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인두겁의 괴물들. 이면 속에 숨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녀석들.

나는 녀석들을 찾아가 모두 죽이기로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

화요일에 들어야 할 수업은 무학담론.

강의실에 들어선 나는 수업을 기다리면서 꽤나 색다른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전까지는 주변에서 들려오던 수군거림이 다소 한 방향으로 한정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각각의 일에 타천자 토벌과 대련까지 얽혀들어 가면서 아이들의 반응 또한 점점 가지각색으로 달라져 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말을 걸어보고 싶은듯 빤히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으며, 누군가는 부담스러운 듯 시선을 피하는 아이도 있었고, 무언가 궁금하다는것 마냥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든가, 아니면 신기한 무언가를 목격하는 것 마냥 반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제 겨우 3주차에 접어들었을 뿐인데도 한 주가 지나갈 때마다 변해가는 아이들의 반응이 내게는 그저 흥미롭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타인의 시선이야 어떻든 큰 관심은 없었지만, 계속 필기시험의 일을 언급하는 것 보다는 그나마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중간고사가 지나가면 또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조금 궁금하기도 했던 탓이었다.

그렇게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순간 스마트 워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목요일 강의 공지]

[침식공략 사례체험의 첫 수업은 야외실습으로 진행됩니다. 목요일 오전 10시. 3번 게이트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첫 수업이니만큼 A/B/C반 생도들 모두 통합으로 시행될 예정이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아. 이런 수업도 있었지.

그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이 수업- ‘침식공략 사례체험’은 지난 2주간 교수의 개인 사정으로 휴강을 했던 상태였기도 했고, 크게 관심이 있는 수업은 아니었기에 여태껏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중요한 수업은 아니었고, 애초에 내가 이 수업을 신청했던 이유도 별게 아니었다. 그냥 침식공략에 관한 실습을 진행한다는 것. 딱 그 정도 이유.

‘그것보다··· 야외실습?’

학기 시작부터 2주나 휴강을 하더니, 다행히 첫 수업은 제대로 진행되는 모양.

허나, 그 순간 머릿속이 조금 간질거렸다.

‘왠지··· 원작에서도 이랬던 것 같은데.’

갑자기, 어렴풋하게나마 원작의 내용이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중요한 에피소드는 아니었기에 상세하게 기억나진 않았지만 아마 저 날도 무슨 사건이 일어났던 것 같았다.

침식방어전을 체험하러 갔다가 침식역류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던가?

그리 비중은 높지 않아서 까먹고 있었는데 첫 수업이라는 단어를 보니 기억이 되살아난 듯 싶었다. 분명 학기 초반에 있었던 일이고, 야외실습 같은 에피소드 중에 벌어졌던 일. 물론 정확한 건 아니었고 위치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컸지만······.

그래도 나는 만약을 대비해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준비라고 해도 별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미리 알릴 수는 없겠지만 사건이 터지면 바로 행동할 수 있게 컨디션을 조정하는 것 정도?

만약 정말로 사건이 터진다면 수호자급 마수를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침식역류가 벌어지는 거라면 생도 중에서도 피해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고, 마수를 잡으면서 업적을 쌓는 건 내게도 좋은 일이라는 게 그 판단의 이유였다.

타천자를 잡고도 별다른 일이 없었던 만큼 수호자급 마수를 몇 마리 더 잡게 되면 만상세계의 업도 그에 반응해주지 않을까- 그런 계산도 들었고 말이다.

“······.”

물론 그건 지금 당장 신경 쓸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생각을 털어내며 다른 메시지들도 하나씩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역시 메시지가 조금 쌓여있었다.

아무래도 워치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영 안 붙는지라 어쩔 수 없는 일. 매번 한참을 기다리며 전서구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실시간으로 연락하려니 영 신경 쓰인다고 해야 할까? 전생은 멀었고, 환생 후의 17년은 충분히 길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제일 밑에서부터 살펴보니 사카타나 리베르테에게 온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대련과 관련된 내용이었고, 딱히 거슬리는 건 없었기에 대충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다른 메시지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다음으론 아리엘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왜 수련하러 안 와?]

[···천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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