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3)
팽이처럼 돌아가는 마르네의 신형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를 향해 발을 박찼다. 정식대련인 만큼 죽이는 것만 아니라면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없었다. 예기를 빼고 날렸기에 다치진 않았겠지만 아마 상당히 얼얼하겠지.
순식간에 서로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 순간 몸을 멈춰 세운 마르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붉게 달아오른 이마가 엿보였고, 핏줄이 달아오른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조금 그렁그렁해진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달려오는 내 모습을 인지하자마자 그 즉시 양손으로 마력을 직조해내기 시작했다.
웅- 우웅-! 우우웅-!!!
순식간에 울려 퍼지는 3중의 파동. 목검이 그녀를 향해 쏘아짐과 동시에 한순간에 중첩된 삼중파동은 하나의 창이 되어 내 목검과 맞부딪혔다.
극점에서 마주한 서로의 공격.
그 중심에서 밀려 나오는 마력의 파도!
-------!!
동시에 대기가 밀려 나왔고.
마지막으로 뒤늦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카각-! 카가가각-!! 콰아아앙-!!!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
한순간에 마력 파동을 꿰뚫은 목검이 그대로 그녀마저 뚫어내기 위해 쏘아져 나갔고, 빠악-!! 목검은 마르네를 강타했다. 그렇게 한 번 더, 그녀의 몸이 뒤로 밀려나갔다.
“크윽!!”
급히 손을 들어 공격을 막아낸 그녀였지만, 애초에 무인도 아닌 그녀가 막아내기에는 다소 무거운 일격. 그렇기에 허공을 향해 밀려나가는 그녀의 팔은 이미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동시에 그녀의 얼굴 또한 분노속에 붉게 달아올랐다.
“···아 씨! 존나 아프네!!”
고통을 토해내며 뒤로 밀려나 가던 그녀는 마력을 방사함으로써 몸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이내 고통과 분노, 짜증과 경계심이 섞인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이 정도면 목검을 든 것도 납득했겠지.”
“······아··· 이 새끼가 아까부터 존나 여유 부리네! 닥치고 전력으로 덤벼. 아파도 내가 아프고, 뒤져도 내가 뒤지니까!!”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데도 자신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마르네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내게 으르렁거리듯 거친 대답을 토해냈다.
전신에 맴도는 기세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상당히 열 받은 모양.
그녀의 주위로 떠오른 마력의 물결이 단계적으로 증폭되며 거센 파동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늘을 뒤덮기 시작한 푸른 마력. 기묘하게 휘몰아치는 마력은 순식간에 수십 개의 파동을 자아냈다.
웅-! 우웅! 웅! 웅!
“······.”
아까부터 느낀 것이지만 성격과는 별개로 마르네의 마력은 꽤나 아름다운 색깔을 띠고 있었다. 저 파동이 모두 쏘아진다면 꽤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
하지만 그렇게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마력을 감상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한 번 마르네가 말을 걸어왔다. 조금 억눌린 목소리였다.
“···뒤질려고 여유를 부리지.”
마르네의 눈빛에 흉흉한 기세가 깃들었다. 그런 그녀의 감정에 반응하든 허공을 뒤덮은 마력이 사납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다만 사람을 죽여 본 적은 없는 걸까?
살기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게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고, 이내 나도 모르게 무림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긴 애초에 생도가 살기를 쓸 줄 알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겠지. 이건 대련이기도 했고 말이다.
나는 그런 생각 속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
초상계 각성자치곤 육체 내구도도 괜찮아 보였고, 정신력도 괜찮아 보였다. 마음가짐은 훌륭한 편이었고 마력 운용력도 뛰어났다. 마력에 제대로 된 염원을 담을 수만 있다면 분명 꽤나 괜찮은 전력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따름.
“전력으로 덤비라 했다 씨발.”
물론 말투는 교정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마르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말했고, 하늘을 파랗게 물든 마력은 어느새 모두 내게 겨냥된 채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제 준비가 모두 끝난 걸까?
나는 그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녀와의 대련을 수락한 것도, 목검을 선택한 것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전력으로 덤비는 걸 원한다?
그건 어려울 것 없는 문제였다.
우우웅-!!
심상의 매듭이 하나 더 풀어져 나왔다.
“드루와··· 이 빡대가리새끼야!!”
“원한다면야.”
저렇게 도발을 하지 않아도, 이미 첫 만남때부터 나는 그녀와 대련할 일이 있다면 전력으로 상대해줄 생각이었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그럼 뭘 보는데 씹새야.’
‘어쭈? 함 뜨까? 어?’
‘야! 거기 빡대가리!!’
딱히 그녀의 말을 속에 담아두고 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리더라도 스스로의 언행에는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
그런고로.
나는 푸르게 밀려오는 마력의 해일 속으로 뛰어들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목적은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조금 정신을 차리게 해주기 위해서.
쾅-!!!
그렇게 솟구친 칠흑의 별무리는 한순간에 마력을 갈라냈고, 나는 한순간에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렇게.
빡-!!!
“컥-!”
휘둘러지는 몽둥이, 아니 검.
나는 그녀의 염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쿵-!! 그것도 성심성의를 다해서.
아주 열정적으로.
“흡! 잠, 며, 명치!!”
“안 죽어.”
쾅-!! 쉴틈없이.
***
“···아! 아악!! 자, 잠까만!!”
비명 서린 외침을 토해내는 그녀. 그런 그녀의 피부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금속. 마르네가 그렁그렁해진 눈빛으로 다급하게 애원했다.
“아··· 살살!! 살살!!”
아주 난리를 치는구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엄살 피우긴.”
“···뭐, 뭐 엄살? 이 미친!!”
고작 치료마법을 좀 받는 걸로 온갖 난리를 피우는 모습에 그렇게 말한 건데,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얼굴엔 경악이 서려 있었다.
“······어··· 엄살은 아닌 것 같아요···!”
“아니··· 넌 저게 엄살로 보여?”
옆에 있던 이하린과 아리엘이 차례대로 그렇게 말했고, 멍하니 마르네를 지켜보던 이솔라 또한 무감정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너 나빠.”
“맞아! 쟤가 나쁜 거야! 이솔라 쟤 좀 혼내줘!!”
나무 몽둥이로 세차게 두드려 맞은 마르네가 빨개진 눈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나를 노려보는 마르네의 피부는 이곳저곳 붉고 푸르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녀의 눈망울은 무척이나 그렁그렁해진 상태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금 의아한 심정을 담아 입을 열었다.
“전력으로 해달라 한 건 너였잖아.”
“아니 전력으로 하라고 했지 누가 갖고 놀면서 두들겨 패랬냐 시발?!”
“그게 전력이야.”
본인이 원하는대로 해줬는데 왜 저러는 걸까? 솔직히 저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를 본 것도 아니고 조금 아픈 것 뿐이지 않은가? 뭐 그 행동에 사심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녀가 원하는 바에 맞게 전력을 다해줬을 뿐이었다.
고로 나는 떳떳했다.
그러자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리베르테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얘 이런 성격이었구나?”
“펴, 평소에는 그래도 상냥한 편이에요!”
“맞아! 나랑 대련할 때는 안 이랬는······”
“응? 아리엘 너 유천하랑 대련했었어? 도대체 언제? 대련금지 기간이었는데?”
“······어? 내가 방금 뭐라고 했었나?”
치료시설 내부는 그리 좁지 않았지만, 하도 떠드는 입이 많아서 그런지 목소리가 조금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지금 이곳에 있는 아이들- 이하린이나 아리엘, 내게 대련을 신청했던 사카타나 리베르테. 그리고 마르네를 따라온 이솔라까지.
대련이 끝난 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질린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지만 친분이 있는 아이들은 이곳까지 우리를 따라왔고, 그렇다 보니 지금 이곳은 유망주들이 득실거리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묵묵히 마르네의 상태를 지켜보던 사카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조금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손속이 그런 편인가?”
“어떤 손속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런건 상대에 따라서 다르지.”
“······음. 그렇군.”
괜한 오해는 사기 싫어서 그리 대답했는데, 그 말에 치료를 받던 마르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이새꺄?! 그럼 나라서 이렇게 두들겨 팼다는 거냐? 이 미친 새끼가!!”
“···마르네 괴롭히지 마.”
애초에 본인이 말을 저렇게 하면서 도대체 무슨 대우를 바라는 걸까. 다만 저렇게 얻어맞고서도 입을 놀리는 걸 봐선, 저 녹색 머리의 양아치는 천성 자체가 저런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맞아놓고도 저럴 수 있다는 게 조금 대단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을 뿐이었다.
“뭐야 그 반응은!! 이게 진짜!!!”
“···대련 한번 더 할래?”
“···!! 이, 이 새끼 얼마나 더 팰려고!”
“그럼 시끄럽고 치료나 해라.”
“······마르네 조금 시끄럽긴 해.”
“이, 이솔라···?!”
어쨌든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정신력만 소모될 것 같았기에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솔라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마르네를 제외하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됐고. 난 이만 갈게.”
“···아! 가시게요?”
“예. 치료에 문제는 없어 보이니까요.”
“천하 이따 봐~”
“어.”
“응? 이따? 이따 봐···?”
“······내일 보자고 한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흘려들으며 나는 그대로 시설을 나섰다.
그러자 이하린은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쪼르르-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나는 뒤를 돌아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냥 쳐다본 건데도 그녀는 뭔가 찔렸는지 다급하게 이유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 저는 저기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나온 거에요! 천하씨랑 아리엘 말고는 잘 몰라서···!”
“그렇군요.”
물론 그녀가 주연인물들을 모를 리는 만무했다만 나는 그러려니 했다. 애초에 저런 분위기에 남아서 뭘 하겠는가. 그리고 나 또한 저런 자리에 섞여 있는 건 불편했어도 그녀와 둘이서 이야기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었으니 말이다.
“그것보다 몸은 이제 다 나으신 건가요?”
“아, 넵! 완전 멀쩡해요 이젠···!”
그렇게 대답하며 이하린은 진짜로 괜찮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마냥 허공에 검을 슉슉- 휘둘렀다.
물론 고작 며칠 만에 완치될 부상은 아니었기에 조금씩 움찔거리는 부분이 느껴졌지만, 특성 덕분인지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검로는 깔끔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되겠군요.”
“······네?”
“이번 사건을 통해 하린씨도 의념의 중요성을 확실히 깨달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그렇긴 하죠?”
“그런 만큼 신검합일과 의기 상인에 제대로 발을 들이셨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의념 자체를 수련하실 시간입니다.”
“······아.”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눈동자를 잠시 데굴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힘차게 대답했다.
“넵! 잘부탁드립니다···!”
무언가의 결의가 담긴 눈빛으로 해맑게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에, 나 또한 옅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이번 사건을 겪었던 만큼 그녀는 분명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겠지. 첫 번째 위기도 무사히 지나갔으니 어지간하면 다음 위기가 찾아오기 전까지 이하린은 분명 충분히 제 몫을 할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재능은 충분했고, 마음가짐 또한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때가 온다면 내가 그녀에게 신경 쓸 일도 줄어들터였고··· 나로서는 그게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게 내가 그녀의 호의에 답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어서 그 순간이 오면 좋겠다 생각하며 이하린과 함께 노을빛 아래를 걸어나갔을 뿐이었다.
***
그렇게 유천하가 나가고 난 뒤, 리베르테는 계속해서 출구를 뻔히 바라보고 있던 아리엘에게 말을 건네었다.
“오우··· 뭐야 뭐야. 왜 그렇게 아쉬워함?”
“···응?”
“쟤 나가니까 갑자기 말이 없어지네?”
“으음···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이상하기는 아주 그냥 아까부터 시선이 저쪽에서 떠나질 않고 있···”
능글맞게 웃는 리베르테의 모습.
아리엘은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쉿.”
“···읍!”
우웅-! 동시에 싸늘하게 퍼져나간 마력이 리베르테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읍-! 뭐라 입을 버둥거리는 리베르테를 무시한 채 아리엘은 마르네를 바라보았다.
“저기··· 마르네?”
“엉?”
아리엘의 부름에 마르네가 고개를 돌렸다.
퉁퉁 부은 팔을 주물럭거리는 그녀의 표정은 영 기분이 언짢아 보였지만 부상이 부상인지라 그녀는 충분히 마르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인해보고 싶은 점이 있었기에 그녀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을 뿐이었다.
“천하 상대할 때 어떤 느낌이었어?”
“뭐 임마? 나 존나 처맞는 거 못봤냐? 뭔 소리야 갑자기. 그냥 존나 쎗지.”
“음··· 아니 그런 거 말구. 뭔가 능숙하다던가 경험이 풍부한 것 같다던가··· 뭐 그런 거는 못 느꼈어?”
“응?”
아리엘의 말에 마르네의 얼굴 위로 잠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기기묘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흐음. 그런 관점에서 말이지?”
잠시 인상을 찡그린 채 고민하던 그녀는 곧이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존나 세던데?”
“······으음.”
“근데 존나 능숙하고, 존나 여유롭고. 네 말 들으니까 그런 느낌이긴 하네. 그냥 빠르고 세고 그런 느낌보단 뭔가 존나 능숙했어. 공격을 받아내는 거나, 중간에 페이크를 주는 거나··· 나를 존나 두들겨 팬 거나! 씨발!”
순간 차오른 분노에 마르네는 욕을 내뱉었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대련 중에 느꼈던 점을 되새겨보았다.
유천하는 분명 강했다.
그것도 그 순간을 떠올리는 순간 등골이 섬뜩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마력을 다루는 감각이나 육체를 구사하는 기예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마력 파동을 베어 넘기는 것도, 마력의 잔재를 이용해 페이크를 주는 것도, 결정적으로 그렇게 사람을 두들겨 팼으면서도 부상의 수위를 조절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빡-!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질 정도로 엉망진창으로 얻어맞았는데도 아프기만 하고 뼈가 상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온몸이 욱신거렸던 대련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르네는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어디서 키운 새낀지는 모르겠다만 그 새끼 사람 한두 번 패본 솜씨가 아니었어.”
진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마르네의 대답에 아리엘은 한번 눈을 깜빡거렸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응! 고마워!”
“이딴 게 뭐라고··· 그것보다 왜? 너도 유천하랑 한판 뜨게? 조심해라 그럼. 걔 마력이고 뭐고 그냥 다 뚫어버리더라.”
“음? 아··· 응! 나도 나중에 대련해봐야지.”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뭔가 기억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맞다 맞다. 나 할 거 있었는데··· 이만 가봐야겠다.”
“읍읍!”
“빨리 낫기를 바랄게! 다음에 봐 애들아.”
“···잘 가.”
“가라.”
“읍읍!”
그 말과 함께 아리엘은 황급히 자리를 나섰고, 들려오는 인사 소리에 아리엘은 뒤를 향해 손을 흔들며 그녀는 양호실에서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급했던 그녀의 발걸음이 어느새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저무는 석양 아래를 걸어가며 아리엘은 지난 금요일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갑자기 들이닥쳤던 마인과 그 날의 위기.
마인의 몸에서 터져 나왔던 그림자의 파동은 분명 끔찍한 경험이었고, 처음 마주한 마인은 자신의 상상보다도 흉악하고 뒤틀린 악의를 품고 있었다.
마음에 추악하게 달라붙으며 정신력을 갉아먹던 마력. 타천자의 마력을 떠올린 아리엘은 온몸에 소름이 듣는 기분이었다.
‘정말 위험했어.’
그날, 이하린과 유천하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리엘은 꼼짝없이 타천자의 손에 유린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는 기절하기 직전의 마력 파동 속에서 타천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어들일 수 있었다.
오로지 자신을 유린하겠다는 마음.
구역질이 날 만큼 끔찍하고 더러운 악의.
그렇기에 이하린과 유천하가 그녀를 구해줬다는 건 분명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아리엘은 그 둘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녀는 진심으로 그 둘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