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2)
그 순간 진시우도 나를 발견한 모양인지 허공에서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교차하는 시선 속에 나는 만상의 눈으로 녀석을 들여다보았고, 동시에 녀석의 눈빛속에 작게나마 흥미가 서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텅 빈 복도에서 우리는 태연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녀석과 가까워졌고,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우리는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거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네가 타천자를 토벌했다고?”
“···그런데?”
“칭찬해주지. 잘했다.”
“······”
녀석은 그렇게 말한 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곤 복도 너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난데없이 들려온 헛소리에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는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원작에서 묘사된 진시우의 성격도 원래 저 모양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진시우는 ‘원작’의 주인공답게 이런저런 사연이 있는 녀석이었고, 그로 인해 성격이 영 좋지 않은은 편이었다. 대인관계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원작의 이하린도 진시우에 대해서는 손을 놨을 정도.
그나마 제 할 일은 알아서 잘 하는 녀석이라서 다른 아이들처럼 따로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심성 자체가 나쁜 녀석은 아니었고 후반으로 갈수록 쓸모가 많은 녀석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오로지 이하린 뿐이었으니 말이다.
***
강의실에 도착한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해보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긴 했지만 타천자 침입건을 해결한 이상 사실상 당장 대비해야 할만한 사건은 없었다. 물론 나라는 변수가 끼어들었으니 원작의 흐름과 이 세계의 흐름이 반드시 동일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잿빛탑의 인과因果는 인과人果에서 벗어난 일이었으니 탑의 발현은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는 문제.
그렇다면 사실상 이번 학기 동안 유의해야 할 건 마인과 관련된 일뿐이었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그렇게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하나둘씩 강의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이 수업은 분반 수업이었기에 듣는 이들이 많지 않아 아까보다는 시선이 덜 쏠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오··· 있다있어.
-근데 여기서 말걸기는 좀 그런데 쟤는···.
-리베르테 말할때 같이 좀 끼어들걸.
아까같은 분위기면 모를까 지금처럼 사람이 몇 없는 강의실에선 차마 말걸기가 조금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이도 존재하긴 했지만 말이다.
“와씨 너 뭐냐? 뉴스에 그거 진짜야?”
“······.”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 아이는 낯짝이 참 두꺼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마르네는 아무렇지 않게 내게 친한 척 말을 걸어왔다.
“타천자 진짜 니들이 잡은 거야? 아리엘이랑 뭐시냐, 이··· 뭐시기랑 세 명이서 잡은 거라며. 새끼 좀 치네? 마무리는 뭘로 날렸냐?”
“······.”
물론 나로서는 그 태도가 조금 어이없었기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런 내 반응에 마르네는 이내 오히려 자기가 답답하다는 듯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아 씨! 칼질하다 입이라도 베였냐? 빨랑 대답 좀 해봐바 궁금해 뒤질 것 같으니까.”
“그냥 연맹에서 공개한 자료나 봐.”
“아 거기엔 자세히 안 나와 있으니까 그렇지! 니들 셋이서 때려잡았다고만 하는데 솔직히 타천자가 뉘 집 개 이름이냐? 엉? 빨리 썰 좀 풀어봐.”
“······.”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간단히 대답해주었다.
“마무리는 검강으로. 애초에 특성 자체가 검강이 아니면 뚫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오오! 다른 건 어땠어? 타천자 세냐? 막 존나 세고 그래? 막 몸도 막막 변하냐?”
“변해. 그리고 너보단 세.”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카룬드 그 새끼도 타락 전 랭킹은 1000번대였다 하니까.”
“아··· 그래?”
내 생각보다 강한 녀석이었던 걸까?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사실 원작에서 묘사된 카룬드는 첫 번째 메인 악역이었을 뿐이지 비중 자체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대충 학기 초반에 쳐들어와서는 생도들의 합격에 고전하다 교수들한테 때려 잡히는 정도?
사실상 트라우마도 극복 못 한 진시우한테 발목이 잡혔을 정도였으니 내 인식이 이런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원작에서 묘사된 비중도 그러했고, 실제로 마주한 녀석의 실력도 그닥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솔직히 타천자란 존재에 대해 조금 실망스러웠던 부분도 없잖아 있었는데 그래도 내 평가보다는 조금 더 강한 녀석이었던 모양.
그런 내 반응에 마르네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새낀 지가 잡아놓고도 모르고 있네. 바보냐? 나보다 약하면 진작에 잡혀 뒤졌겠지. 타천자가 괜히 타천자도 아니고.”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전력을 가늠해보았다. 정확히 비교하기는 힘들었지만 등천자의 수준은 대충 절정고수와 비슷한 정도.
당연히 그 안에서도 수준은 천지 차이로 나뉘겠지만 확실히 그 정도면 강자에 속하는 편이었다. 중원에서도 절정고수라 해봐야 1,000명이 간신히 넘는 정도였고, 이 세계에서도 등천자는 3,000명 남짓이라 들었으니까.
그리 생각했더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기분이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들에 대해 대략적인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물론 상위권으로 갈수록 힘의 격차가 커지기에 아직 확신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 인지는 어느 정도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적어도 멸화급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한 명의 타천자만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건 지금 생각한다 해서 정확히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나는 마르네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을 따름이었다. 물론 계속 상대해주는 건 귀찮았기에 화제는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너 저번에 대련하고 싶다고 한 건 아직 그대로야?”
“응? 존나 당연한 소릴 하고 있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아··· 설마?”
“그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대련일정이나 정해. 지금 바로.”
“오 시발? 좋아 좋아! 그래서 언제 뜨실 생각? 난 아무 때나 상관없음.”
“그럼 수업 끝나고 바로 하든가. 가능해?”
“···가능!!”
마르네는 그리 대답하며 허공에 마력을 펑펑 쏘아댔다. 참 쾌활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신청은 네가 알아서 해놔.”
“응? 아 뭐 그 정도야 오키오키. 그것보다 공개가 좋냐 비공개가 좋냐?”
“상관없어.”
“룰이나 지형도?”
“마음대로 해.”
“아. 고럼 그냥 다 내 맘대로 한다.”
“어.”
이미 팔릴 대로 팔린 이름이었던지라 세부적인 조건 정도는 아무 상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마르네와 대련한다고 밑천이 드러날 만큼 하수도 아니었고, 애초에 공개로 하든 비공개로 하든 그런건 딱히 중요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대련구역으로 이동했다. 참고로 시설이 위치한 곳은 1학구와 2학구의 경계.
사실 대련 정도야 어디서 하든 크게 상관 없었지만 대련구역에는 제대로 된 방호시설 및 응급시설이 갖춰져 있었기에 학교 측에선 대련구역 이용을 권장하는 편이었다.
‘사실 이 정도 대련으로 부상자가 생길 것 같진 않지만···.’
그 정돈 싸워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르네의 특성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어떤 특성이든 간에 본신의 기량이 중요한 법. 부상자가 생기기에는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격차가 조금 큰 편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대련구역으로 향했고,
“······뭔데 이거.”
그곳에 도착한 나는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운 기분을 체감할 수 밖에 없었다.
-오!! 진짜 왔다!
-대련 첫날부터 상위권 경쟁 크···!!
-응? 근데 유천하는 상위권 아니지 않냐? 쟤 199위잖아.
-실력 븅시나. 타천자 모가지 땄는데 우리 모가지를 못 따겠냐.
마르네 녀석이 신청해뒀다는 곳에 도착 하마자 나는 빽빽할 정도로 가득 찬 관중석과 귓가가 먹먹할 정도로 울려대는 웅성거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회랑의 대련시설은 개방형과 밀폐형 두 종류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개방형 시설은 마치 검투사들의 투기장처럼 시합장을 중심으로 관중석이 빙 둘러져 있었다.
한마디로 이곳에선 다른 생도들의 대련을 쉽게 관람할 수 있다는 말.
-근데 유천하급이면 마르네로 좀 힘들지 않을까요? 되게 활기차게 들어오네요.
-뭐 그런 건 해봐야 알죠. 그리고 저년이 평소에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봤어요?
-하긴 그렇네요.
그렇게 감각을 열어두고 있자니 마치 경기장에 온 것처럼 시끄러운 웅성거림이 밀려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귓가가 얼얼해질 정도. 들려오는 소리를 보아하니 모두 우리의 대련을 보러 온듯싶었다.
···아. 경기장은 맞는 건가?
나는 빽빽하게 메꿔져 있는 관중석을 잠시 둘러본 뒤 이내 마르네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설마 대련한다고 홍보라도 한 거야?”
“응? 뜬금없이 뭔 홍보?”
“사람이 왜 이렇게 많···”
“당연히-! SNS에 자랑했지!”
“······.”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눈을 찡긋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대체 왜? 아니··· 상관은 없긴 한데.
대련에서 깨지고 부끄러울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만 나로서는 그저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물론 이건 그녀의 선택이었고, 당사자는 이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으니 나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뭐··· 자기가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내젓고는 시합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르네는 벌써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는지 경쾌한 걸음으로 나를 따라오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사실 이 누나는 사람들이 보고 있어야 좀 흥이 나는 사람이거든?”
“아. 그래.”
그녀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나는 한쪽에 놓인 대련용 무구들을 둘러보았다. 물론 무투계뿐만이 아니라 초상계 초인들도 많은 만큼 반드시 대련용 무구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지만 마르네를 상대로 진검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목검을 주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게 제일 투박해 보이는 무구였기에 고른 건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마르네가 순간 인상을 찌푸리는게 눈에 들어왔다.
“뭐냐 시발? 너 왜 목검쓰냐.”
“그럼 대련인데 진검을 쓸까.”
“아니 하다못해 가검을 쓰던가.”
“핸디캡.”
“아··· 이 새끼가?”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그녀가 욕설을 내뱉으며 내게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내가 목검을 선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이 새끼 진짜 사람 개무시하네? 내가 무슨 그레이라인이냐? 대련에 목검을 쓰게? 그거 부러지면 맨손인데?”
“처음부터 맨손으로 하려다 참은 거야.”
“······아이 씨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광분하는 마르네를 뒤로 한 채 나는 시합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뭐라 욕설을 내뱉기 시작한 그녀를 무시하며 나는 천천히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눈에 들어왔다.
‘남궁설아, 리베르테, 사카타에 저기는 아리엘 그리고 저긴······ 이하린?’
그녀를 발견한 순간 나는 자연스레 아까 스마트 워치의 알람을 꺼놨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 즉시 나는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메시지가 조금 쌓여있었다.
[저 퇴원했어요!]
[천하씨 대련하세요? 에타랑 대나무숲에 천하씨 대련한다는 소문이 엄청 퍼졌어요!]
[아 수업 중이시구나······]
[이따가 저도 구경하러 갈래요!]
[화이팅!]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나 싶었더니 아까 전에 퇴원한 모양. 정말 수업만 빠지려고 병실에 눌러붙어있었나 보다. 뭔가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메시지도 확인해 보았다.
[천하 너 이따 대련해?]
[마르네랑 하는구나 Σ(゜゜)]
[화이팅 :b]
[······진짜 차단했니?]
[ノಠ_ಠノ]
딱히 별 내용은 없었다.
대답이야 이따가 3학구에가서 하면 되는 거였으니 나는 마음 편히 워치를 꺼버렸다.
그건 그렇고 SNS에 올렸다더니 마르네도 나름 유망주라 그런 걸까? 생각보다 이런저런 커뮤니티에도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워치를 만지고 있었더니 이내 화를 가라앉힌 듯 한쪽에서 씩씩대던 마르네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이 빡대가리씨.”
아니, 화가 가라앉은 건 아니었나 보다.
“······또 이러네.”
“그래그래. 목검으로 허세 부리다 뒤지게 처맞으면 정신 좀 차리겠지?”
“······.”
첫 만남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이 녀석은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다. 정말 현대사회에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녀석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그래서 목검을 선택한 거지만 말이다.
그 순간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이곳에는 이런 시스템도 갖춰져 있는 모양. 자세히 보니 경기장 한편에는 컨트롤 타워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에는 회랑의 직원이 들어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긴 학교 측 사람이 없으면 대련이 위험하게 진행돼도 말릴 사람이 없겠지. 나름대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씩씩거리는 마르네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네보았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뭐?”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기본적인 실력 차이 정도는 너도 짐작하고 있지 않아?”
“참나. 느그 새끼가 강하든 말든 대놓고 봐준다 지랄하는 건 별개의 문제 아니겠냐? 진검은 에바라 쳐도 가검도 아니고 목검? 그게 뭔 개 같은 매넌데.”
“보통은 반대 아닌가?”
“······하?”
그녀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터트렸다.
[10초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이 새끼 존나 어이없네. 야. 애초에 네 새끼가 강한 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병신도 아니고··· 배치고사고 업륜이고, 타천자고 엉? 알고 있다고.”
“그럼?”
“근데 질 걸 알더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게 공략자 아니냐? 실력 좀 후달린다고 사람들 뒤져나가는데 도망갈 건 아니잖아? 응?”
[5초.]
마르네는 그 말과 함께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파도처럼 요동치는 푸른 마력이 그녀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너한테 대련을 신청한 거야 시발아. 네 새끼가 강한 걸 아니까.”
그녀의 마력이 대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만상의 눈이 아니더라도 확연히 느껴질 만큼 확실한 마력의 파동이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오고 있었다.
“그니까 아무리 대련이라 해도 너는 그냥 전력으로 나를 상대해주면 되는 거라고 개새끼야. 핸디캡이고 나발이고 지랄하지 말고······”
그 마력 격류속에서 마르네는 나를 노려보았고, 그런 그녀의 눈빛은 강한 열기를 그 속에 품고 힘차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1초.]
그렇게 토해지는 그녀의 심경.
그리고 이내.
[대련 시작.]
“알겠냐 이 씹새끼야아아-!!!”
그 목소리는 파도와 함께 휘몰아쳤다.
***
새파랗게 물든 세계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모여든 파동이 하나의 창이 되어 나를 향해 쏘아져 온다. 태양 아래 반짝이는 푸른 마력이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졌기에, 나는 잠시 그 빛의 산란을 감상하며 마르네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질 걸 알더라도 맞서 싸우는 게 공략자라··· 마음가짐은 괜찮네.’
비록 무인은 아니었지만 마음가짐만큼은 꽤나 훌륭하지 않은가? 조금 더 진지하게 상대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심상의 매듭을 풀어냈다.
내면에서 풀려 나오는 네 갈래의 매듭. 쿠구구구-! 막대한 거력이 온몸을 타고 내달렸고, 그 패도적인 기세를 느끼며 나는 그대로 목검을 들어 올렸다.
‘시작은 가볍게.’
훙-! 검극에 맺힌 기운은 선명한 극점으로 마력을 향해 쏘아졌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칠흑의 궤적.
그러자-
펑-!!
파도의 한가운데로 구멍이 터져나왔다.
“···!!”
우웅-! 단번에 와해된 마력의 격류.
파도는 형형색색의 빛깔 속에 흩날렸고, 푸른 해일 사이로 뚫린 공백의 너머로 경악한 마르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 번의 찌르기로 마력의 흐름을 꿰뚫은 나는 그대로 그곳을 향해 발을 박찼다. 흩날리는 마력의 입자가 내 몸에 부딪히며 허공으로 스러졌고, 그 순간 나는 한걸음에 마르네의 앞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미!”
찌르기, 다음에는 후려치기.
“친!!”
훙-!
카가가가-!!! 그 순간 다급하게 터져 나온 그녀의 마력 파동이 목검과 맞닿으며 강렬한 기파를 터트렸다.
손에서 느껴지는 상당한 반탄력.
하지만 소용없었다.
쾅-!!
내 목검은 마력의 저항을 가로지르며 그대로 마르네를 후려쳤고, 그 순간 카가각-!! 지근거리에서 터져 나온 마력 파동에 공격이 상쇄됨과 동시에 마르네의 몸이 그대로 허공으로 쏘아졌다.
“새끼가!!”
그 순간- 근성 있는 욕지거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주변에 퍼져있던 마력이 그대로 파동이 되어 나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푸른 마력이 이곳을 중심으로 거세게 휘몰아쳤다.
서걱-!
하지만 그 즉시 의념을 통해 마력을 갈라버린 나는 그대로 흩어지는 마력을 휘감아 마르네를 향해 쏘아 보냈다. 화살처럼 날아가는 다소 투박한 검기.
쐐액-!
그것을 향해 마르네는 황급히 팔을 내밀었고, 그녀의 손에서부터 마력이 휘몰아쳤다.
“어딜!”
우웅-!!
콰앙-!! 서로의 공격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마력이 터져나갔지만, 그 순간 의념으로 붙잡아둔 푸른 마력이 흩어지며 드러난 칠흑의 탄검!
그 속에 감춰져 있던 검기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고, 그 사실을 눈치챈 마르네는 다급하게 마력을 쏘아 보내 공격을 상쇄시키려 했지만 이미 궤적은 그녀의 이마에 맞닿은 뒤.
츳-
“!”
그렇기에 그 순간.
“제대로 봐야지.”
콰앙-!! 머리가 박살나는듯한 소리와 함께 마르네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이마를 후두려맞은 그녀의 몸. 허공에서 돌아가는 녹색의 바람개비.
그렇게 마르네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