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 (1)
소란스러웠던 주말이 지나갔다.
마인 침공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있었지만 회랑의 피해는 비교적 적었던 만큼 일정은 평소처럼 진행되었다.
물론 게이트를 담당하던 직원이 목숨을 잃었고, 생도에 의한 타천자 토벌이라는 유례없는 일도 있었기에 조만간 그와 관련된 영결식이 열릴 예정이라 했다. 그때 우리에게도 표창이 수여될 예정이라 하였는데 솔직히 그 부분엔 큰 관심이 없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나는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며 잠시 학생증을 들여다보았다. 특수한 마법으로 가공된 은은한 빛깔의 검은 사각형.
참고로 그 날- 모녀에게 건네줬던 학생증은 어제가 되어서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고, 지난밤 불쑥 찾아온 연맹 측 요원은 내게 학생증을 돌려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도 덕분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사전에 주의를 들은 덕분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요원의 말에 따르면 그날 모녀는 무사히 도시보안국까지 도착했다 한다. 덕분에 시티가드들은 테러에 대해 즉시 대응을 나설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터지기 직전의 폭탄 1개를 무사히 제거할 수 있었다나?
아무래도 녀석들이 원래 준비했던 폭탄은 총 10개였던 모양.
만상의 눈이 아니면 감지되지도 않았던 폭탄이었기에 시티가드선에서 그걸 찾아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그들로서도 순전히 우연에 가까운 성과였고, 내가 아니었으면 분명 후속조치에 급급했을 것이라 말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시도된 테러규모에 비해 피해가 작은 편이라 했는데, 내 기억 상으로도 원작에서는 수백 명의 피해가 나왔던 사건인 만큼 어찌 보면 수십 명의 피해로 그친 게 다행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정말 다행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하며 요원은 내게 한 가지 부탁을 건네왔다. 그 내용은 별게 아니었다.
‘······해서 그런데 이번 주말에 등천도시에서 치러질 추모식에 생도분도 방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망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영결식이 열릴 예정이라는데 그곳에 와서 얼굴을 비춰줄 수 있겠냐는 말. 그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고-
‘죄송합니다.’
-이내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심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그들의 죽음은 안타까웠지만 매스컴을 위한 그림이 되고 싶진 않았고, 내가 가봤자 큰 의미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나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제일 먼저 테러를 알아차린 생도.
등천도시의 테러를 저지한 새로운 영웅.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낸 초인.
그런 상징을 씌워 등천도시가 테러당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환기하겠다는 말 아니겠는가?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스스로 그 역할을 자처하고 싶진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해낸 일과는 별개로 2개의 폭탄은 이미 제 역할을 다했고, 추모의 대상은 그 역할의 희생자들이었으니 그런 곳에 가서 영웅행세를 할 정도로 난 뻔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요원을 돌려보냈고, 계속되는 기관의 조사 속에서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평범한 생도생활이 재개되었다.
-야야! 왔다 왔어!
-오우씨. 평소랑 존나 똑같네. 표창도 받을 예정이라며? 타천자 잡았다 생각 하니까 갑자기 존나 있어 보이네.
-미친 간사한 새끼. 필기로 쪼갤땐 언제고 태세전환 존나 빠르네. 근데··· 솔직히 나였으면 강의실 문 발로 차고 들어왔다. 인정?
-지랄 자제 좀.
아니, 그닥 평범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1교시 수업을 들으러 왔더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치고사 때도 그렇고, 업륜이나 남궁설아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익숙한 상황. 다만 이번에는 뭔가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전의 관심이 신기함과 가십거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관심은 호기심과 선망에 가까운 느낌이라 해야 할까? 물론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말이다.
-아 빨리 아무나 가서 말 걸어봐.
-유천하 쟤랑 말해본 사람 없어?
-쟤 친구 없잖아.
-아. 저런.
···거슬리네.
딱히 평판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만, 어째 갈수록 내 이미지가 이상하게 변질되는 느낌에 기분이 묘해졌다.
게다가 이전에는 그냥 힐끗거리며 저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뭔가 더 적극적인 기분이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은 기본이고 어째 계속 말을 걸고 싶어한다는 게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천하랑 같이 다니는 애 한 명 있지 않았냐? 저번 주도 안 나오더니 또 안 왔나 보네.
-아 그 짜리몽땅한 애? 걔도 그거잖아. 타천자 토벌 멤버.
-걔가 이하린이야?
그런데 다른 생도들의 입에서 이하린의 이름까지 흘러나오니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야 이런저런 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지만 이하린은 아니었지 않은가? 확실히 이번 사건이 꽤 화제가 되긴 했던 모양.
아. 참고로 이하린은 아직 병원에 있었다.
회복특성을 갖춘 의료진 덕분에 그녀는 이미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회복된 상태였지만 차마 수업을 듣기는 귀찮았는지 그녀는 하루 더 입원해있는 걸 선택했다.
‘······생각보다 수업 듣는걸 싫어하네.’
안 그래도 저번 주에 비슷한 사유로 자체휴강을 했던 그녀였던지라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잠시 원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하린의 성실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내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하이?”
“······.”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오는건 다짜고짜 인사를 건네오는 소년. 웨이브 진 단발머리가 조금 익숙한 외형이었는데 그렇다고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하이는 싫은가? 안녕?”
누구였더라?-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며 그를 바라보았다. 만상의 눈으로 파악되는 수준은 절정의 초입. 딱히 위험요소는 없지만 이 정도면 확실히 유망주급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 비중있는 인물은 아니었는지 딱히 기억나는 구석은 없었다.
‘그런 것치곤 뭔가 낯이 익긴 한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내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 소년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갈색 머리의 아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기 시작했다.
“하하! 역시 모르는 눈치네.”
“뭘 역시는 역시야. 당당하게 나서더니.”
“아~ 그래도 같이 듣는 수업이 몇 갠 데 얼굴 정도는 아는 줄 알았지! 그동안 얼굴을 얼마나 마주쳤는데.”
“아.”
그 말을 듣고 보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리베르테 베르··· 뭐였더라?
생각해보니 이 녀석 또한 원작의 인물 중 하나로 나하고는 무학담론 등의 수업이 겹치는 녀석이었다. 입학식 때나 수업에서 몇 번 마주쳤던 기억이 있었다.
“리베르테···? 맞나?”
“오!! 뭐야 알고 있었네! 봐봐! 내 말이 맞지? 얼굴 정도는 아는 사이라니까!!”
“······.”
보통 이런 걸 아는 사이라고 말하던가?
그 생각은 내 머릿속에만 떠오른 게 아니었는지 리베르테의 옆에 서 있던 녀석도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리베르테를 쳐다보았다.
“그런 걸 아는 사이라 하진 않지. 보통은.”
“아~ 깐깐하네.”
“시끄러우니까 닥치고 있어. 그것보다 유천하? 난 사카타 렌이라 한다.”
“아··· 그래.”
사카타 렌- 굉장히 딱딱한 말투를 구사하는 이 녀석도 원작의 인물이었다. 이하린의 동료도 아니었고, 비록 후반부에 가서 죽긴 했지만 나름대로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게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아. 딱히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인사나 하려고 왔지!”
“갑자기···?”
“이번 주부터 대련금지도 풀리잖아. 2주 동안 얼추 분위기를 익혔으니 슬슬 얼굴 정돈 터야 되지 않겠어?”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대련신청 안 받아줄까 봐 미리 밑밥이나 깔려고 온 거다.”
“아니 메췐. 그걸 왜 말함? 님 돌았음?”
아. 그런 목적이었구나. 얼굴도 모르는 애들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더니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생각해보면 등천회랑에 입학할 정도면 모두 수준 이상의 기재들이나 마찬가지. 그런 만큼 생도라면 대부분 향상심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고 있었고, 그건 상위권- 즉 유망주급으로 갈수록 더 강한 편이었다.
그건 당장 아리엘과 남궁설아만 봐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안 그래도 배치고사다 뭐다 해서 이런저런 주목을 받았던 판국에 마인 토벌로 화제가 집중된 상태. 이 와중에 대련금지 기간마저 끝났으니 어찌 보면 이건 당연한 일이었고, 마르네 녀석도 비슷한 목적으로 내게 시비를 걸어왔었던지라 나는 빠르게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대련신청 하려고 왔다는 말이네.”
“그래. 물론 겸사겸사 궁금한 것도 있고···”
“아 딱딱한 말투는 치우고! 유천하 너 진짜 타천자랑 싸운 거야?”
“······무례하기는.”
“응~ 시끄러워.”
리베르테가 얄미운 표정으로 웃어넘기자 사카타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아까부터 티격태격하면서도 허물없이 지내는 걸 보니 서로 꽤 친한듯싶었다.
“그래서 타천자하고 싸운 건 어떻게 된 건데? 응? 진짜 니들이 타천자를 잡은 거야?”
“······그렇긴 하지.”
“오!!”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는지 내 대답과 동시에 강의실에 앉아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리는게 느껴졌다.
“마무리는? 마무리도 진짜 네가 했냐?”
“어.”
“오우쉣!”
내 대답에 리베르테가 촐싹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기이한 열기가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는데 리베르테는 아예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내밀었다.
다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조금 거슬렸다.
“와··· 솔직히 너 공부 못한다고 뒤에서 엄청 놀렸었는데 이 정도면 못해도 된다. 여포메타 인정 인정!”
“······.”
뭐하는 놈이지 이건? 그 말에 담긴 내용에 순간 시비를 거는 건가 싶었다만 표정이나 행동을 보니 그런 건 아닌 모양.
다만 그 말에 당황한 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옆에 서 있던 사카타가 순식간에 리베르테의 머리를 팍-! 후려쳤다. 그러자 리베르테가 앓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된다는 듯 사카타는 내게 손을 내저었다.
“미안하다. 이 녀석 말은 무시해라.”
“아니 딱히 상관은 없는데.”
“그런가? 그럼 다행이군.”
뭐가 다행이야!- 라며 리베르테가 항의를 표하며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사카타는 그걸 가볍게 무시했고, 나 또한 그를 본받아 따로 반응해주진 않았다.
그런 내 태도에 사카타는 만족스러운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말을 꺼내왔다.
“그것보다 너만 괜찮다면 대련을 신청하고 싶은데 말이지. 타천자를 토벌한 실력. 제대로 견식 해보고 싶다.”
“대련 정도야 상관은 없는데 당장 확답을 주긴 어려워. 선약이 있거든.”
“벌써 선약자가? 그래도 거절하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다. 시간은 나중에 편한 대로 말해줘도 되니까.”
그 말과 함께 사카타가 스마트워치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연락처를 교환하자는 의미인듯싶었다.
딱히 상관은 없었던지라 나는 흔쾌히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그렇게 내 주소록에는 이하린 다음으로 새로운 연락처가 등록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리베르테 또한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쭉 내밀어 왔다.
“아 새치기하면 안 되지! 나도나도!”
다시 연락처가 한 개 더 추가되었다.
“좋아. 연락 기다릴게. 가자 이제.”
“응? 아직 물어볼 거 남아있···”
닥쳐- 그러자 이제 볼일은 끝났다는 듯 사카타는 뭐라 말하는 리베르테를 그대로 붙잡고 자리로 돌아갔다.
정말 성격이 정 반대인 녀석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쏠려 있었다. 뭔가 리베르테가 물꼬를 터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도 말을 걸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다른 생도들 또한 대련을 신청하고 싶은 모양.
그런데 그 중 유독 강렬하게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기에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저 멀리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리엘의 얼굴. 하지만 항상 밝은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답지 않게 아리엘은 지금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뭔가 불만스러운듯한 표정.
갑자기 왜 저러지?
“······?”
“······.”
나는 그런 아리엘에게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러자 그녀는 이내 손목을 들고서는 손가락으로 톡톡-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두드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스마트 워치? 그게 왜··· 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그간 아리엘과 교류를 하면서도 서로 번호를 교환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수련장소가 겹쳐서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 데다, 굳이 따로 연락할 일도 없어서 그랬던 것인데 그녀의 입장에선 조금 다르게 느껴졌나보다.
순식간에 내 앞에서 휘몰아치는 마력.
만상의 눈으로 내용을 살펴보았더니 어느새 아리엘이 마력을 통해 본인의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번호 안 알려주더니 Σ(・口・)]
애초에 물어본 적도 없었다.
[너무해! 너무해! 친구라면서! (;△;)o]
······도대체 내가 언제?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만 생각해보니 지난번 3학구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게 기억났다. 물론 내가 한 말은 아니었고, 아리엘이 이하린에게 장난치며 꺼낸 말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 멀리서 전해지는 아리엘의 시선 속에는 상당히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나는 일단 그녀에게 업륜의 마력을 쏘아 보내주었다.
당연히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내 번호.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모르는 번호로 온 메시지. 하지만 이 타이밍이라면 당연히 아리엘에게서 온 메시지 일터였기에 나는 그녀의 번호를 저장하며 메시지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문자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천하는 남자한테만 관심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내 번호는 필요 없었던 걸까···?]
······아무래도 타천자를 한번 만났더니 정신이 다소 이상해진 모양. 그냥 무시하려다가도 기분이 썩 좋진 않았기에 나는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원래는 하린씨 번호밖에 없었다.]
그렇게 순간 욱한 심정으로 보낸 메시지였는데 막상 보내놓고 나니, 나는 이내 아차 싶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반응이 되돌아왔다.
[앗! 미안! 천하는 하린이밖에 모르는데 내가 착각했네··· :b ]
나는 아리엘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고개를 돌린 채 히죽거리며 스마트워치를 두들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새로운 장난 거리를 발견했다는 느낌이었다.
설마 서운한 척 한 것도 장난이었던 걸까?
이어지는 메시지에 아리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두 분 예쁜 사랑 나누세요!]
물론 그러든 말든 계속 장난을 걸어오는 게 심히 거슬렸기에 나는 가볍게 답장을 보냈을 뿐이었다.
[너. 차단.]
그러자 스마트 워치가 웅웅- 울려왔지만, 나는 이내 그냥 마음 편히 알림을 꺼버렸다.
***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다음 수업을 위해 강의실을 나섰다. 다른 아이들한테 둘러싸이면 귀찮아질 게 뻔했기에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온 것.
어차피 바로 다음 수업이 업의 이해시간인지라 마르네 하고는 그때 이야기하면 되는 문제였다. 자기가 원하던 대련이니 시간 조율하는 게 어렵진 않겠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자니 복도 저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백색의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피로와 짜증이 엿보이는 얼굴.
저렇게 특색있게 생긴 녀석은 한 사람밖에 없었고,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유망주 랭킹 1위이자 ‘원작’의 주인공.
‘진시우.’
그런데 조금 의아했다. 방금의 수업은 1학년 공통 교과. 하지만 수업이 막 끝난 이 시간에 저 건너편에서 걸어온다는 것은 저 녀석은 수업을 안 들었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가 수업에 참석했든 안 했든 그 사실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빈 시간에 무엇을 하고 왔을지에 대해선 조금 궁금했다. 안 그래도 주말 동안 그런 사건이 벌어졌던 만큼 원작대로라면 저 녀석이 속한 기관 또한 다소 바쁘게 움직였을 테니 말이다.
나는 잠시 원작의 설정을 떠올려 보았다.
물론 내가 읽은 원작은 이하린을 중점으로 전개된 이야기였기에 진시우에 대한 서술은 그닥 많지 않았지만, 녀석 또한 이하린이 집필했던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만큼 진시우는 나름대로 이 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맡고 있는 녀석이었다. 추후 이하린을 따라 심연토벌멤버가 될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하린을, 이하린은 진시우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나도, 이하린도, 진시우도 모두 이 세계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한 명의 사람에 불과했다.
물론 만상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원작에서도 자세히 설명되진 않았지만 내가 만상세계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곳은 분명 ‘무림’이었고, 그렇기에 내가 무림으로 돌아갈 방법은 분명 만상세계에 해답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따름.
만상세계란 무엇일까.
그리고 차원의 벽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 속에-
나는 ‘전생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