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양극 (3)
페르데는 그대로 검강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붉게 물든 그의 팔과 칠흑의 검강이 맞부딪혔고, 그 순간 적흑의 색채가 터져 나오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다시 한 번 더 허공을 향해 튕겨져 나가며 페르데는 생각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저 속도는 정상적인 영역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저런 초속의 세계를 거니는 자면 이미 자신의 목은 진작에 베어졌어야 정상이었다. 저건 등천자중에서도 하이랭커나 승천자쯤은 되어야 선보일 수 있는 속도일 테니까!
그렇다면 저 녀석의 특성은 ‘가속’이라도 되는 건가? 페르데가 도출해낸 판단은 진실에 근접해 있었다.
비록 유천하의 가속은 남궁설아의 특성을 카피한 열화판이었지만 그건 유천하의 특성 만상의 눈과 업륜이 조화됨으로써 이루어진 기적과도 같은 일. 본신의 경지와 결합된 이능은 유천하의 속도를 비상식의 영역에 들여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페르데가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그는 의아함과 혼란스러움, 경악함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공중에 체류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을 응시하는 유천하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
그리고 마주한 무기질적인 살의. 페르데를 내려다보는 유천하의 검은 눈동자. 그 순간 오한이 그의 척추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대체 저 눈빛은 무엇이지?
저건 마수를 사냥하는 자들이 가질 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오로지 사람을 베기 위해 길러진, 그리고 죽이며 살아온 자의 눈. 사람의 피로 담금질 된 흉악한 살의였다. 그의 앳된 얼굴과 상반되는 무력, 그리고 저 눈빛까지! 페르데는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그것보다는···!’
지금껏 그들이 서 있던 공간은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던 고층의 옥상. 이대로 추락해놓고 몸이 성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그야말로 바보 같은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페르데는 재빨리 팔을 휘둘렀다.
한순간에 엄습하는 중력을 실감하며 페르데는 옆으로 스쳐 지나가던 건물의 벽면을 손으로 찍어 눌렀다.
카가가각-!!!
순식간에 외벽이 박살 나며 허공으로 튕겨 나가던 페르데의 신형이 급감. 그대로 그의 몸은 허공에 멈춰서 건물 위로 안착했-
“아.”
저 미친 새끼!
이 순간 페르데의 마음속에 떠오른 말.
현재 그의 시야에 포착된 장면- 그건 유천하가 망설임 없이 탑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수십 미터의 높이에서 망설임 없이 뛰쳐나온 그는 본인의 검을 발판삼아 그대로 허공을 박찼고, 튕겨져 나가는 검을 의념으로 붙잡아 다시 회수했다. 그 결과 유천하는 중력을 피해 페르데를 향해 똑바로 쏘아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기예!
‘이런 씨발···!’
하지만 페르데에겐 상대의 실력에 감탄할 시간 따윈 없었다.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쯤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유천하의 위치는 공중! 발 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 불균형한 자세로 있을 때도 자신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
페르데에겐 지금이 기회였고, 그 순간 패혈마공이 극성으로 전개되며 그의 전신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죽어라-!!!”
쩡-!!
핏빛으로 뒤덮인 페르데의 손이 허공에서 유천하의 검극과 부딪혔다. 그 타점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막대한 기파가 터져 나왔다.
쿠우웅-!!
위이이잉-!!!!
동시에 페르데의 주먹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미 그의 양손은 걸레짝이 되어버린 지 오래. 허나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페르데는 연이어 팔을 휘둘렀다. 어떻게든 지금 유효타를 먹여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유천하의 대응은 페르데의 예상을 벗어난 형태였다.
패검 다음으로 이어지는 유검.
한순간에 변화한 검의 움직임은 처음 맞부딪힌 타점을 기준으로 페르데의 팔을 휘감은 채 그대로 유천하의 몸을 끌어 건물에 안착시켰고, 그와 동시에 꽃잎처럼 흔들리는 신형이 페르데의 공격을 모조리 흘려버렸다. 아까도 그렇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움직임!
이쯤 되니 페르데도 지금의 상황이고 뭐고 유천하의 신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그걸 인지한 순간 유천하는 이미 공간을 압축하고 달려들어 페르데의 앞에 나타난 뒤였다.
그렇게 한순간에 휘둘러지는 검격.
받아치는 권격.
퀴잉-!!
콰앙-!!
공세가 맞부딪히며 대기가 떨려온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앙-!!!
“컥!!”
페르데의 몸이 팽이처럼 돌아가며 인정사정없이 벽으로 튕겨져 나갔다.
처음의 검격은 페이크, 연이어 휘둘러진 발차기에 그대로 당해버린 것이었다. 피격당하는 순간 우드득-소리가 들려온 게 갈비뼈가 모조리 아작난 느낌.
“카학···! 칵!”
하지만 호흡을 고르기도 전에 연이은 연격이 쏟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 찰나의 시간 동안 퍼부어진 공세는 한순간에 페르데의 육체를 유린했다.
서걱-! 수강의 발현이 늦어진 순간 그대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훙! 그걸 인지하기도 전에 다시 그의 미간을 노리고 검극이 쏘아졌고, 간신히 그걸 피해냈을 땐 이미 한쪽 귓가가 사라진 순간.
페르데는 그 즉시 진원진기를 끌어올렸고, 그렇게 잠력마저 폭발시키며 휘둘러진 공세에도 유천하는 아무렇지 않게 검을 마주했을 뿐이었다.
콰아앙-!!
쿠구구구-!!
그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기파에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건물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유리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하나의 화음으로 울려 퍼졌다.
카가가각-!!
“큭···!!!”
검신과 맞닿은 페르데의 팔이 덜덜 떨려왔다. 핏물마저 뚝뚝 흘러내리는 그의 팔은 적색의 별무리를 휘감은 채 흉악한 살의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서로의 강기는 비등했을지언정 의념마저 그러하진 못했다.
페르데의 마음은 이미 꺾여진 뒤였고, 유천하의 일념엔 오로지 살의만이 가득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건 당연한 결과.
그그그극-!!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의 수강을 파고들어오는 칠흑의 검강을 바라보며 페르데의 눈가는 지진이 난 것 마냥 떨려왔다. 설마 여기서 죽는 건가? 설마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쾅-!!
“커헉!!”
그 순간 페르데의 몸이 낫처럼 휘어지며 그대로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의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을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순식간에 죽을 것이다.
그게 이 순간 페르데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그렇기에 그는 튕겨 나가는 속도 그대로 유리창을 깨고 또 다른 건물로 난입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호흡마저 가빠오는 살의 속에 페르데는 그 즉시 기척을 가라앉혔다.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를 무시하며 그는 최단의 경로를 그리며 건물 사이를 꿰뚫어 그대로 도시의 바깥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런 생각뿐이었고, 그건 오로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
유천하는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다.
방금 전은 정말 아슬아슬했다. 폭탄이 작동하면서 터져 나온 마력. 그게 제대로 구체화 되기 직전, 물리력으로 변환되는 순간에야 간신히 그 흐름을 베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간 아리엘과의 대련을 통해 무형의 마력구조를 베는 데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분명 위험했을 일.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의 심경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건, 그가 오후에 광장에 들린 적 있었음에도 폭탄이 설치된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만상의 눈이 아니면 알아챌 수 없다라···.’
분명 유천하의 눈은 평상시에도 뛰어난 재능을 품고 있었다. 기운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본질을 파악하며, 눈으로 본 걸 이해했다. 신교에선 그 재능의 일부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이 경계했을 정도.
하지만 그렇다 한들 ‘만상의 눈’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응시하는 즉시 만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그것이 유천하가 이 세계에 와서야 피워낸 새로운 ‘눈’이었다. 스스로 보고자 한다면 보지 못할 것이 없고,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세계를 관측하게 되는 눈.
그건 분명 크나큰 재능이었고, 힘이었다.
‘······.’
그렇기에 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상의 눈으로 바라보려 했다면 손쉽게 알아챘을 것을 그곳을 지나갔음에도 모르고 지나쳤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의 자신은 테러의 가능성을 상상도 못 하고 있었고, 마인들은 폭탄을 숨기려 했었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하물며 적들은 등천도시의 결계마저 속인 채 잠적해 있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 한들 자신이 그걸 못 보고 지나쳤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정말 간신히 였다.
폭탄을 베어냄과 동시에 들려온 소리는 2개. 그렇다면 원래 예비된 폭탄은 총 9개였던 걸까? 과연 원래대로 진행되었으면 수백 명이 죽어 나갈만한 규모였고, 그중 6개를 베어냈으면 충분히 할 만큼 한 셈. 이렇게까지 막아내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아예 안 드는 건 아니었다.
허나 중요한 건 결국 2개는 놓쳤다는 것.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유천하는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 가지 확실한 건, 페르데는 유천하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걱-!!
“크, 크아아악-!!”
나무와 함께 베여나가는 궤적.
칠흑의 반월- 그 궤적의 끄트머리에서 페르데가 비명을 토해냈다.
어느새 도시의 외곽을 넘어 회랑으로 이어지는 숲 속까지 도망친 페르데였지만 유천하를 따돌릴 수는 없었고, 이곳까지가 그의 한계였을 뿐이었다.
“······.”
“큭! 하아···! 하아···!”
유천하는 무기질적인 눈으로 페르데를 응시했다. 핏빛으로 달아오른 그의 몸에선 기이한 열기 뿜어져 나왔고, 그 몸 구석구석에는 자잘한 상처와 함께 시뻘건 핏물이 올라와 있었다.
“역시 마인인가.”
“큭··· 크윽. 그럼 마인이지 무엇일까.”
“침식 마인이 아니라 마공을 익힌 마인.”
“···!”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을 벗어났더냐.”
“······하, 하하! 너는 대체 누구지? 도대체 어디서 너 같은 괴물을···.”
유천하가 싸늘한 시선으로 페르데를 내려다보았다.
“그건 중요치 않지. 네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은 것처럼.”
“아··· 그것참 공감되는 말이긴 한데.”
“중요한 건 이유가 무엇이냐, 이것이고.”
“병신같은 새끼. 내가 그걸 말해 줄 것···!”
“타천자는 회랑으로 향했나?”
“···뭐?”
그 순간 페르데의 몸이 굳은 듯 멈춰 섰다.
“반응을 보아하니 맞나 보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 유천하의 검이 허공을 그었고, 그러자 페르데의 가면이 그대로 갈라지며 땅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 표정으로는 어린애도 못 속이겠구나.”
“니미 씨발! 말투하고는······.”
가면이 벗겨진 그의 얼굴 위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흙먼지와 피가 뒤덮인 잿빛의 머리카락은 너저분하게 흔들렸다.
“더 이상은 시간이 아깝군.”
“······.”
“죽어라.”
그 말과 함께 유천하의 몸이 검으로 화했다. 공간을 격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흑색의 검신. ‘죽인다’는 의지로 벼려진 살의의 칼날이 그대로 페르데를 향해 그어진다.
“웃기지 마라···!!!”
온몸이 저릿해지는 흉포한 살기에 신경이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페르데는 남아있는 내력을 모두 끌어모아 그 검을 향해 쏟아냈다.
서걱-!
그리고 결과는 고요했다.
푸슉- 둔중한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지며 마인의 색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머리를 잃은 목에서부턴 진홍빛의 생명이 뿜어져 나왔을 뿐이었다. 상당히 사이한 방법으로 내공을 쌓아왔던 것인지 그 피의 색채는 무척이나 검붉었다.
“······.”
그렇게 살아있었던 ‘것’이 돼버린 몸뚱어리를 내려다보며, 유천하는 그대로 시체를 향해 검을 두어 번 더 휘둘렀다.
그러자 철걱- 피륙이 베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며 그대로 페르데의 시체가 몇 조각으로 갈라졌다. 정도를 벗어난 마공에는 인세의 상식을 벗어난 것도 더러 있었기에 확인사살을 한 것.
방심은 멍청이나 하는 것이니까.
유천하는 이제껏 이렇게 살아왔을 따름이었고, 마인을 살해하는 건 그에겐 무척이나 익숙한 일이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됐고···.”
사실 그의 실력이라면 페르데가 이곳까지 도주하기도 전에 진작 처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항을 고려해본 결과 유천하는 ‘이곳’으로 오는 걸 선택했다.
그렇기에 핏물이 흐르는 검을 그대로 들어 올린 유천하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검을 집어 던졌다.
훙-!!
화살처럼 쏘아진 검극은 대기를 찢어발기며 그대로 수십 미터 너머의 나무를 꿰뚫고 그 너머를 꿰어냈다. 물론 사람까지도.
콰직-!!
“···끄, 끄아아악!!”
유천하는 그곳에 사람이 숨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굳이 만상의 눈으로 볼 것도 없이 마공의 감지는 기감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유천하는 저편에 숨어있던 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크아흡···! 큽! 으으···!”
“통신을 주고받던 녀석의 목소리로구나.”
페르데를 죽이기에 앞서 유천하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 묘사된 오늘의 사건은 오로지 타천자의 시점에서만 진행되었다. 아리엘을 납치하기 위해 쳐들어온 마인. 그리고 그 밑작업을 위한 테러.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유천하에게 이곳은 더 이상 소설 속의 세계가 아니었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원작에선 글 줄기 몇 줄로 대체되었을 일이라도 현실에선 모두 각각의 인과를 내포한 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유천하는 페르데의 처분에 앞서 잠시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써먹을 구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저 녀석을 죽여야 하나? 잠시 그런 고민을 했던 유천하였지만, 그는 이내 망설임 없이 페르데의 목을 베어버렸다.
사유는 간단했다.
2개의 폭탄은 이미 터져버린 뒤였고, 이곳에서 페르데를 대체할 사람을 발견했으니까.
그저 그런 이유였다.
“역시 마공을 익혔군. 마공을 익힌 마인들끼리 뭉쳐서 활동하는 조직이 있는 건가? 조금 궁금해지는구나.”
“···큭! 내, 내가 그런 걸 말해줄 것··· 읍!”
유천하는 남자의 목을 쥐어 잡았고, 그 순간 유천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작게는 적을 죽이던 순간부터 시작해, 배신자를 색출하던 순간, 그리고 다시 그자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던 순간까지도.
이 순간 유천하의 눈은 분명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신교에는 마공을 제어할 수많은 방법이 존재했지. 너는 앞으로 이 순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흑과 백.
유천하는 결코 백이 될 수 없는 사내였다.
생도 유천하가 추구하는 방향이 결국 어중간한 잿빛까지는 닿을 수 있을지언정, 흑색의 색채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그의 마음에 선이 자리했어도,
그의 행동은 선을 따르지 않았고.
그의 현재에 평온이 다가오더라도,
그의 과거는 짙은 혈향속에 자리하였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끝내도록 하지.”
“읍! 무, 무슨 짓을 할 생······ 큽!”
그렇기에 소교주 유천하의 과거는 흑색이었고 앞으로 예정된 미래 또한 흑색이었으니 그에게 필요한 건 초콜릿도, 알사탕도 아니었을 뿐이었다.
어느새 떠오른 달빛 아래.
그렇게 인적 없는 숲 속에선 절규 어린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