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36화 (36/205)

흑백양극 (1)

새삼스럽게도 그날 밤이 떠올랐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던 그녀. 이런 설정을 직접 써내려갔던 이하린이었던 만큼, 더욱더 자신의 손으로 이런 평온함을 지켜주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소설 속 묘사로는 알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막상 눈으로 보게 되면 다가오는 느낌이 또 달라지는 법.

“······.”

다만 왠지 모르게 이 순간, 내 머릿속으로는 신교에서의 생활이 자꾸만 떠오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루하루 힘의 균형이 무너질까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던 게 떠올랐고, 언제 날 죽이겠다고 달려올까 의심스러워 긴장하던 나날이 떠올랐고, 악착같이 버텨보겠다고 칼질을 하고 돌아다니던 나날이 떠올랐다.

그 날들을 떠올리자 내부에서부터 소리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잠시 미친놈처럼 인적없는 거리 한복판에 서서 저 혼자 조금 끅끅거렸다.

분명 그곳에선 서로가 적이었다.

수세대를 거치며 쌓아온 가치관의 차이는 저마다의 가치로 시조의 의의를 짓밟았고, 우리는 서로를 깔아뭉개기 위해 노력했다.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하던 아버지가 주화입마로 쓰러지고 난 뒤에는 특히 더 그러했다. 정말 끔찍한 곳이었고, 또한 하루하루가 숨 막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난 지금까지의 삶이 그리 나쁘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나의 삶은 투쟁이었고, 그건 나의 의무였다. 나는 그 의무를 등에 지고서 투쟁과 당당히 마주해왔다. 그렇기에 나는 구역질 나는 악의를 받으면서도,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을 위해 신교에서의 내 의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천마신교 소교주 유천하.

나의 이름이자, 위치, 그리고 의무.

그게 바로 내 본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마음의 번잡함이 조금씩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내겐 의무가 없구나.’

이곳에서 나는 강해지기 위해 수련을 거듭할 것이고, 그건 돌아갈 그 날을 위한 대비일 뿐이었다. 이곳의 내겐 지켜야 할 이도, 싸워야 할 이도, 짊어져야 할 의무도, 증명해야 할 무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그런 것이었다.

복잡했던 심경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

그렇기에 나는 발걸음을 돌려 회랑으로 향했다. 반나절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생각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붉게 물든 노을이 나를 배웅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돌아가는 길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게 눈인사를 건네왔고, 누군가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감사드립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싸워줘서 고마워요.

-힘들진 않으세요? 힘내세요!

멋쩍게 웃으며 지나치자니 절로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들이 내게 바라는 의무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누리는 평온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나랑 맞지 않았다. 아니, 평온한 일상이란 것 자체가 나랑 맞지 않는듯했다.

‘······적응?’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였다.

코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천하는 흑색.

평온한 일상이란 백색.

둘이 섞여봤자 흐리멍텅한 잿빛밖에 더 나오겠는가. 흑색을 백색으로 돌리려면 얼마나 많은 흰색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게 좋다.

아니 그래야 했다.

이것이 내 심마라면 나는 심마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겠다. 어차피 천마신공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나? 평생을 압박 속에서 분투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평온함에 몸을 담근다 한들, 그 누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는가.

평온과 여유는 분명 달콤했고, 내 입맛에 단 건 그리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저 그런 깨달음이었다.

‘앞으로 여긴 오면 안 되겠군.’

그렇게 다소 해이하게 조여진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자니 한적해진 거리에서 아까 전 사탕을 주고 갔던 아이를 발견했다.

부모랑 같이 있는 걸까?

해맑게 웃으며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뭐라 뭐라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아까 내가 그 오빠한테···!

-뭐? 설마 주머니에 있던 걸 주고 온 거니?

-응! 내가 아끼던 건데 주고 왔어!

-으이구··· 그래그래 잘했어. 이따가 엄마가 하나 더 사줄게.

잠시 멈춰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화목해 보였고, 또 행복해 보였다.

나는 겪어본 적 없는 낯선 풍경이었다.

-정말? 와!! 그거 먹고 싶었는데···!

-얘. 실례잖니. 팔은 가만히! 알았지?

-네!

그래서일까?

그 순간 아이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

기묘한 웃음과 함께 스쳐 지나가는 사람.

평온 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질적인 느낌.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기이한 괴리감은 자연스럽게 내 눈을 만상과 동화되게 만들었고, 그 눈 속으로 비치는 남자의 기운은 너무나 뚜렷했을 뿐이었다.

만상의 눈으로 들어오는 시커먼 형체.

빛 한 점 없는 칠흑 그 자체의 색채.

헤실 거리며 팔을 휘젓는 아이의 손이 남자에게 부딪히자 그 손에 들려있던 아이스크림이 굴러떨어졌고, 그 옆을 스쳐 지나가던 남자의 품에선 무언가가 떨어져 나왔다.

툭- 데구르르.

그렇게 정육면체의 무언가는 바닥을 굴렀고, 내 몸은 한순간에 바닥을 박찼다.

업륜의 발현, 가속 재현.

순식간에 나는 초속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만상의 눈 개화.

그 즉시, 세계가 느려진다.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십 개의 가능성을 흘려보내며, 나는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손은 검으로.

발은 흑색을 향해.

눈은 만상과 하나가 되어.

저 공간에 있어선 안 될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백색의 도시에 있기엔 너무나도 뚜렷한 칠흑의 색채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나는 한 줄기 빛이 되어 그렇게 달려나갔다.

이 순간 내 등 뒤를 비추는 석양은 뜨거웠고, 노을빛은 찬란하게 도시를 비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알사탕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1초를 반으로 쪼개고, 쪼개고 쪼개야 간신히 인지할 수 있는 시간. 찰나의 간극. 그 시간 속에서 유천하의 눈은 세계와 동화되어 현상을 직시했다.

사람의 형상인 채 그림자 마수와 같은 색채를 띠고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타천의 마인!’

그렇다면 중요한 건 드디어 마주하게 된 저 ‘마인’은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이것이었다.

유천하의 생각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등천도시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벌어질 만한 일, 원작에서 일어났던 사건, 이 시기에 등천도시의 사고가 언급되었던 일, 가장 합리적인 이유.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인과!

‘이하린, 아리엘. 그게 지금이었다고?’

유천하가 근래 고민하고 있던 일. 하지만 아직 더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건. 하지만 수많은 추측 끝에 유천하의 생각은 비약적으로 전개되었고,

그 결과- 비약적인 진실에 도달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시점은 유천하의 신형이 이미 마인의 눈앞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무”

아직까진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고 있던 마인이 그제서야 유천하의 접근을 눈치채고 눈을 부릅뜨던 순간.

그 옆에 헤실 거리던 아이와 부모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던 찰나의 순간.

유천하의 검이 빠르게 뽑혀져 나왔다.

의념이 더해진 검이 벼락처럼 뽑혀 나와 마인을 향해 펼쳐진다. 목표는 마인과 그 품에서 굴러떨어진 정육면체의 구조물.

그는 생각했다.

폭탄으로 추정되는 그 공학품 내부에는 막대한 수준의 마력이 담겨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폭의 근원은 마석, 그 주변을 둘러싼 기이한 흐름이 일종의 마력 회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폭발의 시기는 지금?

아니, 그러기에는 마인의 위치가 너무 가깝다. 지금의 노출은 우연한 실수. 기폭의 타이밍은 다른 순간일 터.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그 즉시 배제해야 한다.

유천하는 생각한다.

‘목적은 등천도시의 테러.’

‘원작대로라면 숫자는 다수.’

‘기폭의 트리거는 마인?’

‘마인의 수준은 일류 언저리.’

‘폭탄을 제거할 방법은···!’

고민은 짧았고, 검은 빨랐다.

일천검결 一天劍結

제마검형 際魔劍形

화무난천 花舞難穿

퀴이잉-!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는 검.

마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몸을 스치고 지나간 검이 바람에 흐드러지는 꽃잎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흔들리는 검극, 휘어지는 검로.

그리고 잘려나가는 마인.

“···슨!”

마인이 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기 도전에 그 목은 몸과의 작별을 고했고, 폭탄은 순식간에 샅샅이 분해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그렇게 중심에 설치된 마석으로부터 이어지는 회로가 동시에 잘려나가자, 그 순간 마석을 중심으로 불안하게 휘몰아치던 마력이 가라앉았다.

툭- 데구르르.

그제서야 바닥을 구르는 마인의 목.

“···어?”

“······아.”

순식간에 코앞에 나타난 유천하의 모습. 그 상황을 인지한 모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제서야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카르륵- 퍼어엉-!!

자신들의 옆을 스쳐 지나가던 사람이 한순간에 그림자로 화해 터져나가는 모습을!

“···?!”

“···!!”

“조용히.”

유천하는 재빨리 점혈을 짚어 그녀들의 입을 막았다. 소리치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 그런 생각에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숙여 아이의 눈을 마주했다.

“아까 기억나?”

“···!!”

“응. 아까 광장에서 봤지? 등천회랑.”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어붙어 있던 아이는 그 순간 유천하를 알아보고는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소년의 말과 딸의 반응에 부모 또한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괜찮으니까. 잠시 놀라지 말고 있어 줘.”

“···!!”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확인한 유천하는 고개를 들어 아이의 부모를 바라보았다.

“보호자분 되십니까?”

“······!”

“지금 도시 안에 마인이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테러의 위험도 있어요. 그러니 이걸 드릴 테니 시티가드에 가서 사정을 말해주세요. 그리고 그곳에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

“저도 이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게 가장 안전해 보입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유천하는 품속에서 직사각형의 카드를 내밀었다.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흑색의 물체. 등천회랑의 학생증이었다.

그걸 알아본 부모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니 소리는 지르지 말아 주세요. 아시겠다면 고개를 끄덕여주시기 바랍니다.”

모녀는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유천하가 점혈을 풀었고, 다행히 그들은 조용했다.

“···아. 그··· 이···.”

“···아··· 아···!”

뭔가 말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꾹 눌러 참는 분위기. 유천하는 그들에게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대로 발을 박차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그들과 멀어진 유천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네!!

-와! 와! 우와!!

사실 시티가드가 협조를 해주든 말든 그건 상관없었지만 저 모녀가 테러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마인이 얼마나 들어왔을지 모르는 이상 길거리는 너무 위험했고, 테러의 순간이 언제인지 모르는 이상 그곳으로 가는 게 제일 안전했을 뿐이었다.

그런 판단 끝에 건넨 말이었다.

아무래도 알사탕 하나의 값어치가 조금 비싸게 되돌아간 모양. 그 사실에 유천하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전처럼 속이 번잡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이가 없군.’

새삼스럽게도 웃음이 다 나왔다.

유천하는 쓰게 미소 지었다. 역시 자신은 평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순간에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질 리 없지 않겠는가?

잠재적인 위협, 곧이어 일어날 싸움.

분명 긴장되어야 정상일 순간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너무나 평온했다. 마치 이런 순간이 내 삶의 안식처라는 것처럼. 그로서는 그 사실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었고, 또한 즐거웠을 따름이었다.

유천하의 심경은 그러했다.

‘흑과 백.’

평온한 일상은 백색.

생도 유천하는 회색.

그렇다면 소교주 유천하는 흑색.

시커먼 마인도 당연히 흑색.

억지로 하얘질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이게 자신의 삶이라면 받아들여야겠지. 그렇다면 흑색은 흑색이랑 놀면 되는 것이었다.

유천하는 그리 생각하며 건물 사이를 질주했다. 만상의 눈으로 흑색을 찾아 나섰다. 등천도시의 검문을 통과한 이상, 마인들은 특수한 능력으로 존재를 감췄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이라면 정체를 숨긴 마인들을 구분해 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히 지금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의 얼굴이.

‘지금의 이하린이라면 시간 정도는 끌 수 있겠지··· 빨리 끝내자.’

하지만 이 도시를 이대로 두고 그녀를 찾아 나서기에는 아무래도 오늘 그가 받았던 인사가 너무나 많았다는 게 흠이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미소를 받아버렸다.

그 두 사람이라면 자신이 갈 때까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대로 사라져버린다면 이 도시는 원작대로 테러에 휩쓸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

오가며 스쳐 지나간 미소와 건네받은 여유가 너무 많았기에 유천하는 이 도시에 그것들을 그대로 내려놓고 갈 생각이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여유와 평온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내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건 평온과 안식이 아니었다. 유천하는 그리 생각했다.

그렇기에.

“······.”

마인을 향해 뛰쳐나가는 유천하의 눈빛 속에는 맹렬한 살의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

어느새 어두워진 밤.

인적이 드문 3학구로 통하는 게이트. 본래라면 한산했을 검문소는 검은 마력에 침식된 상태로 기괴한 귀곡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크크크!! 이거 참 오랜만이로군···.”

“···끄윽··· 끅!!”

경비를 맡고 있던 각성자의 목을 한 손으로 붙잡은 채 마인- 타천자 카룬드는 억눌린 웃음을 토해냈다.

“큭···! 끄윽···!”

“흐음? 왜 그리 끅끅대는 게냐?”

“크르륵! 큭!”

“아? 뭐라고? 잘 안 들리는구나.”

난데없이 나타난 타천자. 카룬드의 방문을 감지한 공략자는 그 즉시 대응에 나섰지만 등천자도 아닌 이가 타천자를 상대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물며 카룬드는 사전에 등천도시의 테러계획을 연맹 측에 몰래 흘려놓았고, 그 정보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만큼 회랑의 경비 또한 일부는 등천도시에 가있는 상황.

안그래도 한산한 3학구 같은 구역에 등천자가 대기하고 있을 확률은 한없이 낮았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군. 혹시 지원을 기다리는 건가? 안타깝지만 이미 주변의 마력역장은 모두 침식된 상태라서 말이지.”

“···크윽!!”

“설령 의아함을 느낀다 해도 그때는 이미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난 뒤겠지. 그 정도면 시간은 충분하고 말이야. 암. 충분하고말고. 그러니까······ 수고했다.”

투두둑-!

그대로 경비의 목을 분질러버린 카룬드가 시체가 돼버린 남자의 몸을 숲 너머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숲 속을 향해 걸어나갔다.

“어디 보자··· 아아 위치 한번 좋구나.”

주머니에서 꺼낸 주술도구를 바라본 카룬드는 그곳에 떠올라있는 아리엘의 위치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거지역에 있었더라면 다소 위험했겠지만, 저런 곳에 있다면 시간은 충분했다.

“크크크크···!!”

테러를 위해 페르데를 고용한 것도,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저주 술사의 물건을 구매한 것도 모두 지출이 심하긴 했지만 카룬드는 만족스러웠다.

이깟 돈 몇 푼으로 그 자식의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만 있다면···!

루타텔의 아이를 제 맘대로 요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해도 상관없었다. 그 망할 녀석을 씹어먹을 수는 없으니 그의 자식이라도 씹어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걸 위해 인내한 시간이 얼마던가!

“기다려라··· 루타텔 화이트.”

그렇게 지고한 승천자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질 순간을 고대하며, 칠흑의 재앙은 인적없는 숲 속으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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