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검 (3)
조금 전의 기억이 강렬했던 탓일까?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정도의 거리.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떨려오고 있었다.
“눈을 한번 감아보시겠습니까.”
“······.”
내 말에 이하린은 잠시 갈등하는듯 했지만 이내 나를 믿고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 상태에서 들으십시오. 의념을 배우는데 왕도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세계에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강렬한 염원이니까요.”
“······.”
“그런 의미에서 신검합일은 검객이 의념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길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거, 검이라서··· 요···?”
“예. 맞습니다. 그간 검을 휘두르면서 발했던 의지가 의념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되어주기 때문이지요.”
“······.”
“아까전 일을 한번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그 순간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짐과 동시에 검집을 부여잡고 있는 그녀의 작은 손위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식은땀마저 흘러내리는 그녀의 이마를 바라보며 나는 태연히 질문을 건넸다.
“그때 하린씨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거, 검이요···.”
“예. 저는 검이 되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제껏 저는 무언가를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습니다. 제 검은 베어내기 위한 무기였으니까요.”
“······.”
“그때 하린씨는 무엇을 겪으셨습니까.”
“검이······ 저를 베었어요.”
아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무척이나 괴로웠는지 그녀의 이마에서 시작된 식은땀은 어느새 흰 피부를 타고 흘러내려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전의 일이 심상의 각인으로 남게 된 이상 두려움을 털어내고 그걸 이겨내는 건 빠를수록 좋았다. 이겨내기 힘들다고 뒷걸음질 쳤다간 결국엔 심마에 잡아먹힐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맞습니다. 제 검은 그걸 위해 존재했고, 저는 그 의지를 검에 새겼습니다. 의념을 통해 저는 검이 되었고, 하린씨는 제 의지에 베이셨습니다.”
“······.”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하린씨가 겪은 건 일종의 심상이었을 뿐이니까요. 제가 검을 휘두르면서 쌓아왔던 일념을 고스란히 느끼셨을 뿐입니다.”
“······.”
“저는 지금 하린씨 바로 앞에 있습니다. 호흡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말입니다. 지금은 어떠십니까. 두려우신가요?”
“······네. 지금도 베일 것만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려왔다.
“그럼 그 심상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 심상에 하린씨가 검을 휘두르며 새겼던 의지와 마음을 덮어씌우셔야 합니다.”
“······제 의지를요?”
“예. 하린씨의 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제 검이 베기 위한 검이었다면, 하린씨의 검은 무엇을 위한 검인지 말입니다.”
“······.”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정적속에 그녀의 새근거림이 들려왔다.
잠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녀의 미간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씩 풀리는 게 느껴졌다.
자신의 검의를 깨달은 걸까?
물론 나로서는 그녀의 심상이 어떤 이미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원작대로라면 그녀의 검 또한 무언가를 베기 위해 휘둘러졌겠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기가 달랐으니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의념 자체를 깨우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검을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조금씩 풀어지는걸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제 검을 다시 마주한다면, 아까처럼 그렇게 무력하게 베이실 것 같습니까?”
“······.”
그녀는 감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녀의 호흡은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처럼 무력하게 당하실 것 같나요?”
“···아니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딱-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이하린이 눈을 떴다.
그녀는 다소 멍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하린씨는 조금전의 기억을 자신의 심상으로 흩어내신 겁니다.”
“······?”
내 말에 그녀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상당히 집중했던 모양인지 아직 본인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듯싶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작게 미소 지었다.
“지금도 두려우신가요?”
“···네? 그야······ 아!”
평소처럼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그런 그녀의 시선에선 더 이상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은 다 빠져나가 있었고, 떨리던 숨결도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의념은 결국 마음의 표상일뿐입니다. 그 표상을 현실에 관철시키는게 어려운거지 거창한 게 아니지요.”
그 순간 이하린의 귀가 조금씩 빨개졌다.
두려움이 가시자 방금 전까지의 행동들이 조금 민망해진 모양.
눈물을 글썽거리던 그녀의 모습이 잠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보다 이제 의념에 대해 어느 정도 느낌이 오시나요?”
“······조, 조금은 알 거 같아요···!”
“그럼 본격적인 수련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네에!”
“따라오세요.”
지금까지 우리가 있던 곳은 테라스가 위치한 침실이었기에 나는 그녀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검을 휘두르기에 내 방은 조금 좁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다소 거리를 벌린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지금 그 자리에서 저를 베어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어··· 거리는 충분해요···!”
“그러면 다시 눈을 감아보세요.”
“······네!”
그녀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내 말대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마세요. 그냥 제 말을 듣고 따라 하시면 됩니다. 사실 안 들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네!”
“대답도 필요 없습니다.”
“······!”
“저를 베어낸다 생각하시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해보세요.”
그러자 이하린은 양손으로 검병을 부여잡고 그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건 일반적인 기수식보다 손잡이의 위치가 조금 더 높아 보였는데, 키가 작다 보니 검의 방향을 전환할 때를 대비해 저런 기수식이 습관이 된 모양. 다소 특이한 자세였다.
하지만 그녀의 특성이 특성인 이상 저 자세가 그녀에게 가장 적합한 자세일 터. 나는 이하린의 기수식에 약간의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 상태로 마음을 비우세요.”
“······네.”
“대답하지말고 생각을 끊으십시오.”
“······.”
“그렇게 정신을 가라앉히고 가라앉혀서 감각조차 무감으로 가라앉히셔야 합니다.”
“······.”
듣는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소리일 테지만 ‘검’을 손에 쥐고 있는 이하린은 확실히 적응이 빨랐다. 그녀는 전투에 들어설 때와 같은 상태에 돌입한 듯 차분히, 그리고 차갑게 가라앉아 그대로 멈춰 섰다.
아까도 느꼈지만 뛰어난 집중력.
역시 재능은 충분했다.
“모든 게 잊히고 묻혀 스스로의 자아마저 흩어졌을 때, 그때 무아에서 일념을 되새기셔야 합니다.”
“······.”
“아까 전 떠올렸던 검의 심상, 스스로가 생각하는 검의 의미,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검의 방향. 그 모든 걸 하나의 마음으로 꿰뚫으십시오.”
“······.”
“호숫가에 일어난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듯, 천 번을 휘두른 검이 하나의 궤적을 그려나가듯, 만일 동안 떨어진 빗방울이 바위를 깎아나가듯, 그렇게 스스로의 일념을 되새기셔야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실내에 침묵이 맴돌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긴 하는 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이하린은 지금 완벽하게 무아에 들어서고 있었고, 만상의 눈으로 들여다본 세계 속에서도 그녀는 고요했다.
그렇게 숨소리마저 사라져버린 정적 속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특성의 덕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하린은 재능이 있었다.
“무념에서 일념으로, 일념에서 의념으로.”
참고로 나는 이전부터 재능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내 눈은 뛰어난 이를 바라볼수록 내게 더 많은 걸 선사해주었고, 그 모든 건 내 성장을 위한 양분이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비록 지금은 아닐지언정 언젠간 그녀도 분명 좋은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지금의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나는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의념을 검을 통해 관철해낼 수만 있다면······”
그렇기에 나는 그 말과 동시에 검을 잡았고, 일순간 내 몸은 검으로 화했다.
진심으로 그녀를 베기 위해 뽑혀 나온 검신은 벼락처럼 휘둘러져 날카로운 살의를 담고 그녀에게 쏘아졌다. 그렇게 베어내겠다는 일념은 세계에 투영되었고,
그리고 그 순간.
퀴이이잉-!!
이하린의 검이 궤적을 그어냈다.
“······.”
“······.”
그렇게 허공에서 교차한 서로의 검.
눈을 감은 채, 오로지 내 의념에만 반응해 휘둘러진 그녀의 검신에는 백색의 기운이 넘실거렸고, 서로의 검신은 한순간에 교차한 모습으로 멈춰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 순간이 바로 의념의 첫걸음입니다.”
이하린은 이 순간 의념에 발을 들였다.
***
그녀의 표정이 조금 멍해 보였다.
“이제 의념이 어떤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뭔가 기분이 묘해요.”
“아직은 낯설어서 그럴 겁니다.”
“······이게··· 의념인가요···?”
그녀가 멍한 눈을 한 채 허공에 검을 내리그었다. 무척이나 깔끔한 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걸 해보고 싶은가 보군요.”
나는 그대로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쪽 벽면에 칵- 하고 그어지는 선.
그걸 목격한 이하린이 소리쳤다.
“심검!”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비슷하잖아요.”
어느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다소 뾰루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전혀 다릅니다. 이건 그냥 의념일뿐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제대로 된 ‘의기상인’의 기예라 볼 수 있겠지요.”
“······저는 안 되는데···.”
“이제 막 의념을 깨달으셨으니까요.”
방금 막 의념에 발을 들였으면서도 욕심이 참 많은 것 같았다. 애초에 지금처럼 시범을 한 번 보여주고 설명을 해준다 한들 의념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관점에서 그녀는 분명 천재였다.
비록 특성을 통해 검에 한정되는 재능일지언정 이제껏 본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재능의 영역이 아니었을 뿐.
“말했듯 의념은 내공이나 마력처럼 쌓아나가는 힘이 아닙니다. 강한 의지와 염원, 정신력을 통해 빚어내는, 말로 규정되지 않는 언외언의 힘입니다.”
나는 그대로 내 검집에서 검을 뽑아냈다.
물론, 손을 쓰지 않고서 말이다.
“······!!”
“그렇기에 의념을 수련하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끊임없이 갈고닦아 강하게 단련해야 합니다. 의념의 세계는 재능이 아닌 노력과 열망을 통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건··· 허공섭물이라 했나요 아까?”
“예. 물론 표현이 그럴 뿐이지 사실 의념이든, 허공섭물이든, 어검술이든 맥락은 비슷합니다.”
“······어검술?”
“의지만으로 검을 움직이는 기예를 말합니다. 지금의 저로서는 아직 발끝에도 닿지 못한 상승의 무학이지만요.”
나는 그 말과 동시에 의념을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내 검이 그대로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했다.
“와···! 신기해요!”
“사실 제대로 된 어검술은 제게도 정말 까마득한 경지입니다. 제 의념은 기껏해야 컵이나 깨트릴 정도밖에 안 되니까요.”
“정말요···?”
“예. 제가 순수히 의념만으로 행할 수 있는 물리력은 딱 이 정도 수준입니다. 컵을 깨트리고, 물건이나 들어 올리는 수준이지요.”
“······아.”
“하지만 무공과 의념이 합을 이루면 분명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고, 그게 사실상 저희가 의념을 깨우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애초에 이건 무림에선 정말 상식에 가까운 말이었다. 자신의 무공에 마음을 실을 수 있는 이는 그렇지 못한 이를 정말 손쉽게 이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정말 확고하게 구분되는 기준이었고, 그렇기에 무림에서는 의념을 깨우쳐 극의에 도달한 자를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수를 구사한다는 의미에서 ‘절정고수’라 칭하였다.
그리고.
“하지만 그게 의념의 한계는 아닙니다. 단련하기에 따라 검과 하나가 되어, 검으로 공간을 뛰어넘고, 마침내 세상을 베어낼 때까지··· 의념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곳에 맞닿은 이들.
사람의 몸으로, 사람의 업을 벗어나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들, 단 일수로 산을 무너트리고 호수를 베어 가를 수 있는 이들 또한 분명히 존재했기에 무림에서는 그들을 ‘초절정고수’라 칭송하며 경외하였다.
물론 그 정도 경지에 이른 이는 그 드넓은 중원 무림에서도 고작 10명 남짓한 수준이었고, 그건 절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세상을······ 베어낸다고요?”
“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너무나 까마득한 경지라 그렇지요.”
“저······ 아까부터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그럼 천하씨는 심검을 직접 보신 적이 있으신 건가요?”
“예. 저희 스승님께서 시연하신 걸 본 적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내가 직접 마주쳤던 초절정고수는 단 세명. 그 중 한 명은 내 손으로 반드시 베어버려야 할 적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내 삶의 방향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의 스승님이자, 나의 아버지.
천마 유천운.
그렇기에 나는 그리운, 그러면서도 이제는 다시 볼 수 있을까 안타까운 한 사람을 떠올려 보았을 뿐이었다.
“······그럼 어떤 모습이었나요 심검은?”
“심검 말입니까?”
이 사실을 말해줘도 되나 잠시 고민이 되긴 했지만, 사실대로 말해준다 한들 그녀가 진실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를 떠올려보았다.
“간단했습니다. 스승님께선 검을 휘두르셨고, 그 순간······”
아직은 어렸던 시절, 자신의 선망 어린 시선에 어깨를 으쓱거리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리고 그 뒤에 펼쳐져 있던 하늘.
“하늘이 베어지더군요.”
그건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이하린은 혼란스러웠다.
물론 유천하가 천재라는 것 정도는 진작에 알고 있었고, 당연히 이런 천재를 길러낸 문파가 평범할 거라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예상밖의 일이었다.
하늘이 베어진다- 그건 분명 자신이 쓰고자 했던 심검의 묘사. 자신이 머릿속으로만 구상해놨던 온전한 심검의 경지.
허나 이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초인들 중에서도, 저 천중무련의 고고한 무인 중에서도 심검을 펼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저 무련의 검제조차 극악무도한 결말부에 도달하고 나서야 간신히 펼쳐낼 예정이었던 기예 중의 기예였으니 말이다.
“그건 제가 언젠간 반드시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하린이 느끼기엔 유천하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애초에 거짓이라기에는 유천하는 의념과 그 경지들에 대해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었고, 심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에선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감정이 묻어나오기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럼 천하씨의 스승님은 지금···”
“······처음 말씀드렸듯 스승님의 유언을 통해 제가 세상에 나왔지요.”
“······아.”
유천하의 스승은 누구인걸까?
심검을 구사할 정도의 숨겨진 초고수. 그리고 그런 스승의 유언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된 숨겨진 천재.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야말로 그 말의 증거였고, 그렇기에 이하린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일이 아무런 인과 없이 이루어졌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써내려간 설정밖의, 현실의 개연성을 충족시키는 이야기.
그녀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말이다.
“······.”
이하린은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스승은 누구이며, 그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된걸까. 만약 수명이 다해 죽은거라면 심검에 도달한 무인은 과연 언제부터 존재하던 이였을까. 만약 수명이 다해 죽은게 아니라면···
그런 사람이 죽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자신이 구원해낸 이 남자는 그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그녀로서도 알수없는 이야기 바깥의 이야기였고 그렇기에 이하린은 이 순간 한가지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 세계를 적어내려간 창조주가 아닌, 이야기속의 등장인물이 되어버린 기분을.
마치 소설 속의 엑스트라가 된 기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