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31화 (31/205)

마음의 검 (2)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네, 넵!”

“검기와 검강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아직 머릿속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유천하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던 이하린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검기와 검강의 차이는 무엇일까.

검기랑 검강. 검기랑 검강.

만들 때의 차이는······.

“······기의 밀도?”

“틀렸습니다.”

“!”

이하린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뭐가 더 있었다고? 만들 때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던데? 이하린은 마력만 더럽게 많이 잡아먹던 자신의 검강을 떠올리며 그렇게 항변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하린씨가 말하는 건 검강劍强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무인들이 말하는 진짜 검강劍罡은 이것입니다.”

그러자 유천하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몽글거렸다.

그 왼손을 감싸고 도는 흑색의 강기는 부정형의 형상으로 몰아치고 모여들어 검의 형상으로 굳어졌다.

그 오른손에서 솟아 나온 흑색의 강기는 날카롭게 벼려진 형상으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검의 형상을 자아낸다.

“···아!”

결과적으론 둘 다 같은 형상이었지만, 두 검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하린으로서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한 손의 강기는 정말 무형의 검을 꺼내 든 것처럼 서늘한 예리함을 품은 채 올곧은 형상으로 연마되어 있었고, 반대 손의 강기는 무식하게 기운만 밀어 넣어 만들어낸 것 마냥 형상의 표면이 끊임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검강처럼···!

“이 차이가 단순히 밀도 때문에 나타난다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두 개를 같이 보고 있자니 자신의 눈으로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슨 차이인 걸까? 이하린의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올랐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건가요···?”

“바로 의지 때문입니다.”

“······네?”

의지? 번역기능이 이상한 걸까?

이하린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삼라만상에 자리한 기운을 사람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그 기운을 원하는 대로 이용하는 것도 모두 의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의지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의념毅念이라 말씀드리면 되겠군요.”

“······의념?”

예?- 안타깝게도 이하린이 집필한 소설의 장르는 현대판타지물이었지 무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무공이란 끽해야 오러Aura .

그마저도 그저 현대판타지를 쓰기 위한 조미료에 불과한 요소였고, 그녀가 알고 있는 무공의 경지는 끽해야 검기, 검강, 심검 정도의 편향된 지식뿐. 하물며 ‘원작’의 주인공은 진시우였던만큼 그런 요소들은 아주 가끔씩 언급되었기에 그녀로서는 무공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따름이었다.

그녀가 지금의 경지까지 도달한 것도 각성자 이하린이 가진 <검의 반려>와 빙의자 이하린이 가진 편향된 지식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과.

그래서일까.

유천하가 말하는 의념이란 단어 자체의 뉘앙스는 이해했지만, 각성자 이하린으로서는 유천하가 말하는 개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려우신가 보군요. 이걸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마음의 검이란 표현을 쓴 겁니다.”

“······.”

“하린씨는 사람의 마음만으로, 또 의지만으로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법이나 특성을 이야기하시는 건 아니시죠? 마법사들의 염력 같은 거요.”

“예. 별개입니다. 삼라만상의 기운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힘이라 말할 수 없는 언외언의 힘. 저는 그걸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의지를 통해 마력, 혹은 기, 또는 어떠한 에너지를 사역함으로써 현상을 일으킨다. 그게 바로 무공이었고, 마법이었으며, 또한 이능이었고 특성이었다.

하지만 어떤 능력이건 간에 ‘기적’에 가까운 현상을 체현시키기 위해서는 합당한 ‘대가’가 필요했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

저 진시우의 특성조차 빛 속성의 마력에 한해 그 교환의 코스트를 한없이 낮출 수는 있어도 대가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천하의 말대로라면 마나, 에테르, 아니 어쨌든 무언가의 에너지요소와는 별개로 독립된 힘이 존재한다는 말일까? 각성자 이하린의 지식과 빙의자 이하린의 지식이 복잡하게 엉켜 들었다.

그런 이하린의 표정을 지켜본 유천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아직 남아있던 컵을 가리켰다.

“직접 보시지요 그럼.”

그 말과 함께 유천하의 손이 움직인다.

“마음으로 뜻을 세우고, 바람으로서 그걸 관철하는 것.”

분명 그 손은 아무런 기운도 맺혀있지 않은, 순수한 맨손이었다.

“실존하지 않는 마음을 통해 세계에 실존하는 자취를 남기는 것.”

하지만 유천하의 손은 가볍게 그어졌고,

“그게 바로 의념입니다.”

펑-!! 파삭-!

“···!!!”

그 순간 컵이 터져나갔다.

***

허공을 유영하는 컵의 파편.

비산하는 물방울.

그 광경을 목도한 이하린은 소리쳤다.

“심검!!”

“아니라니까요.”

“······.”

자신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유천하는 단호히 대답했다.

“이건 그저 의념을 휘두른 것 뿐입니다. 마음으로 세상에 관여하는 힘에 불과하지요.”

“···그, 그치만!”

“저기 보세요.”

“···네? ···어!”

유천하의 말에 이하린이 다시 테이블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물이···!”

깨져나간 컵조각은 그대로 테이블 위에 안착했지만 그곳에 담겨있던 물은 그대로 허공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 부분만 시간이 멈춘 것 처럼!

“의념을 단련하고, 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이런 것도 가능해집니다. 허공섭물虛空攝物이라 하지요.”

“······.”

이건 또 무슨 말일까.

“하린씨가 말씀하신 심검 또한 그 연장선일 뿐입니다. 물론 단순히 의념을 단련한다고, 기에 능숙해진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요.”

“······.”

“의념없이 도달할 수 있는 건 강기공까지입니다. 그것도 불완전한 수준이지요.”

“······.”

“온전한 강기, 허공섭물, 격공, 어검, 그리고 나아가 심검까지. 의념은 상승의 경지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얻어야 할 열쇠입니다.”

그제서야 유천하의 제어가 풀렸는지 허공에 떠 있던 물이 후두둑-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

이하린은 그 말을 천천히 정리해보았다.

의념- 그건 분명 낯선 단어였지만 딱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 이해에는 유천하가 직접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의지라는 개념 자체는 자신의 설정상에서도 많은 부분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의념’이라는 상세한 개념은 자신이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을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충해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의념’이라는 개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확실히 상승 무학의 세계였다!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알고 계신 건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상승 무학으로 가는 열쇠일 뿐입니다. 제대로 된 무인이라면 당연히 숙지하고 있어야지요.”

“······저, 저는 모르고 있었는데···.”

이하린은 저도 모르게 조금 뜨끔했다.

“저 또한 스승님께 사사받았을 뿐입니다. 하린씨의 스승님은 알려주신 적 없습니까?”

“······네··· 저, 저는 독학으로 배워서···.”

“그럴 것 같았습니다.”

물론 유천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하린에게 이걸 가르치려 한 거였다. 다른 건 그녀 스스로 어떻게든 보충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무학의 가르침은 배우기 쉬운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걸 증명하듯 원작의 이하린 또한 등천회랑의 커리큘럼이 상당히 진행되고 나서야 의념에 대해 깨우칠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하린씨가 앞으로 이걸 배워야 한다는 거지요.”

“···아.”

그 말에 이하린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떻게요···?”

“그건 그 길을 걸어간 무인의 숫자만큼, 수많은 방법이 존재합니다. 결정적으로 세상에 의지를 관철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

“저는 그중에서도 하린씨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그게 뭔가요?”

나한테 가장 적합한 방법?

이하린의 두 눈이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천하는 허리춤에 메여진 검에 손을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담담했다.

“일단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그 순간.

유천하가 사라졌다.

“!”

아니, 착각이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건 한 자루의 검.

날카롭게 벼려지고 벼려져 그 예리함만으로도 사방을 찢어발기는 한 자루의 검.

“지금 뭐 하”

그 순간 검광이 번뜩였다.

검이 그어진다.

아니, 검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 소름 끼치는 예기로 세상을 베어나갔다.

순간, 이하린의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어진 검신이 그대로 그녀의 목을 베고 지나갔고, 서걱-! 들릴 일 없는 소리가 귀를 통해 들어왔다. 그렇게 수없는 세월 동안 날카롭게 정련되어 수많은 피를 머금게 된 칼날이 그대로 그녀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시야와 베어져 나가는 몸.

허공에 흩날리는 자신의 팔.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이하린의 머릿속엔 온갖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 의문이 온전히 이어지기도 전에 날카로운 살의는 그녀를 산채로 찢어발겼다.

그렇게 소름 끼치는 전율 속에 순식간에 살해당한 이하린의 세계가 까맣게, 그리고 붉게 물들어 갔을 때.

“······아.”

그 순간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싹한 한기가 피부로 스며듦과 동시에 먹먹해진 그녀의 감각은 그제서야 온전하게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형용할 수 없는 살의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공기.

그 소름 끼치는 오한 속에서 이하린은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벼락처럼 뽑힌 유천하의 검이 그녀의 목 앞에 멈춰서 있었다.

분명 피부에 닿지도 않았는데도 느껴지는 그 서늘함. 차가운 한기가 목구멍을 타고 오장육부를 들쑤셨다. 그 차가움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몸을 난도질할 것만 같아 그녀는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허나 주변을 찌르는 기세는 아직도 남아있었기에, 말을 꺼내는 순간 그대로 베여나갈 것 같았던 이하린은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검이 천천히 내려갔다.

“이게 하린씨에게 적합한 방법임과 동시에 하린씨가 도달해야 할 곳입니다.”

그 목소리와 함께 세상을 찢어발기던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마치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던 살의는 고스란히 가라앉았다.

갑자기 벌어졌던 일과 온몸에 새겨진 감각에 식은땀까지 흘리며 놀란 이하린이 확장된 동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신검합일.”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유천하의 모습은 너무나도 태연했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검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게 하린씨가 달성해야할 첫 번째 과제입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기질적이었다.

***

···생각보다 조금 심했던 걸까?

이하린의 표정을 떠올렸더니 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하린의 상태가 진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할듯 싶었다.

나름대로 이하린의 재능을 신뢰하였기에 보여준 건데 상처를 입은 몸으로 그런 기세를 겪는 건 조금 힘들었던 걸까?

‘······내가 나쁜 놈 같군.’

얼어붙었던 이하린이 내게 보낸 눈빛은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라는 느낌.

내가 손가락이라도 하나 까닥하려는 순간 이하린은 바로 몸을 움찔거렸고, 그녀의 상태를 깨달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훌쩍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테라스에 나와 있자니 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마치 어린애를 괴롭힌 기분?

‘······어린애 맞나?’

생각해보면 빙의 전 이하린이라 한들 설정상 스무 살에 불과했다.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며 소설을 집필하다가 소설 속에 끌려온 여자아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빙의하면서 검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생겨났다 해도 멘탈은 일반적인 수준일 터.

게다가 원작에서의 이하린은 분명 지켜야 할게 생길수록 정신력이 강해지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켜야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전투 중인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로서는 나를 믿고 있다가 코를 베인 느낌이지 않을까···?

‘······’

그리 생각하니 여유 속에 싹튼 양심이 조금 쑤셔왔지만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의념을 겪었던 만큼 신검합일의 심상만큼은 뼈저릴 정도로 확실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터. 그 심상을 제대로 갈무리하고 그녀의 특성인 <검의 반려>에 동화시킬 수만 있다면 빠르게 의념을 습득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눈물까지 글썽거리던 이하린의 눈빛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겠지.’

그렇게 테라스에서 업륜을 회복시키며 잠시 그녀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자니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퉁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문 너머로 이하린이 시뻘게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뭐라 말하고 있었다.

‘이제 오셔도 돼요.’

그런 입 모양.

“······.”

아직은 촉촉한 그녀의 눈을 보면서 나는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다.

그렇게 드르륵- 유리문을 옆으로 밀고 방으로 들어서니 내 모습을 본 그녀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

“죄송합니다.”

“······.”

“제가 과했습니다.”

“······아, 아니··· 괘, 괜찮아요···.”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말을 먼저 하고 했어야 했는데 제가 실수했습니다.”

“······.”

손에 검까지 부여잡고 빨개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저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티셔츠의 목 부분이 젖어있는 게 그녀는 세수까지 열심히 하고 온 모양이었다.

“······.”

“······.”

그렇게 기묘한 침묵이 흐른다.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의 일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을 겁니다.”

“······네···.”

“단련하지 않은 일반인이 살기를 처음 접했을 때와 비슷한 경우지요. 그래도 의념을 발할 수 있게 되면 괜찮아 지실 겁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양심이 조금 쑤셔왔지만 나는 태연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도 되겠습니까.”

“······.”

그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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