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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30화 (30/205)

마음의 검 (1)

‘변환율이 나쁘긴 했지만 응용할 구석은 확실하게 많아.’

마력의 형상화, 물질화. 그리고 성질의 변화. 마지막으로 제한적인 특성의 구현까지. 이렇듯 업륜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상당히 많았다.

나중에는 아예 신체 일부가 날아가더라도 형상화를 통해 보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거기에 성질을 생명력으로 변화시켜 기력을 보충하는 방식의 응용까지 더해진다면 부상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전투를 속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업륜의 획수만 더 늘어난다면 말이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형상화를 통해 메꾸고, 진원진기가 손실되어도 업륜의 마력으로 대체한다- 무인으로서 그건 무척이나 두근거리는 일 아니겠는가?

그 정도의 전투지속력이면 설령 죽을 위기에 처하더라도 최소한 상대의 목숨 정도는 같이 움켜쥐고 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들어.’

역시 업륜은 많은 가능성이 잠재된 힘이었다. 내가 발견한 부분만이 아닌, 아직 알아채지 못한 활용도 분명 수없이 많을 거란 예상이 들고 있었고, 난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잠시 업륜에 대해 궁구하고 있자니 언제 교수가 들어왔는지 벌써 강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자. 저번 시간에는 만점자 두 분과 중위권 학생들의 영상을 확인했지요? 오늘은 실기점수 3위, 4위를 기록한 분들의 영상부터 보고, 그다음에는··· 150위부터 보도록 하지요.”

이전에 말한 대로 1교시는 역시나 배치고사 영상을 분석하는 모양.

실기점수 3, 4위라면 아리엘과 이솔라.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그럼 바로 보시지요.”

3학구의 인연으로 아리엘의 전투방식은 여러 번 경험했었지만, 그래도 언령이라는 방식은 꽤 신기한 현상이었다. 게다가 이다음에 보게 될 이솔라의 특성 또한 꽤나 특이한 권능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관찰할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난 따로 움직일게.

-어? 어어. 조심해.

-고마워.

첫 번째 영상의 주인공은 아리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영상이 시작됐다.

-그림자의적현현해라태양의아이일륜의촛대 타올라라빛! 업화!

-화륵!!

나랑 대련할 때는 여유가 없어서인지 스펠마법을 제대로 사용 못 했지만, 역시나 이지 없는 마수들 상대로는 문제없는 모양.

-퍼어엉-!!!!

화면 속 아리엘을 감싸며 가득히 떠오른 백열의 구체들은 비처럼 쏟아지며 마수들을 불태웠다. 잠깐 사이에 짜 올린 마법이라기엔 정말 상당한 화력이었다.

하지만 단점 또한 분명했기에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그녀에게 갈 관찰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세밀하고도 정확한 마력운용. 하지만 언령을 발현할 때 딜레이가 약소하나마 존재한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고, 속도가 뒤처지는 순간 마법 활용의 장점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부족한 역량으로 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오늘의 수업일정이 모두 종료되었다. 오후에 들었던 이론수업 시간에는 예상했던 대로 마르네가 또다시 시비를 걸어왔는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배짱이 대단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다만 오늘은 상대하기 귀찮았던 터라 나는 적당히 다음에 대련을 해주기로 약속해주는 것으로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그러자 정말 그게 목적이었던 듯 그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었는데, 화들짝 놀라던 다른 애들의 웅성거림을 들어보면 그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원래의 성격이 양아치인 건 맞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시비만 안 건다면 상관없는 이야기. 대련이 끝났다고 다시 시비를 걸어오면 그땐 제대로 상대해줄 생각이었다. 아니, 애초에 대련을 할 때 조금 진지하게 상대해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후.”

어쨌든, 이렇듯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피곤한 기분.

마지막으로 기상한 지 34시간이 지나가는 시점이긴 했다만 체력을 고려해보자면 육체적인 피로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이하린과 그 뒤의 일들이 꽤나 정신력을 잡아먹은 느낌.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보았다.

‘역시 최소점은 그 정도가 좋겠어.’

그렇게 이하린에게 가르쳐야 할 것, 그리고 배우는 데 걸릴만한 시간 등을 생각하고 있자니 어느새 기숙사에 도착했다.

지금쯤이면 그녀도 일어나있지 않을까?

띠릭- 문 앞에 선 나는 안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였다. 한데 청력을 강화하니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가 들려올 일이 뭐가 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고···

“······.”

그리고는 이내 조용히 손잡이를 내려놓고 문 앞에 서서 워치를 조작했다.

물론 수신 대상자는 이하린.

[20분 뒤 도착 예정입니다.]

지난밤, 차마 내 손으로 씻길 수는 없어서 상처가 난 곳만 어찌어찌 처치한 뒤 내버려뒀더니 찝찝했던 모양.

확실히 온몸이 피에 젖은 상태로 그대로 말라버리면 그 느낌은 상당히 찝찝했다. 나 또한 여러 번 경험해본 일이었기에 충분히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문앞에 서서 그녀의 샤워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그러고 있자니 얼마 안 가 우당탕탕-!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뒤늦게 메시지를 확인한 모양.

“······.”

나는 여유롭게 30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소리를 확인한 후, 문제없겠다 판단이 들자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가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거실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이하린.

“······어, 어서 오세요···!”

“······.”

들어오자마자 누군가 반겨주는 이 상황이 미묘하게 느껴졌다만, 나는 그것보다도 내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30분이란 시간은 굳은 피를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는지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티셔츠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티셔츠. 그러니까.

······피가 말라붙어있는 티셔츠에 말이다.

“···옷 빌려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양은 안 하는 걸로 봐선 그녀로서도 찝찝하긴 했던 모양. 옷장에서 빌려 입어도 된다고 미리 말할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다만 나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류를 제외하곤 따로 구비해둔게 없었기에 이하린이 입을 만한 걸 고르는 게 어려웠다.

‘이거면 되겠지.’

그래서 나는 숙소구성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있던, 그리고 아직 뜯지 않았던 생도용 의복세트를 그대로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내가 입었던 것 보다는 이쪽이 나을 테니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가까운 방에 후다닥 달려가 옷을 갈아입었고, 이내 상쾌해진 얼굴로 걸어 나왔는데- 방에서 나온 그녀의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옷이 조금 크군요.”

“···괘, 괜찮아요!”

내가 아직 사용하지 않았던 의복인 만큼 당연히 남아있던 건 여름용 의복이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건네준 옷은 하계용 트레이닝세트였다.

당연히 크기는 내 체격에 맞는 사이즈.

“······움직이는 데 불편한 건 없어요···!”

그래서일까.

상쾌한 얼굴로 웃고 있는 이하린의 모습이 마치 어른 옷을 뒤집어 쓴 아이처럼 느껴졌다. 원체 키가 작은 사람이었던지라 기본용으로 배급된 반팔티만으로도 허벅지까지 가려진 것이다.

그나마 티셔츠 밑으로 바지라도 살짝 튀어나와 있다는 게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보다 상태는 괜찮습니까?”

“···아! 네! 어떻게 처치해주신 건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양호해요···!”

그리 말한 그녀가 허공에 양손을 휘휘- 파닥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하얀 막대기가 검정 이불을 뒤집어 쓰고 휘적거리는 느낌이었기에, 잠시나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래도 무리는 하면 안 됩니다. 심각한 부상이 없었을 뿐이지 제대로 된 치료를 한 건 아니니까요.”

“···아! 넵! 주의하겠습니다!”

대답과는 반대로 그녀는 허공에 발차기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한번 다쳤더니 정말 어린 아이라도 되어버린 걸까. 나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격한 활동을 하면 피부가 벌어질 테니 제대로 살이 붙을 때까지는 최대한 정적인 활동을 추천드립니다.”

“······아, 네, 넵···!”

그렇게 날다람쥐 같아진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 나는 이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시 손을.”

“···? 아, 넵.”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네?”

그 말과 함께 이하린의 손을 붙잡았다.

부드러운 감촉 너머로 그녀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대로 업륜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수업을 듣는 동안 마력이 꽤 회복되었기 때문이었다.

“···!!”

형상이 아닌 성질의 변화.

목적은 치유, 이미지는 생명력의 느낌.

그렇게 마력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우웅-!

그러자 녹색으로 화한 마력의 빛이 따스함을 머금고 그대로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역시나 새벽에 한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한 기분.

“······아.”

“업륜의 응용입니다.”

“······대단해요···.”

그 느낌이 나쁘진 않았는지 이하린의 표정이 한층 풀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얼굴 위로 약간의 홍조가 올라온 걸로 봐선 바로 세포재생이 시작된 모양. 새벽에 치료를 시도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기운을 최대한 환부 위주로 돌린다 생각하고 운용하세요.”

“······네.”

“어렵진 않을 겁니다.”

“······네. 문제없어요···!”

상처가 깊진 않았으니 이런 식으로 회복에 전념하면 이틀이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수련은 그 뒤에 하면 되겠지.

그럼 그 전까지 할 건 하나뿐이었다.

“회복은 계속하면서 들으세요.”

“···네!”

“아침에 말씀드린 거 기억하시죠?”

“···네에······”

“하린씨가 우선적으로 익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적으로요?”

“예.”

그녀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뭔가요···?”

“그게 뭐냐하면···”

나는 이하린이 무학 용어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깝다는 걸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이해하기 쉬울 만한 단어를 생각해보았다.

이런 건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었고, 의념은 마음의 영역인 만큼 어떤 이미지가 머릿속에 박히느냐에 따라 습득의 난이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침부터 이 경지를 나타내는 가장 직관적인 말이 뭐가 있을까. 그걸 고민해보았고,

“마음의 검입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이하린은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몸 상태가 안 좋아 환청을 들은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뭐라고요?”

“마음의 검입니다.”

“······.”

아무래도 잘못 들은 게 아닌 모양.

이하린은 자연스레 그 말을 자신이 아는 지식 선에서 필터링해보았지만 역시나 나오는 값은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쓴 설정 속에 그에 부합되는 건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마음의 검.

마음의··· 검···.

마음의······ 검!

“심검!!”

“······음. 예?”

“시, 심검이라니! 그, 그런 게 가능 하, 할 리가 없잖아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심검이라니···!

그건 저 천중무련의 검제조차 시전할수 있을까 말까 한 지고한 경지였다. 아니, 지금 이 시점에서 심검을 시전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혹시 유천하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제시해서 자신을 말리려는 생각이었던 걸까? 조금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그에 유천하는 미묘한, 그러면서도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심검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걸 모르······!”

순간, 이하린은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설정상으론 이 세계에서 ‘심검’이란 경지는 말 그대로 전설에나 나올법한 경지.

비록 완결까지 쓰지도 못한 채 이 세계에 초대받았지만, 원작의 최후반부 검제의 깨달음을 조금 더 맛깔나게 연출하고 싶어서 그런 설정을 집어넣었었다. 물론 실제로 써내려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검을 아는 것보단.

“······는 건 아닌데···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옛 전설 같은 데서···?”

“······.”

모르고 있는 게 훨씬 합리적이었다.

그 대답에 유천하는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조금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이하린을 쳐다봤다.

“어째 반응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심검은 아닙니다.”

“······아?”

그리고 마음의 검이 심검이지 그럼 뭐란 말일까- 이하린은 당황스러웠다.

“그 심검도 존재는 하는데 그건 한참 뒤의 이야기입니다. 설명을 쉽게 한다는게 단어 사용에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었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네?”

그 심검도 존재는 한다고? 그 심검이 아니라는 말에 당황해야 할까, 아니면 어쨌든 그 심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해야 할까. 아니 그게 내가 생각하는 심검이랑 같긴 한걸까?

이하린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하린씨가 배워야 할 건 의념입니다. 의기상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네?”

이하린의 두 눈이 크게 깜빡거렸다.

그에 유천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유천하는 원작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원작의 이하린도 무공 이론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특성으로 모든 걸 커버하고 초반이 지나가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이론을 습득했을 정도였고, 자신은 그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무학지식조차 없었던 이하린때문에 발생했던 에피소드는 상당히 많았고, 그게 모두 기억나지는 않을지언정 그 ‘쾌검보다 둔검이 더 어울려요’마저 까먹을 정도로 자신이 바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론 그건 그녀가 멍청해서도, 무학에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정말 간단한 이유.

이하린이 집필한 ‘원작’은 각성자 진시우를 주인공으로 한 헌터물이었고, 그녀에게 있어서 무공과 무학의 용어란 그저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데 쓰는 MSG에 가까운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괜히 무림의 용어로 설명하면 습득에 방해될 것 같아 일부러 더 직관적인 단어를 골랐는데 이하린은 희한하게도 진짜 ‘심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던 모양.

원작의 후반부에는 제대로 된 심검이 나올 예정이었던 걸까? 유천하는 이하린의 반응을 우선적으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의기상인이 뭔가요···?”

“단순히 무공을 통해 기를 방출하는 게 아닌, 현실에 의지를 관철시키는 경지를 뜻합니다.”

“······살기··· 랑 비슷한 건가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그럼 장풍? 격공장 비슷한 거에요?”

“전혀 다릅니다.”

그 말을 한 유천하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부엌으로 가 선반에 올려져 있던 컵 두 개를 들고왔다.

“이걸 보시지요.”

“···?”

그리곤 그 컵들을 그녀가 보기 좋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 이건 컵이에요!”

“······아. 예. 컵입니다. 잠시만요.”

그리곤 자연스레 이하린의 손을 잡은 뒤 그대로 거리를 격하고 컵에서 떨어졌다. 그들과 컵의 거리가 5m쯤 될 때까지 물러난 그는 이하린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유천하의 손에 강한 기운이 서렸다.

“이게 기입니다. 사람에 따라 마나라 불러도 되겠지요. 삼라만상 만물에 깃들어 있고, 자연 속에도 존재하는 순수한 기운.”

“······네!”

이건 이하린 또한 알고 있는 개념이었다.

애초에 무인이든, 마법사든, 이능력자든. 보편적인 각성자라면 당연히 마력을 바탕으로 초인적인 활동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건 모를 수가 없는 개념.

유천하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리고 그런 자연의 기운을 체내에 쌓아나가 내공으로 전환하고, 그 내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운용하는 것.”

그의 손에 서린 기가 흐를 듯 터져 나오더니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일렁거렸다.

“그걸 저희는 무공이라 칭합니다. 이것 또한 국가와 문화권에 따라 명칭이 달라지겠지만 저는 무공이라 하겠습니다.”

“······네!”

“무공에는 여러 과정이 존재합니다.”

그 말과 함께 유천하의 손에 일렁이던 기운이 가시화된 색채를 띠고 짙은 불꽃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그 과정 중 하나가 검기. 지금은 수기라 하면 되겠군요.”

“······.”

검기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또렷한 모습.

제가 아는 검기랑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이하린은 튀어나오려던 말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본디 무형인 기를 제한적으로나마 형상으로서의 힘을 갖추게 하는 것.”

유천하의 손에서 맴돌고 있던 흑색의 기화는 한순간에 모여들더니, 이내 예리한 검의 형상으로 화했다.

“그게 바로 검강입니다.”

손을 뒤덮으며 날카롭게 벼려진 칠흑의 검신. 자신의 것처럼 흔들리지도 않고, 검을 통해 조형된 것도 아니면서 그 예리한 기세만큼은 확연히 느껴지는 형상.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한 검강.

이하린은 멍하니 그 형상을 바라보았고, 그와 동시에 자연스러운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떻게 저렇게 일정하게 조형될 수 있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 맨손으로 어떻게 검강을 발현하는 거지? 저걸 검강이라도 해도 되는 건가···?!

이하린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러한 기를 방출해 적을 타격하는 것. 그게 바로 아까 하린씨가 말한 격공장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리 말한 유천하가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몇 번 튕기자 그곳에서부터 칠흑의 기운이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직-! 퍼석-!

그러자 컵 한 개가 그대로 깨져나감과 동시에 그 주변의 테이블 또한 움푹 들어갔다.

그야말로 단 한 순간에 일어난 일.

“······!”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탄기공, 탄강쯤이라 해도 되겠지요. 제대로 된 ‘격공’의 기는 훨씬 더 높은 경지의 무위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저게 저렇게 빠르고 편안하게 펼칠 수 있는 능력이었나? 유천하가 대단하다는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녀의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모습이었기에 이하린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물론 그런 이하린의 생각을 알 수 없었던 유천하는 그저 묵묵히 설명을 이어나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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