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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29화 (29/205)

잠 못 이루는 밤 (4)

“···!”

정신을 차린 이하린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러자 그 눈에 들어오는 건 익숙한 풍경.

불 꺼진 암실 너머로 엿보이는 실내의 구조는 익숙한 형태로 배치되어 마치 그녀의 기숙사를 떠올리게 했다. 다만 그녀의 기숙사는 아니었고, 오히려 그녀의 숙소보다는 조금 더 시설이 좋아 보였다.

“······여긴?”

여기는 어디인 걸까. 도대체 누가 나를 데리고 온 거지? 내가 언제 기절한 거야- 수많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고, 그 생각이 마침내 마지막 기억을 되짚어 유천하의 존재를 되새겨냈을 때.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셨습니까.”

“···!”

당황한 이하린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흑색의 머리카락을 대강 묶은 채 담담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미형의 남자.

“······처, 천하씨···?!”

“예.”

유천하가 그곳에 서 있었다.

“···여, 여기는 도대체?”

설마 하는 심정으로 입 밖으로 내뱉은 말.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제 방입니다.”

“···네?”

“제 방입니다.”

“······어디라고요?”

“블랙라인 기숙사. 제 방···”

“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왜···!”

그 순간, 이하린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

‘······별거··· 아니에요···.’

‘······그건 조금 곤란··· 하아···’

‘······기록··· 남는 건··· 곤란···.’

“······아.”

이 미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에 이하린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민폐도 보통 민폐가 아니었다.

그것도 왜 하필 천하씨한테···!

이하린은 지금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물며 지금 이 상황 자체만으로도 그녀를 괴롭게 하기에는 충분했는데, 마지막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은 특히나 더 심각했다.

‘······그럼 미워할 거예요···?’

‘······그럼··· 다행이에요···.’

다행은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이하린은 온몸을 고이 감싸고 있는 이불을 발로 뻥뻥 걷어차고 바닥에 나뒹굴고 싶은 심경이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신의 몸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을 뿐이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그렇게 급격한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도 유천하는 그저 담담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기이한 침묵에 순간 아차 싶었던 이하린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일단 아무 말이나 입 밖으로 내보내 보았다. 그건 정말 아무 말이었다.

“···바, 방이 참 좋네요!”

“······.”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뭔가 평소의 유천하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에 이하린은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얼굴이 조금 냉담하게 느껴졌다면 그건 그녀의 착각인 걸까? 조금 싸늘한 기색이었다.

뭐라 해야 할까. 조금 화난 느낌······?

“아.”

스스로 찔리는 바가 있었던 이하린은 그 순간 깨달았다.

유천하는 화가 난 것이다.

하긴 그렇게 민폐를 끼쳤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치료까지 해준 모양인데 자신이 이렇게 퍼져있을 동안 그는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하물며 저번에 그런 대화까지 한 마당에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빠르게 선택했다.

“······죄, 죄송합니다!”

“······.”

“······제, 제가 폐를 끼치고 말았네요···!”

“······.”

“······제가 이러려고 한 건 아닌··· 데······”

잘못했습니다······ 거듭된 사과 속에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갔고, 적막이 그녀의 입술을 내리눌렀다. 싸늘한 공기가 그녀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

“······.”

분명 평소처럼 무덤덤한 표정이건만 왜 이렇게 무서운 걸까. 숨 막힐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의기소침해진 이하린은 조심스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그녀는 평소보다 더 쪼그라든 채로 말없이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릴 뿐이었고, 유천하의 입은 그러고 한참이 지나서야 열렸을 뿐이었다.

그건 분명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왜 그러셨습니까.”

“······네?”

“왜 그렇게 무리하신 건가요.”

“······아.”

그녀로선 참으로 곤란한 질문이었다.

저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

원작의 미래를 대비해 마인을 제거하려다 실수했다고? 아니면 당신을 생각해 나서려 했다가 무리했다고? 하지만 그건 그에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조금 실수를 해버렸어요.”

“왜 그러신 겁니까.”

“······상대의 실력을 잘못 가늠해서···”

“왜 그러신 겁니까.”

“······마인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니까 왜 그러신 겁니까.”

하지만 그 대답은 충분치 않았고, 말문이 막힌 이하린은 가만히 입술만 달싹거릴 수밖에 없었다.

“······.”

“······.”

다시 적막이 흐른다.

안 그래도 막 기절상태에서 깨어났던지라 조금 당혹스러운 상황에, 욱신거리는 몸과 지금의 분위기가 더해지니 이하린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느낌.

그렇게 한순간에 그렁그렁해진 이하린의 눈망울이 유천하를 응시하였고, 그 시선에 유천하는 이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방안의 온도가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흐릿해진 이하린의 시야 너머로 들어오는 그의 표정속에는 여전히 복잡한 심경이 엿보이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 속에 담긴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하린이 느끼기엔 그건 분명 걱정이 담긴 눈빛이었고, 그걸 증명하듯 유천하는 평소와 다른, 그러니까 염려가 가득한 시선으로 이하린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신 겁니까.”

“······미안해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달라 했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혼자 무리하셨습니까.”

“······그건···”

“앞으로도 계속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요- 그 한마디면 될 것 같았다.

평소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짓말.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하린은 그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모습까지 보인 채로, 저렇게까지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하기에는 그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안 할 거예요.”

“당분간.”

“부상도 있고 하니까, 이참에 실력도 조금 더 길러서······”

“조금 더 기른다고 될 문제입니까 이게.”

“······그럼··· 조금 더 많이······”

유천하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회복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내상은 없으니 기껏해야 1주일이면 충분할 겁니다. 회랑의 치료시설에 들른다면 하루 만에도 회복될 수준이지요.”

“······.”

그 말에 이하린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의 상세를 제대로 파악해본 건 아니었지만, 회랑의 치료시설을 생각하면 저건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천하의 말은 계속됐다.

“실력을 조금 더 말입니까? 위험하다 말한 지 며칠이나 지났습니까. 겨우 이틀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급하신데 그게 되겠습니까?”

“······.”

“그만두십시오.”

“···그건!”

“왜 마인토벌을 고집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계속하시겠다면 최소한 저와 동행을 하시든, 포기하시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저번 일 때문에 이러시는 거면 이번에는 천하씨가 저를 구해주신 거니 그냥 상관없는 셈 치고 그냥···!”

“아니요.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

이 아이는 왜 이렇게 내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걸까- 유천하의 단호한 태도에 이하린은 조금 답답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자신이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맞았고,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한 모습을 보인 것도 맞았다. 그러니 누구라 한들 당연히 걱정될 것이다.

하지만 유천하의 행동은 단순히 걱정이 아니었다. 분명 저 말에는 걱정 또한 담겨있을 테지만, 그가 보이는 태도만큼은 조금 더 먼 어딘가에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의아했다.

“천하씨가 걱정해주시는 건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단순히 마음의 빚이 문제가 되는 거라면 정말 저는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건데요? 도대체 왜요?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그건 분명 위험한 일이고, 하린씨는 실제로 심각한 부상까지 입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니요. 그런 이유가 아니라,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지. 그걸 알고 싶어요. 제가 왜 그러면 안되는건지. 그 이유를요.”

“······하린씨는 제게 중요한 분이시고, 저는 그 행동을 납득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뿐입니다.”

그 말에 이하린은 유천하를 마주 보았고,

유천하 또한 그녀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

“······.”

그렇게 서로의 눈동자 속에는 서로의 모습이 담겼고, 그 속에 투영된 서로의 모습이 각자의 시야 속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차라리 만약에.

“······그런 이유라면 저도 납득 할 수 없어요. 사정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건 제게 있어선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요.”

“······.”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각자가 겪어온 삶이 동일했다면, 또한 각자가 그리는 미래가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면 모든 건 간단히 해결되었을지도 몰랐다.

허나, 환생자와 빙의자가 바라는 종점은 같았을지언정 그곳에 닿기 위한 방향성마저 동일할 순 없었다. 지금의 이하린을 움직이는 건 스스로의 의무였고, 유천하를 움직이는 건 도달해야할 목표였다.

그런 만큼.

“양보할 수 없겠습니까.”

“양보할 수 없어요.”

이하린에게 이건 필연적인 행동이었다.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이 세계를 낳은 한 명의 창조주로서 그녀는 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했다.

눈앞의 남자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만들어낸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사소한 위험조차 무시할 순 없었다.

그게 빙의자- 이하린이 생각하는 ‘창조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

허나 유천하에게 이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원래’의 이하린이 겪었을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이 행동이 갖고 올 이점과 손해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건 지금 이하린의 실력으로 하기에는 이득보단 리스크가 월등히 높은 행동이었다. 주요 빌런들은 처리할 수도 없으면서 잔챙이들을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되는 마당에 무슨 마인 사냥이란 말인가?

애초에 타천자 몇명을 제외하면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건 마인이 아닌 잿빛탑이었고, 하물며 차원의 벽을 넘는다는 최후의 목표를 생각한다면 마인 사냥 같은 건 그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천하가 생각하기에는 이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리스크가 높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

“······.”

서로는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서로의 겉면은 그저 현실에 자리한 벽이었을 뿐이었고, 그들이 생각하는 서로의 내면에는 여러 가지 인과의 실타래가 짜아올린 불투명한 껍데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가 모르는 알맹이를 그 속에 품고서 말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시선은 부딪혔고,

그 누구의 눈빛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 계속하실 겁니까.”

“······네.”

그 대답에 유천하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그녀의 올곧은 눈동자를 시야에서 잠시 지우고는, 쓰러지기 직전의 이하린이 지어 보였던 표정을 떠올려보았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인 걸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유천하는 이하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에게 있어선 너무나 낯선, 평행 선상에 위치한 마음이었으니까. 그가 읽어들일 수 있는 건 아주 오래전, 소설 속으로만 읽어내린 몇 문장의 글줄기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비록 얼마 안 되는 글줄기에 불과할지언정 유천하는 이하린의 신념과 죄책감을 소설 속 문장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천하는 이하린의 고집 아닌 고집을 이해했다. 아니, 정확히는 불완전하게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지금의 이하린이 행하는 걸 납득할 수 없었을 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천하의 머릿속에 여러 계획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납득할 수 있고, 자신 또한 안심할 수 있는 선택지. 이 상황에서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제안하겠습니다.”

“······.”

일방적인 강요는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방향을 돌릴 수밖에.

효율적이진 못하더라도 어쩌겠는가.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세계에 있어서라도 중요한 인물이었다.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고삐라도 쥐어야 되지 않겠는가.

유천하는 그렇게 결심했고.

“제게 무공을 배우십시오.”

결국 이게 최선이었다.

***

-하하! 뭔 소리 하는 거야. 바보임?

-그래서 내가 그 새끼랑 같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나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다소 시선이 쏠리긴 했지만 아이들도 이제 적응이 된 건지 잠깐 훑어보다 시선을 돌렸을 뿐이었다.

현재 시간은 8시 50분.

강의 시작까지 10분밖에 안 남은 시각.

평소라면 이하린과 같이 수업을 들었겠지만, 그녀는 지금 내 방 침대 위에서 그대로 수면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상태가 좋진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렇게 이하린을 생각하며 잠시 빈자리가 어디 있나 확인하고 있자니 진시우라든가, 남궁설아라든가 꽤나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소점은 남궁설아정도로 해둘까.’

현재 그녀의 경지는 일류와 절정의 사이.

억지로 검강을 만들려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만 그건 불완전한 형상일 것이다. 내공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기본기나 육체의 완성도는 한없이 빈약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의념을 몰랐다.

그렇다면 유망주급에 턱걸이는 가능해도 진시우나 남궁설아같은 상위권에는 못 미치는 수준.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당장 경지를 상승시킬 수는 없어도 무에 대한 이해만큼은 의기상인에 턱걸이할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유망주라 부르는 아이들을 간신히 이길 수준은 될 테니 말이다.

애초에 이하린은 전체적으로 부족한 기본기와 경지만 보완한다면 순식간에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특성은 <검의 반려>였으니까.

“······.”

그렇게 나는 적당히 빈자리에 앉으며 이하린을 최대한 빠르게 강화시킬 수 있는 루트를 고안해보았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녀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등천의 구도자는 이하린을 자수성가한 천재 정도로 여기고 있어서 신경 쓰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나는 그녀의 속사정을 알고 있었고, 그건 분명 서로에게 나쁠 거 없는 제안이었다.

이하린은 오로지 특성에 의존해 수련해왔고, 2년 동안 설정 속 기연들을 빼내면서 기어코 지금의 수준까지 올라왔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였고, 천재적인 재능이었지만 한계 또한 명확했을 뿐이었다.

‘제대로 된 가르침도, 체계화된 수련도 겪어본 적 없었겠지.’

아무리 천재라 할지언정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는 것과 혼자 스스로 터득해 성장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물며 절정 이상의 경지라면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는 성장하기 힘들 것이다. 그녀는 원작에 묘사된 바로도, 실제로도 ‘무학’의 세계에 대해서는 맹인과 다를 바 없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내 가르침을 통해 제대로 된 기본기를 쌓고 착실히 단계를 밟아 나간다면 분명 이하린은 급속도로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나 옆에 붙어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소한 안심이 될 만큼 이하린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게 좋겠지.

아니,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래야 내가 차원의 벽을 넘어갈 준비를 끝마칠 때까지 그녀가 무사히 생존할 수 있을 테니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눈앞에서 마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이었지만 내 눈은 마력의 형상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 오늘은 왜 혼자 왔어?]

“······.”

이 정도로 마력의 운용력이 뛰어난 사람도, 이런 메시지를 보낼 만한 사람도 한 명밖에 없었기에 나는 가볍게 업륜의 마력을 조형해 그녀에게 쏘아 보냈다.

[하린씨 자체휴강]

이 정도 문자를 조형하는데도 마력량이 간당간당한 수준. 이하린을 치료하는데 업륜의 마력을 죄다 쏟아부었더니 회복이 아직 덜 된 상태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다.

이하린을 치료하면서 업륜에 대해 한 가지 더 깨닫게 된 점이 있었던 것이다.

‘업륜의 마력은 치료에도 쓸 수 있었어.’

분명 내력만으로도 원신의 활력을 활성화 시켜주거나 탁기를 몰아내는 수준의 치유행위는 할 수 있었지만, 그건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치료는 아니었다. 아무리 정순하다 한들 사람의 몸을 거쳐 길들여진 기운은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허나 업륜의 마력은 아니었다.

‘그건 진원진기에 가까운 느낌이었지.’

이하린에게 업륜의 마력을 주입할 때, 그 성질은 가히 ‘생명력’이라 칭해도 될만한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비록 휘발성에 가깝긴 했지만 에너지의 활력만 놓고 본다면 진원진기라고 봐도 될 정도로 생명력이 진하게 느껴지는 힘.

‘근원의 마력이라 그런 건가··· 확실히 범용성이 상당히 높아.’

편의를 위해 명칭 상 업륜의 마력이라 칭할 뿐이지 사실 업륜이 내포한 기운은 단순한 마력이라기보단 삼라만상에 자리하고 있는 근원에 가까운 힘이었다.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고,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는 그런 힘.

나는 그 사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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