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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27화 (27/205)

잠 못 이루는 밤 (2)

내일이 주말이라 그런 걸까? 아직 자기에는 이르다는 듯, 나는 기숙사로 복귀하던 중에 익숙한 사람을 마주쳤다.

은은한 달빛을 머금고도 흑단처럼 검디검은 머리카락. 그렇게 긴 장막을 늘어트린 채 걸어가는 작은 뒷모습.

이하린이었다.

“······여기는 아니었고······ 서는······”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고있는 걸까?

수련실의 방향은 정반대였고 그녀가 걸어온 방향은 바깥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있는 곳이었다. 공강인 날이라고 외부에라도 다녀온 걸까 추측하고 있자니, 이내 그녀도 내 인기척을 느낀 모양.

이하린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하씨?”

“예. 좋은··· 새벽입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바라보며 다소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녀. 달빛에 비친 그녀의 옆모습에선 왠지 모르게 다소 피로한 기색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세요?”

“잠시 수련을 좀 하고 왔습니다. 그것보다 하린씨는?”

“···아. 잠시 볼일이 있어서 외부에 나갔다 온다는 게 조금 늦었네요.”

역시 바깥에 나갔다 온 게 맞았나보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걸어갔다.

“꽤 바쁘셨나 봅니다.”

“네, 뭐······ 그것보다 천하씨는 혹시 3학구에 다녀오신 건가요?”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나요?”

“···그야 그쪽에는 3학구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바깥에서 뭘 하고 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하린의 얼굴에선 조금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평소대로의 그녀였다면 소심하지만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을 텐데 지금의 말투에선 다소 냉소적인 기색이 엿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기에는 뭔가 조금 다른 느낌.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전투가 막 끝났을 때랑 비슷··· 아.’

내 눈이 빠르게 이하린을 훑고 지나갔다.

걸쳐지듯 입고 있는 그녀의 외투에는 흙먼지를 털어낸 자국이 엿보였고, 검집의 끄트머리에는 흙이 묻어있는 상태였다. 아니 아예 바닥에 한번 팽개쳐졌던 듯 한쪽 면은 먼지로 뿌옇게 뒤덮여 있었다.

근육은 다소 경직된 상태. 긴장하거나 힘을 주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 아마도 격하게 몸을 쓰고 난 뒤의 여파로 추측되었다.

마치··· 격전을 벌이고 온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만상의 눈으로 그녀의 상태를 들여다보니 거의 바닥난 수준으로 텅 비어있는 내력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렇기에 나는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빠르게 털어내고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바로 기숙사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야 그렇겠죠?”

“그렇다면 실례지만······”

“······?”

그녀의 얼굴에 의문이 서린다. 평소와 다르게 눈매가 날카로운 게 아직도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서있는 모양.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에 관한 정보는 최대한 알아둬야 한다. 이하린은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밤 산책 어떠신가요? 하린씨와 하고싶은 이야기도 있고··· 잠시 같이 걷고 싶어서요.”

“?!”

그녀의 눈빛속으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가, 같이요?”

“아. 혼자 걷기엔 조금 적적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저, 저는 괘,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음···? 고민이 있는 척 조심스레 접근하려던 건데 왠지 모르게 그녀는 다른 방향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평소의 이하린으로 돌아왔다.

“······그럼 잠시 걸으시죠.”

“······네에···.”

“······.”

“······.”

아니, 평소보다 더 이하린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같이 걷고 있자니 붉게 물들어 있는 그녀의 귓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소심한 성격의 이하린에겐 조금 전의 말이 조금 부끄러웠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이래서야 또 어색한 분위기.

미묘한 침묵은 우리와 함께 발을 맞췄다.

선선한 밤공기까지 어우러지니 더 낯선 기분이 들어서고 있었고, 아리엘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내 말실수로 인한 분위기였기에 조금 곤란했다.

“혹시 부담스러우신가요?”

“아, 아니요······!”

이 낯간지럽고 어색한 분위기를 어찌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자니 아까부터 환하게 빛나고 있던 달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까 전 아리엘에게 들었던 말을 꺼내보았다.

“오늘따라 달이 참 밝네요.”

“······?!”

“달빛이 참 밝은 것 같지 않나요?”

“······아. 밝다···.”

만상세계의 번역이 이상했던 걸까?

그녀가 잠시 멈칫했다.

“······네··· 달이 밝네요 오늘따라···.”

“예. 3학구에서 수련을 하는데도 달빛이 밝으니 참 편하더군요.”

“······네.”

“하린씨는 오늘 어디에 다녀오신 건가요?”

“아. 저는 어······”

아무래도 질문이 너무 빨랐던 걸까?

그 순간 멍하니 풀어져가던 그녀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시 쉽게 이야기하기엔 조금 곤란한 짓을 벌이고 온 모양. 아직은 경계심이 높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나는 잠시 고민해본 끝에 정공법을 선택했다. 그녀에겐 이쪽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얘기해주시기 곤란하신 내용인가요?”

“아, 아니··· 그건 아닌 데요··· 어······ 많이 궁금하세요?”

“네. 조금 궁금해지네요. 오늘 하루 동안 하린씨가 뭘 하고 지내셨는지. 또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

그간 지켜본 결과- 소심한 이하린은 직접적으로 묻는 말에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니 이렇게 물어보면 자연스레 그녀가 말실수를 하게 될 확률도 높아질 게 분명했다.

“그러니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그냥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뭐 좀 하다가 왔어요···!”

“여기저기··· 이것저것말입니까?”

“그, 그게··· 그러니까아······”

그녀가 곤란해 하는 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이하린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작의 에피소드가 대략적으로 기억난다 한들 정확한 시열대까지는 모르고 있었기에 최대한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을 뿐.

하물며 나라는 변수까지 더해진 이상 그녀의 행적이 원작과 똑같을 거라 기대하는 건 바보 같은 짓 아니겠는가?

초반에 위험한 적이 없다 판단한건 어디까지나 나를 기준으로 했을때의 이야기였다. 만약에 이하린이 원작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그로 인해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적을 자극하게 된다면······

그 결과를 예상해보는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그런일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만일에 하나라도, 이하린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하린이 곤란한 기색을 얼굴에 띄운 채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다닌다.

조금만 건드려도 실수를 할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나는 조금 더 직접적인 말을 던져보았다.

“설마··· 나가서 싸우고 오신 겁니까?”

“네, 네?! 서, 설마요!”

“그럼 뺨에 난 상처는 무엇인가요?”

“······네? 부상은 안 입었······ 아.”

내 말에 그녀는 황급히 뺨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건 당연히 거짓말, 이내 그 사실을 깨달은 이하린은 나를 바라보며 쩍- 하고 얼어붙었다.

마치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했다는 얼굴을 한 채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작게나마 웃음을 터트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나 봅니다.”

“······.”

“그래서 뭔가요. 공략? 침식방어? 아니면 등천의 구도자에서 부른 겁니까?”

“······아니··· 천하씨 이게 무스은···.”

황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가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다.

“대답 안 해주실 건가요?”

“······진짜 너무해요.”

잠시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던 그녀는 이내 한탄이라도 하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냥 마인토벌을 좀 하고 왔어요.”

“마인··· 토벌을 말입니까?”

“네. 침식마인이요.”

이건 조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원작에서도 이 시기에 마인 사냥을 시작했던가? 아니, 이건 내가 기억하는 흐름보다 더 빨랐다. 이건 지금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인을 토벌하면 보상금이 나온다 하길래 예전부터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당연히 마인을 싫어하기도 했고요.”

“그러시군요.”

저건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이하린은 겨우 그런 이유로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었고, 원작의 그녀가 침식과 맞서 싸우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으니까.

원작의 인물들을 향한 심리적 부채감.

자신이 집필한 세계에서, 자신이 설정한 인물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 싫었기에 원작의 이하린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최대한 침식과 맞서 싸우기를 다짐했을 뿐이었다.

그런 만큼 실제의 이하린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인 이유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근데 위험한 일 아닌가요 그거?”

“······아.”

시기가 달라졌다는 사실.

그건 무척이나 곤란한 부분이었다.

원작처럼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가 아닌, 고작 상위권 생도 수준의 실력으로 활동하기에는 그건 꽤나 위험한 일이었다. 하물며 침식마인을 토벌하려다 타천자와 얽히기라도 하면 일이 정말 심각해질 수도 있는 상황.

차라리 내 눈앞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거라면 상관없었다. 그때는 내가 해결해주면 그만일 테니까. 애초에 지금의 내 수준으로도 멸화급이전의 사건까지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녀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였고, 그렇기에 이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마인토벌은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하루만 해본 거에요!”

“정말이신가요?”

“······네! 우연히 근처에 마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했거든요. 그래서 한번 토벌을 하러 가본 거뿐이에요. 별거 아니었어요!”

“······.”

당연히 이것도 거짓말. 저작권리의 가호- 자신이 설정한 내역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그녀의 가호가 있는 한 우연히 알아냈을 가능성보다는 직접 찾아갔을 가능성이 확실하게 더 높았다.

그저 제대로 말해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나 또한 그녀에게 숨기는 게 많았던 만큼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순순히 넘길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해야 그녀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말을 해야 그녀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을까.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고···.

“그럼 앞으로는 마인사냥을 안하실 생각이신가요?”

“어···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럼 다음부터는 저도 같이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네? 천하씨가 왜요?”

역시 써먹을 만한 건 하나뿐이었다.

그걸 이 상황에 언급한다는 게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적어도 내용만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단호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하린씨에게 빚이 있으니까요.”

“···?”

“목숨 빚 말입니다.”

“······아이참··· 또 그 얘기를 꺼내시면···”

“아니요.”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고로 스승님께서는 원한과 은혜는 배로 갚아야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의 구명지은에 대해 아직도 뭐 하나 제대로 갚은 게 없지 않습니까?”

“그건 정말 괜찮······”

“안 괜찮습니다.”

“······.”

이하린이 눈동자를 굴려댔다.

“마인 토벌은 분명 위험한 일입니다. 하린씨의 실력을 무시하고 싶진 않지만, 그건 분명 객관적으로 위험한 일이니까요.”

“······.”

“그런 만큼 제가 모르는 곳에서 하린씨가 그런 위험한 일을 겪고 오는건 납득할 수 없습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

그녀가 대꾸하려는 걸 재빨리 끊어냈다.

“물론 제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 한들 위험한 건 위험한 겁니다. 적어도 제가 갚아야 할 빚이 남아있는 한, 저는 하린씨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걸 반대하고 싶습니다.”

“······.”

“그러니 그런 위험한 일을 하실 거라면 차라리 저도 데려가 주시지요. 제가 하린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에.”

“지난번에 분명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달라 했잖습니까. 하린씨는 제 실력을 알고 계시고, 이건 분명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입니다. 혹시라도 하린씨가 제 눈 밖에서 다치시거나, 죽기라도 하신다면 제 스스로 무척이나 후회하게 될 것 같으니까요.”

“······아··· 아, 그···.”

실력을 무시하는듯한 어조가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용이 거슬릴지언정 이 부분은 확실히 당부해야 했다. 내 말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까닥하다 그녀가 죽기라도 한다면 정말, 정말 곤란했으니까. 정말 무척이나 말이다.

그러니 그걸 막기위해서라면 잠깐의 무례함과 수치심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잔소리처럼 들리실진 모르겠지만 하린씨는 제게 생각보다 더 중요하신 분입니다.”

“······그으··· 그러어니까···”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한 분이기도 하고,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기도 하니까요.”

“······그··· 그거언 맞지마안······.”

“그러니 말씀드린 것처럼 위험한 일이 있을때면 차라리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하린씨의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릴 테니까요.”

“······.”

“저는 하린씨 혼자 그런 위험한 일을 하러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

펑-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으로 고개를 치켜든 그녀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쳐댔다.

“······그, 그만!!”

“예? 아직 할 말 더 남았······”

“아, 알았어요! 아, 알았으니까···!!”

그녀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어디 가십니까? 아직 제 말 안 끝났···”

“시, 싫어요!!”

“하린씨?”

“다, 다음에 봐요! 안녕히 주무세요···!!”

바닥난 내력까지 긁어모아 뛰쳐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경공은 또 어디서···?”

도대체 어디서 또 뭐를 주워온건지는 모르겠지만 이하린이 새로운 경신법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는 뭔가를 주워 먹고 하루 만에 내력을 확 늘려오더니, 이번에는 하루 만에 경공을 배워왔다. 그것도 꽤 상승의 묘리가 담긴 발걸음을 말이다. 저런 걸 하루 만에 익혔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

‘···이래서 빙의자란.’

하지만 흔히들 그러하듯, 저런 기연은 잘 빼먹고 다니면서도 원작과 달라진 전개에서는 큰 곤욕을 치르는 게 빙의자란 존재였다.

그렇기에 원작의 전개를 알고 있던 나로서는 스스로 집필한 ‘원작’만을 믿고 있을 이하린이 굉장히 불안하게 느껴졌다. 하물며 이제는 나까지 이 세계에 들어온 마당에 그 일들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직까진 확신할 수 없는 요소.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차라리 먼저 타천자를 사냥해야 하나···’

물론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한들 지금으로선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기에 그저 허망한 소리일 뿐이겠지만, 그녀가 위험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뭐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을 따름.

차라리 적이 찾아오는 걸 기다릴 바에는 아예 하나하나 찾아가 미리 죽여놓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밤이었다.

***

핀트가 엇나가다 못해 다르게 맞아버린 상황. 유천하의 말들을 버티다 못해 뛰쳐나온 이하린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달이 밝아서일까.

어둠속에서 뛰쳐나온 이하린의 입가. 그곳에 떠오른 미소만큼은 달빛에 휩싸여 선명하게 엿보이고 있었다.

“···진짜···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야심한 새벽에 난데없는 도주행위였지만 이하린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밤 산책 어떠신가요’

‘잠시 같이 걷고 싶어서요.’

‘오늘따라 달이 참 밝네요.’

봄날의 따스함 때문일까, 아니면 선선한 밤공기가 만들어낸 마법인 걸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심장이 뛰어올랐다.

‘제가 하린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이하린은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진지하게 마음을 가다듬어보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헤실 거리는 입가를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이건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조금 더 복잡한, 그러면서도 무거운 감정. 그녀에게 유천하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러한 만큼 그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 더 깊게 다가왔을 뿐이었다.

‘안 돼 이하린···! 정신차려···!’

그렇기에 이하린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을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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