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담론 (3)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아까 말한 대로 기본기에서부터 역량 차이가 났기 때문이지. 하지만···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나서 나도 당황스럽긴 하군.’
남궁설아는 인적 없는 로비를 가로질렀다. 그녀의 발걸음은 로비를 지나 개인용 수련실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너도 느꼈겠지. 무학의 이해에서 발생하는 차이는 단순히 특성으로 메꿀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말이야.’
문이 닫힘과 동시에 그녀는 허리춤에 메여있던 검을 꺼내 들고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그녀의 용천혈에서 토해진 내력은 순식간에 땅바닥을 내리쳤고, 기해혈에서 터져 나온 기운은 극문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순간에 앞으로 쏘아지는 남궁설아의 신형은 어느새 하나의 찌르기를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 한들 너는 분명 그 특성만으로도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이길 수 있을게다. 어떤 상대가 되었든 그 속도를 따라갈 만한 자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그 순간 남궁설아의 특성이 발동되었다.
내력이 흘러나가며 그녀의 세계가 현실의 법칙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변속 제어>의 권능으로 그녀는 순식간에 초속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팔꿈치가 펼쳐지기 전에 1차로 가속, 다시 팔이 온전히 펴지기 전에 2차로 가속, 검극이 목표에 닿기 직전 다시 3차로 가속한다.
세 차례에 걸친 가속의 소음이 일순간에 겹쳐지며, 굉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검극은 그대로 연습용 타겟을 꿰뚫었다.
그 순간, 순식간에 타겟이 터져나갔다.
퍼-엉!!
‘네 실력으로 너보다 강한 마법사를 이기는 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졌기에 소리마저 겹쳐진 일격이었지만 그 결과에 남궁설아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또다시 손목이 흔들렸다.
가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육체에 걸린 부하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유천하에게 지적받았던 부분이었고, 그녀 스스로도 느끼고 있던 단점을 그대로 말이다.
‘너보다 강한 각성자를 이기는거? 그것도 어렵지 않다. 적어도 이상한 특성을 가진 상대만 아니라면 말이지.’
심지어 방금은 내력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특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가속이 발현되는 과정에서도 미미하지만 전조는 확실히 새어 나왔다. 모든 부분에서 미숙함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남궁설아는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너는 너보다 강한 무인만큼은 결단코 이길 수 없을 거다. 너의 움직임을 읽어들일 수 있고, 그 속도의 일부나마 따라잡을 수 있는 무인이라면 더더욱!’
“···아니야.”
절대, 결단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남궁설아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등.
자신을 향해 지어 보이던 미소.
그리고··· 순간적으로 먼 어린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그걸 의식하지 않았다.
‘무학의 업은 스스로 쌓아나가는 노력에 비례하는 법! 끝없이 정진해라! 특성을 제어하고, 기본기를 가다듬어라. 더 빠르게, 더 강하게? 그딴 집착부터 버려야 할 거다. 지름길을 찾아가려다간 언젠가는 결국 처절하게 후회하게 될 테니까!’
앙 다물은 입술 사이로 붉은 핏물이 흘러내린다. 투명해진 그녀의 눈동자 위로 독기 어린 갈망이 맺혔다.
“이걸로는 안돼.”
남궁설아는 후회했다.
유망주 소리를 들으며 자만하고 말았다. 고작 또래의 아이들 사이에서 특출난 게 뭐가 그리 자랑스러 웠을까. 아니, 어쩌면 안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될 거야.
시간이 지나면 분명 더 강해질 거야.
그렇다면 분명 언젠가는···.
그런 바보 같은 마음으로!
“정신 차려.”
그자를 마주하는 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그 순간이 왔을 때도 오늘 같은 결과가 벌어지면 안 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검을 휘두르자.
남궁설아는 스스로의 다짐을 되뇌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으스러지듯 검병을 부여잡고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
천무관의 옥상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전망 또한 좋았기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1학구의 풍경이 속속 들어올 정도.
“······항상 하는 말이지만··· 천하씨는 정말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잠시 옥상에 올라와 숨을 돌리고 있었다. 오늘은 더 이상 남은 수업이 없었기도 했고, 바로 기숙사로 돌아가자니 조금 전의 일로 다른 이들의 관심이 쏠리는 게 영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바람을 쐬고 있자니 이내, 이하린이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냥······ 너무 태연해서요.”
“?”
그녀의 표정을 바라본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항상 긍정적인 말만 해주던 그녀가 왠지 모르게 게슴츠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뭐 실수한 게 있었나?
“······으으음. 천하씨가 사회적 상식이 조금 부족하시단 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시 조금 신경 쓰여요!”
“갑자기 말입니까?”
“천하씨가 강하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너무 강해요! 그 남궁설아라구요! 그 남궁설아!! 으으으···!!”
자그마한 체구로 발을 동동거리며 답답해하는 게 마치 뭘 잘못 집어먹은 토끼처럼 느껴졌다. 뭔가 조금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는 기분에 나는 재빨리 생각의 방향을 전환했다.
“그래 봤자 같은 생도 아닌가요?”
“······그, 그런 태도가 정말!”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아, 아니에요! 알아요···! 제가 이럴 건 아닌데··· 알고는 있는데 그냥······.”
이하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설아는 유망주라구요! 유망주! 연맹에서 차세대의 선두가 될 자질이라 인정한 루키들이란 말이에요···!!”
“확실히 강하긴 하더군요.”
“근데 너무 쉽게 이기셨어요!!”
“그야 경지는 제가 더 높으니까요.”
“···!!!”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일만한 일이었던가?
분명 남궁설아의 수준은 무림의 기준에서 생각해도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특성까지 고려하면 그녀의 또래에서는 상대가 아예 없을 테고, 더 높은 배분을 찾아야 간신히 나올 정도.
허나 반대로, 특성을 제외하면 그저 적당히 강한 후기지수의 수준일 뿐이었다. 대충 삼룡사봉이니 무림사화니 하는 수준이지 않을까?
물론 그녀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 정도로도 충분히 대단한 경지였고,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아직은 유망주.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한들 그 싹을 피워내려면 세월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런만큼 지금의 그녀는 특성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고, 무공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비교적 낮았기에 상대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내 실력이야 어차피 이미 조금은 드러난 셈이었고, 여태까지 보인 실력만으로도 남궁설아를 이길 정도는 충분히 되지 않겠는가?
그런 판단 속에 치른 대련이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이하린이 조금 어두워진 안색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천하씨는 정말 대단하세요. 항상 느끼는 건데, 항상 그것보다 더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근데 항상 더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항상 그렇게 태연하게만 있으시니까 제가 정말 너무 걱정돼서······”
“······?”
“계속 이렇게 주목을 받아버시리면······ 원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아.”
뭐라 중얼거리던 이하린이 순간 멈칫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에 빠져 말실수를 할뻔했다는 느낌이었기에, 나는 적당히 화제를 끊어주었다.
“하린씨?”
“아···!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이 들어서···”
“괜찮습니다.”
“······어쨌든! 유망주를 꺾었다는 건, 그리고 그렇게 쉽게 이기셨다는 건 천하씨 생각보다 훨씬 주목받을 만한 일이에요. 그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하는 이하린의 표정이 아까보다 어두워 보였다면 그건 내 착각인 걸까?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속에는 걱정 어린 기색이 맴돌고 있었다.
나로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행동했다 생각했다만, 아무래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던 모양.
하지만 그런 걸 이야기해줄 순 없었기에 나는 그저 순순히 그녀의 말에 대답을 돌려줬을 뿐이었다.
“예. 앞으로 유념하겠습니다.”
“유념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이하린은 멋쩍은 표정과 함께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다소 쑥스러운듯 고개를 숙인 그녀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워 보였을 따름이었다.
***
‘남궁설아가 유천하에게 패배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무학담론 시간에 벌어졌던 일은 순식간에 생도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심지어 그건 수업 중에 일어난 정식대련이었고, 생도 간 대련이 금지된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었던 만큼 아이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결과.
그렇게 유천하의 이름은 또다시 등천회랑을 강타했다. 입학식 날의 행적부터 시작해서, 배치고사 때의 영상, 업륜 그리고 오늘의 대련결과까지.
그야말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폭풍의 눈.
학기가 시작된 지 고작 이틀이 지나가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유천하의 이미지는 완벽한 이슈 메이커로 자리매김하는 중이었다.
“그거 들었어요? 이번에······”
“네? 진짜요? 와··· 순식간에 제쳐버리네.”
특히나 이번 사건은 생도들에겐 더 직접적으로 와 닿는 일이었기에 이야기는 여기저기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속보! 유천하 남궁설아 압살!!!]
[영상]
[영상]
[시발 폰으론 제대로 찍히지도 않네]
[미쳤다 진짜;]
[아 우리 설아 어뜨캄 ㅠㅠ]
[혹시나 해서 한 판 더 했다가 고대로 순식간에 끝나더라;]
[아니 근데 저 속도를 도대체 어케 뚫음?]
이 일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이유.
그것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남궁설아를 이겼다는 것.
그건 생도들에게 있어선 단순히 A급 마수를 격퇴한다든가, 업륜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유망주 랭킹 바뀌겠네 곧 ㅋㅋㅋㅋ]
[진짜 갑툭튀 뭐냐고 ㄷㄷ]
세계에는 수많은 기관과 단체가 존재했지만, 세계연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초인 연합 기관’은 단 3곳.
고대로부터 존재해온 무인 집단 ‘무림맹’을 전신으로 삼아 무업을 수양하는 무투계 초인들이 모여있는 곳- <천중무련>
침식을 계기로 세계의 이면에 자리했던 수백 개의 마법학파가 모여들어 설립된 기원의 연구자, 마도비원- <기원학회>
세계승천 이후 생겨난 수많은 각성자를 끌어모아 각성자들의 질서와 체계를 정립한 역대 최대 규모의 기관- <각성자 협회>
이 3곳은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초인들의 근간이 되는 기관이었고, 당연히 등천회랑의 생도들 역시 대부분 그러한 영향력 아래서 자라온 이들이었다.
어린 시절 재능 있는 인재로 선별되어서,
혹은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깨달아서,
아니면 스스로 기관의 시험을 통과해서.
그렇게 각 기관의 산하 교육시설로 모여든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교육을 거치며 생도로 성장해왔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수재들은 서로의 능력을 경쟁하며 기량을 쌓아나갔다.
그러한 결과, 어느 순간부터 생도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세상에는 진짜 ‘천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클랜 광휘에서 뛰쳐나온 초신성! 접경지역을 휩쓸다. 차세대 승천자 유력후보!>
<천중무련 소속 ‘검화’ 중등부 기록측정에서 최고점 갱신! 대련승률 98% 달성!>
<기원학회의 떠오르는 별. 언령사 아리엘. 단독으로 A급 토벌. 최연소 토벌 기록!>
같은 시간을 공유했어도, 남들보다 더 멀리 나아가는 자. 같은 교육을 받았어도,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깨우치는 자.
연맹에서 주시하는 ‘유망주’라는 이름의 천재들은 분명 연령대를 뛰어넘는 강함을 지니고 있었고, 같이 생활하면서 그걸 직접 경험했던 생도들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생도들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A급 마수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생도들이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이 들뿐.
반대로 업륜이 대단하단 걸 알고 있을지언정, 그걸 획득하기 위해선 어떤 업적을 쌓아야 하는지 실제로 경험해본 생도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유망주는 아니었다.
유망주의 강함은 생도들이 ‘직접’ 경험했던 영역이었고, 그렇기에 그 유망주가 또래의 아이에게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패배했다는 점은 생도들로선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피부에 와닿는 충격이었다.
[진짜 그 속도를 어떻게 뚫은거야?]
[남궁설아가 30초컷? 이게 말이 됌?]
[ㅋㅋㅋ 사실 유망주들 다 거품 아님?]
[그럼 거품한테 싹 쓸려나간 저희는 기름때고요? ㅋㅋㅋㅋ]
[유천하고 남궁설아고 솔직히 맨손으로 붙으면 내가 1초만에 발릴 자신 있음ㅇㅇ]
[뭔 개소린가 했네 ㅎㅎ]
분명 배치고사 때의 유천하도 나름대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등천회랑 관계자들 사이에서의 일이었다.
또한 업륜의 존재 여부는 생도들과 선두 공략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일이었지만 그것도 분명 한계는 있었다. 일반인들까지 관심을 갖기에는 그건 조금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일은 경우가 달랐다.
등천회랑의 생도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등불이었고, 유망주는 차세대를 이끌어갈 평화의 상징. 그런 유망주를 꺾었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 떠올랐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유천하의 이름은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각성자들의 SNS와 커뮤니티를 타고 흘러내려 가서, 다시 언론의 관심을 타고 흘러서, 결국에는 아이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까지도.
그렇게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
“호오··· 등천에서 새로운 걸 내놓았군.”
어두컴컴한 밀실. 그곳에는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뭐 보고 계십니까?”
옆에서 들려온 부하의 물음에 남자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로운 유망주가 등장한 모양인데 이 새끼 출신지가 웃기네. 무림이 뒤진 지가 언젠데 아직도 거기서 무인이 튀어나오는지··· 참나.”
“중국 출신이랍니까?”
“뭐. 어디에 처박혀있다 튀어나온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쪽 접경지역 출신이란다.”
그렇게 기사를 훑어보던 남자는 이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부하를 바라보았다.
“아. 그것보다 얼마 전에 들어온 의뢰. 어떻게 돼가고 있지?”
“어떤 의뢰 말씀이십니까?”
“타천자 카룬드, 새끼야.”
“타천자 카룬드···.”
사내의 말에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수첩을 뒤적거렸다.
“아. 아직 한창 밑작업치고 있습니다. 있잖습니까? 등천도시 결계에 안 걸리는 놈으로 다가 폭탄 좀 구하고, 침식마인도 좀 긁어모으고··· 뭐 그런 거요. 안 그래도 저번에 갑자기 일정을 당긴다 해서 욕 좀 퍼부었잖습니까.”
“맞아. 그랬었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음? 아··· 그냥 뭐···.”
남자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왜 갑자기 일정이 변경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그 ‘카룬드’의 목적이라면 목표는 뻔했다. 하찮은 복수심일 뿐이겠지.
그렇다면 일이 성사될 시 승천자의 눈길을 피하는 게 관건. 직접 처리해서는 영 수지가 안 맞는 장사였다. 등천도시를 테러해 경계레벨을 발동시키는 것도, 그 후에 회랑에서 일어날 일도. 이래저래 위험부담이 상당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의뢰자체는 적당히 침식마인들을 시켜 해치울 생각이었다. 애초에 자신들이야 의뢰비만 받아먹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자- 페르데 카사의 조직이 해야 할 일은 기껏해야 테러를 준비하고, 시티가드를 참살해 회랑의 등천자들을 유인하는 것.
위험부담만 덜어내면 나쁘지 않았다.
등천자를 사냥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뭐, 필요하다면 등천자 한 명 정도야 어떻게든 처리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찝찝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음? 뭐 때문에요?”
“그러게나 말이다.”
새로운 유망주의 소식을 마주한 순간, 페르데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그 의뢰가 스쳐 지나갔다.
유망주라 해봐야 아직 솜털이나 달고 다니는 꼬마 아이들. 그것도 회랑 내에 처박혀서 밖으로 나올 일이 드문 녀석들이었고, 당연히 의뢰가 진행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마주칠 일이 없는 존재.
그런데 왜 등천회랑의 소식을 듣자마자 이 의뢰가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다. 잠시 미묘한 기분속에 이상한 점이 있나 계획을 되짚어본 페르데는 이내 깔끔하게 생각을 털어냈다.
“···뭐. 상관없겠지.”
애초에 마주칠 일도 없지만, 마주쳐봤자 사지를 찢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유망주래봤자 고작 생도 수준 아니겠는가?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진행사항은 계속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런 생각과 함께 페르데 카사는 스마트폰을 집어 던졌고, 부하의 대답을 뒤로한 채 걸어나가는 그의 눈빛 속엔 짙은 마기가 일렁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