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담론 (2)
잠깐의 쉬는 시간이 지나간 후, 생도들은 모두 연무장으로 모여들었다.
-아··· 아직도 정신이 맹하네.
-방금 설마 그거였냐···?
아까 전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던 건지 다소 얼떨떨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대부분은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른 듯 싶었다.
그런 생도들을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끄덕거리던 철위강이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앞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결국 한가지. 스스로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고, 또 올바른 방향으로 정진해라. 그걸 말하고 싶었다.”
그게 그런 말이었던가.
생도들의 표정이 기묘해진다.
“······그럼 말씀하신 올바른 방향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것입니까?”
한 생도의 물음에 철위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직접 보거라.”
“···예?”
“유천하, 남궁설아. 둘 다 앞으로!”
““예.””
갑작스러운 부름이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방금의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여기 두 사람을 봐라.”
철위강이 나와 남궁설아를 가리켰다.
“유천하의 특성은 관찰계열. 나쁘지 않은 능력이지. 하지만 남궁설아의 특성은 현상계열이고, 당연히 무공과의 상성만 놓고 보면 남궁설아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작대로라면 그녀의 특성은 현실의 법칙마저 무시하고 속력을 변화시키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보편적으로는 그쪽이 더 좋은 능력이겠지.
물론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경우에서지만.
“하지만 전투로만 놓고 보면 한쪽은 순수하게 무공만으로 만점을 받았고, 다른 한쪽은 특성까지 사용해 930점을 받았지. 그것도 부상까지 입어가면서 말이야.”
시야의 끄트머리로 남궁설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들어왔다.
“남궁설아의 특성은 분명 좋은 것이지. 특히 무인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아무나 의견을 말해봐라.”
“······.”
잠시 침묵이 흐른다.
생도들이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렇게까지 말한 이상 답은 결국 하나밖에 없었고, 솔직히 그건 함부로 말하기엔 조금 부적절한 말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철위강은 한번 말이나 해보라는 듯 팔짱을 끼고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공기가 내려앉았고-
이내, 누군가의 입이 열렸다.
“말씀하신 대로면 제 무인으로서의 기량이 유천하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 이라 하고 싶으신 건가요?”
남궁설아의 말이었다.
“그래! 잘 알고 있군. 하지만 너희는 그 차이를 실감하긴 어렵겠지. 단순히 경지의 차이를 이야기해도 특성이 존재하는 한 그건 사다리가 걸쳐진 벽일 테니까.”
“······.”
“그러니 이 둘의 대련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달아라. 특성보단 제대로 된 기본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 말한 철위강 우리에게 눈길을 보내왔다. 정확히는 나를 향해서 말이다.
마치 마음대로 해버리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내 착각인 걸까?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대하는건지 조금 의아할 따름이었다. 단순히 실력만을 보고 그렇다기엔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허나 그 눈빛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옆에서부터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
남궁설아의 눈은 그녀의 남청색 머리카락처럼 짙은 빛깔로 침체되어 있었다. 상당히 기합이 들어가 있는 모양인지 그녀의 기세가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나는 그녀의 기분을 이해했다.
이렇게 대놓고 타인보다 기량이 떨어진다는 취급을 받았으니 무인인 이상 당연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그녀를 몰아세우는 철위강의 행동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을 따름이었다.
“자. 그럼 둘은 가운데로 가라!”
그렇게 우리는 연무장에 가운데에 서서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에선 어떻게든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규칙은 간단하다. 검기상인劍氣傷人을 금한다. 당연히 강기나 여타의 기공 또한 금지다. 내공의 사용처는 오로지 육체의 보조로서만! 특성은 자유! 업륜 및 가호는 사용금지!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예.”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로서는 납득이 가는 밸런스였다만 남궁설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굴욕적으로 느껴졌을 터.
강기와 업륜의 사용을 금지하고 특성의 사용을 허가한 이상 이건 대놓고 남궁설아에게 유리한 조건이었고, 이런 규칙에서도 진다면 그녀의 자존심이 크게 상할 게 분명했다.
적당히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제대로 상대해야 하는 걸까.
딱히 승패가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잠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스스로 생각해도 꽤 재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작의 주연인물이라 한들 아직 제대로 재능을 피워내지도 못한 유망주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 속에 나는 속으로 미묘한 한탄을 털어놓았고, 그 순간.
“그럼 시작해라!”
대련이 시작되었다.
***
첫 검격은 가벼운 쾌검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서로의 검이 교차하고,
처음으로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캉-!
그 순간 이미 남궁설아의 검은 다섯 번째 검초에 접어들고 있었다. 한순간에 휘둘러진 수차례의 검격.
검신이 겹쳐지며 불씨가 튀어오른다.
생도들은 뒤늦게 그 광경을 목격하였지만, 그때는 이미 유천하와 남궁설아의 세계가 다시 별격의 시간선에 접어든 뒤.
압도적인 빠르기로 교차하는 검격은 수많은 잔향을 남긴 채 허공을 뒤덮었고, 그렇게 수십 차례의 검격이 지나가고 나서야 생도들은 뒤늦게나마 감탄을 토해낼 수 있었다.
-속도 미쳤네 진짜!
-넷? 여섯? 방금 몇 번을 휘두른 거야···?
그 와중에도 남궁설아의 검격은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열합이 넘는 검격이 쏟아진다. 그건 쾌의 묘리가 담긴 검법과 그녀의 특성 ‘변속제어’가 만들어낸 결과.
실로 말도 안 되는 쾌전이었다.
그렇기에 그 초속의 세계를 관람하고 있던 생도- 황찬룡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기량이 떨어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금속의 교차음.
차가운 소리의 잔상이 끊임없이 겹쳐지고 있었지만, 황찬룡의 눈엔 그 모습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내력으로 안력을 돋아 보아도 그저 흐릿한 남색의 물결만 엿보였을 뿐.
특성을 최대한으로 발동한 것일까?
그야말로 신속에 가까운 속도였다.
그에 반해 유천하의 모습은 오히려 정지된 장면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준이었는데, 그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카앙! 큉! 슁!
캉! 카앙! 카각!
제 자리에 서 있는 유천하를 향해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격은 끊임없는 파공성을 터트리고 있었고, 지켜보던 생도 대부분이 그 공세의 폭격에 저도 모르게 유천하를 걱정했을 정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차분했다.
‘확실히 빠르긴 빠르군.’
유천하의 입장에서도 남궁설아의 속도는 분명 빠른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쾌검에 특화된 무공에 그녀의 특성까지 결합되니, 속도 자체로만 한정한다면 자신조차도 따라가기 벅찬 수준.
사실상 유천하는 지금 남궁설아의 움직임을 읽고 후발선제後發先制를 강행하는 것으로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딱히 위협적이진 않아.’
그녀의 검은 가벼웠다.
그녀의 속도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남궁설아의 빠르기는 순수한 실력이 아니었고, 그녀 또한 스스로의 속도를 온전히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게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을 뿐이었다.
만상이 현상을 직시한다.
남궁설아의 내력이 터져 나오며 특성이 발현되는 찰나의 순간, 세계에 동조되며 현실의 법칙이 무시되는 순간의 영역.
유천하는 그 순간을 관측할 수 있었다.
‘손목.’
그 생각과 동시에 유천하는 심상의 내력을 활성화시켰다. 풀어져 나오는 네 갈래의 매듭. 가벼운 대련일 뿐이었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유천하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천하 또한 초속의 세계에 접어들었다.
찔러 들어오는 검극을 마주한다.
마주치는 찌르기.
유천하의 속도는 그녀의 3분지 일. 그가 팔을 다 펴기도 전에 그녀의 검극이 먼저 그에게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만상의 눈도 필요 없었다. 유천하와 그녀의 사이에는 그 정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는 간단한 곁눈질만으로도 정확한 타점을 잡아낼 수 있었으니까.
시선의 흐름, 근육의 꿈틀거림, 발의 움직임, 다시 기의 흐름. 그리고 무게의 중점.
‘빈틈이 극명해.’
유천하의 검이 오로지 손목으로만 지탱된 상태로 뻗어 나왔고, 그녀의 검은 팔을 쭉 뻗은 상태로 관성까지 부여받아 그 검을 맞찔렀다.
검극이 교차한다.
그리고.
캉-! 카각-!!
그녀의 검이 한순간에 튕겨져 나갔다.
서로의 검극이 맞닿음과 동시에 극점에서부터 튕겨 나온 푸른 장검은 그대로 엉뚱한 방향을 향해 쏘아졌다. 팔째로 튕기며 순식간에 비어버린 그녀의 가슴.
“!”
경악하는 그녀의 표정을 마주하며 유천하의 검이 찰나를 쪼개- 그녀에게 쏘아졌다.
그 즉시 남궁설아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순식간에 자세와 위치가 변화하며 한순간에 빈틈을 없애버리고 공세로 전환된다.
‘빠르기 하나만큼은 확실히 대단해.’
하지만 무인의 우열은 단순히 속도로만 판가름 나는게 아니었고, 그렇기에 유천하의 검신은 그녀의 검을 타고 휘감겼을 뿐이었다.
그대로 검의 중심을 빗겨냈다.
그녀의 검이 다시 한 번 튕겨 나간다.
캉-!
튕겨져 나가기 무섭게 남궁설아의 검은 다시 허공을 격하고 쏘아져 왔다. 검극이 향하는 곳은 하반신. 유천하는 마주 휘둘렀다.
무게 중점을 파악해 흐름을 빗겨 친다.
퀴이잉-!!
서로의 검이 맞부딪치며 검이 멈춰 섰다.
당황한 그녀가 재빨리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땐 이미 유천하의 검이 그녀의 검을 후려친 뒤.
카아앙-!!
또 다시 튕겨져 나가는 그녀의 검.
순식간에 중앙이 비어버린 그녀를 향해 유천하는 발을 내디뎠다.
카각!- 튕겨 나간 검을 되돌리며 그녀 또한 몸을 움직였지만, 그녀의 발이 움직임이기도 전에 내디뎠던 유천하의 발은 그 순간 그녀의 앞에 도달했다.
마치 짜여진 검무처럼 두 사람의 신형은 교차했고, 서로의 그림자가 겹쳐친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가르는 그녀의 검과 간극을 베어가르며 나아가는 검극.
그렇게.
“!”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휘둘러진 검은 그녀의 목 앞에서 멈춰 섰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승부의 끝.
대련이 시작되고는 고작 30여 초가 지난 상황. 그리고 유천하의 몸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순간부터는 이제야 1초하고도 반이 지나간 시간.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결과였다!
***
이 순간, 그들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 속에 휩싸였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던 공방이 눈 깜빡하는 사이에 끝나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 남궁설아를 상대로 말이다!
생도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섣불리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끝났습니다.”
“······.”
그녀 또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속도는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최소 2배, 아니 거의 3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였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사람은 베여나가는 것 조차 못 느낄 속도.
하지만 자신은 패배했다.
방금 전의 격전. 유천하는 마치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자신보다 느린 속도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고, 자신의 움직임을 아는 것처럼 먼저 행동했다.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걸까.
자신과 유천하 사이에 그 정도로 까마득한 격차가 존재한단 말인가?
“어떻게 제 움직임을······?”
그녀의 눈동자가 더 짙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본 유천하는 검을 거두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유천하는 이제서야 철위강이 자신과 남궁설아를 대련시킨 이유를 알 것 같았고, 그렇기에 유천하는 자신이 느낀 점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검격이 뻗어 나오기 전, 가속이 잠시 풀리는 걸 느꼈습니다.”
“······.”
“거기서 다시 가속으로 전환된 직후 검극이 흔들립니다. 순간적인 속도를 손목의 힘이 받쳐주지 못하는 거지요. 가속의 타이밍을 알 수 있다면 그대로 힘의 방향을 무너트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
순간, 그녀는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 걸까?
그건 그녀의 비밀이었다. 당사자인 그녀 스스로조차 무의식적으로만 의식하고 있던 은밀한 습관이자 약점.
한데, 그걸 그 잠깐의 부딪힘에서 간파당한 걸로도 모자라 이용까지 당한 것이다!
“또한 속력이 변하기 전에 기운이 들끓었습니다. 검로를 타고 쏘아지는 기운과 특성으로 순환되는 기운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겁니다. 기운이 흘러나오고 시선 또한 타격지점을 스치니 타이밍을 아는 게 어렵지는 않더군요.”
“······.”
덧붙여진 말에 남궁설아는 결국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저 말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했다. 그와 자신의 사이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강제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비록 완벽한 패배였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스스로가 부끄러워서라도 아버지의 사진을 마주하지 못할테니까.
남궁설아의 입가에 붉은빛이 어렸다.
“한번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한번 더 말입니까?”
“예. 부디···!”
“원하신다면야.”
그녀의 절박한 표정에 유천하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로서도 그녀의 특성을 조금 더 관찰해보고 싶었기에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서로 동시에 발을 박차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서로의 위치가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남궁설아의 검이 순식간에 가속하며 휘둘러졌고, 유천하 또한 그 검을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휘잉-!!
그리고 유천하의 검은 ‘허공’을 스쳤다.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검로.
‘나쁘지 않군.’
조금 전 남궁설아는 속도의 완급을 역전시켜 감각을 교란시켰다. 최대의 빠르기로 휘둘러오다가 검이 마주하기 직전 스스로의 속도를 극도로 느려지게 제어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유천하의 검은 허공을 베어버렸고, 남궁설아의 검은 느릿하게나마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본디라면 위험한 판단이겠지만 지금만큼은 뛰어난 선택.
‘확실히··· 아까워.’
그렇기에 이 순간만큼은 유천하 또한 원작의 이하린이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건 분명 무례한 참견이겠지만,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이었다. 확실히 그녀의 특성은 쾌검에 국한되기엔 더 많은 길을 내포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기 아까울정도로 다양한 가능성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둔검은 아니었다.
분명 쾌검과 둔검 사이의 변곡점은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
뜬금없게도 이 순간, 유천하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환검幻劍은 아니다. 어울리지 않아.
중검重劍도 나쁘진 않지만 아니었다.
유流도 아니었다, 경輕도 부족했다.
그렇다면 쾌검과 둔검-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 줄 수 있고, 그녀의 검식에 어울릴만한 방향성은···
‘패검覇劍.’
순식간에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유천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이 상황에 이런 생각이나 하고있는게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던 탓이었다.
“······.”
그렇게 유천하가 다소 이상한 생각을 하고있던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느려진 세계 속에서 다시 한 번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다시 가속했다.
우웅-!
섬전처럼 뻗어지는 일격- 빈틈을 노리고 그어진 검격이었기에 유천하 또한 순식간에 잡념을 끊고 일념을 세워 대응했다.
유천하의 내면속에서 매듭이 풀어진다.
우우웅-!!
순식간에 5성까지 활성화된 천마신공의 내력이 패도적인 기세로 유천하의 몸을 내달렸고, 그 즉시 유천하와 그녀의 속도 격차는 반의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속도의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허나 속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유천하는 그렇게 판단했다.
카앙-!!! 동시에 도달한 검, 그렇게 서로의 검신이 맞부딪히면서 붉은 불씨를 피처럼 쏟아냈다.
카가가각-!!!
그리고.
천마신공 天魔神功
일천검결 一天劍結
제마검형 際魔劍形
우웅-!!
암뢰 暗雷
퀴잉-!! 남궁설아의 손에서 완전히 튕겨져 나간 검이 허공을 가르며 비산했다. 그에 당황한 그녀는 한 번 더 가속을 시도하려 했지만······.
유천하의 검은 또 다시 그녀의 목 앞에서 멈춰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첫 번째 대련보다 더 빨리 끝난 비무.
그 상황을 남궁설아가 인지했을 때는 이미 튕겨 나간 검이 그녀의 뒤로 떨어져 푹- 하고 꽂힌 뒤였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패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