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회랑 (2)
등천회랑에는 수많은 시설이 존재한다. 강의와 수련을 위한 시설뿐만이 아닌, 생도들을 위한 편의시설까지도 말이다.
당연히 그런 시설들에는 강의가 비는 시간마다 생도들이 몰려들었고, 마찬가지로 기원관에 마련된 테라스형 카페에는 올해에도 생도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지금 있는 이들은 주로 신입생도들이었는데,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생도들 대부분이 어딘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천하 걔는 도대체 어디 출신인 걸까? 진시우보다 쎄보이던데.”
“엿들어보니까 무련쪽도 전혀 모르던뎅? 근데 난 걔보단 진시우가 더 신기했어. 마력포화가··· 지가 무슨 드래곤도 아니고.”
“뭐··· 유천하는 이레귤러고, 진시우도 괜히 유망주 소리를 듣는 건 아니라는 거겠지.”
티나는 그리 대답하며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멍하니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는 붉게 물든 귓가가 드러나 있었다.
“애초에 아리엘만 봐도 알 수 있던 거잖아 그런 건? 우리 아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애들이라면 그 정돈 해줘야지.”
“그야 뭐 그렇긴 한데··· 솔직히 여태까진 유망주 랭킹이라해도 그냥 기관들 자존심 싸움이라 생각했었단 말이야? 근데 오늘 보니까 진시우 걔도 괜히 1위인건 아니었네.”
“맞아 맞아.”
“그걸 이제 깨달았어? 그나저나···”
티나는 아리엘을 바라보며 짗궃은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내 그녀의 귀로 손을 갖다 대고는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아리엘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
“우리의 유망주님께서는 어디에 그렇게 정신이 팔리신걸까?”
“······어?”
“아···! 혹시나 그분의 활약에 심장이 두근두근한 거야? 아니면 영상에서···”
“조용.”
우웅- 마력이 퍼져나가며 티나의 입을 옭아맸지만 티나는 그런 상태로도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목소리는 안 나왔기에 입 모양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녀의 입은 이렇게 움직였다.
‘터져··· 라?’
“···풉.”
하하-! 그 내용을 이해한 그녀의 친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고, 아리엘은 표정을 가다듬으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위로 상냥한 미소가 떠올랐다.
“으음··· 자꾸 그렇게 놀리면 나 화낸다?”
아름다운 얼굴로 나긋하게 읊조린 말이었지만 퍼져나오는 마력은 꽤 살벌했다.
하지만 이미 터진 웃음을 어쩌겠는가?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기괴하게 일그러졌고,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아리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게···. 오! 바로 풀렸네? 근데 미안하지만 참기가 힘든 걸?”
어느새 언령을 풀어낸 티나가 능글거리는 얼굴로 그렇게 말해왔다.
“우리 아가씨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까 말이야.”
“맞아! 그런 표정을 한 아리는 처음 봤어!”
“솔직히 너무 귀여웠다구.”
진심 밤, 농담 반으로 던져지는 친구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아리엘은 조금 전 수업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정말 그걸 그대로 녹화하는 건······.”
방금전 있었던 배치고사 영상 분석.
그 첫 번째 순서였던 유천하의 영상은 이래저래 41기 신입생도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다만 아리엘로서 안타까웠던 건 그 영상엔 그녀 자신도 출현했다는 점이었다.
-터져···
-쿠우웅-!!!
-···라?”
-콰아아앙-!!!
그렇게 생도들 앞에서 실시간으로 재생된 흑역사는 아리엘의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어 놓기에 충분했고, 그건 평소의 그녀에게선 정말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아리엘의 친구들은 아까부터 틈만 나면 그걸 언급하면서 그녀를 놀리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으로 생각하자. 다른 애들은 유천하한테 정신 팔려서 아리는 보지도 못했을걸?”
“맞아. 진시우도 완전히 묻혔던데? 유천하때문에 아리엘은 신경도 안 쓰였을 거얌.”
“음? 그것도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완전 무시당한 거잖아··· 저런!”
“······너희 아까부터 참 즐거워 보인다?”
계속되는 짗궃은 장난에 아리엘의 얼굴에도 조금씩 싸늘함이 감돌기 시작했지만, 이런 일로 멈추기엔 그녀들이 알고 지낸 시간이 참으로 길었을 뿐.
“그야 당연······ 근데 생각해봤는데 유천하 걔는 정체가 뭘까?”
“삑! 드리프트 점수 20점 드리겠습니다. 화제전환이 어색하군요. 분발하세용!”
“···아니 너 누구 편이야?”
“나? 재밌는 편!”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순간 아리엘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따름이었다.
***
-저기 유천하 지나간다.
-와··· 근데 저기 C반 아니야?
-쟤 이론은 C반 맞아.
-구라치네. 그게 말이 됨?
속닥거리는 소리를 흘려 들으며 나는 문을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수강하러 온 강의는 필수교양인 업의 이해. 이건 분반으로 운영되는 수업이었고, 이하린과는 시간표가 갈렸다.
혼자 수업을 듣는 거야 상관없었다만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뿐.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던 탓이었다.
배치고사에서 너무 날뛰었던 걸까?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긴 했지만 전 신입생 앞에서 영상으로 보여진 데다가, 필기시험 점수까지 대비돼서 소문이 더 빨리 퍼져나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
결과만 봐도 실기에서 조금만 틀어졌어도 바로 그레이라인으로 떨어졌을 점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실력은 확실히 뇌리에 각인되었는지, 대놓고 앞에서 말하거나 따로 시비를 거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수군거림이 묘하게 신경 쓰일 따름이었다.
‘아직은 대련 금지 기간이라 그런 건가···? 생각보다 관심이 과해.’
단순히 신기하다거나, 궁금해서 떠드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가끔 기묘한 내용이 들려올 때가 있었다.
무슨 천중무련이 키운 회심의 역작이니, 등천의 구도자에서 잠입시킨 특수요원이라느니, 그 정도의 우스갯소리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뇌에 갈 영양분까지 전부 단전으로 간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려올 때는 정말 심경이 복잡했을 따름이었다.
그 녀석의 얼굴은 일단 기억해두었다.
어쨌든, 그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느껴지는 기묘한 시선들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음?’
그런데 그 순간, 기감으로 상당히 특색있는 기척이 강의실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청량하고 맑은 기운, 그러면서도 꽤나 강렬한 느낌을 주는 마력. 그 이질적인 느낌에 나는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앞으로 5초, 아니 3초. 2초. 1···.
쾅-!!
문을 발로 걷어찬 걸까. 강의실 문이 열리며 세차게 울려 퍼진 굉음에 내부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을 걷어찬 장본인은 너무나도 당당히 안으로 들어왔다.
“어··· 여기가 C반 맞나?”
강의실 안으로 들어온 녹색머리의 소녀는 그대로 근처에 앉아있던 생도에게 다가갔다.
“야.”
“···어?”
“어. 그래 너. 업의 이해 C반. 여기 맞냐?”
“어··· 맞는데?”
“오키오키.”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서 당당함과 자신감이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강의실 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아? 뭘 보냐 니들?”
그러나 이어진 그녀의 반응에 모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나름대로 유명한 녀석인 걸까?
그중에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화들짝 놀라는 이들도 있었고, 어째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첫인상은 말괄량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뒤쪽으로 묶인 채 늘어져 있는 치렁치렁한 녹색의 머리는 얼굴에 깃든 환한 웃음과 어우러져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 넌 뭔데 눈 안돌리······ 어?”
기의 흐름 또한 꽤 독특했다.
끊임없이 파도가 들썩거리는 바닷가처럼 정련되지 않은 기운이 그녀의 내부를 활기차게 질주하고 있었다.
기세로만 판단하면 최소 유망주급.
그리 강한 건 아니었지만 생도들 기준으로는 꽤 대단한 수준으로 판단되었다.
원작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녀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 얼굴 위로 굉장히 즐거운 기색이 엿보였다.
“호오··· 뭐야 우리 실기 1등 씨네? 나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딱히.”
“······그으래?”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 또한 그런 그녀의 태도에 조금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실기점수 때문인지, 아니면 배치고사 영상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여태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피했었기에 이렇게 대놓고 다가오는 그녀의 반응이 꽤나 신기했던 것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라··· 그렇구나?”
쓸데없이 겁먹고 경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다가오는 게 서로 편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뭘 보는데 씹새야. 뒤지고 싶냐?”
“······.”
나는 조금 전의 생각을 빠르게 정정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싸움 좀 하는 건 알겠는데··· 어? 난 그런 거에 쫄 만큼 찌질이가 아니거덩? 응?”
“······어. 그래. 수고해라.”
나는 순간적으로 고민해보았고,
이내 깔끔하게 고개를 돌렸다.
“뭐야. 나 무시하냐?”
“······.”
“어쭈? 함 뜨까? 어?”
원래 외형과 성향은 일치하지 않는 법이라지만, 아무래도 이 녀석 생긴 거에 비해 상당히 양아치였다.
아이들의 시선이 어느새 다시 이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겠다는 느낌.
“저기요? 빵빵? 여보세요?”
순간, 의념으로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을까 싶긴 했다만 나는 그냥 내력을 일으켜 주변에 기의 방벽을 세우는 걸 선택했다.
소리가 차단된다.
“······! ···! ······!”
솔직히 말해서 이 녀석이 갑자기 왜 급발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상대하고 싶진 않았다.
대련도 금지된 마당에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성인도 안된 아이랑 말로 다투고 있어 봤자 내 기분만 더러워질 뿐이니 말이다.
애초에 이런 부류의 인간은 한번 제대로 목이 베여봐야 정신을 차리는데 이곳은 무림도 아니고 상대는 아직 성인도 안된 어린아이지 않은가?
얘는 무림에 안 태어난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따름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가 시작되었다.
교수가 들어오자 옆에서 뭐라 소리치던 녀석도 이내 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그게 하필이면 내 바로 뒷자리.
“······동안 만상세계의 업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해, 점차 깊은 이해까지 도달할 예정입니다.”
그래서일까? 뒤에서부터 뜨거운 시선과 함께 작게 구겨진 종이뭉치가 날아왔다. 구겨진 종이 사이로 삐뚤삐뚤한 글씨가 엿보였다.
나는 종이를 펼쳐보았다.
[너 이따 끝나고 보자.]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걸까······?
아까도 말했지만 이 녀석은 무림이 아닌 현대에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실기시험 영상을 봤을 텐데도 이러는 건 자신감이 과하거나, 자존심이 과하거나 둘 중 하나. 정말 법 없는 시대에 태어났으면 큰 초상을 치렀을 아이였다.
나는 그 쪽지를 뒤로 던져버리고는,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종이가 이마에 맞았는지 그녀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만 그냥 무시했다.
“우선 업이란 만상세계에 기록되는 총체적인 행적의 집합체를 일컫습니다. 말, 생각, 행동, 그리고 결과. 그 모든 걸 통해 저희는 만상세계에······”
지금 중요한 건 분수파악도 못 하는 녀석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이었다.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만 불필요한 오해를 달고 사는 건 바보 같은 짓.
‘4점 소리는 빠르게 없애는 게 맞겠지.’
어차피 만상세계와 업.
업륜과 가호, 특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해볼 필요성도 존재했다.
내 특성- 만상의 눈 또한 분명 더 발전시킬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역량과 이해가 그걸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의 연쇄는 무한하게 이어집니다. 선의는 결과로, 악의는 책임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곤 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만상세계는 나아가는 자에게 빛을 내린다는 점입니다.”
나아가는 자에게 빛을 내린다-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나는 교수의 말을 들으며 스크린 속에 띄어져 있는 글자를 읽어보았다.
세계에 닿은 이에게 특성을.
업적을 쌓은 이에게 업륜을.
인과를 얻은 이에게 가호를.
‘나쁘지 않아.’
천마신공은 분명 절세의 무학이었지만 사람의 몸으로는 시간을 극복할 수 없었다. 나와 검혈마제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고, 나와 그는 동등한 시간 속에서 살아왔다.
그렇게 출발점이 서로 달랐던 만큼 그 거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재능, 노력, 운 모두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내겐 재능도 노력도 존재했지만 그걸 쌓아갈 시간이 부족했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기회가 마음에 들었다.
“여러분이 확고한 의지와 신념을 지닌 채 앞으로 나아간다면 만상세계는 그걸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다채로운 형상으로 말이지요.”
본디라면 내게 주어진 길은 오직 한가지. 끝없이 무의 업을 쌓아나가는 것.
허나 이 세계는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오직 한가지 길만 예비되었을 미래는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부터 수많은 길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당장 내 손등 위에 박혀있는 업륜이야말로 그 갈라짐의 증거나 마찬가지.
“우선 업륜에 대해 먼저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업륜은 세계의 업이 구체화한 고밀도의 마력회로로서, 삼라만상을 이루는 순수한 에너지의 근원이 모여······”
그렇게 손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침 교수의 입에서 업륜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있자니 곧이어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므로 업륜은 일반적인 마력운용의 한계점을 넘어 다양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형상화되기도 합니다. 간단하게는 도구에서부터 어렵게는 일종의 특수 예장까지도 말입니다. 마력이 물질로 화하는 것이지요.”
마력을 물질로 구체화 시킬 수 있다고?
처음 듣는 소리에 나는 바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 즉시 업륜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우웅- 세계와 동조되는 순수한 마력이 느껴졌고, 내력으로 감춰뒀던 짙은 문양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업륜이 갖는 특이점 때문인데요. 업륜은 단순히 마력의 밀집한 게 아닌 형상화된 업의 구체점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분명 내 기억 속 업륜의 인상은 일종의 마력용 보조 배터리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난 업륜을 오로지 내력 회복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해왔다.
그런데 저 말을 들었더니 기억 속에서 누락되었던 세세한 설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만상세계, 그리고 업.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애초에 업과 마력은 다른 개념이었다.
업륜에 마력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저 마력일 뿐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확인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침 참고할만한 예시가 떠올랐다.
아리엘이 보여줬던 마력운용.
나는 그 즉시 업륜의 마력을 허공으로 투사해보았다. 그건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비록 마력의 흐름을 조작하는 것과 마력 자체를 형상화하는 건 다른 문제였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선 분명 참고할 부분이 많았다. 특히 마력을 빚어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업륜의 마력을 움직인다. 단순히 마력을 조작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업륜의 마력이 품고 있는 하나의 요소를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느낌으로-
우웅-!
부드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업륜에서 퍼져나온 마력은 기묘하게 휘몰아치며 허공 위에서 특정한 모습으로 조형되었다.
그렇게 허공 속에서 가시화된 형상.
[마ㅤㄹㅕㅋㅇ 형ㅤㅅㅏㅎㅎㅏ]
“······아.”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문자의 형상은 흐트러져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문자의 형상이 떠올랐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단순히 마력의 흐름이 뭉쳐진 게 아니라,
만상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육안에 보여지는 형태로서!
나는 눈앞에 떠 있는 문자에 손을 갖다 대 보았다. 그러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순간 파삭- 거리는 느낌과 함께 문자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기운의 물질화.’
나는 마력의 형상화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