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회랑 (1)
간밤에 이용했던 블랙라인의 시설은 나쁘지 않았다. 주변에 구비된 각종 편의시설과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던 70평의 주거공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등급이야 갈리긴 하겠지만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라는 증거 아니겠는가? 기본적인 생활여건이 낮을 리는 없었다.
‘생각보단 시설이 괜찮았어.’
그런 만큼 전반적인 시설 자체는 꽤나 잘 갖춰져 있었다. 물론 수련실이 생도 개개인별로 지급되었다는 것도 만족의 이유 중 하나였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교내 버스에서 내리니, 곧바로 상쾌한 아침 햇살이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첫날이라 교통편을 이용했다만 앞으로는 강의실 위치에 따라 직접 걸어 다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그때 손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동음.
나는 스마트 워치를 들여다보았다.
[이하린]
[강의실에 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엄청 많아요. 늦게 오시면 좋은 자리는 없을 것 같아요!]
“···되게 빨리 갔네.”
참고로 지금 시각은 오전 8시 20분.
첫 강의가 9시에 시작된다는 걸 감안하면 이하린은 상당히 일찍 가있는 셈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원작 인물들을 구경할 생각에 상당히 신이 난 게 아닐까?
[뒷자리도 괜찮으면 제가 자리 맡아 놓을게요···!]
[예. 감사합니다.]
원활한 친밀도를 위해 답장을 보낸 뒤 나는 오늘의 일정을 떠올려 보았다.
시간표상 오늘 들어야 할 강의는 2개.
필수전공, 필수교양이 각각 잡혀 있었다.
‘연령은 고등학생인데 방식은 대학교라.’
참고로 등천회랑의 교육방식은 학점이수를 기반으로 한 트랙제였다. 하지만 말만 트랙제일뿐이지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2개. 무투계와 초상계 트랙뿐이었고, 그나마도 서로 교차되는 수업이 상당히 많았다.
지금 내가 들으러 가는 강의 또한 전 학생 모두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전공수업이었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강의실에 가까워질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고, 그중에선 나를 알아보는 애들도 꽤 있는듯 싶었다.
-야야. 저기 쟤가 걔야.
-걔? 무슨 말이야?
-걔 있잖아. 실기 만점 받고 블랙 간 애.
-아 4점? 그래도 생긴 건 똘똘하게 생겼네.
······최소 다음 시험 기간까진 이런 소리를 계속 듣고 다녀야 되는 걸까.
학교생활이란 게 원래 가십거리가 쉽게 도는 편이긴 했다만 어째 기분이 썩 미묘했다.
그저 저들끼리 작게 속닥거리는 소리였고, 딱히 악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신경을 끄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어차피 내가 진짜 바보도 아니고, 다음 시험 기간만 지나도 쏙 들어갈 소리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기분이 이상했다.
전생과 환생을 거쳐서 한 집단의 수뇌부 역할까지 맡았던 마당에 이제는 다시 아이들 사이에 껴서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건 아리엘과 대화할 때도 느낀 부분이었다만, 오랜만에 느끼는 학기 초의 공기는 굉장히 낯선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불편하군.’
그렇게 아침부터 찾아온 기묘한 기분 속에 나는 강의실에 도착하였다.
1교시 수업은 신입생 전원이 같이 듣는 강의인 만큼 승천관에 위치한 대강당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척 봐도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강의실이었다.
[실전 전투 분석 개론 – 1]
문 앞에 붙여진 시간표를 확인한 나는 강의실 안으로 입장했다. 그러자 끼익- 소리와 함께 강의실 여기저기서 복작복작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그래서 한번 해봤는데······.
-아 정말? 그러면 나······.
-푸하하! 너 바보냐? 정말······.
아직 강의 시작까지 30분이나 남아있었지만 모두 부지런한 모양. 이하린의 말처럼 강의실은 이미 생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생의 학창시절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앉을 곳을 찾아보았다.
대략 5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함께 듣는 수업이었기에 강의실 내부는 상당히 넓었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았기에 빈자리가 한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저 계단식으로 쭈르륵 배치된 책상과 각 자리마다 놓여있는 종이와 펜이 보였을 뿐. 그렇게 잠시 강의실 내부를 훑어 보고 있자니 이내 익숙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고독하게 앉아있는 작중 작의 주인공 진시우라든가. 친구들이 하는 말을 웃으며 받아주고 있는 아리엘이라든가.
아니면-
저 멀리 보이는 이하린이라든가?
그녀는 나를 향해 양손을 흔들며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여기 자리 맡아놨어요!”
이하린이 앉아있는 자리는 꽤 뒷자리.
그것도 구석에 위치한 곳이었다.
일반적이라면 강의를 듣기에 그리 적합한 자리는 아니겠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걸어갔다. 교수의 눈길은 피할수록 좋다는 명제를 17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지금의 육체로는 100m 밖에서 수업을 듣는다 쳐도 문제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
그 와중에 나를 발견했는지 저 멀리에 있던 아리엘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마력의 문자를 날려 보냈지만, 나는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수업 열심히 들어 4점! (ノ▽〃)]
결코 기분이 나빠서는 아니었다.
그렇게 강의실 구석으로 다가갔더니 이하린이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네온다.
“좋은 아침이에요!”
“예. 좋은 아침입······ 니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인사를 건네기 위해 이하린을 제대로 쳐다보았더니 기묘한 감각이 내 눈에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즉시 만상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거 참.
“기숙사는 어떠셨나요. 괜찮았나요?”
“아! 네! 그레이라인 기숙사도 꽤 좋았어요! 화이트처럼 수영장은 없어도 있을 건 다 있더라고요.”
이하린은 시설이 정말 마음에 들었었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감상을 토해냈다. 그녀의 얼굴위론 해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긴 당연히 좋았을 것이다.
하루밤 사이에 내력이 5할은 더 늘어났는데 어떻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는가.
‘도대체 뭘 하고 온 거지?’
앞으로 종종 이럴 거라는 예상 정도야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마 입학한 지 하루 만에 기연을 주워 먹고 올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하린이 보유하고 있던 내력이 원래부터 그리 많지 않았던걸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준영약급의 귀물을 하나 먹고 온 모양.
나는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기숙사에 뭐 특별한 건 없었나요?”
“으음··· 트, 특별한 거요? 그런 건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동공이 잠시 수축했다 돌아온 걸로 봐서는 역시 그레이라인 기숙사에 무언가를 숨겨진 설정이 있었던 모양.
뭐, 사실 이하린이 강해지는 건 내 계획을 위해서도 좋은 현상이었고, 그녀 덕분에 에테리얼 크리스탈도 얻었던 만큼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저 쥐도 새도 모르게 숨겨진 설정을 활용하고 왔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
확실히 작가는 작가인 모양이었다.
“······그런 것보다! 천하씨는 오늘 시간표가 어떻게 되시나요?”
내 미묘한 시선에 이하린이 화제를 돌리려 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냥 속아 넘어 가주기로 했다.
조만간 진행될 메인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이하린은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
“안녕하십니까. 실전 전투 분석 개론 수업을 맡게 된 등천자 레이튼 하우버입니다.”
강의실의 맨 앞. 널찍한 강단에 올라선 남자가 입을 열자 낮은, 그러면서도 은은한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교수의 이름이 생각보다 유명했던 걸까?
생도들의 이목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레이튼 하우버···!
-하우버면 랭커 아니야?
-업적랭킹 1,124위!
-와··· 등천자···.
여기저기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교수- 레이튼 또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저는 현재 업적랭킹 1,124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천중무련 소속의 창월 클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떠들던 아이들이 순간 움찔했다.
싱그러운 표정과는 별개로 레이튼의 기세가 순식간에 그들을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꽤 날카롭네.’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아마도 저 사람- 레이튼 하우버 또한 큰 비중이 없었을 뿐 원작에 나오긴 했던 것 같았다. 다만 기억이 잘 안나는걸 보니 엑스트라에 가까운 인물이었나 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등천자는 등천자인만큼 생도들 처지에서는 압도적인 강자에 가까웠다.
그건 기세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부분.
기의 흐름, 기세의 분위기, 근육의 발달 정도를 보아하니 무공을 익힌 모양인데 단전에 꿈틀거리고 있는 내공의 양도 상당했다.
전체적인 호흡이나 기세, 내력을 고려해보면 아마 완숙을 넘어선 절정의 극의. 그곳에 발을 들이고 있는 게 아닐까?
‘저 정도면··· 이길 수 있겠네.’
그런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무력을 간파해보는 동안, 레이튼은 어느새 강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이번 1학기 동안 침식영역 수복전, 침식역류 방어전, 침식 공략전, 마인 토벌전, 타천자 제압작전 등의 각종 실전 영상을 관찰 및 분석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내용만으로는 꽤 기대되는 커리큘럼이었다. 나는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침식과 잿빛탑의 공략내용을 제대로 숙지할 필요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이유는 여러분께 최대한 많은 유사경험을 주입해드리기 위해서이며, 현장의 위험성과 판단의 중요성을 길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 레이튼이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왜 실제 경험이 아니냐 하면··· 간단합니다. 십수 년을 공들여 키운 인재가 한순간에 죽어버리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테니까요!”
그 쾌활한 어조와는 반대로 속에 담긴 내용은 꽤 살벌했기에 순간적으로 생도들 사이에 긴장감이 조금 내려앉았다.
“그러므로 저희는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싸우게 될 동료들에 대해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방금 들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했던 건지 생도들의 뒷모습에선 의아함이 느껴졌다.
그러자 레이튼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던 학생을 가리켰다.
“거기 앞자리에 앉아계신 분.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나요?”
“···서로 자기소개라도 하라는 건가요?”
첫 수업과 자기소개.
상당히 친숙하면서도 유치한 대답에 몇몇 생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레이튼 또한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예. 어찌 보면 자기소개라 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뭐··· 흑역사일 수도 있고요.”
그 말과 함께 레이튼은 단상 위에 있던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있던 벽면이 움직이며 거대한 스크린이 떠올랐다.
‘아. 맞네. 이게 있었지.’
화면 위로 떠오르는 수백 개의 동영상.
그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원작의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별거 아닌 내용이라 까먹고 있었다만 이 상황이 되니 얼추 기억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는 이게 무엇일 것 같나요?”
레이튼의 말에 아이들이 스크린 속의 영상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고,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어?”
“저거 설마···?”
“아, 잠깐만. 진짜로?”
그런 생도들의 반응에 레이튼은 짗궃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손뼉을 짝- 한번 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앞으로 한 달간- 1교시만큼은 여러분의 배치고사 영상을 분석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생도들에게서 경악어린 탄성이 터져나왔다. 물론 그건 내 옆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심경이 불편해 보이는 소리.
일부러 시험을 날림으로 치렀던 만큼, 이하린이 또한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튼은 하하- 웃으며 쾌활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공략을 시도할 때 제대로 파악해야 할 건 탑과 마수의 정보뿐만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같이 공략을 진행하는 동료!”
그는 생도들을 쭉 둘러보았다.
“사선 속에서 등을 맞대고 싸울 수 있는 아군의 능력과 기량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건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제각기 달랐다.
자신의 배치고사 때를 떠올렸는지 한숨을 내쉬는 아이부터, 보여주기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떨구는 아이, 그리고 친구랑 속닥거리며 커리큘럼을 욕 하는 아이까지.
내가 있는 곳은 뒷자리였기에 그런 아이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눈에 들어오고 있었고, 한창 예민할 나이인 만큼 나는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학기 첫날부터 그런걸 보여준다 하면 당연히 민망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활약한 아이들보단 아닌 아이들이 더 많았을 테니 말이다.
“자자! 여러분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서로의 전투 영상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분석하게 될 겁니다. 개개인이 500명의 생도 모두의 관찰 보고서를 작성할 때까지 말입니다.”
아참- 하우버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중간고사 성적은 각자가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반영될 예정이니 최대한! 열심히 관찰하고, 최대한! 열심히 써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아넣는 말에 여기저기서 탄성 어린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앞으로 2주 동안은 생도 간 대련이 금지되는 만큼 영상으로라도 서로의 실력에 대해 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바로 영상을 확인하도록 하지요.”
그 말과 함께 화면 속의 마우스 포인터가 동영상 무더기 위로 슥- 날아갔다.
그 광경에 아이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이런 경우는 보통 처음 걸리는 사람과 마지막 순서가 되는 사람이 가장 큰 관심을 받을게 뻔했기에 생도들은 스크린을 뚫어져라 노려보았지만, 나는 얼추 순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누가 첫 번째 타자가 되든 딱히 상관없었고 말이다.
“그럼 첫 번째는···”
마우스는 한 영상위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레이튼은 강의실을 훑어보았고, 이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당연히 만점자 영상부터 보는 게 좋겠지요? 자 유천하씨의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예상했던 말과 함께 내 배치고사 영상이 화면 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
강의실은 고요했다.
아니 정확히는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이 명확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서걱!!
그리고 그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
남궁설아 또한 눈앞에서 재생되고 있는 광경에 그저 숨을 죽인 채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는지 강의실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Krrr··· KRAAAAAAA!!
그렇게 침묵이 자리한 강의실 내부에는 녹음된 포효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화면 속에선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마수들을 베어나가는 남자의 모습만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무슨.”
그녀의 눈에 영상 하단부에 표시되어있는 토벌 스코어가 들어왔다.
[A급 3개체]
[B급 11개체]
[C급 18개체]
[D급 22개체]
[E급 48개체]
[F급 12개체]
[총 토벌 마수 114체]
최상위권에 위치한 그녀의 기록이 67체라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2배에 가까운 수치였고, 특히나 A급 개체만 해도 3개체나 된다는 게 어처구니없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기록!
도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걸까.
-와 시발··· 저게 사람이냐.
-쟤 저 정도면 여명급은 솔로잉 가능한 거 아니야? 돌았네 진짜.
-미쳤다. 진짜 개 미쳤어.
생도들 사이에서 넋이 나간듯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남궁설아 또한 그 내용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걱!!
영상 속 유천하는 A급 마수에게 도달하자마자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는.
일격- 그걸로 끝이었다.
반으로 쪼개지는 마수는 이내 거대한 마력의 파동으로 화해 터져나갔고, 마수에 다가가는 순간- 이미 소리와 함께 상황은 끝나있었다.
그야말로 섬전같은 일격.
그러나 남궁설아의 감각은 그 잠깐 사이에 검신에 맺혔다 사라진 칠흑의 검강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건 옆에서 멍하니 영상을 지켜보던 사카타 렌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그에 입에서도 감탄이 흘러나왔다.
“···기량이 실로 대단하군.”
“···그러네요.”
이 자리에서 저게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실제로 검강을 운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무인만이 그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천하가 펼치는 검강이 얼마나 제대로 된 검강인지를 말이다.
의념이 자아내는 별무리.
그건 같은 세계에 발을 들인 자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역이었으니까.
“초입은 확실히 벗어났어.”
“최소 완숙의 단계에요. 도대체 무슨···.”
천중무련의 유망주로서 절정의 초입에 이르렀던 둘은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고,
그렇기에 그들은 유천하의 검신에서 피어나는 흑색의 별무리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모두가 유천하의 전투에 넋이 나가 있는 강의실- 그 안에서 오로지 유일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쿠우웅-!!!
-···라?”
콰아아앙-!!!
-···이게 무슨?
“······.”
-프레스토! 빠르게!
-서걱!!
-쿠우우웅-!!
분명 그녀의 눈앞에서 재생되고 있는 영상은 유천하의 것이었지만, 왜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건 자신의 얼빠진 표정뿐인 걸까?
얼떨결에 같이 출현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리엘은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을 느꼈고, 그녀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왜 저렇게 쓸데없이 화질만 좋은 걸까···.
참담한 심경과 함께 아리엘의 머릿속엔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