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4)
실기시험과 필기시험.
두 번에 걸친 시험이 모두 끝이 났다.
생도들은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시설에 대해 안내를 받았는데, 기숙사의 외곽을 차례차례 지나칠 때마다 아이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다들 시험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느라 가슴이 두근거리는 모양.
그렇게 시설 안내까지 모두 종료된 뒤.
비로소 시험결과가 발표됐다.
그리고.
“······아.”
결과는 처참했다.
예상외로, 아니 예상대로.
[1위 진시우 1000 / 980]
[2위 아리엘 화이트 950 / 1000]
[3위 이솔라 프라엔 910 / 950]
[4위 사카타 렌 870 / 950]
[5위 남궁설아 930 / 850]
.
.
.
[199위 유천하 1000 / 4]
“······.”
“······어··· 천하씨?”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
차라리 수학이나 문학, 하다못해 무학이론 같은 게 시험주제였다면 어떻게든 풀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은 등천회랑이었고 시험 문제는 그야말로 외계의 영역.
······아니. 솔직히.
내가 이면세계 마력 동기화에 따른 분화현상 트리거값을 어떻게 알까.
각성자 특례법의 특수 위반사항 판례 같은 걸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마수의 수를 나열해놓고 그에 따른 침식농도를 마력량으로 역산하여 AC의 추정값이 어떻게 되느냐 물어봐도 나로서는 도저히 알 방도가 없었다.
“······저기요···?”
내가 제대로 적을 수 있었던 건 내 이름 석 자와 시험 일자뿐.
솔직히 답안을 훔쳐본다는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었다만,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고 문제의 대부분은 복잡한 서술형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2주 동안 배웠던 기초상식으로 하나라도 풀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
0점보다는 4점이 낫지 않겠는가?
뭐··· 거기서 거기긴 하겠지만.
그래. 그러니 이건 당연한 결과다.
내 이성은 깔끔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똑똑? 여보세요···?”
“······예.”
“······음. 괜찮아요···! 공부 좀 못한다고 공략자가 못 되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하지만 감성은 조금 달랐던 모양.
“······힘내세요! 힘!”
“······.”
게다가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실리적인 면에서도 기분이 썩 편치는 않았다.
-오! 화이트 컷! 나이스!!
-그레이 확정이네 시발.
-그레이? 올. 헌터유망주가 여기 있었네?
-아니··· 40마리나 죽였는데 왜 블랙이냐고.
참고로 등천회랑의 수업 선택권과 혜택은 생도들의 실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물론 제공되는 수업 자체는 같았지만, 편의적인 부분에서 꽤 차이를 보였다.
상위권의 화이트라인.
중위권의 블랙라인.
하위권의 그레이라인.
회랑에는 이렇게 3개의 등급이 존재했다.
당연히 상위권으로 갈수록 기숙사의 시설이나 회랑 내 활동에 있어서 이점이 많았고, 하위권으로 갈수록 신경 써야 할 제약이 많아졌다.
물론 수업을 열심히 들을 생각이라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이런저런 계획이 있었던 나로서는 당연히 상위권을 노리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블랙라인이 되었다.
예상대로 필기점수에 발목 잡힌 내 성적은 간신히 중위권에 턱걸이한 셈.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하기도 힘든 결과였다.
“그래도 블랙라인이면 시설도 되게 좋은 편이에요···! 여긴 등천회랑이니까요! 게다가 실기 만점도 받고··· 와! 대단하세요···!!”
그렇게 충격받은 것처럼 보였던 걸까?
이하린은 아까부터 옆에서 계속 열과 성을 다해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뭔가 억울한 기분 들었다.
“아니. 정말 괜찮습니다. 그냥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요? 그럼 다행이에요.”
“그것보다······”
[243위 이하린 300 / 600]
“······하린씨는 그레이라인인가요?”
“아··· 넵. 컨디션이 안좋더라구요··· 시험도 너무 어려웠어요. 그러니까 천하씨 정도면 정말 잘 하신 거에요! 실기만점!”
민망하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속을뻔했다.
어렵기는 무슨···.
이하린의 실력이면 실기시험에서 상위권 랭킹을 차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고, 애초에 그녀의 가호- 저작권리의 가호가 있는 이상 이하린이 저런 유형의 이론에서 틀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그 말은 즉.
“설마 시험 일부러 틀리신 건 아니죠?”
“······네, 넵? 에이~ 설마요···!”
역시 한번 찔러보니 바로 티가 난다.
나는 기억 속을 되짚어 보았다. 이하린이 일부러 시험을 망친 이유가 뭐였더라?
초반부의 일이었는 데다가, 그렇게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아서 그런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게다가 원작의 이하린은 바로 다음 학기에 화이트라인으로 등급을 올려버렸기에 그레이라인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 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뭔가 얻을 게 있어서 배치고사 성적을 저렇게 만들었던 것 같긴 한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대화 소리와 함께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 근데 블랙 라인 점수 컷 미쳤다.
-아니 그것보다 실기 만점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임? 쟤 아는 사람?
-실기 1000에 필기 4? 저게 뭐시냐 말로만 듣던 그거냐? 여포 메타? 힘숨찐말고 지숨찐이네.
“······아니.”
“···네?”
순간 미간이 꿈틀거렸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내 감각은 그 소리를 모두 차곡차곡 잡아채 귀로 밀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와 1000점에 4점···?
-근데 아니, 4점이 가능한 점수야? 일부러 안 푼 건가? 근데 왜 4점이래. 걍 0점 하지.
-근데 쟤 시험 때 검강도 썼다는 애 아님?
-아 얘가 걔야? 미쳤네··· 무력 지력 반비례 개쩐다 진짜.
아. 안 되겠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었다간 상당히 수치스러워 질 것 같은 기분에 나는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
“일단 학생증부터 발급받아야겠습니다.”
“···네? 아···! 저도 갈래요!”
그렇게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을 무시한 채 최대한 빠르게 발걸음을 놀렸다.
-건강하게 자란 친구네··· 그래 건강하면 된 거지 뭐. 튼튼한 게 좋은 거야.
-필기점수 뭐야···.
물론 자리에서 멀어지는 와중에도 내 감각은 또렷했을 뿐이었다.
***
등천회랑의 시설이용은 학생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기숙사, 수련시설, 식당 이용에서 기자재 대여처럼 사소한 것까지.
물론 분실했을 땐 별도의 인증을 통해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학생증을 통해 시설을 이용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학생증을 발급받기 위해 바로 학사지원팀에 방문했다.
‘사실 거기 있기 부담스러워서 온거긴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결과가 정해지자마자 미리 준비해놨는지, 즉석에서 사진만 한번 찍고서는 바로 학생증을 발급해주었다.
간략히 찍은 사진을 특수한 매개체에 투사해, 다시 마법을 통해 코팅처리를 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만상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긴 했다.
뭐, 그건 그렇고.
“으음······.”
“뭐가 잘못 나왔나요?”
이하린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까 학생증을 받아든 뒤부터 계속 자신의 학생증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이름이라도 잘못 나온 걸까?
“······으음···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
“뭔가 사진이 조금······.”
그 말에 나는 자연스레 이하린의 학생증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보려 하자 그녀는 화들짝 놀래며 재빠르게 학생증을 자신의 뒤로 숨겨버렸다.
물론 그 정도 속도로는 내 눈을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혹시 봤어요?”
“······.”
“······보셨네요.”
아니 뭐, 분명 보긴 했다만······.
나는 조금 의아했다.
“뭐가 문제인 건가요?”
“······사진이 조금 이상하게 나온 것 같지 않았나요?”
“···아.”
그런 이유.
분명 내 눈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평소의 그녀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무척이나 신뢰했다.
“평소랑 똑같······”
“······.”
하지만 평소와 똑같았다 말하려던 순간, 왠지 모르게 싸한 기분이 감각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바라보는 이하린의 표정은 평소처럼 해맑은 얼굴이었지만, 그 주위로 피어오르는 기묘한 느낌이 알싸한 감각을 선사한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내 느낌을 믿기로 결정했다.
“······이 찍히기는 힘든가 봅니다. 사진이란 게 원래 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겠죠?”
재빨리 말을 돌리자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신 알싸한 느낌이 가시자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모습이 쪼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키가 작았는데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으니 정말 작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죠. 뭐··· 신분증 사진이란 게 뭐···.”
분명 내 눈에 포착됐던 이하린의 사진은 평소의 모습과 똑같았다.
다소 소심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
평소 그녀의 모습 그대로 사진에 찍혀 있었지만 그녀는 그 사진이 마음에 안드는듯 했다.
‘원작에서는 이런 건 딱히 신경 안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이하린의 반응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원작 속 이하린은 딱히 외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다. 물론 소심한 건 마찬가지였다만···.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았던 원작의 그녀는 주변 시선 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각종 은폐된 설정을 주워 먹으러 돌아다녔었다.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신경 쓰는 걸까?
잠시 기억을 되짚어본 나는 이내 그러려니 했다. 이런 사소한 건 묘사할 필요가 없어서 생략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역시 학생증을 발급받으러 오는 건 우리만이 아니었던 걸까.
-헐. 진짜 너무해··· 그레이라고 진짜 회색으로 만들어줬어.
-블랙은 은근 마음에 드는데? 아, 이 정도면 솔직히 블랙 할만하다. 글치?
-네 다음 162위님.
-응~ 이백 따리.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어느새 학사지원팀이 생도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학생증은 회랑 생활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
그리고 그 중,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나는 언제나 사방을 향해 기감을 열어두는 편이었기에 그녀의 접근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안녕 애들아?”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 부드러운 음성에 나는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았고, 이하린 또한 얼굴에 의문을 띄운 채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하린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잠시 눈을 깜박거렸다.
“······아리엘?”
“응? 알고 있었구나? 너는···?”
“아···! 이하린이라고 해요!!”
학생증 때문에 시무룩했던 게 거짓말인 거처럼 그녀의 얼굴에 순식간에 활기가 되살아났다.
“······우와.”
“······어. 익숙한 반응이긴 한데··· 그것보다 인사는 안 받아주는 거야? 그리고 이왕이면 말도 편하게 해줄래?”
우웅-
“······어? 아, 안녕···!”
“반가워 하린아. 그리고···”
이하린에게서 시선을 돌린 아리엘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바다같은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비쳤다.
전투 중에는 신경을 안 써서 몰랐다만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전형적인 미인의 상이라 해야 할까? 확실히 원작의 묘사되던 분위기와 흡사했다.
“······너는? 인사 안 받아줄 거야···?”
“······안녕.”
“드디어 받아주네. 반가워!”
“그래.”
······그나저나, 뜬금없게도 나는 이 순간이 굉장히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까진 별생각이 없었다만, 막상 학교에 입학해 평범하게 또래의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굉장히 낯선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간 이하린하고 대화할 때는 이렇게 어색하진 않았는데, 뭔가 그녀와의 관계는 공적인 사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너는 이름이 뭐야?”
“······유천하.”
생각해보면 신교에서 살아온 시간은 충분히 길었고, 그간 소교주로서의 의무만을 수행해왔던지라 이 상황이 낯간지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미묘한 기분에 잠시 당황하고 있자니, 이내 아리엘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으음··· 역시 너희 둘이 등천에서 온 애들이지?”
“네···! 둘 다 추천입학으로 들어왔어요.”
“······확실히 그럴 만 하네.”
“···네?”
그건 다소 뜬금없게 들리는 말이었기에 이하린은 아리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듯싶었다.
역시 아직은 기본기가 부족한 건가.
이 세계에 빙의 한지 2년 만에 저 정도로 성장한 것도 분명 대단한 일이었지만, 역시 이하린에겐 아직 세세한 부분이 부족했다.
나는 어색함도 털어낼 겸,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방금 말 편하게 하라고 한 거 언령으로 말한 거였을 거에요. 마력이 흘러나왔거든요.”
“······아! 정말요?!”
“맞아. 근데 이렇게 바로 풀릴 줄 몰랐어. 게다가 이렇게 바로 들킬 줄도 몰랐고···?”
다시 아리엘과 시선이 마주친다.
그녀의 눈빛 속엔 흥미가 서려 있었다.
“둘 다 대단하네.”
“······.”
순간 배치고사 때의 일이 떠올랐지만 나는 담담하게 그녀의 시선을 받아넘겼다.
“천하라 했지? 너··· 아까도 내가 언령 쓸 때마다 계속 눈치챘던 거 맞지? 입학식 중에 말이야.”
“···맞아.”
“어떻게 눈치챈 거야?”
“내가 감각이 조금 예민해서···?”
평소의 기감도 예민했다만 특히나 시각으로 파악되는 기감은 상당히 예리했다.
내 눈은 특성이 개화하기 이전에도 기의 흐름 정도는 투시할 수 있었고, 하물며 이제는 ‘만상의 눈’으로 개화까지 해버렸다.
그래서일까?
마법의 구동방식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리엘이 언령을 사용하는 순간마다, 그녀의 말과 의지가 세계와 동조되는 게 내 눈에는 확연히 들어왔던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아리엘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민하다라······ 얼마나 예민한데?”
그녀를 중심으로 마력이 퍼져 나온다.
허공에서 미세하게 조율되는 마력의 파문.
부드럽게 몰아친 마력은 은밀하게 기척을 감추며 바람처럼 살랑거렸다.
하지만 내 감각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혹시 지금도 느껴져?”
“어.”
“지금은?”
“느껴져.”
“그럼 지금은···?”
“우측 어깨 위에 마력의 소용돌이.”
“······대단하네.”
“······두 분 뭐 하세요?”
이 정도는 만상의 눈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절정의 경지를 도박으로 따낸 것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는 단순한 기감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리엘에게는 그리 당연한 일이 아니었는지 그녀의 얼굴 위로 미세하게 장난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이번에는 어때?”
“음?”
“맞춰봐.”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조금 놀라운 기분을 느꼈다.
마법사라서 그런 걸까?
저런 식으로 마력을 운용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외부의 마력을 다루는 게 상당히 능숙하게 느껴졌다. 무인과는 운용방식 자체가 다른 느낌.
다만 그 내용은 거슬렸기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경쟁은 공정했어.”
“···와! 천하 너 진짜 신기하구나?”
방금 아리엘은 마력을 세밀하게 방사해 문자의 형상을 조형했었다. 아마도 내 기감을 시험해보려는 목적이었을 테지.
방금 전 떠오른 마력문자는···.
[덕분에 2위 했잖아!]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아리엘이 직조해낸 마력은 그런 형상으로 허공에 떠 있었다.
물론 어떠한 이능이 발현된 마력이 아닌, 순수한 대기 중의 마력 그 자체였기에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 눈은 예외의 경우였다.
그나저나···.
역시 아까의 일을 마음에 담아둔 걸까?
기분이 조금 찝찝했다.
“아까는 그냥 내가 먼저 잡았을 뿐이야.”
“그것보다 한 번만 더!”
그러나 아리엘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마력을 감지해내는 게 신기한 모양.
아리엘이 다시 한 번 마력을 조율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미세하게 마력이 퍼져나갔다. 마력은 대기의 기운과 동화되어 허공 위로 자연스럽게 음각하듯 문자를 새겨넣었다.
그녀의 마력제어 실력은 분명 상당했다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그 내용이 선명하게 들어왔을 따름이다.
······근데 내용이 왜 이래.
[(*’▽’)ノ^—==ΞΞΞ☆]
“어때? 이번에는 못 맞추겠지?”
“······아니. 이게 뭔데.”
“왜 모르겠어?”
그 순간 마력의 형상이 꿈틀거렸다.
[(ノ≧∀≦)ノ・·····━━━★]
“아니. 이걸 무슨······.”
내가 벙찐 표정을 짓고 있자니 이내 나를 지켜보고 있던 아리엘이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은밀하게 수 놓였던 마력의 형상이 그대로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하하··· 미안 미안. 장난이야.”
“······아까부터 뭐 하는 거예요 두 분?”
방금의 대화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던건지 이하린이 다소 소외된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거렸다. 아직 이런 걸 파악할 만큼 기감이 세밀하진 못했던 탓이었다.
그런 이하린의 표정을 바라본 아리엘은 순간 미안했는지 이하린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 그냥 아까 시험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어서 잠깐 장난을 좀 치고 있었어.”
“속상한 일이요?”
“······배치고사 때 저희 둘이 A급 개체를 두고 경쟁했었거든요.”
“그런데 순식간에 2마리나 뺏겨버렸지 뭐야. 한 마리만 양보해주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1위였을 텐데··· 정말!”
그 말 이하린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세상에··· 어쩐지 실기 만점이더라니 그 잠깐 사이에 A급을 2마리나 잡고 다니신 거에요? 10마리밖에 안 나온걸? 그 넓은곳에 퍼져있는 걸 도대체 어떻게?”
그녀의 반응에 아리엘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뒤늦게 알고 보니 2마리가 아니라 3마리였다네?”
“······3마리!”
“이미 알만한 애들은 다 알고 있을걸? 지력에 찍을 스탯을 무력에 올빵한 근육바보가 있다고.”
“···뭐?”
순간적으로 심기가 불편해지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아리엘을 신경 쓰느라 몰랐는데 주변 아이들 모두 어느새 이곳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시선 중에서 아리엘을 보는 이들이 대략 3할 정도라면, 나머지 7할의 시선은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
“나도 그 소리 듣고 찾아와본 거야. 진시우가 2마리로 만점 받았으니 한 마리만 양보했으면 너도나도 만점이었겠다 싶었거든···.”
“······.”
“그래서 억울함 반 궁금한 반으로 장난치러 온 거였는데······ 혹시 기분 나빴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녀가 장난친 건 별로 상관없었다.
그녀가 들고온 소문이 심히 거슬렸을 뿐.
“정말? 그럼 다행이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엘은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부실 만큼 해맑은 미소였다.
“그럼 이걸로 끝! 다음에는 투정 안 부릴 거야. 꼭 실력으로 이길 거니까!”
“···그래.”
“그럼 이만 가볼게. 나중에 수업에서 봐!”
아무래도 진짜 장난만 치러 왔던 모양.
“하린이도 다음부터는 말 편하게 해줘.”
“···어? 아. 네. 아, 응!”
“그럼 둘 다 안녕.”
“다음에 봐요···!”
그렇게 인사를 한 아리엘이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이하린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감상하듯 바라보고 있었고,
내 눈에는 다른 게 들어왔을 뿐이었다.
허공에서 조형되는 마력의 형상.
[앞으로는 공부도 좀 해. 바보야 : b ]
······이론을 공부하긴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