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16화 (16/205)

입학식 (2)

-앞에 봐.

먼 곳에서부터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

그곳에는 마력의 파장이 실려 있었다.

이런 곳에서 잘도 마법을 쓰는구나- 만상의 눈으로 마력의 잔흔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언령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 다르게 보였던 걸까? 옆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이하린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아까부터 저쪽이 신경 쓰이시나 봐요?”

“아. 마력이 느껴져서 잠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걸 언령이라 하나요? 말을 통해 마법을 사용하는 게 신기하군요.”

“언령···? 아! 언령의 아리엘!”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나저나 아리엘이라- 익숙한 이름이었다. 역시 내가 보고있던 사람은 원작의 주연이 맞았나보다. 하긴 저 정도 마력량에 언령을 사용한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머릿속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그녀의 반응에 적당히 말을 맞춰주었다.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요?”

“네! 엄청 유명해요! 유망주 랭킹은 2위. 거기에 기원학회 산하의 아르피아 중립학원에서 3년 연속 수석 1위까지! 정말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렇군요.”

“게다가 예전부터 천재라고 소문나서 기원학회에서는 벌써 차세대 승천자로 점찍었을 정도에요!”

“···대단하네요.”

“그쵸? 성격도 상냥하고 뭐든지 완벽한 모범생이라는 설, 아니 소문이 자자한 분이세요···! 그리고 그리고 또······”

“······.”

자신이 써낸 이야기가 그렇게 좋은 걸까?

원작의 주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하린의 목소리가 빠르게 커져갔다.

애초에 이하린은 원작에서도 저런 성격이긴 했다. 그녀는 설정을 이야기하는 걸, 원작의 인물들과 이야기 하는걸 좋아했기에- 그런만큼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심연과 맞서 싸웠다는 묘사가 원작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발과 따뜻하게 가라앉은 에메랄드빛 눈동자. 그야말로 우아한 아가씨의 표상···!”

“······아. 예.”

뭐, 조금 과하다 싶기는 했지만 기뻐 보이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만 이하린의 텐션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주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기에 나는 혹시나 싶어 주변에 기를 퍼트렸다.

‘이상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발동이 걸린 이하린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체질도 마력친화 체질에, 언령에 특화된 특성,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루타텔씨가 심혈을 다해 교육해서 이미 그 수준은······”

그나저나 이제껏 본 그녀의 모습 중 지금이 가장 신나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등천회랑에 입학하게 돼서 기분이 들뜬 탓도 있는듯싶었다.

물론 나도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써내려간 이야기가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하물며 지금은 암울한 후반부도 아니었고, 이제야 원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독자였던 나도 꽤 흥미로운 순간인데 작가였던 그녀야 당연히 두근거릴 것이다.

‘그래. 행복하면 된 거지.’

그녀 역시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만큼 나로서도 조금 더 장단을 맞춰줘도 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좋아할 만한 얘기를 꺼내보았다.

예를 들면···.

“혹시 올해 입학생 중에 그녀 말고도 유명한 사람들이 있나요? 조금 궁금해지네요.”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건넨 말이었지만,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네? 여기는 등천회랑인데요······?”

“음··· 예?”

“이번 기수가 다들 얼마나 유명한데요!! 안그래도 올해는 기적의 세대라 불릴 정도로 천재들만 모여있어서 하나하나 다 말하려면 정말···!”

아무래도 스위치를 제대로 건드린 모양.

“진시우, 아리엘, 이솔라, 남궁설아, 리베르테, 사카타 렌, 마르네 아일리시, 티나 아라하, 아델 딜런, 또······”

“······아.”

내가 이하린을 조금 얕본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그녀의 말을 환기시켰다.

“잠시만요.”

“······이서··· 네?”

“특별히 유명한 분들은 없나요? 방금 말씀하신 아리엘 처럼요.”

“아···. 아리엘 씨처럼요? 으으음···.”

내 말에 이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원작의 주연- 추후 이하린의 동료가 될 사람들이라면 나도 얼추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 자세히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대충 누가 동료가 되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실제의 외형같은건 당연히 모르고 있었기에 이참에 얼굴이나 미리 기억해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기원에 아리엘이라면, 무련에는 남궁설아, 협회에는 이솔라, 그리고 연맹의 진시우는 되어야 비슷할 거에요. 저기, 저기, 그리고 저~기! 있는 분들이에요.”

“그렇군요.”

그녀가 조심스레 몇 군데를 가리켰고, 그곳을 보니 누가 원작의 주연인물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소설 속 외형묘사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각 무리별로 다른 이들보다 더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한두 명씩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의 옆모습을 기억해 두었다.

‘주연들은 대부분 이곳에 있는 셈인가.’

사실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이하린 하나뿐이었지만 막상 이 자리에 오게 되니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원작의 주요인물들은 얼마나 강할까?

조금 유치하지만 그런 관심이 생겨났다. 생각해보면 주연들이라 해도 아직은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한 생도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저 추후 메인에피소드들에선 그들도 같이 사건에 엮이게 될 거라 생각하니 조금씩 흥미가 동하는 것이었다.

“저분들은 그럼···”

삐이이익-!!!

그 순간 날카로운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지지직- 마이크에서 터져 나온 접촉 불량음에 멍하니 있던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단상 위를 쳐다보았다.

-뭐, 뭐야.

-아씨 깜짝이야.

-존나 귀아프네.

갑작스런 소음이었기에 나 또한 이하린에게 말하려던 걸 멈추고 자연스레 단상을 응시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마이크 상태가 영 안 좋군요. 설치가 제대로 안 된 모양입니다.]

무척이나 천연덕스러운 말.

[그럼 다시, 앞서 말했듯이 침식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사태입니다.]

하지만 감각을 간지럽히는 기이한 느낌에 나는 자연스레 이하린에게 눈길을 돌렸고, 이하린 또한 살며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방금.”

“······네.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방금의 파열음은 일부러 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저런 소음을 터트린 걸까? 짐작가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연설자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기에 인류는 언제나 대비해왔고, 이곳. 등천회랑 또한 그 대비의 일환일 뿐입니다.]

담담하게 이어지는 연설에 대부분의 생도들은 다시 정신줄을 놓기 시작했지만, 나는 자연스레 주변의 분위기를 읽어들였다.

그와 동시에 몇몇 생도들도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연설에 집중하기 시작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침식은 불시의 방문객입니다! 공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저희는 언제나 한가지 선택을 강요받아왔습니다.]

주변의 기운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다 침식에 잡아먹히느냐,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 그림자를 부수느냐.]

허나 그 과정은 은밀하게 이루어졌고, 생도들의 대부분은 이 낌새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레 터져 나온 고함.

[우리는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침식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이란 걸 말입니다-!!]

점차 높아지는 언성.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언제든-!! 침식에 대비해야 할 것이고, 언제든-!! 공략의 준비가 돼 있으셔야 할 겁니다!!]

짙어지는 대기의 농도.

이곳은 단상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만 장난스레 미소 짓고 있는 연설자의 표정만큼은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표정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슬슬 시작하겠구나.’

나는 이하린을 쳐다보았고, 이하린 또한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설자의 태도가 태도였던만큼, 지루함에 정신줄을 풀어놓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조금씩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연설자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고, 열띤 목소리를 토해내던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점점 사그라들었다.

조금씩 주변에 내려앉는 기이한 공기.

[그러므로.]

그렇게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속삭이듯이-

[지금부터······]

그리고.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말.

[배치고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순간, 마력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

쿠구구구구구구-!!!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나는 태연하게 그 바람을 흘려보냈다.

“이러려고 입학식을 탑에서 시행했군요.”

역시나- 곳곳에서 조금씩 뭉쳐지는 마력의 흐름은 꽤나 익숙한 형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뭐야 갑자기.

-배치고사? 시발 아니 왜 지금?

-리나! 준비해!

뭉쳐진 마력이 꿈틀거리며 점차 흐릿한 회색빛을 머금었다. 그림자 마수들처럼 온전한 칠흑빛은 아니었지만 탁한 빛의 마력은 조금씩 형상을 갖춰나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이하린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렇네요. 그래도 익숙한 느낌이지 않나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 1항. 침식역류. 대상등급 여명.]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우리는 이미 완전히 임전 태세를 갖춘 상태.

“시험인 만큼 알아서 행동하겠습니다.”

“네.”

이하린의 표정은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았고, 나 또한 잠들어있던 내력을 서서히 일깨우기 시작했다.

[제 2항. 2021년 3월 2일 14시 28분.]

꾸루룩- 꾸룩- 기괴한 소리를 내며 형상을 갖춰나가는 마수들.

[제 3항. 주관 등천회랑 41기.]

자그마한 손으로 검을 휘어잡은 채, 이하린은 마지막으로 내게 조금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제가 신경 쓸 입장은 아니겠지만 조심하세요. 이건 허상이 아닐 테니까요.”

“예. 하린씨도 조심하세요.”

그 말과 함께 이하린은 내게 손등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어 보이고는 이내 손등을 가볍게 맞대었다.

교차하는 서로의 손.

그리고.

[제 4항. 수호자등급 여명. 수호자 미구현. A급 부정형 10개체로 대체.]

[이상 상황전달 종료.]

툭.

[시험 시작해라 애송이들아-!!!]

그 순간, 나는 발을 박찼다.

그렇게 이하린을 뒤로한 채 곳곳에 솟아난 마수들을 향해 나는 신형을 쏘아 보냈다.

-KRRRrrrruk···!

몇 번이나 들었다고 이런 건지- 벌써부터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를 흘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혈도를 내달린 내공이 온몸에 스며들어 근육을 팽창시킨다. 마수들 사이로 뛰어든 나는 단숨에 검을 그어버렸다.

순식간에 허공을 가로지르는 궤적.

서걱-!

‘역시 나쁘지 않아.’

2주 만이라 그런 걸까?

순례자의 길 이후 육체 정비에만 몰두했더니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이 꽤나 달갑게 느껴졌다.

-Chuuurkkkk···!!

-TAAAAhaacaaa!···!

그렇게 한순간에 마수를 베어버렸더니, 주변에 있던 마수들의 시선이 일순간 내게로 쏠렸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덮쳐오는 잿빛의 무리.

이것 또한 익숙한 느낌.

심상의 매듭이 한 가닥 풀어져 나왔다.

우우웅-!

“···하하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2주 동안 충분히 적응했다 생각했건만 역시 이 느낌은 몇 번을 경험해도 질리지 않는다.

겨우 1성의 내력이었건만 내면에서 파도가 몰아치는 기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내력은 내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쾌감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검을 휘두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KRRRAAAAAHH···!!!

-Kaaaaahaaaooo!!!!

천마신공 天魔神功

일천검결 一天劍結

제마검형 際魔劍形

퀴이이잉!!

쾌 快, 그리고 환 幻.

두 가지 묘리가 담긴 검로는 빛살처럼 마수들을 가르고 지나갔다.

‘소혼난무 消魂亂舞’

그렇게 서걱- 검극이 멈춘 순간.

달려오던 마수들이 한순간에 그림자로 화해 터져나갔다.

펑! 퍼펑! 펑!! 퍼-엉!!

다만 진짜 그림자 마수는 아니어서 그런지 마수를 잡았다고 따로 기운이 흘러들어오진 않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어···? 뭐야 방금?”

“와씨. 뭐야 저거?!”

“한 방에 몇 마리를···!”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신위에 놀라는 듯한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나는 그들의 태도에 더 신기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순례자의 길 때랑 비교하면 천지 차이군.’

역시 등천회랑 입학생 정도면 수준이 다르긴 한 모양. 마수들의 수는 그때보다 더 많았는데도 생도들에겐 여유가 넘쳐 흘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생도는 별다른 소란 없이 마수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전위는 내가! 백업 한 명 붙어!

-거기 학회! 원소 좀 붙여줘 봐!!

-야야!! 무련에 탱킹 해줄 새끼없냐?! 좀 이리 와봐!!

전체적인 마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기에 그런 거였지만 그렇다 한들 확실히 마수와 싸우는 상황 자체가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물론.

푸화아앙-!!

-Kiddd··· KIDDAAAA!!

“꺄아아악!!”

시험인 이상 난이도가 그렇게 여유롭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클로이!! 괜찮아?!”

“윽···! 저거 부정형이야!!”

“아씨, 입학식이라 센서 안 들고왔는데···.”

슉-! 쿠우웅!!

마수를 쳐내던 생도가 한 손에 들린 철퇴를 휘둘러 쾅-! 마수를 짓이겼지만, 그 몸은 한순간에 재생하며 역으로 공격한 생도를 세차게 들이박았다. 그러자 한순간에 밀려나가는 전위.

카드득-!

-KDDDDDDDD!!

“큭! 아씨 재생!!”

“라이트닝 볼트!!”

치직- 콰지직!!

-KRRRRDDAADA!!!!

다행히 동료가 있었기에 치명상은 피했지만 그들로선 저 마수를 상대하는 게 꽤 번거로워 보였다. 부정형의 핵을 찾는 데 난항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누구 범위기 없냐?”

“마법 술식 짤 시간 좀 벌어줘 봐!!”

“아! 입학식만 하는 줄 알고 탐지구 두고왔단 말이야!!”

“아씨!! 헌터같은 새끼들아!!”

-KRRRRrrrdddd···!!

나는 잠시 고민됐으나, 이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였다.

저번부터 느낀 부분이었지만 나처럼 관찰계 특성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 이상 대부분은 마수의 핵을 파악하는걸 어려워 하는듯 싶었다.

그리고 그건,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재생되는 부정형 마수를 상대할 때는 꽤 번거로운 제약으로 다가올 테고 말이다.

‘설마 끼어들었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

결정한 이상 행동은 곧바로 이어졌다.

호흡이 가라앉는다.

내 눈이 마수를 직시함과 동시에 세계와 동조한다. 만상의 흐름이 그 눈에 담겨왔고.

그 순간, 내 발은 지면을 강타했다.

-KRRRRRRRRRRDDDDDDDDDDD······

한순간에 코앞으로 다가온 마수의 형상.

원래의 눈으로도 마수의 핵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관찰할 시간이 필요할 뿐.

하지만 내 눈이 ‘만상의 눈’으로 개화한 지금- 내 눈은 이전까지와는 수준이 다른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내 눈은 기운의 흐름을 느끼고, 상대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는 것을 넘어.

만상을 직시하는 눈.

그 자체.

“······.”

그렇기에 핵을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한 순간이면 충분했다.

일천검결 一天劍結

제마검형 際魔劍形

암뢰 暗雷

큉!!

벼락처럼 허공을 뚫고 지나간 검극이 그대로 서걱-! 마수의 핵을 쪼개었고.

파각! 화륵!

그렇게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뛰쳐나간 발이 땅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그리고 마수를 상대하던 아이들이 내 움직임을 파악하기도 전에-

마수의 형상이 허공으로 터져나갔다.

콰-앙!!!!

그 순간 툭- 내 발이 바닥에 맞닿음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주변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 어?!”

“······?”

“······미친?”

시험인 만큼 여유 부릴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넋 나간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다시금 발을 박찼다.

“······뭐, 뭐야?!”

“머, 뭔진 모르지만 땡큐!”

“부정형 스킵··· 개꿀!!”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를 흘려보내며, 나는 그대로 내게 달려드는 마수를 베어념겼다.

서걱-!

그렇게 마수들을 베어넘기며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상과 동조된 눈이 순식간에 전장을 관통해 목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몸풀기는 충분해.’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은 배치고사. 생도들의 수준을 가늠하고 알맞은 수업과 혜택을 부여하기 위한 실기시험이었고, 나는 그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다.

아마도 학교측은 백색탑의 기능을 빌려 우리들의 모습을 녹화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실시간으로 채점을 진행하는 중이던가.

나는 단상 위에서 즐겁다는 듯 웃고 있는 연설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수호자급 마수, 아니 수호자급 개체를 대신하는 용도로 뿌려진 A급 마수를 찾아보았다. 그러자 슬슬 형상화되가고 있는 A급 마수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나가며 생각했다.

‘목표는 역시······ 뭐. 고민할 것도 없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무슨 소설 속 주인공들 마냥 힘을 숨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한다고 이득이 될만한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개인적인 기호는 둘째치고서라도 그런 이유였다.

차라리 조심해야 할 적이 있다거나, 모든 전력을 다 드러내야 하는 거라면 또 모르겠다만 이 경우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마 전력의 반만 내보여도 그럭저럭 높은 점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애초에 이곳은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혜택이 늘어나는 곳이었고, 앞으로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상위권이 되는 게 이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기시험에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등천회랑의 시험은 필기와 실기.

두 시험을 모두 합산해서 결과가 채점되는방식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실기에서 최대한 점수를 벌어야 했다.

왜냐하면.

“······쯧.”

필기시험에서는 꼴등을 할 게 뻔했으니까.

그저 그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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