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이 빙의를 숨김-7화 (7/205)

소설 속 주인공 (4)

“······해서 저는 타계하신 사부님의 유지를 받들어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아니 이 세계의 ‘유천하’는 일인 전승 신비 문파의 후계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비처에서 무공만 수련하다 처음으로 사회에 나오게 된 어리숙한 무인.

그게 내가 지어낸 배경이었다.

“······그러셨군요.”

그리고 그녀는 내 말을 쉽게 받아들였다.

원작에서 묘사된 내용에 따르면 이 세계는 심각한 재앙을 겪는 중이었고, 1세기 가까이 계속된 ‘침식’이란 현상은 이미 인류영토의 2할을 갉아먹은 상태.

그렇기에 원작의 설정에서도, 실제의 현실에서도 나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쯤은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아까 전 검색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이하린은 ‘원작’을 집필한 빙의자였던 만큼 이런 기반 설정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계산속에 지어낸 과거였다.

“그러면 하필 처음 사회에 나온 날 침식역류에 휘말리셨던 거네요?”

“예. 갑작스럽긴 했지만 마수와 싸우기 위해 단련한 무예였던 만큼 본능적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조금 무리하긴 했지만요.”

“······그러셨구나.”

조금 표정이 씁쓸해 보이긴 했지만 이하린은 내 말을 납득한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의심받는 것만 아니라면 상관은 없었다.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고 내게 질문을 건네왔다.

“······그러면 지금 천하씨는 소속이 아예 없으시다는 말씀이시네요?”

“예. 스승님은 이미 타계하셨고, 소속이라고 할 만한 건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살며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는 내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네왔다.

그건 내가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후원을 받아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후원 말입니까···?”

겉으로야 반응이야 얼떨떨한 척 대답했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부분.

“네! 후원이요···! 아, 후원이라 해도 부담스럽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공략에 필요한 장비나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것뿐이에요.”

“후원을 누가 해주신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이유는 도대체 왜?”

물론 그걸 티 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자 이하린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소속된 단체 ‘등천의 구도자’에 대해서, 그리고 후원을 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

그 이유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원의 목적은 공략자 양성이라는 말이군요. 따로 이행해야 할 점은 없고 공략에 참여할 때만 보고 하면 되는 거라 나쁘지는 않네요.”

“그렇죠? 강제적으로 묶이는 의무도 없고 일종의 자선사업에 가까운 일이에요···!”

“자선사업이라··· 확실히 그런 느낌입니다.”

내 반응이 나쁘지 않아 보이자 이하린의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이건 원작에서도 묘사된 부분.

등천의 구도자는 다른 기관들과는 조금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된 기관으로, 그들은 근본적으로 인류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에 가까웠다.

이하린이 소속된 곳이었던 만큼 그들은 작중에서도 주구장창 등장했었고, 이하린과 등천의 구도자가 인재를 발견했을 때 어떤 제안을 건네는지 정도는 꽤 여러 번 묘사됐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상황을 예상하였고.

“아. 그러고 보니 기억났습니다.”

“···?”

그걸 이용해 ‘등천회랑’에 입학할 계획을 세워놨을 따름이었다.

“마침 스승님께서도 등천의 구도자에 대해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야 기억나는군요.”

“아! 정말요?”

“예. 나중에 공략자로 활동하고 싶다면 천중무련에 들어가든지, 그곳에 들어가든지 하라고 하셨었습니다.”

“아하···.”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이하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등천의 구도자란 단체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물론 원작에서 묘사된 내용만 봐도 충분히 그럴만한 단체였고, 나는 그런 등천의 구도자의 성향에 편승할 생각이었다.

“아. 그렇다면 혹시 제안 하나만 건네도 되겠습니까?”

“제안이요···?”

“예. 말씀해주신 후원내용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지만 조금은 방향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 싶군요. 예를 들어서······”

“······?”

“후원이 아닌 계약.”

이하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등천회랑의 추천서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정식으로 계약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우선 순례자의 탑을 통과하고 난 이후의 일이겠지만요.”

“네? 그말은 혹시······?”

“예. 저는 등천회랑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깜빡거리던 눈망울이 한순간에 멈춰섰다.

“스승님께서 타계하시기 전 말씀하시길, 저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으니 정진하기 위해선 그곳으로 향하라 하셨습니다.”

등천회랑에 입학하기로 한 후.

나는 열심히 태블릿을 두들기며 입학에 필요한 조건을 검색해 보았다.

등천회랑은 각 초인기관의 유망주들을 모아 차세대 공략자들을 양성하는 최첨단 교육시설.

당연히 제대로 된 신원 하나 없는 이가 그런 곳에 입학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나는 최대한 정보를 검색하며 입학조건을 알아봐야 했다.

그렇게해서 알아낸 방법이 총 3가지.

첫 번째- 공식적으로 세계연맹에 속해있는 각 초인기관의 유소년 양성기관을 졸업하고 연계과정으로 등천회랑에 입학하는 정규입학 루트.

두 번째- 각 초인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자격 추천서를 양도받아 입학하는 추천입학 루트.

세 번째- 별도의 자격, 예를 들어 순례자의 길을 통과해 ‘순례자’의 칭호를 획득한 뒤, 따로 입학시험을 신청하는 특례입학 루트.

이렇게 등천회랑 입학에는 세 가지 경로가 존재했고, 그중에서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건 사실상 특례입학뿐이었다.

하지만.

‘입학시험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아.’

등천회랑의 입학시험은 실기와 필기로 나뉘는데, 솔직히 말해서 실기면 모를까 필기만큼은 통과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곳은 전생과 무림.

그 어느 곳과도 다른 세계지 않은가?

내 머릿속에 탑이나 침식, 그리고 차원 역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애초에 이 세계의 역사는 내 기억속 지구와 다르게 흘러갔던 부분도 상당히 많을테고 말이다.

그런만큼 이런 내가 당장 공부를 시작한다고 해서 입학시험을 통과할 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을까?

알아본 결과 등천회랑의 입학식까지는 이제야 겨우 3주가량 남아있었을 뿐이었기에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추천입학을 노려야지.’

그렇기에 나는 원작의 이하린이, 그러니까 눈앞의 그녀가 등천회랑 입학에 사용했을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만큼.

“사실 순례자의 길에 도전하려는 것도 등천회랑의 입학자격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후원제안을 받았더니 더 좋은 선택지가 떠오르는군요.”

“······.”

“안 그래도 등천회랑 졸업 후 공략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었는데··· 한번 이 조건으로 상부 측에 제안을 건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 제안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 듯 그녀는 놀란 표정 그대로 얼어붙어있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원작에 묘사된 이하린의 성격으로도.

등천의 구도자가 추구하는 성향에서도.

“······네. 그럴게요.”

내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오직 그런 판단이었다.

***

<소설 속 주인공>

그곳의 세계관은 평범한 한국형 현대 판타지물에 가까웠다. 고대부터 세계의 양면에서 존재해온 마법과 무공, 초능력과 초인집단. 그리고 거기에 추가된 탑과 괴물까지.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 침식은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한다.

세계 곳곳에서 솟아난 잿빛의 탑은 악의로 점칠된 그림자 마수들을 토해냈고, 세계를 뒤덮은 기현상은 음지에 머물던 초인들마저 전면으로 끌어올려 놓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침식을 막아낼 수 없었다 한다.

그렇게 결국 잿빛의 재앙에 마주한 사람들이 절망에 사로잡히던 순간, 세상을 가로지르며 인류의 머릿속에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는데.

[만상세계가 세계를 주시합니다.]

[세계가 승천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승천이었다.

세계승천과 함께 만상세계는 인류에게 사색의 탑을 선물했고, 인류는 그걸 통해 얻게 된 새로운 힘으로 침식과 맞서 싸울 수 있었다 하였으니.

“여기가 순례자의 길······.”

“네. 여기에요.”

우리 눈앞에 놓인, 이 노란 빛의 거탑 또한 만상세계가 선사했다는 그 사색의 탑 중 하나였다.

“정말 크군요.”

“내부는 더 엄청날 거에요.”

“아. 탑의 내부는 아예 다른 차원이라 했던가요?”

나는 ‘원작’의 정보를 떠올렸다.

탑의 외형은 말 그대로 거대한 탑의 형상이었지만, 그 내부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일종의 이면 세계라는 설정이 기억났다.

“네. 특히 황색탑은 어느 곳으로 입장하든 모두 한곳. 순례자의 길로 통한다 해요.”

“신기하군요.”

“그렇죠? 탑은 정말 신비로운 현상 같아요. 근데 그것보다···.”

입구 앞에 멈춰선 이하린이 내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왔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예. 활동하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정신을 차린 뒤, 고작 이틀이 지난 시점.

솔직히 말하자면 몸 상태가 만전은 아니었지만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는 원작의 흐름에 편승해야 돼.’

그래도 다행인 건 등천의 구도자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거라 예상하고 건넨 제안이었지만 말이다.

자청해서 공략자가 되겠다는 제안을, 그것도 순례자의 길로 자격을 증명하겠다는 걸 그들이 걷어찰 리는 없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쨌든 그렇게 이하린을 따라나선 건데.

“······천하씨 부상이 그렇게 빨리 회복될 부상은 아니었잖아요.”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걱정되는 모양.

병원을 나선 뒤부터 그녀가 보내오던 걱정스러운 눈길이 영 신경 쓰였을 따름이다.

“기간이 아슬아슬하긴 한데 조금 더 치료를 받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문제없습니다.”

계속되는 걱정에 혹시 그녀가 나비효과를 우려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잠시 떠올랐지만 나는 이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녀의 염려속엔 진심이 가득하기도 했고,

소설 속 묘사된 이하린의 성격 또한 배려심 깊고 착한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힘들면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선에서는 도와드릴게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작게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당부하자, 이내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만큼 상태가 나쁘진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비록 지금 내 전력이 온전하진 않더라도, 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 끝에 나선 길이었다.

황색탑의 시련은 원작에서도 제대로 묘사되진 않았지만, 지금 이하린의 수준으로도 클리어할 수준이란 건 확실했다. 그건 소설 속에 묘사된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도 큰 무리는 아닐 터.

부상당한 몸일지언정 그녀보단 내가 더 강했으니까. 그런 판단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어쨌든 내 단호함에 이하린도 결국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고 다시 탑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러면··· 입장할까요?”

“예. 갑시다.”

그렇게 우리는 탑 입구를 향해 손을 얹었고, 곧바로 어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순례자의 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에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순간 우리는 빛에 휩싸였다.

***

[각성자 유천하가 순례자의 길에 입장합니다.]

[세계가 당신의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눈앞에 휘몰아치는 빛.

[과업이 부여됩니다.]

[과업 – 스스로를 증명하라.]

“···여긴?”

그 빛이 가심과 동시에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우리는 탑 속의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까웠는데···!

-하하! 그래서··· 병신······

-당신은 어디 출신······ 진짜···?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대한 공동. 그 광활한 공간 속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고, 얼마나 사람이 많았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시야가 인파로 가득 메워질 정도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던 중 나는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기의 흐름이 이상해.’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

내 눈은 기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기묘한 형상을 이룬 기의 흐름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탑의 내부라 그런 것일까?

-등천회랑에······ 이번 기수는······

-신원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나마 무련··· 어르신들이······

그렇게 웅성거림 속에서 정보를 파악하고 있자니 옆에서 이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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