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교주 유천하
내게 처음으로 무공을 가르쳐주시던 날.
아버지는 내게 이리 말씀하셨다.
“무인의 삶은 투쟁이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 말은 어렸던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고, 나는 그 말을 평생토록 명심하며 살아왔다.
“괜찮으십니까.”
“······.”
하지만 오늘따라 그 말이 왜 이리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말을 지키셨고, 이건 그 결과였을 뿐이다.
무인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나아가는 것과 멈춰 서는 것.
아버지는 나아가는걸 선택했고.
그렇기에 멈춰섰다.
“소자··· 이제 더 이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듯합니다.”
내 입에서 피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교의 율법이란 참으로 덧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차라리 내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더라면. 그렇더라면 지금과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예. 의미 없는 변명이겠지요.”
“······.”
고요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얗게 변한 아버지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보았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무인으로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결국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다시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을 뿐이었다.
“대주님.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수하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몇 명이나 남은 것인가.
그들은 모두 만족하며 쓰러졌을까.
“······.”
나에게도 이들에게도.
선택의 순간은 존재했다.
나아가느냐. 멈춰 서느냐.
우리는 선택했고, 결과는 정해졌다.
“······.”
이들은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하는 걸까.
짧은 고뇌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나는 마지막으로 침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게 찬란했던 만큼 알량했던 이름의 무게를 실감하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천마란 무엇인가.
“가자.”
“존명.”
그 자랑스러웠던 이름이 자리했던 일상도 이제는 끝날 시간이었다. 일상의 변주는 이미 오래전, 짙은 혈향으로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사지를 향해 걸어나갔고, 그 뒤를 배웅하는 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작은 숨소리뿐이었다.
***
쉬이잉!
나- 천마신교 소교주 유천하에게는 몇 가지 비밀이 존재했다. 첫 번째 비밀은 별게 아니었다. 비밀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이야기.
푹-! 나는 사람을 죽이는걸 싫어했다.
“···끄, 끄아아악!!”
경험이 있기에 그런 건진 몰라도 누군가가 무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내게 있어선 언제나 괴로운 광경일 뿐이었으니까.
고작 그런 이유였다.
서걱-!
두 번째 비밀은 조금 중요했다.
“소문과 다르··· 큭!”
카가각-!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감춰왔고, 이제껏 외부에 드러냈던 실력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나 만약을 대비하며 살아왔다.
신교의 적들은 항시 내 눈을 경계해왔지만 그들이 아는것보다도 내 눈은 더 많은 걸 볼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실력의 삼 할은 숨겨라. 무림의 기본적인 율법 아니던가.”
눈으로 엿보여진 찰나의 간극.
팽팽히 당겨진 틈새의 실.
그곳을 향해 나는 검을 휘둘렀고,
칠흑은 궤적을 그어냈다.
서걱-!
“······이게 무··· 말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비밀.
이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비록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비밀. 어찌 보면 별거 아닌,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
나는-
“자, 잠까···!”
스걱!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는 환생자였다.
퀴이이잉-!!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평온하게 하루를 보내고 평범하게 취미를 즐기던,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멍청한 자식들! 고작 한 명을 상대로 뭘 하고 있는 게냐!”
들려오는 외침소리에 나는 그 즉시 쿵-! 소리와 함께 발을 내리찍었고, 내 몸은 빠른 속도로 그곳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용천혈에서 내뿜어진 공력은 한 톨의 낭비도 없이 그대로 추진력을 발휘했고.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어서 빨리 저 녀석을···!”
퀴잉!!
복면인은 황급히 검을 들어 막았다.
부딪히는 서로의 칼날.
카가가각!
상대의 검극이 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나는 검을 흔들었다.
카앙!- 검극은 그대로 맞닿은 검신을 타고 흘러내려갔고.
푹!
그대로 복면인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 무슨···.”
“닥치거라.”
푸슉!
솟구치는 핏줄기와 함께 검을 뽑아낸 나는 등 뒤를 향해 크게 반원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퀴이잉-! 한순간에 휘둘러진 검격.
“크윽!”
“끄아아악!”
배후를 노리던 복면인들이 일제히 비명을 토해냈다. 바닥을 향해 쓰러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씩 한계가 느껴진다.
이제껏 해온 공부가 얕지는 않았다만, 그와 별개로 내 몸은 이미 착실하게 한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
“······.”
푹!
같이 사선을 향해 뛰어들었던 대원들은 이미 그 생명을 모조리 흘려 보내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뒤였고,
서걱!
홀로 살아남아 최후의 분투를 행하던 나 또한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중이었다.
“······.”
체력이 고갈되었다.
혈도는 잔뜩 혹사당해 부어올랐고, 온몸을 내달렸던 공력 또한 바닥을 드러냈으며, 검을 든 팔 또한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려온다.
근육이 찢어진 것일까.
하얗게, 그리고 붉게 질려버린 손을 내려다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까지인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든 전장.
공세가 멈춘 틈을 통해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들끓는 내기를 다스렸다. 주변에 늘어진 시체가 한두 구가 아니었기에 복면인들은 내게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다.
시체가 즐비한 전장의 한가운데.
“······.”
그곳에서 나는 지나온 삶을 반추해보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한시도 방만하지 않았다. 나는 삶의 유한함을 깨달았고, 무인의 마음가짐을 배웠기에 언제나 노력해왔다. 나는 주어진 기회를 낭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도달할 수 있었던 최선의 한계점을 마주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 그런 것뿐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왜 아무도 안 오는 것이냐.”
어쩌면 지금이라도 타협하려 했다면 목숨을 구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아가느냐. 멈춰 서느냐.
그것이 내게 주어진 선택지였고.
그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거라.’
나는 무인이었으니까.
“자- 오거라-!!!”
우웅-! 그렇게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이 숲 속을 두드리며 퍼져나갔다.
이 외침이 그리 무서웠을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복면인들이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정말이지 우스운 모양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오지 않는 배반자들을 노려보며, 나는 흔들리는 검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미동 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자를 향해서. 그 끝에 서 있는 자를 향해서.
이 모든 일의 원인을 향해서.
“사마횡천-!!”
나는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
천마신교 호법사자.
“하하하!! 이거 참 대단하오.”
아니 호법사자였던 검혈마제 사마횡천은 유천하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감탄을 토해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소이다. 실로 대단한 실력이시오.”
후기지수라 칭하기에도 다소 부족한 나이에 단신으로 자신의 수하들을 이리 몰아세우다니. 그야말로 훌륭한 기량이지 않은가?
이대로 계속 정진했다면 분명 아비의 뒤를 이어 후대의 천마가 될 수 있을 만한 자질.
검혈마제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다만 이제 여흥을 끝낼 때가 된 것 같소이다.”
허나 이제 그건 무의미한 이야기였다.
“오늘 이후 소교주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외다.”
“······.”
“아! 교주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주화입마따위에 발목 잡힌 늙은이쯤은··· 편안히 침대에 누워 여생을 보내게 해드릴 터니.”
“사마횡천!!”
유천하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져 나왔다.
노호성을 터트리며 삽시간에 발을 박차고 뛰쳐나오는 유천하의 모습. 그 즉시 복면인들이 칼을 빼 들며 그 앞을 막아섰다.
유천하의 앞을 막아선 자는 두 명.
소년의 눈이 그들의 투로를 꿰뚫는다.
만물의 흐름이 그 눈에 담겼다.
‘보법은 암혈귀보.’
각각 좌우로부터 달려드는 적들.
암혈귀보의의 묘리가 드러나는 순간은 공세 직전의 발디딤. 유천하는 한 번 더 발을 박차며 검을 휘둘렀다.
처음은 좌측부터.
큉!
“···뭣!”
첫 번째 적에게 당도한 검이 목젖을 향해 그어졌고, 캉-! 공격이 막힘과 동시에 손목을 튕겨 검을 회전시킨다.
훙-! 순식간에 반원을 그린 유천하의 검병이 상대의 인중을 깨부쉈다.
콰직!
“픜!!”
유천하는 허공에 튕긴 검을 뒤로 한 채, 그대로 자신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 오는 검을 응시하며 걸음을 옮긴다.
우측으로 반걸음.
슥-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칼날.
“···!”
쾅-!
욱-! 그 순간 각법에 얻어맞은 복면인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곤 인중이 박살 난 복면인과 부딪히며 두 인형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시 허공에 튕겼던 검을 낚아챈 유천하는 그들을 지나쳐 다시 앞으로 뛰쳐나왔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예.
“호오.”
“······.”
한계에 다다른 몸은 극도로 예민했기에 유천하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졌다.
검혈마제의 코앞까지 다가간 그의 몸에서부터 패도적인 내력이 흘러나온다. 그 느려진 감각 속에서 유천하의 눈은 검혈마제를 응시했다.
유천한의 세계가 다시 한 번 감속한다.
희번뜩 거리는 눈동자. 올라가는 입꼬리. 꿈틀거리는 근육.
그리고.
“!”
콰-앙!!
유천하의 몸이 거세게 튕겨져 나갔다.
“큭!!”
유천하는 그대로 몇 장이나 뒤로 튕겨져 나간 후에야 간신히 신형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처참하게 망가진 검신을 바라보며 유천하는 비틀거리는 몸을 추슬렀다.
“아무리 소교주라지만 혈귀대의 조장급을 그리 쉽게 죽이다니, 거 참 대단한 재능이오.”
유천하는 이를 악물었다.
눈이 공세를 인지하는 것까진 문제없었다만 몸이 그에 따라가지 못했다. 생각대로 움직이기에는 육체가 너무 여렸으며, 내력이 너무나 부족했던 탓.
“허나 재능을 뽐내기엔 소교주가 쌓아온 세월이 참으로 얕은듯하오. 안 그렇소? 하하!! 눈이 좋으면 뭐할까. 몸이 안 따라주니···. 쯧.”
“닥치거라.”
“소교주에게 제대로 된 시간만 주어졌더라도 분명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오.”
“닥치라 하지 않았더냐!”
검혈마제의 말에 분통이 터지는 유천하였지만, 그로서도 그 말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부족했던건 오로지 시간이었다.
10년만, 아니 하다못해 5년 만이라도 더 시간을 갖고 정진 할 수 있었더라면!
초절정의 문턱에 도달할 수 있었더라면 이리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유천하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으니 이렇게 죽는 것이오. 알겠소이까?”
그러나 그건 무의미한 말.
“소교주. 이제 모두 끝났단 말이오.”
유천하에게는 시간이 부족했고.
때는 이미 도래한 뒤였으니 말이다.
“소교주··· 소교주···. 크흐흐··· 크하하하!!”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웃고 있는 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소교주-!!! 아니. 천하야···!! 너는 이 말의 의미를 알겠느냐···?”
이제 모든게 끝났다 생각한 것일까.
눈을 감은 검혈마제의 입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건 시체의 산에서 피어난 추악한 평온이었다.
“···이제. 이제 나는 천마가 되는 것이란다.”
그 얼굴은 무척이나 인자해 보였고, 이 상황과 너무나도 큰 괴리감이 느껴지는 표정이었기에 유천하는 순간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그게 그리도 탐이 났더냐.”
“그래 천마. 얼마나 지고한 울림이더냐.”
천마라는 이름은 무엇인가.
참으로 무거운 이름이었고,
참으로 값싼 이름이었다.
“그깟 이름이 그리도 탐이 나더냐···.”
“암! 탐이 나지. 만마의 종주. 신교의 절대자. 무림을 뒤흔들 수 있는 하나의 이름···! 그게 탐이 나지 않는다면 세상 무엇이 탐나겠느냐!!”
추악한 욕망을 흘려들으며, 유천하는 손에 쥔 검에 마지막 남은 내력을 불어넣었다. 일그러진 검신을 타고 천마신공의 내력이 흘러내린다.
만마의 종주, 신교의 절대자.
유천하는 그 말을 되뇌었다.
“너만 없어지면 그 모든 게 내 것이 되는데 어찌 참을 수 있을까!!!”
“······.”
천마의 시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천마의 이름은 그런 게 아니다- 유천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이제 교는 본좌의 것이 된다!”
“사마횡천-!!!”
다시금 쏘아져나가는 유천하의 검.
분노와 후회, 안타까움과 허망함.
무수한 감정을 실은 외침은 강렬한 의념을 검극에 담아 혼신을 불태우며 휘둘러졌고.
“이제는··· 내가 천마다-!!”
쾅.
결과는 전과 동일했을 뿐이었다.
‘······.’
천마라는 이름이 참으로 덧없어졌구나- 허공으로 튕겨져나가며 유천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허탈했다.
환생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면,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면. 이왕 그런 일이 생길 거였으면.
조금 더 기회가 주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저 별거 아니더라도, 기연 같은 게 없더라도···.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던 시간의 격차를, 그 장대한 세월의 차이를 고스란히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단 5년. 아니 3년 만이라도.
조금 더 정진할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다. 유천하는 그리 생각했다.
그저 그런 생각이었고.
그런 바램이 들었다.
그리고-
[만상세계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그 바램은 ‘세계’에 맞닿았다.
***
강호를 뒤흔들던 천마의 위업도 스러지고, 그 본질마저 탐욕 속에 잊혀버린 시대. 그렇게 천마라는 이름이 추잡해진 허명이 된 순간의 중심에서.
유천하는 검을 휘둘렀다.
[만상세계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서걱!
복면인들이 달려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유천하는 생각했다.
[당신의 염원이 만상에 닿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겠다.
“···다 죽어가는 녀석이 감···!”
푹!!
[만상세계의 초대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겠다.
“···쯧. 본좌가 기껏 손을 써줬는데 반송장 하나 못 죽이는 것이더냐!”
자신이 미친 걸지도 몰랐다.
유천하는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퀴이잉!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걸어보고 싶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렇기에 받아들였다.
“······.”
물론 이게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알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게 무엇인 줄 알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거냐고.
쉬익!
“···끄아악!”
하지만 유천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느냐. 포기하느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실로 대단하구나. 그 몸을 하고서도 그렇게까지 버티다니.”
다 죽어가던 유천하의 분투에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검혈마제가 다시 앞으로 나선다.
그 증오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유천하는 피가 흘러나오던 입을 열어 담담하게 읊조렸다.
“본교는 강자를 숭배했지. 인정하마··· 지금 이 순간이 내 한계였다는 걸.”
“그걸 이제야 알···”
“허나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소년은 선언했다.
“천마신교의 의미를. 천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반드시 명심하거라.”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핏덩이를 씹어삼키며, 그렇게 교를 배반한 이들에게 남길 마지막 전언을 내뱉었다.
“다 죽어가는 것이 입만 살았구나.”
“······.”
“지금의 네 녀석에게 천마의 이름을 운운할 자격이 있다 생각하느냐···!!”
“자격 말이더냐···?”
서걱!
소년의 눈은 점차 감겨오고 있었고, 그 팔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온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니, 그는 오히려 더 또렷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 소교주 위, 암영비천대 대주.”
반쯤 깨져나간 검을 들고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로.
그렇게 다 죽어가는 몸으로.
“호는 암영, 이름은 천하라 하니.”
유천하는 마지막 전언을 토해냈다.
“너희는 반드시 내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순간 빛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울분을 토해내던 소년의 몸에서부터 솟구친 오색찬란한 빛깔이 세계를 뒤덮으며 휘몰아쳤고, 신비가 세계를 가로질렀다.
후우웅!!!
난데없이 암야를 가로지르는 괴력난신.
복면인들은 눈을 가리며 뒷걸음질 쳤다.
“······저, 저게 무슨!!”
“사, 사술이다!!!”
그렇게 불가해 한 현상에 모두가 질색한 순간. 오직 한 사람, 홀로 그 빛의 중심부를 꿰뚫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검혈마제만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오색 빛 사이로 내비치던 그의 마지막을.
그 소름 끼치도록 담담한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