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76화
에단 암브로시아의 약혼녀가 된 사라는 속절없이 그에게 빠져들었다.
“솔직히 에단, 당신이 잘생긴 것 알고는 있죠?”
“사라, 그대가 날 어떻게 보는지 안다면 모를 수가 없지.”
“그걸 알면서……, 지난번 파티에 에끌로 영애에게 그렇게 웃어 줬어요? 장난해요?”
“……그건 오해야. 에끌레 영애인지 에끌로 영애인지 모를 영애 뒤에 당신이 있었지 않나. 당신을 보고 웃은 걸 가지고 그리 오해하면 곤란해.”
“그럼 나랑 둘이 있을 때만 웃었어야지! 다 봤잖아요, 에단이 웃으면 더 잘생겼다는 걸 다 알아 버렸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그대는 질투를 하고 있는 거로군?”
“당연하죠!”
“그건 기쁜데. 당신의 오해가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
사라 밀런은 자신이 바꾼 세상에서 행복했다.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가끔, 어느 새벽.
“……클로드, 클로드…….”
“밀런 영애께서 또……! 어서 주군을 불러!”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아이의 이름을 되뇌며 맨발로 복도를 서성이곤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에단은 클로드와 똑같이 암브로시아의 힘을 타고났으면서도 그에 휘둘리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해 온 사람이었다.
약혼녀인 사라가 자신과 같은 괴물과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어 주는 그녀에게 자상하게 미소 지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클로드처럼, 생각만 해도 애달픈 아이처럼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사라…….”
“에단? 무슨 일이에요, 세상에 열이 이렇게!”
그리고 어느 날, 에단의 부친인 암브로시아 공작이 결국 힘에 삼켜져 죽어 버렸던 그날 밤.
에단은 꺼멓게 죽은 얼굴을 하고선 사라의 품에 안겨 울었다.
“내가 아버지처럼 당신을 해치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부디 내게서 도망가요, 사라. 제발…….”
“당신과 아버님은 달라요. 그리고 저는 항상 당신 곁에 있을 거예요, 에단. 그러니 괜찮아요, 괜찮아요…….”
처연한 얼굴로 무너진 에단의 눈을 바라보며 사라는 그날 에단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나와 결혼해서, 날 공작 부인으로 만들어 줘요. 우리는 행복할 거예요, 에단.”
“사라…….”
사라와 에단의 결혼식은 성대했다. 금슬이 좋은 황제와 황후가 참석하여 그 자리를 빛내 주었다.
제국의 그 어떤 귀족보다도 고귀한 결혼식이었다.
모두가 축복하였고, 모두가 그들의 행복을 바랐다.
단, 한 사람.
스승에게 비틀린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만 빼놓고 말이다.
“……저런 더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감히 스승님과―.”
올리븐은 에단 암브로시아가 과연 스승의 반려가 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고자 했다.
그는 스승 몰래 익혀 왔던 흑마법을 사용해 대륙 곳곳에 암브로시아의 힘에 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 가문의 힘이 분명합니다. 내가 직접 가 보아야겠습니다.”
“에단……, 저도 함께 가요. 예감이 좋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데리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저는 사실!”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사라, 내 아름다운 부인. 부디 암브로시아에 안전하게 있어 주세요.”
크롬벨 제국의 이름으로, 그리고 고귀한 암브로시아의 이름으로.
점점 피해가 늘어 가자 에단은 대륙을 위해 갑옷을 입고 칼을 허리춤에 찬 뒤 말에 올랐다.
만일 엄청난 사상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불길한 힘이 암브로시아의 것이라면, 그건 그의 책임이라고 에단은 생각했다.
“…….”
사실 그녀가 마법사라는 것을 에단은 몰랐다.
그것도 아주 강한 대마법사며, 지금 이 사태를 만든 것이 자신의 제자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에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에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이 에단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공작 부인, 공작님께서……, 주군께서!”
“……!”
폭주였다. 암브로시아의 힘이, 에단이 그토록 두려워하며 억눌렀던 힘이 폭주하였다.
“올리븐!”
분노에 가득 찬 대마법사의 음성이 온 대륙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 정도의 환상에 잡아먹힐 정도라니……, 이 힘은 분명 스승님을 해쳤을 겁니다. 스승님을 위험하게 만들었을 거라고요!”
“닥치렴, 날 더 이상 화나게 만들지 마.”
사라는 자신을 보며 울부짖는 제자를 단숨에 제압하고 힘에 서서히 잡아먹히고 있는 에단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에선 피눈물이 뚝뚝 떨어졌으며 온몸에는 핏줄이 새파랗게 불거져 있었다.
“대체, 뭘 보여 준 거야. 이 사람에게 어떤 환상을 보여 준 거야!”
“그저 저자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을 보여 주었을 뿐이에요. 스승님이 떠나 버리는 것, 스승님이 저자의 힘에 먹혀 죽는 것. 겨우 그것 때문에…….”
“그만둬, 올리븐. 내가 지금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이미 늦었어요. 저자의 안에서 들끓던 텅 빈 갈망을 스승님도 알고 계셨죠? 알고 계셨으면서 외면하고 계셨죠?”
“올리븐, 너……!”
“클로드, 클로드……. 스승님께서 무의식중에 찾으시던 그 이름. 누구예요? 누구길래 그토록 애절하게 찾으세요? 그 이름이 저자의 불안을 재촉한 것은 알고 계세요? 그 이름이 제 속을 비틀리게 한 것은 아시고요?”
사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에단이 클로드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녀의 제자들이 물었을 때도.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 대륙의 미래를 전부 바꾸어 놓았다고 미처 말할 수도 없었으며, 그녀의 손으로 그 아이를 영영 태어나지도 못하게 지워 버렸다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에단이 은근히 불안해하는 것을 알았어도, 올리븐이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았어도.
그 대가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아, 아아…….”
뒤따라가야지. 에단의, 나의 반려의 뒤를 따라가야지.
“절대 혼자 보내지 않을게요.”
천천히 힘에 삼켜지는 에단을 사라는 힘껏 끌어안았다.
“안 돼요, 스승님! 안 돼!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스승님 제발!”
뒤에서 들려오는 올리븐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그렇게 눈을 감은 사라는…….
“허억!”
박혜연의 몸으로 깨어났다.
그렇다. 그녀는 에단의 뒤를 따라갈 수 없었다.
두 개의 영혼을 공유하고 있었으니. 사라 밀런의 영혼은 그의 뒤를 따랐을지도 모르지만 박혜연의 영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차원이 달라져 버렸으니까.
그렇게 에단과 영영 이별해 버렸다. 이토록 허무하게 말이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할 걸 그랬어. 내가 마법사라는 걸……! 암브로시아의 힘을 연구했었다고, 해결해 줄 거라고 해 볼 걸 그랬어. 클로드, 아아, 클로드 그 아이의 존재에 대해서 말할 걸……. 아니 애초에 그 아이를 내가 지워 버리지만 않았어도!”
후회했다.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차라리 박혜연의 몸으로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미래를 보지 않았더라면 달랐을 거란 원망마저 들었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게 깊은 절망에서 몸부림칠 때, 박혜연은 무언가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라의 힘이 이쪽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어.”
저 세계에서 죽어 버린 사라 밀런의 영혼에 담겨 있던 힘이 서서히 박혜연의 영혼에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박혜연의 몸에서 대륙의 마력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법을 쓸 수 있어, 마법을…….”
멍하니 제 손끝에서 발현되는 푸르른 마력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박혜연의 머릿속에, 한 줄기 희망이 스친 것도 그때였다.
그녀에게 흘러들어 오고 있는 사라 밀런의 힘은 차원의 균형을 어그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것이었다.
아마 그 힘이 온전히 박혜연의 영혼으로 흘러들어 오게 된다면 차원은 다시 한번 균형을 맞추려고 들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거야. 대가를 지불하면 돼. 차원의 균형이 맞을 만한 정당한 대가를…….”
그녀는 이제 클로드가 없는 삶을 알았고, 에단이 없는 삶을 알아 버렸다.
둘 다 결국 비극으로 끝나 버렸다는 것 또한 이제 겪어 보아 알 수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클로드가 존재하고, 에단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지.
“내 모든 것을 솔직하게 전부 밝히고, 암브로시아의 힘으로부터 두 사람을 구할 거야.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야, 절대…….”
박혜연은 그때부터 사라 밀런의 영혼을 다시 한번 그 차원에 담을 수 있도록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려 했다.
그녀는 대마법사이자 차원의 균형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차원이 원하는 대가는 아주 명확했다.
‘에단 암브로시아와 사랑을 나눴던 사라 밀런의 기억. 그리고 박혜연 영혼의 영원한 봉인.’
이것만 대가로 지불한다면 세계는 다시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박혜연의 영혼도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서로의 몸에 오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영혼을 봉인해야만 했다.
“……다시 그와 사랑할 수 있을까.”
박혜연은 망설였다. 시간을 돌린 후,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과연 다시 한번 그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는 있을까.
만약 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버리면 어떡하지.
“아아, 클로드.”
하지만 그녀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에단과 사랑에 빠진 후에도 잊을 수 없었던 그 아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할 것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에단이 살아 있고 클로드가 살아 있는 그 세상에서 그녀는 행복할 것이다.
기억을 대가로 지불하고 시간을 돌리기 전, 그녀는 작은 편법을 쓰기로 하였다.
“이번엔 실패할 수 없을 거야. 올리븐, 그 아이가 있으니까.”
올리븐. 흑마법을 익힌 비뚤어진 그녀의 제자. 박혜연은 시간을 돌려도 올리븐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번 도박을 실행해 볼 수 있었다.
올리븐이라면 분명 그 어떤 사고를 쳐서라도 사라 밀런의 영혼을 잠시나마 박혜연의 차원으로 밀어내고야 말 테니까.
‘박혜연의 몸에 모든 기억을 봉인한다. 영혼이 아닌 몸에 새겨진 기억이니, 사라 밀런의 몸으로 돌아가면 잊을 거야. 균형은 그렇게 맞춰지는 법이지.’
박혜연은 시간을 돌리기 전, 사라 밀런의 자신이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교통사고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기억에 뒤틀림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암시를 걸었다.
‘대륙의 미래를 적어 놨던 것은 사실 내가 쓴 소설이야. 제목은 ‘어둠의 꽃’. 에단이 홀로 폭주하고 죽어 버린 그 세계는 대륙의 미래가 될 거야.’
과거로 돌아간 시간에서 깨어날 사라 밀런이 미래를 소설이라고 착각하도록 만들어 놓았고.
‘아아, 불쌍한 디엘린. 소중한 디엘린의 불행을 막아야 해. ‘소설’대로 세계가 흘러가고 있잖아. 네가 만든 불행이니 막아야 해.’
디엘린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을 심어 넣어 미래를 바꿀 각오를 다지도록 만들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을 연구해야 해. 그 힘이 무엇을 갈구하는지를 찾아내. 조금 시간이 걸려도 좋아.’
암브로시아의 힘을 연구해 그 힘으로부터 에단과 클로드 두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해 놓기까지 했다.
‘보고 싶다, 클로드가 너무 보고 싶어. 그 사랑스러운 아이. 그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어.’
클로드, 그 아이를 다시 한번 사랑할 수 있도록. 뒤늦게 깨달아서 놓쳐 버리지 않도록.
‘내 모든 걸 숨기지 않고, 두 사람 앞에서 실로 진실 될 수 있기를.’
오해로 비롯된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박혜연은 그렇게 모든 암시를 마친 뒤 달려드는 트럭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