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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69화 (169/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69화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사라를 보며 1황자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도 흑마법사들을 상대하던 마법사의 존재를 똑똑히 보았다.

알톤의 장벽이 갈라졌을 때, 흑마법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이렇게 말했다.

‘아쉽구나. 아쉬워……. 조금만 더 이 힘을 탐구하고 싶었는데…….’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저 마지막으로 대장로를 상대로 자신들이 익힌 흑마법을 실험하고 싶다는 지독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장로님이 나서신 이상……, 우린 이제 다 죽은 목숨이야.’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더 나아. 올리븐도 없는 마당에 대장로님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1황자님은 좋으시겠습니다? 대장로님께서는 인간사에 깊게 관여하는 걸 꺼리시니 이번에 목숨은 건지겠네요.’

카제르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마탑의 대장로라는 자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자라는 것을.

‘스승님은 최대한 피해야 해. 살아남으려면 말이지.’

그에게 힘을 준 올리븐조차 스승이 두려워 그녀가 없는 틈을 이용하려다 도리어 당하지 않았는가.

“마탑의 주인이 사라 밀런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카제르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점차 분노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날 황궁에서 에단 암브로시아가 사악한 힘을 썼을 때 감쪽같이 나았던 몸 때문에 그는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온갖 모욕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사라 밀런이 마법사라면 그 모든 상황이 전부 설명됐다.

황제가 왜 그녀에게 소백작의 지위를 허락했는지도, 겨우 목에 피를 조금 냈다는 이유로 이딴 시골 영지까지 쫓겨나야 했는지도 말이다.

“전부 다 네년 때문이야.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사라 밀런!”

카제르에게서 뿜어져 나온 힘이 사라와 에단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이크.”

사라는 황급히 방어막을 치며 에단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러자 방어막을 통과하지 못한 힘이 주변에 퍼지며 땅이 꺼멓게 죽고 작은 나무나 들풀들이 순식간에 생명력을 잃고 바싹 메말라 버렸다.

“…….”

“…….”

생명력을 빼앗는 힘.

암브로시아의 힘이 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카제르의 손끝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에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으르렁거렸다.

“물러서요, 사라.”

“공작님이나 뒤로 물러서세요. 이미 눈치채셨잖아요, 저게 암브로시아의 힘이랑 유사하다는 걸.”

사라의 시선이 요동을 치고 있는 에단의 반지에 머물렀다.

반지는 에단의 내면에서 부풀어 오르려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억누르려 애쓰고 있었다.

에단은 손을 들어 반지를 가리며 말했다.

“제가 처리하지 못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처리하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죠.”

사라가 손을 한 번 더 휘두르자 급하게 쳐 둔 방어막 위로 푸르른 마력이 씌워지며 더욱 견고한 방패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카제르가 뿜어내는 힘에서 더 멀어진 것처럼 반지의 진동이 서서히 멎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은 서로의 힘에 더 공명하잖아요. 공작님이 1황자를 상대해 봤자 서로 각자의 힘을 더 키울 뿐이에요.”

사라의 말 그대로였다.

그녀는 에단의 안에서 일렁이는 힘을 자극하지 않고도 카제르를 처리할 수 있었다.

“…….”

에단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불쾌함이 지속되었다.

그것은 동물적인 감각에 가까웠다.

이번 일에서 최대한 사라를 배제해야 그녀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본능적인 감각 말이다.

전부터 느껴졌던 사라의 애매하게 구는 태도 또한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대에게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누가 되었든 저건 위험해요.”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해야 해요.”

사라는 마치 그것이 당연히 정해진 수순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걸 위해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온 사람처럼.

“사라.”

“네.”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화를 낼 거라고 했었죠.”

“……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입니까?”

에단의 물음에 사라의 몸이 순간 움찔하고 떨렸다.

그녀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 채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에단에게는 충분한 답이 되었다.

사라는 암브로시아의 힘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수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고 했다.

오랫동안 암브로시아의 힘을 연구했을 때는 알아내지 못했던 것을 최근에 알아냈다는 건 결국 한 가지를 뜻했다.

직접적으로 암브로시아의 힘과 부딪쳤을 때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아아, 사라.”

드디어 에단은 사라가 감추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에단이 알고 있기론, 사라가 암브로시아의 힘과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는 두 번 정도였다.

그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오랜 시간 동안 눈을 뜨지 못한 채 누워 있었던 바로 그 두 번.

“그 여린 몸으로 암브로시아의 힘을 받아 내려고 하는 겁니까? 이번엔 얼마 만에 눈을 뜰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는데.”

“……공작님.”

“하, 하하.”

에단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에단의 표정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보다 그 안에 잠들어 있을 암브로시아의 힘이 끔찍한 적은 없었다.

사실 그는 사라와 대화를 하기 전, 암브로시아 저택에서 한 가지 소식을 받아 보았다.

[밀런 소백작님이 마치 긴 이별을 준비하시는 듯하다고 했습니다. 클로드 님 또한 그걸 느끼셔서 그리 떼를 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밀런 소백작님은 마법으로 클로드 님을 진정시키고 잠재우셨습니다. 원래 밀런 소백작님의 성격이라면 클로드 님을 끝까지 안심시킨 뒤에 친히 안아 재우셨을 텐데……,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게다가 이 말을 전한 이가 바로 메이입니다. 아시다시피 메이는 저택의 사용인들 중 유일하게 밀런 소백작님이 말을 놓는 상대입니다.]

‘마치 긴 이별을 준비하는 듯했다’는 말이 에단의 마음속에 콱 박힌 채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빌려 그들과 긴 이별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에단이 화를 내고, 클로드가 크게 상심할 것을 알면서도.

“과연 내게 당신을 막아설 자격이 있을까요.”

한숨처럼 흘러나오는 에단의 말에 사라의 얼굴이 굳었다.

에단은 무언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사라가 한 걸음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콰아아앙!

그녀의 방어막이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아무리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방어막에 분개한 카제르가 온 힘을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카제르가 새빨갛게 물든 눈으로 사라와 에단을 노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증오스러운 이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

그 사실이 점차 그의 이성을 좀먹어 들어갔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 소리 위로 악마와도 같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전부 다 빼앗자.]

[다 먹어 버리고 싶어. 너무 탐스러워.]

[저들을 다 먹어치우고 나면 우리는 더 위대해질 거야.]

생명력을 탐하는 힘이 끊임없이 숙주를 자극하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강한 자제력을 갖추지 않는 이상,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는 없었다.

카제르는 이내 사라와 에단을 넘어서 그 뒤를 바라보았다.

“저걸 다 내 힘으로 만들고 나면…….”

수많은 마물들과 사람들. 모두 이 힘의 훌륭한 먹이가 되어 줄 것들이었다.

“나는 위대해질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카제르에게서 뿜어져 나온 힘이 사라와 에단을 지나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암브로시아 기사단에게 향한 것은.

“안 돼!”

급하게 그쪽으로 방어막을 펼치려 손을 뻗은 사라의 눈에 그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공작님!”

에단 암브로시아가 그녀보다도 더 먼저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낱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사라의 시야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주 느리게 보였다.

‘저건…….’

반지였다. 사라가 에단에게 준 힘을 봉인할 수 있는 반지.

암브로시아의 힘에 먹히지 않기 위해 착용한 것도 있지만, 에단은 반지의 힘이 다했을 때도 그걸 손가락에서 뺀 적이 없었다.

그저 반지의 존재만으로도 사라가 곁에 있는 기분이라고, 그렇게 웃으며 말했던 에단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그 반지를 에단이 벗어 던졌다.

마치,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듯.

“안 돼…….”

창백하게 질린 사라가 신음했다.

그녀의 눈앞에 카제르의 힘을 막아서는 에단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그 더러운 힘을 드러내는구나, 에단 암브로시아!”

쾌감 어린 카제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전장을 울렸다.

같으면서 다른 힘을 눈앞에 둔 암브로시아의 힘이 카제르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에단의 절망을 먹고 자라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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