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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58화 (158/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58화

제이드가 안절부절못하며 주군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마침 사라가 타고 넘어간 거울에서 하얀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곧 웃음기 어린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 넘어왔다.

―저어, 공작님. 말도 없이 넘어와서 죄송해요.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든 목소리였다. 정확히는 에단의 잔소리를 각오한 듯한 음성이었다.

은근히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모습에 에단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놓고 저러니 뭐라 할 수도 없겠군.’

에단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려 정리하며 물었다.

“클로드는 괜찮습니까? 많이 놀라거나 다친 곳은 없습니까?”

―역시 바로 클로드 님 걱정을 하실 줄 알았어요.

키득거리는 사라의 목소리와 함께 거울이 다시 한번 환하게 빛났다.

눈부신 빛에 에단의 고운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을 때, 거울 너머로 사라와 클로드의 모습이 보였다.

“……클로드.”

사라의 품에 안겨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두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두 다리를 동동 흔들며 거울 너머를 응시하던 클로드는 에단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

클로드에게 꼬리가 달려 있다면 아주 격렬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엉덩이를 움찔움찔하는 아이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에단의 품에 안길 것만 같았다.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구나. 많이 무서웠을 텐데 잘 견뎌 주었다.”

“유모가 와서 멋지게 나쁜 사람들이랑 무서운 괴물들을 다 처리해 줬어요!”

“그래?”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무용담을 읊는 것처럼 클로드의 목소리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봤지? 이게 내 유모다! 라고 자랑하는 것이 표정에도 훤히 드러났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에단은 작게 웃었다.

“사라가 멋져서 좋았겠구나.”

“네, 진짜 멋졌어요! 그리고 유모가 깔깔깔깔 하고 웃었어요! 그건 조금 무서웠어요.”

“음?”

클로드의 말에 에단이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이자 사라가 웃으며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참, 클로드 님. 비밀이라니까요.”

“으음, 으으으음?”

“네네, 이미 다 들킨 건 아는데 공작님한테만 비밀이에요.”

“으으음! 음으음! 음!”

“알았어요. 제가 약속할게요. 그러니까 클로드 님도 약속 지키셔야 해요?”

“으으으으응.”

“애태우지 마시고요.”

“음.”

“알았어요.”

입을 틀어막힌 클로드와 사라가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도 말이 아주 잘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눈빛과 클로드의 웅얼거림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

저게 무슨 대화일까.

에단과 제이드는 거울 너머의 광경을 보며 넋을 놓았다가 이내 서로를 바라보았다.

‘경은 알아들을 수 있겠나?’

‘그럴 리가요.’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은 없어도, 눈빛만으로도 그 뜻이 통했다.

그때 서로 합의가 끝났는지 사라와 클로드가 웃으며 다시 거울을 통해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멀쩡해요!”

“그렇구나.”

어쨌든 혈색이 좋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는 클로드를 보며 에단은 마주 웃어 주었다.

아이가 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안심이 되었다.

“저택의 피해 상황은 그리 크지 않아요. 마물들의 사체가 조금 많긴 한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쓸 만한 건 따로 모아 둘까요? 희귀한 마계 마물도 있어서 꽤 돈이 될 거예요.”

“그런 푼돈 때문에 사라를 귀찮게 할 순 없지요. 그냥 태워 버리게 두세요.”

“……?”

푼돈? 사라의 두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그러곤 잠시 옆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암브로시아의 사용인들이 마물들의 사체를 부지런히 한데 모으고 있었다.

마물의 사체는 하나하나가 전부 다 값비싼 재료들인데.

오죽하면 3황자도 오는 길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마물의 사체를 수거하느라 알톤으로 합류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가.

저만한 숫자의 마물 사체라면 어지간한 귀족 가문 하나쯤은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을 만도 했다.

“암브로시아의 자금 사정이 그리 궁핍하진 않습니다.”

“아뇨, 궁핍이라기보단 저건…….”

사라는 저 마물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해 보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웃고 있는 남자는 암브로시아 공작이었다.

일반적인 범주에서 생각해선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었다.

“네에, 그럼 저는 클로드 님이랑 조금만 있다가 내일 갈게요. 사실 상의드리고 싶은 것도 있는데…….”

사라는 자신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 하는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쪽에서 방문을 막은 채 가만히 서 있는 벨루나와 벤야민을 보았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게……, 바로 가기가 조금 곤란해져서요.”

“알겠습니다.”

곤란함이 묻어 나오는 사라의 얼굴에 에단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의하고 싶다는 말에 불안하게 바뀌는 클로드의 얼굴이 너무나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클로드가 외로웠을 테니 잘 달래 주고 오세요.”

“네, 그럴게요.”

사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에단과 눈을 맞추다가, 손가락을 따악 하고 튕겼다.

그러자 처음의 그 하얀빛과 함께 거울은 평범한 상태로 돌아갔다.

“……역시 밀런 소백작님이시군요. 이토록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다니.”

“사라가 직접 그리로 넘어갔으니 당연한 결과겠지.”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임시로 마련한 천막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알톤 영지를 감싸고 있는 검은 장막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검은 장막은 그 원흉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심지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그 크기를 부풀리고 있었다.

“무섭게 불어나는군요. 이런 것은 처음 봅니다.”

제이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질린 것처럼 장막을 바라보았다.

그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어 단숨에 휘둘렀다.

까아앙!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것처럼 들려왔다.

암브로시아 기사단이 사용하는 칼은 제국에서도 단연 손에 꼽히는 상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막에는 손톱만큼의 흠집도 내지 못하였다.

“칼날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생명체는 통과할 수 있다니.”

제이드는 이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장막은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대신 그 생명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몇 명의 사람과 몇 마리의 동물들이 희생됐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사라가 단순한 흑마법으로는 이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더군. 분명 무언가가 더 있을 텐데.”

에단은 눈앞의 장막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묘하게 익숙한 힘이 저 장막에서 느껴졌다. 마치 그를 끌어당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손만 가져다 대도 중상을 입는다라.”

에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장막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장막을 살펴보려던 암브로시아 기사단 몇몇이 그것을 건드려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고열로 크게 앓았다.

“1황자와 뜻을 함께하는 다른 제국의 사절단들은 어떻게 이 장막을 통과했지?”

“흑마법사들과 함께 움직였다고 합니다.”

“암브로시아 저택으로 향한 인원들을 제외하고도 아직 알톤 영지에 남아 있는 흑마법사들의 숫자가 적지 않아.”

“우두머리를 잃었으니 아마 큰 위협은 안 되지 않을까요?”

제이드는 애써 밝은 미래를 점쳐 보았다. 하지만 에단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도리어 더 위험해졌지.”

“어째서요?”

“살아남기 위해 이제 저들은 무슨 짓이든 할 테니까.”

“아.”

에단의 말에 제이드는 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사들을 이끌던 이는 사라의 제자였다.

여태까지 사라의 눈치를 보던 올리븐 때문에 저 장막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흑마법사들이었다.

이제 올리븐이 없으니 그들은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사라가 단숨에 올리븐을 제압할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살기 위해 발악하겠지.

“전쟁을 준비해야 할까요.”

“아니.”

에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비릿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건 우리 암브로시아의 몫이 아니지.”

그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3황자의 천막에 닿았다.

3황자의 수하들이 부지런히 천막 안을 드나들고 있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마련된 2황자의 천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바쁘게 사람을 오고 가게 하며 끊임없이 불타오르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황실의 영광을 위해 암브로시아는 한발 물러서야 하지 않겠나.”

“…….”

제이드는 주군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언제나 주군이 저렇게 웃을 때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아, 경. 전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예에, 그러시겠지요.”

“그러니 숨어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 감히 황실에게 칼날을 겨눌 순 없을 테니 말이야.”

“엥, 흑마법사들이 아니고 황실이요?”

“그래.”

장막을 바라보는 에단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그는 황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안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황제가 가장 아끼는 아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동안 암브로시아가 겨울잠을 잘 때가 되었군.”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장막에 대고 있던 손을 세워 천천히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위험합니다, 주군!”

“힘을 두르고 있으니, 상충하면 튕겨 나가겠지.”

제이드가 만류했으나 에단은 조금 더 힘을 주어 장막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장막이 크게 일렁이더니 이내 에단의 손을 부드럽게 통과시켰다.

마치 아주 익숙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음?”

에단은 장막에 손을 넣은 채로 제이드와 눈을 맞추었다.

“……이 상황은 사라도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장막이 그를 튕겨 내기는커녕, 격하게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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