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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55화 (155/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55화

* * *

깔깔깔깔.

사라의 상쾌한 웃음소리가 클로드의 방에서 울려 퍼져 나갔다.

“…….”

“……으잉?”

바깥에서 남은 마물을 처리하던 암브로시아의 기사들과 사용인들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것은 그들과 생존을 위해 싸우던 마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밀런 소백작님 웃음소리야?”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들어 보는데…….”

“말도 안 돼, 내 여신님이 얼마나 우아하신 분인데! 저건 환청일 거야.”

“지금 암브로시아에서 마물 썰고 있는데 이건 말이 되는 소리냐?”

웅성웅성.

암브로시아 기사들과 사용인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그들을 상대하던 마물들 또한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일단 이것들부터 처리하자고!”

“밀런 소백작님이 오시기 전에 다 처리해!”

그들은 이내 사라의 웃음소리를 환청이라고 여기며 다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

깔깔깔깔.

사라의 웃음소리는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들려왔다.

“환청이 아닌데?”

“조용히 해. 환청이라면 환청이야.”

기사단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눈앞의 마물과 싸우는 데 집중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상냥하게 웃던 사라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환청이 아니어도 괜찮을지도.”

누군가가 얼굴을 붉히며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뜰 때,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던 벤야민이 몸을 일으켰다.

“처리하셨나 보군.”

올리븐에게 당한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였다.

그의 매끈한 이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런 벤야민을 지켜보던 클로드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저씨, 쓸데없이 일어나지 말고 그냥 누워 있어. 괜히 유모한테 혼나지 말고.”

“……걱정해 주는 것치고는 단어 선택이 나쁜데.”

“걱정 아니거든?”

“걱정하고 있는데, 너.”

“아니라고.”

“맞아.”

“아니야!”

파르르 떨며 소리치는 클로드를 보며 벤야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처 난 곳이 아픈지 그의 미간이 일순 찌푸려졌다.

퉁명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클로드의 눈동자에도 어쩔 수 없는 걱정이 스쳐 갔다.

‘나 때문에 아저씨가 다쳤어.’

클로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눈에 힘을 주었다.

아직도 자신을 가로막은 벤야민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맨날 짓궂게 그를 놀려 대던 벤야민이 자신의 몸도 신경 쓰지 않고 그럴 줄은 몰랐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이 클로드의 작은 몸에서 요동쳤다.

그런 마음과는 달리 아이의 입술 사이로는 퉁명스러운 타박이 흘러나왔다.

“아저씨는 바보야? 그렇게 무턱대고 막아서면 어떡해. 유모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거야.”

“맞아. 스승님이라면 그 순간에도 완벽하게 너도 자신도 지켜 내셨겠지.”

사라를 떠올리는 벤야민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상처는 아팠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지 그는 손을 들어 클로드의 머리를 꾸욱 눌렀다.

“나는 아직 스승님을 따라가려면 멀었어.”

“…….”

“그러니 어쩔 수 없지. 너부터 지킬 수밖에.”

벤야민의 말에 클로드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끊임없이 마물들에게 공격당하고 흑마법사들에게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벤야민은 클로드를 신경 쓰고 있었다.

침대에 방어막을 쳐 두었지만, 그래도 공격이 클로드 쪽으로 날아가면 서릿발 같은 시선이 따라왔다.

그리고 클로드 쪽으로 공격한 놈은 확실하게 처리했다.

‘일렉사나 페넬로아 님한테 공격이 갈 때는 내버려 두었으면서.’

어린 클로드의 눈에도 벤야민의 우선순위가 확실하게 보였다.

노골적인 편애였고 노골적인 애정이었다.

말은 밉게 해도 어느새 자신을 보는 벤야민의 눈에 담겨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사라가 자신을 보던 눈과 점차 닮아 가고 있었다.

“…….”

평소 같았으면 머리를 누르는 벤야민의 손을 쳐 냈겠지만, 이번만큼은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이상함을 느낀 벤야민이 고개를 숙이며 클로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 우냐?”

이불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본 벤야민이 당황하여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야, 꼬맹아 너 왜 그래. 어디 다친 건가? 그럼 똑바로 말해.”

“다친 건 아저씨고.”

클로드는 소맷자락을 들어 눈가를 문지르며 벤야민의 손을 탁 쳐 냈다.

“다친 건 난데 왜 꼬맹이 네가 울고 난리…….”

“아저씨가 너무 바보 같아서 눈물이 다 나네.”

“……멀쩡하잖아.”

벤야민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제 아비를 닮았는지 사람 속은 아주 야무지게 긁을 줄 알았다.

그때 저 멀리서 저택에 남은 환상 마법을 전부 다 처리한 벨루나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클로드 님!”

“벨루나 누나!”

벨루나의 얼굴을 본 클로드의 얼굴이 환해졌다.

클로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벨루나를 향해 달려갔다.

“목숨 걸고 지켜 줘도 다 소용없군.”

홀로 남겨진 벤야민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일렉사와 페넬로아가 동시에 벤야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힘내세요. 벤야민 아저씨.”

“괜찮아요, 언젠가 암브로시아 공자도 벤야민 님의 마음을 알아줄 거예요.”

두 사람의 다정한 위로에 벤야민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평소 같았으면 움찔 떨었을 일렉사와 페넬로아가 여전히 푸근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벤야민은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망할 꼬맹이.”

클로드 때문에 저택에서 동정이나 받아야 하는, 하찮은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벨루나 누나, 아저씨가 다쳤어. 많이 다쳤어.”

클로드는 벨루나의 품에 안기자마자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다.

치료 마법에는 벨루나가 일가견이 있다고 사라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빨리 가서 고쳐 줘.”

“알았어요.”

벨루나는 웃으며 클로드를 다독였다.

그러곤 배신감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있는 벤야민에게 다가갔다.

“이게 무슨 일이야? 벤야민이 다쳐서 오기나 하고.”

“빈정거리지마, 벨루나. 이미 저 꼬맹이가 내 속을 다 뒤집어 놓고 갔으니까.”

벤야민은 미간을 좁히며 서늘하게 쏘아붙였다.

배신감 어린 시선은 좀처럼 클로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클로드는 새침하게 턱을 치켜들며 받아쳤다.

“내가 언제 아저씨 속을 뒤집어 놨어? 올리브인가 올리븐인가 하는 아저씨가 뒤집어 놓았지.”

“……하.”

벤야민은 더 말을 섞어 봤자 자신만 손해임을 깨닫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치료를 아예 안 하고 있어? 너도 치료 마법쯤은 할 줄 알잖아.”

“해 봤어. 그런데 안 돼.”

“안 된다고?”

“올리븐이 저 꼬맹이를 진짜 죽이기로 작정했는지. 흑마력을 아주 가득 담았어.”

“……그래서 네 마력과 충돌하는구나.”

“그래.”

벨루나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흑마법은 자연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힘이었다. 시간을 거스르고 법칙을 거스른다.

그렇기에 백마법과는 정반대의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설프게 백마법의 마력으로 치료하려고 들었다간 오히려 상처가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그 녀석, 나한테 공격했을 때는 흑마력을 안 썼어.”

벤야민이 복잡한 시선을 들어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끝없이 공격을 주고받았고 흑마법사들까지 상대했지만, 그들은 벤야민에게 치명적인 흑마법은 쓰지 않았다.

아마도 올리븐이 벤야민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지.

올리븐이 죽이고자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오직 하나, 클로드 암브로시아뿐이었다.

‘겨우 좁쌀만 한 꼬맹이 하나 가지고.’

자신이 클로드 대신 공격을 맞았을 때 일그러지던 올리븐의 얼굴을 떠올리며 벤야민은 혀를 찼다.

진심으로 죽일 생각으로 날린 공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스승님이 오시면 해결해 줄 거야.”

벨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흑마법에 당한 상처가 가볍다면 어떻게 해 보겠으나, 벤야민의 상처는 딱 보아도 깊어 보였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마력의 충돌이 일어나면 그것이야말로 더 위험했다.

깔깔깔깔.

벨루나는 아직도 들려오는 스승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승님이 기분이 좀 진정되시면 이리로 오실 거야.”

“그래.”

벤야민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클로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벨루나가 오면 벤야민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하지 못한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난 것이다.

“만약에 유모도 못한다고 그러면 어떡해? 아저씨 죽어?”

“안 죽어. 스승님께서 못하시는 건 없어.”

벤야민은 확고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클로드는 아직 사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강하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클로드의 머릿속에는 이미 피를 토하며 쓰러졌던 사라의 모습이 아주 단단하게 새겨져 있었다.

클로드의 머릿속에서 사라는 자신과 아버지가 힘을 합쳐 지켜 줘야 할 사람이었다.

“아저씨 어떡해…….”

클로드는 울상이 되어 벨루나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흐느꼈다.

이미 벤야민이 죽는다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아주 애처로운 울음소리였다.

“안 죽는다니까.”

벤야민이 황당한 목소리로 항변했지만 클로드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벤야민 아저씨 죽어요?”

“밀런 소백작이 어떻게 해 줄 거란다, 일렉사.”

클로드에게 영향받은 일렉사 또한 금세 울상이 되었고, 페넬로아는 그런 일렉사를 다독이면서도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저희 클로드 님을 지켜 주신 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암브로시아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던 베론과 론다도 한마디씩 보탰다.

“사라 님……, 빨리 와 주세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메이까지.

벤야민은 전부 하나같이 그가 죽기라도 할 것처럼 구는 이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것들이 진짜.”

창백해졌던 벤야민의 얼굴이 열이 받아 조금은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

클로드는 벨루나의 품에서 내려와 벤야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며 말했다.

“아저씨, 내가 그동안 미안했어.”

“안 죽는다고.”

“이제 형이라고 불러 줄게.”

“그건……!”

뭐라고 하려던 벤야민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건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스승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죽는 척이나 할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 벨루나의 눈에는 보였는지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싸늘해졌다.

“벤야민 형이 안 죽었으면 좋겠다.”

클로드는 벤야민의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벤야민이 없으면 이제 조금은 심심해질 것 같았다.

사라와 노는 것도 좋고 일렉사랑 노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벤야민이랑 허물없이 티격태격하는 것도 재밌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벤야민이 자신에게만 툴툴거리는 것도 좋았다.

클로드는 이제야 자신이 벤야민을 아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죽는다니까.”

죽는 척 장난질이나 쳐 볼까 했던 벤야민도 그런 클로드의 간절한 마음을 느꼈는지 작게 웃었다.

그는 답지 않게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클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부드럽게 감기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벤야민은 스승이 왜 그렇게 뺨을 붉혀 가며 아이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고 부드럽고 따뜻한 생명체였다.

“……죽으면 안 돼, 벤야민 형.”

“알았다, 클로드.”

아저씨와 꼬맹이가 아닌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 주는 두 사람을 보며 다들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뭔가 감동적이긴 한데, 이러니까 진짜 벤야민이 죽기 일보 직전인 것 같았다.

“클로드 님, 스승님께서는 충분히 벤야민을…….”

그 광경이 익숙지 않은 벨루나가 웃으며 클로드의 오해를 풀어 주려던 순간이었다.

벤야민의 손을 꼬옥 잡고 눈을 감고 있던 클로드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다.

“……어?”

벨루나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그 찰나의 사이에 클로드의 몸에서 새하얗고 환한 빛이 순식간에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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