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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44화 (144/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44화

* * *

“…….”

“…….”

“…….”

파벨 영지 영주 성에서 마련해 준 회의실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던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특히나 3황자는 이 자리에 앉은 이후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였다.

에단 암브로시아는 아까부터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고 있었고, 밀런 소백작으로 추정되는 마법사는 로브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두 사람의 입이 열리길 기다리던 3황자는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쪽이 밀런 소백작?”

“저런. 3황자 전하께서 출발이 늦어서 소식도 느린가 봅니다. 사라는 공작저에 클로드와 함께 남아 있지 않습니까.”

기껏 입을 열었던 3황자는 서슬 퍼런 에단의 목소리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밀런 소백작임을 에단도 알고 3황자도 알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래도 세 명만 있는 자리이니 말을 꺼내 보았지만 단칼에 잘리자 3황자는 이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시 입을 굳게 다무는 3황자를 보며 사라는 결국 미안함에 먼저 입을 열었다.

“왜 황자 전하를 구박하고 그러세요.”

“사라.”

“밖으로 들리지 않게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회의실 전체에 걸어 두었어요. 그러니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사라의 말에 굳었던 에단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3황자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페넬로아의 위대함에 대하여 떠올렸다.

두 사람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더니, 이건 누가 보아도 에단이 사라를 편애하고 있었다.

훗날 3황자가 황위에 오른다면 그가 곧 에단의 주군이 될 텐데. 지금 하는 취급만 본다면 그는 가는 길에 버려둔 마물만도 못했다.

“하아.”

3황자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취급에 기분이 상할 3황자가 아니었다. 3황자는 애초에 황자로서의 자존심 따위는 가져 본 적도 없었다.

오직 페넬로아와 일렉사만이 그를 알아주면 되니까. 그 두 사람의 세상에서만 가치가 있다면 그걸로 족하니까.

“그럼 이 기회에 밀런 소백작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굳이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알톤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음, 제가 존재감이 있던가요?”

“굳이 이번 행렬에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모두의 앞에서 보여 주어야 할 이유가 있냐는 말입니다.”

“어머나.”

로브 자락 아래로 사라의 입술이 희미하게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의자에 몸을 느긋하게 기대며 말했다.

“그저 알톤 영지에서 일어난 비정상적인 일로 공포에 떨고 있을 제국민을 안심시켜 주기 위한 황제 폐하의 뜻이 아닐까요?”

“폐하의 뜻이 아닌 것을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정말 알톤에 있는 것이 흑마법사라면, 이렇게 대놓고 찾아간다는 것을 알리는 게 일을 망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날카로우시네요.”

사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3황자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대놓고 찾아가겠다고 선전을 하면서 일부러 느긋하게 마차를 타고 굳이 마물들과 싸워 가며 이동을 했다.

저쪽에서 대비를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3황자 전하의 말씀대로 이렇게 굳이 알린 이유가 따로 있긴 하죠.”

“그럼 왜……?”

“궁금하세요?”

사라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3황자의 몸도 그녀를 따라 홀린 듯이 앞으로 기울었다.

“제가 알려 드리면, 전하께서는 제게 뭘 주실래요?”

“……대가가 필요한 겁니까?”

“일단은 비밀이니까요.”

“그렇군요.”

사라의 말에 3황자는 고심했다. 에단 암브로시아와 사라 밀런이 감추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곧 정보가 된다.

그것에 대가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3황자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보석이나 재화, 혹은 내가 훗날 즉위했을 때의 영광 따위는 이미 밀런 소백작에게는 가치를 잃은 것이겠지요.”

“그렇죠.”

“그렇다면 밀런 소백작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는 것으로 대가를 치르는 건 어떻습니까.”

3황자의 말에 사라는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대가예요.”

사라가 손가락을 따악, 하고 튕기자 허공에서 푸른 마력이 반짝이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

처음 보는 광경에 3황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라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마력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회전하던 푸른 마력의 가운데에서 커다란 줄기가 뻗어 나가더니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 어지러운 선들이 뻗어져 나가는 것 같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크롬벨 제국의 지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알톤 영지?”

그중 알톤 영지 부분이 유독 더 화려하게 빛이 나더니 이내 그 부분만 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건 지금 알톤 영지의 상황이에요.”

사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탁하게 변한 마력이 알톤 영지 전체를 까맣게 뒤덮기 시작했다.

“이미 보고받으셨겠지만 흑마법사들이 알톤 영지에 알 수 없는 장막을 만들어 냈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과 유사한 기운이 발견된 곳이 이곳.”

푸른 마력으로 만들어진 크롬벨 제국의 지도 곳곳에 검은 점이 찍히기 시작했다.

알톤 영지를 시작으로 점점 영역을 넓혀 가는 것처럼 검은 점은 크롬벨 제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

“이게 다 흑마법사들의 흔적이란 말입니까?”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3황자의 물음에 사라는 검은 점이 찍혀 있는 부분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로브를 쓰고 있는 탓에 3황자에게는 그런 사라의 시선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이건 아주 오래된 흔적이에요. 마치……, 수십 년도 더 된 것 같단 말이죠.”

“흑마법사들이 오래전부터 이 크롬벨 제국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다는 뜻입니까?”

“분명 흑마법의 흔적들이지만, 지금 알톤 영지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자들의 것은 아니에요. 물론 일부분 유사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은 있지만.”

사라는 손을 쭉 뻗어 마력을 한층 더 뿜어내었다.

그러자 크롬벨 제국의 지도 형태를 갖추고 있던 마력들이 넓게 퍼지면서 대륙의 형태를 그려 내었다.

“지금 크롬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건 세니아 공국과 도메룰스 왕국 그리고 블라이트 제국이에요.”

“……그렇습니다.”

“이 세 나라에서도 흑마법사들의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사라의 말에 3황자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마력으로 만들어 낸 대륙의 곳곳에 검은 점들이 무수히 많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이렇게 되기 전에 보고가 들어왔을 텐데!”

“크롬벨 황실에서 파악하지 못한 것도 당연해요. 이것들은 전부 다 최근에 발견된 흔적들이니까.”

“그럼 이걸 밀런 소백작이 전부 알아냈단 말입니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3황자의 말에 사라는 조용히 에단을 바라보았다.

“암브로시아 공작이?”

“공작님이 마탑의 마법사들과 함께 많이 애써 주셨죠.”

에단은 사라의 명을 받은 마법사들과 협조해 대륙 곳곳에 퍼진 흑마법의 흔적들을 전부 보고받고 있었다.

괜히 그가 미친 듯이 바쁜 일정에 시달린 것이 아니었다.

올리븐이 1황자와 접촉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다.

에단은 올리븐의 모든 행적을 쫓았다. 암브로시아의 저택에 들어오기 전 무엇을 했는지, 홀로 홀연히 사라져 알톤으로 향했을 때는 무엇을 했는지.

알톤 영지의 장막이 생기기 이전부터 에단은 1황자와 올리븐을 주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1황자는 각국의 도움을 받아 황위 찬탈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일이 아닙니다, 공작.”

3황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제국의 황자가 흑마법사의 힘을 빌려 황위를 차지하려 한다고요. 바로 옆 나라인 블라이트 제국은 신성 제국입니다. 그걸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습니까?”

“왜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손을 거들려고 한다면 모를까.”

“불가능합니다. 블라이트 제국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것이 어둠의 힘이에요.”

“그렇기에 블라이트 제국은 1황자를 도우려 할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겠지만.”

“어째서요?”

“1황자가 흑마법의 힘으로 황위를 차지하고 나면, 블라이트 제국이 크롬벨 황실을 처단할 명분을 쥐게 되니까요.”

“하.”

에단은 무섭게 굳어지는 3황자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삼켰다.

그도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3황자와 같은 얼굴을 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 3황자도 그때의 에단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군.”

3황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려 애썼다. 제아무리 카제르가 광증에 시달린다고는 하나, 결국 크롬벨의 1황자였다.

그런 이가 찰나의 영광에 눈이 멀어 스스로의 목줄을 누구에게 내어 주는지도 구분하지 못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 멍청한 형님 곁에 누군가 있는 모양이군요. 달콤한 말로 눈앞에 황위를 들이밀며 벼랑으로 이끄는 누군가가 말입니다.”

날카로운 3황자의 지적에 사라는 에단과 눈을 마주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반쪽만 섞인 피라도 형제이긴 한 건지, 3황자는 카제르가 스스로 이만큼의 일을 벌일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을 바로 파악했다.

“그게 굳이 제가 마법사라는 존재감을 내세워서 알톤으로 향한 이유예요.”

“……?”

“그 아이를 알톤 밖으로 끄집어내려면 두 번 정도는 속여 줘야 해서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따악, 하고 손을 튕겼다.

그러자 그녀가 입은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지만 조금 더 품이 크고 기장이 긴 로브가 튀어나왔다.

그 로브를 3황자의 몸에 이리저리 대 보더니 대충 만족했는지 사라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3황자 전하, 아주 잠시 동안 마법사가 되어 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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