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41화
사라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기사들이 마차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을 전부 다 밖으로 던져 버렸다.
“어엇!”
“아, 안 돼!”
“담요, 담요만이라도……!”
기사들은 사라가 던지는 것들을 익숙하게 잡아채면서도 다시 건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마차 안으로 넣고 던지고 잡아채고를 반복하다가 이내 질려 버린 사라가,
“지금 이러는 게 더 피곤해요!”
라고 단호하게 잘라 낸 뒤에야 기사들은 우울한 얼굴로 포기할 수 있었다.
“……휴.”
사라는 재채기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단호하게 잘라 내지 않는다면 마차 안은 기사들이 던져 넣은 물건들로 꽉 차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면서 해가 완전히 지니 조금 쌀쌀해졌다고 말을 붙였을 뿐인데 마차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려고 했던 기사들이었다.
에단이 그것을 보고 경악하여 기사들을 전부 다 쫓아내고 사라가 마차에 온기 보존 마법을 걸어 두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었다.
그랬는데 겨우 재채기 하나에 기사들의 염려증이 다시 돋은 것이다.
“이게 다 공작님 때문이에요.”
사라는 뚱한 얼굴을 하고서는 불평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곤 기사 하나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밀어 넣었던 담요를 끌어당겨 덮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에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미안합니다.”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사라를 향한 염려증은 에단이 가장 중증이었으니까.
에단이 그 난리를 치며 사라를 감싸고도니까 기사들 또한 주군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사라는 이런 와중에 기사들이 마차 안으로 밀어 넣으려 애썼던 것들 중 그녀에게 필요한 것만 적절하게 골라서 가지고 있는 에단을 보며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단의 손에는 따뜻한 물이 담겨 있는 머그잔과 사라가 좋아하는 오렌지를 설탕에 절인 것, 또 감기에 효과가 있다는 쓴맛 나는 열매가 들려 있었다.
분명 사라가 다시 마차 밖으로 보낸 것들 중에 저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앞으로 알톤 영지에서 사라가 해 주어야 하는 것이 많은데, 우리가 그대의 몸 상태에 각별히 신경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에단은 그렇게 말하며 열매 하나를 사라에게 내밀었다.
끔찍하게 쓴맛이 나지만 감기 기운 따위는 한 방에 날려 버린다는 악마 같은 신이 만든 열매였다.
그걸 보자마자 사라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저 감기 기운 진짜 없어요. 정말 건강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먹어 두어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질색을 하는 사라의 반응에도 에단은 아주 부드럽게 웃으며 꿋꿋하게 열매를 내밀었다.
사라가 에단이 내미는 열매를 받으려 손을 내밀어도 그는 슬쩍 피하기만 했다.
기어코 그녀의 입에 직접 넣어 주겠다는 심산이었다.
“……공작님은 절 미워하시는 게 분명해요.”
불퉁한 사라의 목소리에 에단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좋아하는 것에 더 가까울 텐데요.”
“…….”
에단의 대답에 사라의 얼굴이 화르르 붉어지며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저건 고백인 건가. 방금 내가 고백을 들은 건가.
사라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방금 나 좋아한다고 한 게 맞지? 결혼하자는 건가? 청혼인가?’
노후는 어디서 보내지, 클로드가 자식을 보게 된다면 손주도 내 손으로 기르고 싶은데, 근데 또 클로드가 장성해서 가문을 이끌게 되면 에단과 함께 세계 여행이라도 하고 싶고…….
사라는 벌써 에단과 결혼하고 함께 늙고 나중에 주름진 손을 마주 잡고 한날한시에 눈을 감는 것까지 상상했다.
입술을 뻐끔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사라를 보며 에단은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그러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라의 입술 사이로 열매를 쏙 하고 넣어 주었다.
“……!”
순식간에 입 안 가득히 쓴맛이 퍼졌다.
모든 혼란과 상상이 한 방에 날아가는 맛이었다.
“아, 윽!”
사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것 하나만 먹으면 며칠 동안 찬 바람을 맞고서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전설의 열매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감기에 걸릴지라도 이 열매만큼은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너무 맛이 없고 쓰고 혓바닥 전체를 마비시키는 맛이었다.
‘고백은 무슨.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날 속였어.’
사라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울먹였다.
정말 그녀를 좋아한다면 이럴 수는 없었다.
열매를 먹게 하기 위해 거짓으로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원망 어린 시선으로 에단을 쏘아보고 있는데 그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설탕에 절인 오렌지를 따뜻한 물에 타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걸 마시면 쓴맛이 조금 덜할 겁니다.”
“…….”
에단이 내미는 머그잔에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달콤하고도 새콤한 오렌지 향기가 은은하게 번지고 있었다.
사라는 못 이기는 척 그것을 받아 황급하게 들이켰다.
물이 너무 뜨겁지도 않고 적당히 따뜻해서 무리 없이 삼킬 수 있었다.
“후…….”
그제야 입 안을 온통 마비시킬 것만 같았던 열매의 맛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진짜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하하.”
“그렇게 웃지 마시고요!”
속상한 그녀의 속도 모른 채 웃는 에단을 보며 사라는 입술을 삐죽였다.
이래서 먼저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에단과 함께 알톤 영지로 향하는 내내 깨닫게 된 진리였다.
그의 이런 작은 친절에도 속절없이 흔들리고, 그저 당황하게 해서 열매를 먹이려는 검은 속셈을 담은 말에도 설렘을 느낀다.
‘내가 휘둘리는 만큼 나도 공작님을 흔들고 싶은데.’
사라는 어떻게 해야지 에단이 자신을 흔드는 만큼의 혼란을 그에게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에단은 그녀가 열매를 다 씹어 삼키고 달달한 오렌지 차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품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원래라면 그녀가 혼자 편히 쉴 수 있도록 마차 밖으로 나가 기사들과 함께했겠지만, 재채기를 했으니 조금 더 옆에서 지켜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사라는 다 마셔 가는 머그잔을 꾸욱 쥐며 생각했다.
‘이러니까 나도 자꾸 꾀병을 부리게 되는 거야.’
사라가 쌀쌀하다고 했을 때에도, 마물들의 피 냄새가 좋지 않다고 했을 때에도, 머리가 조금 아픈 것 같다고 했을 때에도.
에단은 매번 마차 안으로 들어와 사라가 괜찮아질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사실 괜찮지 않을 것도 없고 하나도 불편한 점이 없었지만, 에단이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것이 좋아서 사라는 조금씩 핑곗거리를 늘려 갔다.
그 대가로 이렇게 악마 같은 열매를 먹게 되었지만.
“죄송해요, 바쁘실 텐데 신경을 쓰게 만들었네요.”
“아.”
사라의 말에 책장을 넘기던 에단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일정에서 그대를 신경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감사해요.”
에단의 말에 사라는 얼굴을 슬쩍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저렇게 자상하게 대답해 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봤었다.
이번 알톤 영지의 일로 에단이 처리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져서, 저택에 있을 때도 사라와 약속했던 아침 식사와 놀이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의 얼굴조차 보는 게 힘들었다.
저택에서 온전히 일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때도 그 지경이었는데, 알톤 영지로 이동하는 일정에서는 오죽할까 싶었다.
암브로시아의 마차는 한 대뿐이었다. 기동력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최대한 마차를 버리고 움직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필요한 물건이나 짐들은 사라가 마법으로 해결해 줄 수 있으니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마차 안에서 일을 처리하셔도 되는데.’
지금도 제이드는 마차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에단은 말을 타고 이동하며 마물들을 처리하면서 제이드와 함께 회의를 진행하고 전서구를 수도 없이 날리고 받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에단은 사라가 바쁜 그의 눈치를 볼까 봐 마차 안에서는 서류를 보지 않고 책을 읽거나 그녀와 담소를 나누어 주었다.
그런 자상한 배려에 사라의 심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려앉았다가 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차라리 제 마법으로 한 번에 이동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습니다만…….”
에단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조금 아쉬워서 말입니다.”
“뭐가요?”
“도착하게 된다면 이 일이 처리되기 전까지 사라는 얼굴을 가리고 있을 텐데 그게 언제 끝날 줄 알고.”
“……?”
에단의 말에 사라가 고개를 기울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려면 어쩔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