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37화
* * *
“속도를 올려라!”
“오늘 밤이 가기 전에 파벨 영지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쉬지 않고 간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암브로시아 기사단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험준한 산길을 빠르게 올랐다.
수도 근처까지는 인적이 많아 느긋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 줬지만 이젠 달랐다.
인적이 드문 산길로 접어들자 비로소 원래 계획했던 속도가 붙고 있었다.
“…….”
에단은 조용히 다리를 까딱이며 곧 도착할 사라를 기다렸다.
3황자가 이끌 일행과 합류하기 전 사라가 로브를 벗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암브로시아 기사단의 기동력이면 곧 파벨 영지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그녀가 와 주었으면 했는데, 클로드와의 작별 인사가 아무래도 쉽지 않은 듯했다.
“밀런 소백작님이 늦으시네요.”
마차의 창문 넘어 제이드가 에단에게 말을 걸었다.
“벨루나가 그쪽으로 넘어갔으니 곧 오겠지.”
“산길로 들어오니 해가 빨리 지는 것 같습니다.”
제이드는 불안하다는 듯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도 밖으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제국의 수도 근처인 만큼 잘 닦여 있는 길이 많았다.
암브로시아는 일부러 좀 더 험준하고 인적이 끊긴 길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모습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쯧.”
제이드의 말에 에단은 마차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마물이 활동할 시간이 됐으니 마차는 이제 버린다.”
“예!”
마물.
크롬벨 제국의 중심지인 수도 근처에서는 들어 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원래라면 그래야만 했다.
제이드는 마차에서 말로 옮겨 타는 에단의 옆에서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 갔다.
“정보원에 따르면 인적이 많은 곳을 피해 이쪽으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많이 굶주렸을 테니, 슬슬 참기 힘들겠지요.”
“마물을 유혹하는 향주머니는?”
“기사단 전체가 다 착용했습니다.”
“좋아.”
비교적 최근 알톤 영지에서 마물들이 대거 이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톤 영지 근처에 위치한 영지들의 인명 피해 또한 보고되었다.
다만 마물들이 어쩐 일인지 겁에 질려 있었고, 최대한 알톤 영지에서 멀어지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에 그리 피해 규모가 크지 않았다.
“결국 수도 근처까지 기어들어 오다니. 제국의 보안이 고작 이 정도였던가.”
“황제가 양위를 선언하며 잠시나마 일선에서 물러났던 것이 영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황자들이야 황위에 눈이 돌아가 있었을 테니 이렇게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겠지.”
“황위 계승이 이루어질 시기여서 영주들이 눈치를 보느라 쉬쉬한 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단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조금 더 속력을 내어 말을 몰았다.
황위 계승 시기에 각 영지의 영주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기 일쑤였다.
어느 황자를 지지할 것인가. 또, 황위 계승에 유력한 황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 것인가.
영지의 미래가 걸린 일이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다.
“오는 길에 처리한 마물의 숫자가 몇이지?”
“셋입니다.”
“적지 않아.”
작게 혀를 차는 에단의 눈빛은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마물들이 점점 수도를 향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각 영지의 영주들이 보고를 올리지 않아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곧 제국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는 걸 의미했다.
“그간 기사단을 보내 처리해 놓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수도에서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맞닥뜨리게 된 마물이 무려 셋이었다.
마물 하나가 해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번에 수도로 온갖 사람들이 몰리면서 마물들 또한 이쪽으로 많이 모인 것 같습니다.”
“먹이가 많이 있는 곳에 자리 잡아야 하니 말이지.”
사실 사라가 있으면 굳이 3황자와 합류해 천천히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순간 이동 마법으로 알톤 영지까지 가면 아주 빠르고 간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알톤 영지에서 이곳까지 퍼져 버린 마물들을 청소하기 위함이었다.
“살기가 느껴지는군. 다들 칼을 뽑아라.”
“예!”
에단의 명령에 기사단은 천천히 말의 속도를 줄이고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예리한 칼날이 어두워진 산속에서 날카롭게 빛났다.
“……옵니다.”
선두에 선 기사의 말과 동시에 눈앞에 천천히 노랗게 빛나는 안광이 하나둘씩 번뜩이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르르.
인간이 아닌 짐승에 가까운 마물들이 살기를 뿜으며 내는 울음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하나, 둘, 셋, 넷…… 음.”
안광의 숫자를 세던 제이드가 이내 낭패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얘들 여기 다 모여 있던 모양인데요?”
“쯧.”
에단이 혀를 차며 간단하게 손짓하자 기사단은 일제히 말에서 내려 공격 자세를 취했다.
숫자가 이제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최소 서른 이상입니다.”
맨 앞에서 마물들의 기척을 파악한 기사단원 하나가 에단에게 보고했다.
“이곳에 저 정도의 숫자가 있다는 건 이 산맥 전체가 마물들 소굴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그렇습니다.”
에단은 귀찮게 되었다는 생각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암브로시아의 기사단은 들어라.”
“예!”
“3황자 또한 이 길을 지나게 될 것이며, 언젠가 크롬벨의 제국민 또한 지나게 될 길이다.”
“…….”
“그 길 위에 마물들을 남겨 두고 갈 테냐.”
“아닙니다!”
암브로시아 기사단의 기세가 단숨에 끌어 올려졌다.
그들이 뽑은 칼날은 굳은 의지로 빛났으며, 마물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살기가 넘쳐났다.
알톤 영지로 향하는 길이 급하다고는 하나, 언제나 제국을 위한 선택을 내리는 주군의 명을 따른다는 것은 그들에게 명예 그 자체였다.
크르르, 크와앙.
암브로시아 기사단의 기세에 맞추어 마물들 또한 천천히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집채만 한 덩치와, 단단한 갑옷을 연상시키는 질긴 피부.
마물들의 모습은 전부 다 사람 하나쯤은 팔 하나로 짓뭉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저를 보내 주십시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암브로시아 기사단은 먼저 달려들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선두를 자처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저 마물들을 처리해 암브로시아의 명예를 드높일 생각뿐이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천천히…….”
제이드가 그런 그들을 달래며 곤란한 듯 에단을 바라봤을 때, 그는 주군의 시선이 마물들이 아닌 그 위를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주군?”
그는 에단의 시선을 따라 마물들의 머리 위, 허공을 응시했다.
“음?”
그리고 기묘한 기분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뭔가 미묘하게 바람이 뭉치는 듯한…….”
“……?”
제이드의 중얼거림에 선두를 다투던 암브로시아 기사단의 시선 또한 하나둘씩 허공을 향하기 시작했다.
“엇?”
“어어……!”
제이드와는 달리 무력이 더 강한 기사단은 마물들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공기의 흐름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현상이 익숙한 편이었다.
“왔군.”
그때 슬쩍 웃음기가 보이는 에단의 말과 함께 마물의 머리 위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릉?”
“크어어?”
마물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몰라 살기를 뿜었던 것도 잊은 채 짧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렬한 바람이 그들을 덮쳤다.
“크어어!!”
“어어!”
덩치가 작은 마물은 밀려드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나뒹굴었고, 어느 정도 힘이 있는 마물들도 땅속에 제 발을 박은 채 힘겹게 버티고 섰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경계 어린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많이 늦었나요?”
바람을 타고 흐르는 빛들 속에서 부드럽고도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을 단숨에 끝낼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